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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너별 Jul 18. 2021

어떤 행복

밥상머리에서 우물우물 밥을 먹다 문득 매미의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여름이 왔음을 직감했다. 봄가을이 점점 짧아지니 올해 여름도 길겠구나, 하고 찰나의 떠오름이 있었지만 이내 다른 생각으로 넘어갔다.

 회사에 계속 다니고 있었다면 지금쯤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물론 별 의미 없는 가정이다. 휴가 하루 없이 매일매일 공부하며 사는 이런 삶을 견디며(견딘다는 표현을 쓰고 싶지 않지만, 일단은 이 단어로 표현해 본다),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며 놀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현저히 줄어든 이유는 소위 말하는 '철'이 들었다는 이야기라고 여겨도 될까. 아니면 지금 상태가 얼마 안 되어서 그냥 재미있는 걸까. 



 글쓰기의 공책을 폈으니 결국은 예전에 자제하기로 마음속으로 선언했었던 행복이라는 가치에 대해 사색하는 시간을 가져 보기로 한다. 

시간은 4,5년 전 변리사 시험공부를 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1차 시험 과목 중 그 양이 방대한 민법 과목을 공부하고 있었다. 인강을 들었는데, 강의 수가 200강이 넘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한 강의 당 평균 수강 시간은 약 75분. 나는 하루에 3강씩 2달 반 이내로 끝낼 각오로 듣고 있었다. 한 100강 정도까지는. 그때는 내가 내면이 많이 덜 익은 상태라 결과적으로는 무너졌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한다. 


 어쨌든 그 인터넷 강의에서 강사님과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그분의 지식뿐 아니라 사상을 전수받았었는데, 참 존경받아 마땅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 시작할 때마다 누군가 달달한 우유나 간식을 선물하는데, 그것을 그 자리에서 반드시 맛본 후 코멘트 한 줄과 함께 감사 인사를 잊지 않으셨다. 또, 과목에 대한 어머어마한 공부 량이 느껴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가끔 이과적 지식을 뽐내시기도 해서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불확실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셨는데, 오비탈에 비유해서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것들을 뒤로하고 시간이 지나도 아직도 내 마음에 울리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강사님의 공부와 행복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 강사님은 공부하느라 많이 힘들고 지치시나요? 하면서 운을 뗐고, 정확한 어구까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여러분은 행복하지 않냐고 했다. 복에 겨운 소리 하지 말라고 혼내는 게 아니었다. 고시생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순전히 강사의 입장에서 느낀 감정을 강요하며 다그치는 것도 아니었다. 본인의 지식의 수준으로 학생들을 잠시 약 올리려는 건 더더욱 아니었다. 공부하면서 깨달음을 얻고, 성취하고, 더 나아진 모습을 보는 하루하루가 진정 행복이 아니겠냐고 또렷한 눈으로 진심을 담아 말씀하시고 있었다.


 언젠가 '밥 아저씨의 인생 명언'이라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맞다. 그림 그리기와 함께 철학을 알려주던 아저씨. 그분은 '참 쉽죠?'라는 단어를 자주 쓰시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그 영상을 보며 그 단어를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실력이 갖춰져 있으니까 쉽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영상에 달린 댓글 중 하나가 기억에 남는데, '참 쉽죠?' 라는 말은 '할 수 있지?'라는 압박이 아니라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니 겁먹지 마'라는 다독임이라는 말. 


 그 강사님의 진심 어린 말에서 나는 압박이 아닌 다독임을 느꼈다. 결국에는 내가 종국적인 결말을 맞이하지 못하고 그만뒀지만, 이제 와서 그 이야기를 떠올리고 꺼내 보는 건,


 그때 누군가 이야기하던 어떤 행복이 지금 내게로 찾아와 준 게 아닐까 하는 마음에서다. 


 다시 말해 지금 그것을 느끼고 있다. 

그때 그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면, 내가 깨달을 수 있었을까 하고 생각이 드는 일요일 저녁이다.


배우고 깨우치고 성장하는 행복을 상기시켜 준 그 강사님에게 이 글을 빌어 진심 어린 감사를 표한다. 

 

그럼 이만 또 배우러 가야겠다! 

달아나기 전까지 마음껏 탐닉하고 향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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