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는 아니니까
아직 11월인데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그런데 어제보다 기온이 더 낮아진다는 예보다.
"아... 날씨 왜 이래?"
이미 어제도 벌벌 떨며 투덜거렸던 나는 잔뜩 옷을 껴입고 길을 나섰다.
그런데 막상 밖에 나오니 생각보다 덜 춥다. 예보가 틀렸나? 아니면 옷 덕분인가?
아이를 보내고 오늘도 카페인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무조건 '핫'을 외쳤던 어제와 달리 키오스크 앞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아이스로 마실까?'
그때 유리에 비친 북극곰 한 마리가 눈에 들어온다. 그래, 나이를 생각하자.
"뜨거우니 조심하세요."
커피와 함께 따수운 미소를 건네받았다.
컵을 잡았던 손을 볼에 대니 온기가 반갑다. 역시 추운 날씨가 맞았어.
같은 날씨여도 옷차림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 있다는 걸 새삼 생각한다.
그래, 춥다고 짜증 낼 필요 없지. 옷을 더 입으면 되는걸.
날씨는 어쩔 수 없지만 옷을 더 입는 건 선택할 수 있으니까.
한껏 너그러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태어나면서부터 두꺼운 옷을 입는 사람들은 그만큼 세상이 더 따뜻하겠지?
지금도 충분히 따뜻하면서 더 넉넉한 누군가를 떠올리며 괜한 질투심이 인다.
그런데 반대로 그러지 못하는 경우는?
몰라서였든, 옷을 더 살 수 없든, 아니면 있는 옷을 입을 수 없었든.
어쨌든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그럴 수 없는 상황이면?
그러니 짜증이 날 수밖에 없겠지. 세상이 한껏 냉혹하게 느껴질 것이다.
짜증을 내는 사람이 이해가 되기도, 안쓰럽기도 했다.
사실 누군가라기보다는 내 이야기다.
날씨가 너무 춥거나 너무 더우면 짜증이 난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 휘둘리면 무언가를 빼앗긴 기분에 휩싸인다.
더군다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오면 더더욱.
그 감정 토로가 아무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디에든 원망이라도 퍼붓고 나면 숨이 트이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데 만약 이보다 훨씬 크고 갑작스러운 날씨의 변화라면 어떨까?
기온의 변화 정도가 아니라 엄청난 한파나 거대한 쓰나미가 닥친 후라면?
아마 짜증이라는 감정은 자리를 차지할 틈도 없겠지.
절망 혹은 분노 정도로 표현이 안될 것 같은 엄청난 감정에 빠져있을 것이다.
자연 현상 앞에 인간은 얼마나 무력한가.
오늘도 자유로운 사고의 흐름이 허무주의로 도착하려던 찰나.
나를 붙잡는 생각이 하나 스쳤다.
'아, 그 정도는 아니니까 짜증이 나는 거구나'
짜증이 자주 나고 종종 우울감에 빠지는 나를 불쌍히만 여겼었는데.
게다가 따뜻한 커피 한 잔에 행복해질 수 있는 나. 생각보다 꽤 괜찮은 걸.
짜증이 날 때면 이렇게 말해봐야겠다. 아, 쓰나미는 아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