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는 이유가 있구나
아직 만 5세의 막내와 대화를 하다 보면 단전에서부터 답답함이 올라올 때가 있다.
바쁜 아침 시간, 가방과 겉옷을 몸 위에 대충 얹고 기우뚱한 몸으로 나선다.
먼저 문밖에 나가 있는 막내에게 외친다. 1초라도 아껴보겠다는 생각으로.
"엘리베이터 버튼 좀 눌러줘!!"
아이는 위와 아래로 솟은 화살표 버튼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천진난만하게 묻는다.
"엄마~ 위에 눌러 아래 눌러?"
"우리는 아래로 내려가니까 아래."
"아!"
결국 내 손이 아이의 손보다 먼저 나간다.
아직도 이게 헷갈린단다. 아무리 어려도 묻는 것도 한두번이지라는 생각에 한숨이 나온다.
방향치인 나 때문인 걸까. 아니면 지능이..?
걱정스럽고 답답해하는 마음이 분명 말투와 눈빛으로 삐져나왔을 것이다.
"ㅇㅇ야, 우리가 올라가 내려가?
"내려가."
"그렇지? 그러니까 아래로 가는 모양 버튼. 알았지?"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던 어느 날이었다.
"엄마, 저 텅 빈 곳은 뭐 하는 곳이야?"
아이가 가리킨 곳은 원룸 건물의 필로티 주차공간이었다.
"아, 저기는 주차하는 곳이야. 차 세워두는 곳."
하지만 아이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런데 왜 차는 안된다고 해?"
이건 또 무슨 엉뚱한 소리인가 싶었는데 아이가 이어 설명한다.
"저기 차 그림에 엑스! 그림 있어."
자세히 보니 주차 공간 안 노란 표지판에 그림이 보였다. 주인 말고 다른 자동차는 세우지 말라는 뜻이라고 설명을 해주니 아이가 대발견이라도 한 듯 고개를 세차게 끄덕인다.
"아~~~ 그래서 그런 거구나!!"
생각해 보니 글자를 모르는 아이 입장에서는 의문이었을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분명 차를 세우는 공간 같은데, 차는 안된다고 표시가 되어있으니 도대체 뭘 하는 공간인가 싶었을 거다.
아이와 대화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문득 이유를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헷갈려하는 것에 대해 답답해하기만 했고, 단편적인 정답만을 설명하기에 바빴지
자세한 이유를 물어볼 생각조차 못했던 것이다. 아이가 헷갈려하는 데에는 분명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얼마나 대답을 명확하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물어보기라도 해봐야겠다 싶었다.
다음날, 여전히 버튼 방향을 헷갈려하는 아이에게 물었다.
"ㅇㅇ야, 그런데 이게 어째서 헷갈리는 거야? 어떤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그동안 시전했던 "도대체 이게 왜 헷갈리냐?"는 물음표를 위장한 다그침이 아님을 강조했다.
"아니~~"
마치 물어봐주길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입장을 항변하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가 올라와야 하잖아. 그러니까 위로 모양을 눌러야 하는 것 같았어."
아, 세상에.
내가 내려가니까 아래로 향하는 버튼을 누르라고 백날 가르쳐봤자, 엘리베이터의 입장에 맞춰진 아이에게는 그 설명이 가닿지 않았던 것이다. 방향감각이나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 중심 시각의 이슈였을 뿐이었다.
아이의 배려형 혹은 공감형 시각에 잠시 감탄하며, 그것도 좋지만 물건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해서 우리가 내려가니까 아래 버튼을 누르는 걸로 기억하면 좋겠다고 말해주었다.
모두는 각자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것을 묻거나 들을 생각은 하지도 않은 채 어떠한 한 영역의 능력부족으로만 폄하해 버린다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칠 수 있는지를 아이와의 작은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아이는 이제 더 이상 나에게 위아래 버튼을 물어보지 않는다.
엘리베이터의 입장까지 생각하는 아이에게 나는 오늘도 한 수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