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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너별 Mar 09. 2021

티눈

너무 애쓰지 말자.

어린 시절, 

나름 왕성한 활동량으로 운동장을 접수하던 나는 나이키 신발이든, 볼이 좁은 컨버스화든,

가리지 않고 쉬는 시간마다 나가서 반 아이들과 함께 축구를 즐겼더랬다. 옷이 더러워지고, 신발이 망가지는 것은 나에게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 결과로 어머니의 잔소리는 내가 차지하는 지분이 다른 가족 구성원들보다 월등히 높았지만, 그런 것에 굴하지 않았다. 마음 자체가 여리고 요리조리 흔들리는 천성을 지니고 있어, 잔소리 한마디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성격임에도, 그 잔소리는 신나게 한쪽 귀로 콸콸 흘려보냈던 나였다.

어쨌던 중 3 시절 순수하고 축구 좋아하는 반 친구들을 잘 만나서 스트레스 잘 안 받고 즐거운 나날들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실력 자체가 월등히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반대항 대회에서 미드필더나 공격수를 할 정도는 되었었다. 허나 경기를 말아먹은 건 굳이 숨기지 않겠다. 

어쨌거나, 그렇게 신나게 뛰다 보니 어찌 망가짐이 뒤따르지 않으랴. 바지가 찢어져서 마이를 치마처럼 둘러 친구들의 놀림(그때는 그게 뭐라고 그렇게 창피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엄지발톱이 꺾여서 깨진 적도 있다.

그중에서 또 하나는, 티눈을 키우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오른쪽 발에 가장자리에 크게 자리한 딱딱한 돌기. 나는 발 볼이 넓은 편이라 신발을 신으면 그쪽이 많이 쓸린다. 하도 뛰어다니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겠지.

그 티눈은 내 인생에 큰 영향이 없었다. 내 발을 보이게 될 일은 살면서 거의 없었고, 발 가장자리로 걷지 않는 이상 '윽 너무 아프다'하는 느낌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냥 가끔씩 마룻바닥에 앉아 티눈을 볼 때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바로 다른 생각으로 넘어갈 뿐이었다.

그런데 그 티눈이 얼마 전에 뭔가 평평해진 듯한 느낌이 들어 확인해 보니, 거의 사라져 있었다. 10년 가까이 인생에 큰 문제가 없어 방치해 두었던 그 티눈이, 언젠가 확인해 보니 약간의 흔적만 남기고는 다시 자라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 일상에 자리 잡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 해결하면서 또 파생되는 크고 작은 사건들. 

바로바로 해결하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할 때도 있고, 신경을 못 쓸 때도 있고, 해결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때도 있다(만약 그렇다면 문제라는 워딩 자체를 바꾸어야겠지만). 

당시에 내가 신경이 너무 쓰여서, 아니면 너무 아파서, 레이저로 치료를 받든, 뿌리를 뽑아내든, 약을 바르든 내가 티눈을 발 속에 지니고 있던 지난 10년간 무언가 조치를 취했다면, 비용이나 꾸준한 노력을 들여서 해결하였을 수도 있다. 그렇게 했다면 빠른 시간 내로 정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저 계속 다른 것에 집중하고 안고만 있었더니 어느 순간 아무런 노력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다시 한번, 내가 지금 안고 있는 사소한 문제들.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할지, 자연적으로 지나갈지 애매한 문제들.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갈 때쯤 언젠가 확인해 보면 거짓말처럼 해결되어 있을지도 모르니, 너무 애쓰지는 말자.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정답은 없다는 걸 다시금 사라진 티눈을 보며 깨닫는다.

티눈을 떠올리면서 운동장을 뛰놀던 시절을 함께 떠올려 추억에도 젖어 보았네.

 공 하나랑 수돗가만 있으면 아무 생각 없이, 노력 없이 그 행위 자체에 몰입하며, 함께할 수 있었던 그때가 조금은 그립지만, 지금도 좋다. 

왜냐면 난 티눈이라는 내 삶의 '티'를 씻어내고, 그리 대단하지 않아도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눈'을 얻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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