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단이

당연하지만 당연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

by 뤼더가든

우리 아파트에는 고양이가 한 마리 산다.

이 구역의 다른 고양이들을 모두 정리하고 공식 냥이로 인정 받은 이 고양이는 ‘단이’라는 이름도 있다. 105동 통로쯤에는 보금자리도 만들어졌다. 사료와 물을 챙겨주고 주기적으로 씻기는 주민 덕분에 길고양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깔끔함을 자랑한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츄르를 비롯한 각종 간식 선물도 받아서인지 꽤 통통한 몸매의 소유자다. 수북하고 매끄러운 털을 보면 단순히 털이 찐 건가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 녀석은 개냥이라 불릴 만큼의 붙임성으로 아무나 보면 어슬렁 걸어 나와 털을 부비기도 하고 야옹거린다.


하지만 또 그렇다고 아주 헤픈(?) 녀석은 아니라 아무 때나 허락 없이 만지려 들면 아주 심드렁한 표정으로 슬그머니 자리를 옮긴다. 차라리 확 화를 내거나 민감하게 굴면 그냥 겁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 하겠는데, 아주 상대하기 귀찮다는 눈빛으로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아주 조금씩 옮겨서 자리를 잡고 앉으면 ‘아 예 쉬시는데 죄송합니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아파트 입주자 카페에 올라온 글 속 단이 모습

그런 단이가 오늘 아침에는 굉장히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보고 다가왔다. 발걸음도 평소보다 빠르다.

'이건 분명 밥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나를 이렇게 반가워할 리가 없다.

“배고파 단이야? 밥이 없어?”

단이는 대답이라도 하듯 야옹 거리며 쫓아온다. 그런데 밥그릇에는 사료가 가득 있었다.

“밥 여기 있네~ 왜 안 먹고? 이게 먹기 싫은가?”

사료를 조금 손으로 뒤적거리자 단이가 마치 그릇에 있는 걸 몰랐다는 듯 허겁지겁 먹는다.

물그릇을 보니 얼음으로 꽉 차 있고, 보충용으로 둔 생수병 속의 물도 꽁꽁 얼어 있었다.

수도가에서 물을 떠 오려고 보니, 이미 비닐로 둘둘 싸인채 모두 잠겨 있었다. 귀찮았지만 차마 그냥 갈 수가 없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봐. 내가 집에 가서 물 좀 가져올게.”라고 말하며 집으로 향했다.

‘아... 물이 언다는 걸 생각을 못했네. 정수기 물? 아, 뜨거운 물이 좋겠다. 그럼 물그릇 속에 물이 녹겠구나’

손바닥을 치고 혼자 꿍얼거리며 현관 비밀번호를 눌렀다. 따뜻한 물을 한 컵 채우고 작은 무릎담요도 챙겨 다시 단이에게로 향했다.


단이가 한 곳에 붙어있는 모습을 잘 보지 못했기에 아마도 어디로 가버렸을지도 모를 텐데, 그럼 물이라도 채워주고 오면 언젠가 먹겠지 생각하며 105동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단이는 기둥 옆에 얌전히 앉아 있다가 나를 보더니 야옹 했다. 마치 “왔어?” 하는 것 같이.

“많이 목말랐어? 나 기다렸어? 기다려. 녹여줄게.”

괜히 들뜬 목소리로 뜨거운 물을 조심히 부었다. 행여 달려들어 델까 싶어 찔끔찔끔 물을 부어주는데 녀석은 물그릇에는 관심도 없고 갑자기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뭐야 너? 그냥 혼자 밥 먹기 싫었어? 하긴... 혼자 밥 먹는 거 좀 심심하긴 해.”

그런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먹는 것에 열중하던 단이는 다시 어슬렁 이동한다. 그르렁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단이의 보금자리

그런데 이 녀석 갑자기 상자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내가 가져온 컵을 향해 코를 들이밀길래 살짝 기울여줬더니 혀를 날름거렸다.

“너 목마른 거 맞지?”

얼음이 둥둥 떠 있고 거품이 생긴 물그릇의 물은 아무래도 이상했던 걸까. 물그릇을 다시 갖다 대주니 그제야 할짝할짝 한참을 물을 먹었다.

