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느껴진
가슴을 에이는
서늘한 적막감에
몸보다 마음이 아주 달려가
잿빛의 커튼의 장막을
얼른 걷어내었다
쏟아지른 듯한
그리움이라는 화살들이
다시금 나의 내장과 살에 박힐 때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다시금 해방감을 맞이하였다
이윽고
어리어리한
피사체가
나의 시신경에
쿵,
하고 부딪혔다
가슴에 꼿꼿이
그리고 알알이 박히는
상쾌한 절망.
어린아이가
간신히 몸을 이끌고
자기 전 양치를 끝낸 것처럼
다시 커튼을 치고
묻어낸 듯,
품어낸 듯
한동안 어스름 속에 숨어 있겠지
그래도 조금은 열어 놓자.
커튼이 필요 없어질 그 날
하늘과 땅이 입맞추는
그 연보랏빛 노을을
침대에 걸터앉아 바라볼 그 시간을 그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