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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너별 Mar 27. 2021

너의 마음으로 가는 길

널 이해하고 싶어

너의 마음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갈색의 제법 튼튼한 배낭과

조그만 나침반

오래되어도 꽤 쓸만한 지도와

얼룩 빛 목걸이가 달린 망원경.

들어가서

폭포의 시작과 같은

너의 중심을 꼭 두 눈에

담아 오리라고.

그러면 너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끝없는 사막과 같은

그 안은 왠지

두 눈을 가볍게 감고

온몸에 힘을 쭉 빼고

두 팔을 벌려 

나의 살갗과 공기의 경계를 무너 뜨리면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가 가장자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왔다고 느꼈을 때는

어두컴컴하고 축축하고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마치 태풍의 날개에 와 있는 듯한

자연의 힘이 나를 짓눌렀다.

나는 생각한다,

이미 시작한 이상,

다시 되돌아갈 수 없어.

그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 거야.

폭풍우에 망원경을 잃고

나침반은 제 기능을 하지 않고

지도는 폭삭 젖어 버려 마땅하여

나의 곁엔 오직 낡은 배낭만이 남아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너의 마음으로 가야 한다는 

어리석고 단단한 우직함을 놓지 않았다.

마침내 폭풍우가 잦아들고

장대비는 가랑비가 되어

여전히 나를 적신다.

희곡의 대단원의 막을 암시하듯.

너의 마음이

저 멀리 신기루처럼 보이는 것 같다.

나는 온몸에 힘이 빠져

한발 한 발 내딛는 것조차 힘이 든다.

아득해진 정신에

저 멀리서 달려오는

너를 보지 못한 채

나는 바닥에 오래된 통나무처럼 쓰러진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에,

 나는 떨어지는 빗방울을 만들어낸 하늘에 묻는다.

달려오는 너의 얼굴은

어떠한 날씨로

나를 바라볼까.

뛰어오는 너의 마음은

후회할까.

조금만 더 일찍

마중을 나와 있을 걸 그랬다고.

조금만 더 큰 우산을

들고 나올 걸 그랬다고. 

내가 널 

온전히 마주했다면,

혼신(魂身)의 자력으로

나를 이끌어온 것처럼

너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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