바삐 움직이는 작은 혓바닥도, 흔들거리는 평평한 하얀 분홍빛 코도, 벽에 비치는 쫑긋한 귀의 그림자도 너무 귀여웠다.

“이제 좀 드실만하십니까?”

더 가까이 보고 싶은 마음에 단이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실실거렸다. 그런데 갑자기 무언가가 내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발톱 하나 내지 않은 보드랍고 뭉툭하고 차가운 발바닥 느낌의 그것이었다.

냥펀치? ‘나대지 마라’ 그런 뜻인가? 아니면 고맙다는 냥이식 인사법인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갑작스러운 ‘싸대기’를 얻어맞고도 웃음이 나왔다. 이런 반응은 처음이었다.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시크한 표정으로 단이는 물그릇을 톡톡 건드렸다.


“나 이제 갈게.”

단이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미동도 없이 나를 바라보던 단이는 멀리서 야옹 소리만 들려줬다.

그제야 아이들과 함께 단이의 집 근처를 지나가며 나눴던 대화가 문득 떠올랐다.

“엄마, 단이는 요즘 같은 날씨에 춥겠다, 그렇지?”

“그러겠지. 그런데 단이는 밖에서 사는 고양이니까 괜찮을 거야.”

“하긴.. 그러겠지?”

“그럼. 걔는 원래 밖이 집이잖아.”


아니었다. 생각해 보니 그럴 리가 없었다.

(너무 당연하지만) 추운 건 추운 거다. 아무리 평소에 그렇게 살아왔어도, 그렇다고 그런 게 아무렇지도 않아 지는 건 아닐 거였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너무 당연한데 왜 나는 그걸 생각을 못했을까?

온도가 영하로 떨어지는 추운 날씨에는 물이 얼 수밖에 없는 거고, 실외에서 지내는 고양이의 작은 물통 속의 물도 딱딱하고 차가워진다는 걸 말이다.


나는 여전히 모르는 게 참 많다.

추운 날 밖에서는 얼음이 얼어서 물을 마실 수 없다는 걸 몰랐다. 녀석이 무엇 때문에 나를 보고 그렇게 애처롭고 반갑게 야옹하며 다가왔는지, 왜 내가 옆에 있으니 사료를 먹었는지, 꼬리를 바짝 세우고 있다가 쓱 내리는 건 어떤 의미인지, 갑자기 냥펀치를 날리는 건 무엇을 의미했는지, 물그릇은 왜 툭툭 쳤는지, 추운 날에는 어떻게 추위를 견디는지 나는 아직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너무 당연한데 인지하지 못한 것들은 이것 말고도 많다.

예를 들면, 엄마의 아침 기상과 도시락, 환경미화원들의 새벽일, 물고기라는 용어와 같이 말이다.

나의 아침잠 많은 성향은 엄마를 똑 닮았다. 엄마는 어떨 때는 졸면서 우리의 도시락을 쌌다고 했다. 나는 그 사실은 얼마 전에야 알았다. 대학시절 환경미화원 체험을 한 적이 있었다. 그분들은 그 일이 익숙해져서 힘이 덜 들 줄 알았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다. 전혀 그렇지 않았다. 물에 사는 어류 생물들을 우리는 물고기라 칭한다. 하지만 그들은 사람에게 먹히는 고기이기에 앞서 살아가고 있는 생명이었다.



'물고기'라는 말 또한 다시 생각해 볼 점이 많다. 그야말로 '물에 사는 고기'를 말하는 단어다. 고기의 사전적 의미는 '식용하는 온갖 동물의 살'이다. [물결]에 따르면 이 단어에는 "처음부터 살아 있는 존재, 고통을 느끼는 존재의 자리가 없"다. (중략) "물에 사는 동물이지만 죽기 전까지 '고기'로 불리다가 죽으면 '생선'으로 변모한다. 살아 숨 쉬는 동물을 '고기'로 부르는 종차별을 지양하기 위해 이 책에서는 '물살이'라는 언어를 쓴다."
<이슬아, 날씨와 얼굴 중>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것들 투성이다. 내가 나의 세상에 갇혀서 나만 세상에서 제일 우울하고 힘들다고 하는 동안에도 각자 자기의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단이 덕분에 얻은 깨달음 하나. 고마워. 나의 작은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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