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어두는 것의 중요힘에 관하여
부잣집에서나 쓰는 것 같았던 식기세척기.
그 사치품(?)이 우리 집에 들어온 건 셋째를 낳은 직후였다.
"그까짓 거 문질러 버리는 게 속 시원하겠다."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었으나 굴하지 않았다. 설거지만 하면 아프던 등은 비로소 해방되었다. 차곡차곡 넣고 버튼을 누르면 뽀득뽀득. 그것은 신세계였다.
그릇을 넣어주는 기계도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무렵(앉으면 눕고 싶은 심리랄까), 녀석에게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세척 완료를 알리는 짧은 음악과 함께 문이 스르륵 열리고 끝...나야 하는데 자꾸만 띠링띠링 소리가 이어졌다.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한밤중의 고요를 가르고 내 귀에 날카롭게 꽂혔다.
린스를 넣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쪼그리고 앉아 투명한 액체를 부었다. 잠시 괜찮아지는 듯했지만 소리는 오히려 심해졌다. 다른 소리까지 나기 시작한 것이다. 캄캄한 주방에서 혼자 소리와 불빛을 내는 그 기계가 문득 공포스럽게까지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삐 소리가 갑자기 너무 크게 울렸다. 어쩔 수 없이 전원 코드를 뽑았다.
다음 날, 다시 코드를 연결해 보았다. 혹시나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 깜빡거리던 작은 불빛이 아예 빨간색으로 멈춰버렸다. 식기세척기 바닥에는 희뿌연 물이 가득 차있었다.
결국 수리센터에 연락했다. 터치패널을 갈아야 하는데 수리비가 무려 17만 원.
'내가 이걸 얼마 주고 샀더라?'
계산기를 두드리는데 왜인지 이 녀석에게 미안해졌다. 몇 년 안 된 걸 갈아치우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항상 습기를 잘 빼주셔야 해요."
수리기사님의 말을 들으니 뭔가 열려 있는 꼴을 보지 못하는 막내가 두다다 달려와 쾅 문을 닫아버리던 장면이 머리를 스쳤다.
아뿔싸.
그릇을 씻으며 생기는 뜨거운 열기와 습기, 그걸 제때 빼내지 못한 게 탈이었다.
"터치패널이 고장 나면 내부 신호에도 문제가 생겨요. 끝나지 않았는데도 멈추는 거죠. 그리고 여기에 정제소금 넣으면 필터 기능 되는 건 아시죠?"
"네? 먹는 소금을 그대로요?"
몇 년 동안 일 시킬 줄만 알았지 정작 녀석에 대해 제대로 아는 건 없었던 나를 계몽해 주고 가신 기사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멀끔해진 녀석이 슉슉 물소리를 내며 다시 돌아갔다.
"알아라. 좀."
꼭 그러는 것 같았다.
그 앞에서 곱씹었다. 습기를 잘 빼야 한다는 그 말을. 이번에도 나랑 닮은 구석을 찾은 것 같았다.
열심히 일할 줄만 알고 내부를 돌볼 줄 모르면,
작은 신호를 무시하고 계속 쌓아두기만 하면,
어느 날 큰 소리로 터져 나올지 모른다. 무서울 만큼 갑작스럽고 엄청나게.
바람이 통하지 않으면 무엇이든 문제를 일으키기 마련이구나. 문을 열어놓는 건 중요하구나.
그래도 다행이다. 무지를 깨우쳐줄 이들이 항상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는, 열어두는 것의 중요함을 이젠 안다.
참으로 기특하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