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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너별 Jun 19. 2024

여름날, 한 잔 시를 너에게

겹겹이 쌓여 있던 새벽 속에

깊은 지반 너머 용솟음에

마침내 흙구덩이를 꺼내어

입맞춘 샘은


볕으로 달구어진 여름길

오아시스 건너 움튼

한 마을처럼 날 깨웠지


그렇게도

보고싶었던

알고싶었던

결코 숨고 싶지 않았던


애걸하는 눈썹

부딪히려 하는 콧날

사랑을 받아들이는 귓가

야트막한 볼



근데 어쩌지,

입이 그려지지 않아


너에게 꼭 전해야 할 말들을

결국 또 이렇게 글로만 전달하게 되었어


안타까워하는 이유는

나는 신중한 글을 더 좋아하지만

너는 바로바로 나눌 수 있는 말을 더 좋아할 때가 많기 때문이야



그래도 일단은

조만간 만나게 될 널

가장 아늑하면서도 

여름의 초입새 새어드는 바람으로 

표정을 적실 수 있는

그런 자리에 묵게 할 테야



그러고는

나의 입의 되어줄 너의 숨소리를 이웃 삼아

이다지도 서툰 변주를 시작할 것이고

그러한 음률은 

달콤하고 화려하고 신나면서 아련하게 슬퍼지는

샘으로부터 온 시원한 한 잔의 시


선율로 귓가도 마저 적신 후엔

네가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몸이 터질 세라 꼭 끌어안겠지




그러므로,

준비한

얼음 동동 띄운

한 잔 시를 너에게.


벌컥벌컥 마시는 너

청정한 기쁨 속의 나


문득 너의 손을 잡아채고

힘껏 달려나가고 싶어


너를 바라보며

숨이 차게 뛰노는 우리의 마음에서

나는 그치 그치, 하며 이야기했던 

겹겹이 쌓인 쪽빛 새벽속에

맑아진 머릿속의 눈부심으로

오늘의 안부를 건넬게



아, 제목은

여름날, 한 잔 시를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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