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개 소리에 웃을 수 없는 이유

예민보스라 해도, 살리고 싶기에

by 뤼더가든

평화로운 주말 오후였다.

"커피 한잔 타와 봐."

식사를 마치고 뒷정리를 하는 남편 뒤통수에 대고 거만한 목소리로 장난을 쳐봤다. 평소 그를 흉내 낸 복수였다.

"커피 물을 얼마큼 해야 해?"

"어허~ 회사에서 커피 타본 적 없어?"

"거의 없지."

"와, 난 회사에서 손님 오면 내가 맨날 커피 탔는데."

"요즘에는 그런 거 시키면 큰일 나."

물론 그때도 시키지는 않았다. 부탁했지. 그리고 내가 여자라서가 아니라 신입 혹은 막내였기 때문이었겠지.


그런데 커피를 받아 들고는 엄마가 이런 우스개 소리가 있다며 말을 꺼냈다. 한국 여자와 중국 여자가 물에 빠지면 중국 여자를 구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 여자는 자칫하면 왜 내 몸에 손을 댔냐며 고소당할 수 있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하면 보따리 내놔라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어쩐지 엄마의 말이 하나도 우습지 않았다.

"그냥 하는 우스개 소리야. 하하하."

엄마는 재차 강조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은 엄마에게 동의하며 또 다른 사례를 들었다. 얼마 전 어떤 여자가 길가에 쓰려졌는데 한 남자가 119에 통화를 하면서 몸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빨리 와달라고만 했다는 것이다. 심폐소생술을 함부로 했다가는 고소당하기 십상이라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고 댓글 역시 거기에 동의하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도 맞장구칠 수가 없었다. 물론 그 남자를 비난만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씁쓸해졌다. 그가 만약 내 남편이었다면 나 역시 그러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사람을 구하려는 좋은 의도가 오히려 나를 괴롭히는 결과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하지만 만약 내가 거기 누워있던 혹은 물에 빠진 그 여자였다면, 더 나아가 내 딸들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생명이 위험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중에 어떤 덤터기를 쓸지 모르니 최소한의 개입만 하는 사람이 내 주변에 있다면? 최대한 이해해서 까지그렇다 치자. 그런데 내 딸에게 그런다면?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것일까 씁쓸했다.

나 역시 그리 고결한 생각만을 하며 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실제로 그런 일로 고소를 당해 몇 년간 고생을 한 사람의 이야기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온갖 사람들에게 시달리는 소방대원들의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인가!!)


이건 비단 남녀의 문제만도 아니고, 개인의 도덕성 문제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스개 소리로 하는, 떠도는 이야기조차도 무섭다.

웃자고 한 소리에 죽자고 달려든다고 누군가는 코웃음 칠지도 모른다. 가볍게 말한 엄마 앞에서 정색하며 예민하게 군 것 같아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누군가 그런 우스개 소리를 했을 때 언제고 말하고 싶다. 결코 웃을 수 없노라고.

그래도 사람은 살리고 봐야지. 이렇게 이야기가 마무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 딸이 어느 순간 위험에 처했을 때 누군가가 망설이지 않고 내 아이에게 심폐소생술을 하고, 물에서 건져 올려주었으면 좋겠다. 또한 나 역시 누군가를 보면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것이 되지 않는다면 개개인의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필요한 시스템들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제발 고소 따위는 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이, 생명을 구해준 누군가에게 고마운 마음을 안고 살아갈 사람들이 더 많을 거라는 사실을 마음 깊이 인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스개 소리라도 위기 상황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모습이 당연하게 이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단 사람은 살리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절대 고소 하지 않으니 꼭 최선을 다해 살려주세요.라고 써 붙이고 다녀야 하나.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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