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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애할 권리 Jul 17. 2016

연극 <데블 인사이드>

인간이 만들어 낸 악마라는 존재

연극 <데블 인사이드>

개별적으로도 무대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는 실력 좋은 배우들로 구성된 극단 '맨씨어터'와 연극계 히트작 메이커 '김광보' 연출이 만난 또 하나의 합작품. 이번에는 <레빗홀>로 유명한 미국의 극작가 '데이빗 린제이 어바이어'의 데뷔작 <데블 인사이드>를 소개했다.


<은밀한 기쁨> <프로즌> <썸걸즈> 등 주로 현대적인 서사와 트렌드한 스타일의 드라마를 무대에 소개해 온 맨씨어터에 대한 기대가 있는 관객에게 이번 작품은 다소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형식일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은 굉장히 펑키하고 과장스러우며 우스꽝스럽다. 마치 미국의 '그래픽 노블'을 떠오르게 하는 엽기적인 캐릭터와 만화적인 전개를 가진다. 장면은 수시로 점프하고, 인물들은 속마음을 여과없이 내뱉는다. 과정을 생략한 결과의 파편들은 우연을 빌미로 해프닝처럼 엮여 있다가, 마지막에 운명의 계시처럼 필연을 강요해 꽁꽁 묶어버린다.

김광보 연출은 이 작품에서 '소통의 상실'을 캐치했다. 1997년 세기 말에 쓰여진 이 작품은 곧 망해버릴 세상을 향한 막장 드라마이기도 하다.

'어차피 세상은 망할 거고, 그 중심엔 악마가 있어. 그 악마는 바로 인간이 만들어 낸 거야. 결국 인간은 스스로 파멸하는 거지!'

어쩌면 작가가 작품을 쓰기 위해 만들어 낸 기획의도 (내지는 주제)가 있다면 이렇지 않았을까 싶다. 그때의 세계관을 지금의 관객에게 도달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소통의 단절, 부재'는 좋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묻지마 범죄라 불리는 일련의 사건들, 소수의 인격을 모독하는 혐오주의 등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상실한 사회의 단편이 끊임없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현상 이면에 깔린 원인에 대해서 짚어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악마'라는 원초적인 이유로 치부하기엔 던져야할 질문이 많다. 왜 그들이 고립되었는지, 왜 그들이 극단적인 충동을 이기지 못하는 지, 그들 주변은 어떠한지... 한겹한겹 본질을 향해 접근해 보면 이 드라마는 막장이 아닌 심오한 비극일 수도 있다. <데블 인사이드>의 얕게 스치는 배경 속에는 작가가 설계한 나름의 분석이 깔려 있어 보인다. 먼저 인물들의 직업과 물리적인 공간에서도 드러난다. 세탁소와 수리점, 험한 개들이 방치되어 떠도는 거리, 질병 수준으로 뚱뚱한 남자 (희생자) 등을 볼 때 그 곳의 배경이 서민층의 우범가 지역임을 추측할 수 있다. (나름의) 외부인으로 설정된 칼과 릴리도 핸디캡을 가지고 그들의 위치에서는 낙오된 레벨의 인물이다. 이들은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며 사회에 타협하거나 적응하려는 의지도 없다. 원작 희곡이 얼마나 각색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배경은 상당히 미국적이었고 90년대 시대의 자화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부분도 많아 보였다.

이번 작품에서 아쉬운 점이 여기에 있다. 만화적인 접근으로 은유적이고 추상적으로 담아낸 비주얼이 시각적으로는 악마적 표상을 강렬하게 보여주었지만, 한편으로 이미지 뒤에 숨겨진 현상에 대한 접근은 어렵게 했다. 연기적인 표현도 과장과 유희적이라 어느 인물에 감정이입을 하며 따라가기 보다는 무대 밖에서 객관적으로 관망하게 되었는데, 그러다보니 단편적이고 괴팍한 이미지로만 와 닿은 한계도 있었다. 유일하게 이성적인 (?)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감정일 수 있는 진이란 캐릭터가 있지만 (심지어 중간에 해설도 한다) 그를 통해 서사를 따라가기에도 충돌되고 막히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 <데블 인사이드>는 소신있게 개성을 드러낸 작품이라는 것이다. 내가 느꼈던 아쉬운 점도 어쩌면 통상적인 연극 관람에 익숙해져 이런 돌발에 낯설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소통의 단절과 욕망의 비극을 말하면서, 작가는 비현실적인 캐릭터와 컬트적인 전개를 선택했다. 오히려 관객과의 소통에 도전장을 내던진 셈이다. 이렇게 쓰다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보편적인 소통을 위해 억지로 맞춰가며 변형할 필요 있을까? 어쩌면 지금 던지는 이 브레이킹 볼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서로의 사인을 존중하고 인정할 수 있는 사람들과의 소통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사진: 맨씨어터 공식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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