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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너별 Mar 15. 2021

추억 먹기

지난 2020년 초봄,

즐겨 입고 다니던

코발트빛 셔츠와


그 위에 걸쳐 입던 군청색 외투.


오랜만에 꺼내어 본다.

피어 나오는 

오래된 목재와 먼지가 섞인 듯

퀴퀴하지만 

시원한 내음.


구석구석 자세히 들여다보는 내 눈.

여기 이곳엔

시간이 일 년간 멈춰 있었구나.


짧은 생각을 보내고

나는 오른손으로 그 외투를 잡고

왼 팔을 소매에 넣고

나머지 오른팔로 반대편 팔을 만들어

이제는 거울 속의 그 옷을 바라본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그저 습관인 탓이기도 하지만,

두 손을 푹 찔러 넣은

폼 잡은 옷 위의 나를 보고 싶었달까.


그 순간,

손끝에 닿는

거치른 질감.


본의 아니게 

주머니 속에 쟁여 놓았던

너를 만난다.



피어 나오는 

가벼운 슬픔과 

야릇한 우울감.


나는 그 둘을

마치 손님 마냥 반긴다.


어서 오라,

어서 오라고.


나는 불현듯

그것을 내 입에 

한 입 베어 물고 싶다.

머금고 음미하고프다.


치약처럼 허연 양칫물이 되어 뱉어질까.

빵처럼 꿀떡꿀떡 덩어리 되어  삼켜질까.


두렵지 않다.

먹어 버리고야 말겠다.


잘근잘근,

야금야금,


매콤한 듯

화~한 듯

코끝으로 올라오는 향기와

떫은 듯하지만

쫀쫀한 듯

감칠 나는

너라는 맛,


다시는 느낄 수 없게

미분하듯

지워 버렸다.




마무리로 물 한잔.



아,


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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