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는 아직 쉽지 않지만
<벌레를 사랑하는 기분>(정부희, 2022, 동녘) 책을 선물 받아 읽었다.
서점이나 도서관에서는 쳐다도 안 봤을 그런 제목이었지만, 나를 한 발자국 움직이게 해준 분의 선물이기도 했고, '어렸을 때는 모두 천재였는데 멍청이가 되어간다'는 책 소개 서두의 문장도 재밌었다. 또 알록달록 예쁜 홀로그램 표지까지.
저자는 마흔이 넘어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고 아이들을 키워내며 '한국의 파브르'라고 불릴 만큼 나름의 성공을 이뤄내신 분이다. 공감도 가고 줄줄이 이어지는 곤충 명칭에 조금은 지루하기도 하고, 약간은 "아무리 그래도..." 하는 마음도 들고.. 그러면서 책을 다 읽었다.
다 읽은 후 든 생각을 한 마디로 하자면,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주는 책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징그럽다고만 생각했던 곤충, 벌레를 작가는 소우주라고 표현하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같았다.
죽고 못 사는 사랑이 아니라 진심 어린 관심, 호불호가 아니라 그냥 자연스러운 공기처럼.
생각해 보면 별다른 이유도 없이 내가 원하는 모양이 아니라고 혐오스럽게 생각했던 건 아닌지
물론 아직도 완전히 아무렇지도 않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제는 길을 지나다니며 움직이는 곤충을 발견하면 가만히 들여다보게 된다. 혐오라는 어떠한 부정적 감정이 아니라 그냥 밍밍한 감정으로, 관찰하는 마음으로.
"무당벌레가 윙~~ 날아와서 정~~말 무서웠쪄!!"
아침에 눈을 뜬 막내는 날아오는 무당벌레가 되었다가, 놀란 아이가 되었다가 온몸을 침대에 날리며 어제의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나는 한창 이 책을 읽고 난 후였다.
"그랬구나. 그런데 엄마는 무당벌레 정말 귀엽던데."
무당벌레는 나에게 그나마 덜 벌레스러운(?) 대상이었기 때문에 비슷한 말을 그전에도 해주긴 했지만
이번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진심을 담았다.
"저렇게 조그마한데 날개도 동그랗고 매끈하고 다리도 여러 개 있잖아. 정말 신기하게 생기지 않았어? 사람은 다리가 두 개밖에 없는데 말이야 그렇지? "
아이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응! 사람은 다리가 두 갠데!!" 라며 자기 다리를 문지르던 아이는 불현듯 떠올랐나 보다.
"그런데, 곤충은 사람을 공격해!!!"
"아니야~ 곤충은 작고 사람은 이만~~~ 한데 오히려 사람이 더 무섭지~~"
2차 눈빛 흔들림.
옷을 입히며 아이에게 추가 설명을 해주었다.
"그리고 곤충이 있어서 우리 환경도 지켜주고, ㅇㅇ가 좋아하는 맛있는 과일도 먹을 수 있는 거래~"
책에서 읽은 내용을 최대한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서. 먹을 것 이야기에 3차 눈빛 흔들림.
아이와 드디어 문을 나섰다.
"벌레다!!"
현관 유리벽에 붙은 거미를 보고 기겁하는 아이의 외침이 들렸다.
"어디?" 하고 거미 쪽으로 다가갔다. 꾸물꾸물 움직이는 작은 거미를 보며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아, 거미네~ 엄청 빠르다. 다리가 몇 개인지 세어볼까?"
그러자 아이도 다가와 "하나 둘 세 다서 여서" (아직 숫자 셀 줄 모름)하고 이어진 탄성.
"쩡~말 귀엽다!"
"거미가 우리가 보니까 긴장했나 보다. 이제 가자. 인사해. 안녕~" 겨우 발걸음을 옮겼는데 아이가 또 무언가를 발견했다.
"어! 개미다~!! 쩡~말 귀엽다아~"
"와 그렇네. 개미 밟지 않게 조심히 지나가자."
우리는 개미에게도 인사했다.
그냥 무조건 안 무서워. 무서워하지마 라고 말해주던 예전에 비해
나는 정말 진심을 담아 곤충은 무서운, 혐오스러운 존재가 아님을 아이에게 나눠줄 수 있었고
그 진심이 아이에게 통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과 글을 통해 나를 변화시킨 힘.(어쩌면 이 역시 저자의 진심이 나에게 전달된 것일 테지)
엄마인 나의 생각과 교육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
그리고 무엇보다 말이 아닌 나의 진심이 아이에게 전달되는 힘의 차이
나는 오늘 그 진심의 힘이 느껴져 마음이 몽글몽글 해졌다.
그리고 벌레뿐만 아니라 우리가 느끼는 숱한 혐오의 감정들이, 그 대상들이
어쩌면 별다른 근거도 없이 만들어지고
누군가에게 전달(전염이라는 말이 좀 더 정확할까)되고 있는 건 아닌지
가만히 돌아보고 항상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쩡말 귀여운' 작은 존재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