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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너별 Sep 03. 2022

율(燏), 편지#4

연기처럼 피어나 새벽 속에 흩어지는

침대로 가서 걸터앉아 볼래요?

아니면 소파도 좋아요.



두 팔을 쭉 펼쳐 볼까요.


마치 주변에 아무런 사람도 없는 것 처럼.


눈을 감으면 더 좋죠!


그리고 입꼬리를 최대한 올려 봐요.


이상한 것 같지만 그래도 한번 해봐요.


그대로 뒤로 누우면 갑자기 폭신한 세계가 나를 받들어 줄 것만 같아요.



자, 이제 이 편지를 읽어주세요,


연기처럼 피어나 새벽 속에 흩어지는.






오늘은 날씨가 참 좋았죠.


햇볕이 쨍하고, 바람은 선선하게 불고, 밖에 누워보고 싶은 계절이 다가온 듯 했어요.



그리고 오늘 그 누구보다 짧은 순간을 함께한, 길었던 당신에 대한 마음을 마무리지으려 합니다. 


너무 급작스럽다고 느낄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이미 먹은 마음으로 먼길을 돌아 닿게 된다면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어요.


 


당신은 앞으로도 나에게 있어 보고싶은 사람일 거에요.


나는 자존심을 다 버리고 당신을 사랑했어요.


무리해서라도 잡고 싶었던 그 마음의 편린은, 나에게 있어 귀중한 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우리에게 낭만이 있었다고 믿어요.



낭만, 낭만은 무엇일까요?


저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어요.



아름답고,
추상적이고,
실용적이지 않은 것.




저에게 앞으로 이런 것들이 보이면 꼭 알려주세요. 저의 꿈이자 삶이자 다시 돌고 돌아 낭만이니까.



그 약속을 받고,


나는


앞으로 언젠간 당신을 만나게 될 거라는 희망을 오늘 부로 종료합니다.



종료된 마음의 깜빡임 속에는 그리움이 아닌 우연에 걸친 반가움만이 자리하게 됩니다.


그리고 선잠을 청합니다.



자고 일어나면 나의 세계는 어쩌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니까요.




앞으로 나의 일상은 당신에게 쉽사리 공유되진 않겠지만,


당신께 보내었던 글과 글들은 마치 진흙을 구워낸 단단한 자기처럼 


와인처럼 그 가치를 더해가며,


영겁의 시간으로 함께 나아갈 채비를 할 것입니다.




사랑으로부터 시작된 열차의 마지막 역은 다시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과거나 미래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현재만을 느끼고 향유하고 집중하고 

그 자체를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속성을 지니었습니다.





앞으로 변해갈 그 형태가 어떻든 당신을 사랑할 것입니다. 







무엇을 써야하나 고민을 자꾸 하게 되는 거 보니

이제 그만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지금은 노력하여 특정 지점을 닿아야 할 때가 아닌,

애쓰지 않고 두는 것이 자연스러울 때니까요.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고마웠어요.

몸 건강히 잘 지내세요.



이 말이 여전히, 고스란히 진심이어서 다행이에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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