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불에서 - 시작.

연재 소설 (1)

by Chris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고 싶어."


만월이 바다를 가르는 달무리를 만드는 동안,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바다 옆에 난 작고 오래된 도로를 따라 위로 오르다가 고래불 해수욕장에 멈추었다. 해수욕을 할 수 있는 넓은 해변과 모래사장이 이어져 있었고 주차 공간과 화장실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좋은 화장실은 무엇보다 중요했는데, 시시때때로 배앓이를 하던 나를 위한 그의 배려였다. 그렇게 화장실 근처에 차를 대고 간단하게 양치와 세수를 한 뒤 의자를 뒤로 젖히고 잠을 청했다. 전날에 이어 차량 두 번째 차량 취침이었다. 처음 잘 때는 익숙하지 않은 잠자리에 이리저리 뒤척였는데, 두 번째가 되니 잘 잠들 수 있는 자세를 발견한듯했다. 일정한 파도 소리가 계속 귓전을 때리고 일렁이는 물결을 따라 달빛이 차창에 다다랐다. 타닥거리는 폭죽과 웃음소리가 간혹 신경을 거슬리게 했지만, 그마저도 이내 파도 소리에 묻혀 잊히고 말았다. 문득 저 달을 보다가 저 달과 같은 노란 등이 달린 어두운 커피숍 안에서 그림을 그리던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저 한 달 전만 해도 모르던 사람이었지만, 나를 향한 그녀의 사소한 몇 번의 관심에 어느덧 달을 봐도 그녀가 떠오르게 된 것이다. 매번 보는 사소한 저 달이 특별해진 오늘, 그녀가 갑자기 보고 싶어 졌다. 연락 한 번 해볼까? 하다가도 뭔가 부끄러워져 그저 메신저의 프로필 사진만 한번 눌러보았다. 꽃과 고양이를 보고 미소를 짓고 있는 옆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짜증이라곤 낼 줄 모르고 세상을 모두 영원히 꽃으로만 볼 모습이었다. 얼마간을 황홀하게 뜯어보고 이내 정신을 차리고 핸드폰을 닫았다. 달을 보았어요. 커다란 달 안에 그대가 떠 있어서 연락했어요. 길게 이어진 달무리에 고흐도 떠올랐지만, 붓을 들고서 예쁘게 그림을 그리던 그대도 떠올랐나 봐요. 아니면 예쁘다는 느낌이 그대를 떠올리게 만들었나 봐요. 그것도 아니면 저 달이, 달빛이, 달무리가 주는 아득한 느낌이, 닿을 수 없는 곳에서 저렇게 아름답게 존재하는 저 황금빛의 둥근 물체가 그대 같아서 문득 슬퍼졌나 봐요. 아니, 그냥 그대가 보고 싶다는 말이에요. 저 달이 아니라 그대가 보고 싶었나 봐요. 하지만 전하지 못하는 고백일 뿐이었다. 나는 언제나 망설였고 매번 시간에 내 흔들리는 이러한 감정을 흘려 보내기만 할 뿐이었다. 학대 받은 강아지처럼 나의 영역 안에 들어오려는 사람을 가까이하지 못하고 그저 풀이 죽은 상태에서 고개를 들어 바라볼 뿐이었다.

차 안의 음악이 끝나고 다음 트랙으로 넘어가려는 찰나의 정적 속에서 다시 파도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아득히 들려오는 소리에 이끌려 조금 더 귀를 기울이다가, 못 참고 대현에게 잠시 나가자고 이야기를 꺼냈다. 문을 열고 파도에 이끌려 가까이 가니 꽤 큰 파도가 달빛 아래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그 파도의 형태가 어린 시절에 티비에서 보았던 승무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바위에 닿아 넘실대는 흰색의 물보라는 둔 손끝에 달린 기다란 흰 소매를 들어 올리는 춤이었다. 해변에까지 이르러 점점 잦아드는 파도는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버선으로 마치 한 걸음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며 그 다음의 격정적인 몸짓과 손짓을 준비하는 동작이었다. 온통 세상이 어두운데 달빛 아래 조명만이 밝아 그 아래에서 이들은 끊임없는 춤을 추고 있었다. 보는 관객 하나 없이도 그들은 계속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다. 달빛 아래 그들은 격정적인 한 여름 태양 아래서 춤추는 볼레로가 아니라 세상의 죽어가는 것들을 위해 추는 춤이었다. 어둠 속의 달빛은 어둠을 밝히는 타들어가는 촛불이었고 이들은 하나남을 촛불의 생을 위하여, 이 생의 번뇌를 위하여 기꺼이 소박하게 춤을 추어줄 수 있는 이들이었다. 나는 이들 앞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내 감정을 추슬러 가슴속에 담아둘 뿐이었다.




승무(僧舞)


조지훈 / 시인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자기 전에 일출 시각을 검색하니 5시 41분이었다. 10분 전으로 알람을 맞추고 파도 소리를 이불 삼아 잠이 들었다. 바깥의 무드등이 은은하여 오늘은 편안하게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현은 어느덧 코를 골고 있었다. 눈을 감자마자 5분 정도 지난듯했는데, 벌써 잠이 든 것이다. 더 몸을 뒤척이지도 않고 저렇게 빠르게 잠들 수 있는 그가 부러웠다. 뒤척이지 않는다는 게 근심이 없다는 말은 아닐진대, 그런데도 그의 잠드는 모습은 근심 따위는 없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고민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면 잠이라도 잘 자야 한다는 몸짓의 언어 같았다. 그의 코골이가 듣기 힘든 것은 아니었지만, 한동안 계속 몸을 뒤척였다. 집에서 잘 때처럼 어깨를 창문 쪽으로 기울이고 작은 담요를 어깨까지 올리자 그제야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혼자 잠들 때 몸을 벽 쪽에 가까이 대고 어깨를 벽 쪽으로 기울인 뒤에 다리는 살짝 배 쪽으로 들어 올려 새우 자세가 되도록 하는 게 잠들기 가장 편안한 자세였다. 두 명이 자도 넉넉한 침대인데도 그러한 자세가 좋았다. 침대와 벽 틈 사이에 비좁은 공간에 다리라도 집어넣게 되면 뭔가 빡빡한 느낌과 벽에 닿으면서 느껴지는 차가움이 좋아서 기분이 더 좋았다.

마치 어린 시절에 몰래 비좁고 어두운 장롱에 들어가 있다 보면 그 어떤 곳보다도 편안함을 느껴 잠들게 되는 것처럼 이러한 자세와 위치는 내게 그러한 편안함을 주었다. 그래서 꽤 오랜 기간을 이렇게 지내왔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아마도 어머니의 자궁으로부터 비좁은 공간에 대한 욕망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셋 다 공통점은 빛이 거의 없는 어둠 속이라는 점이었다.

이따금 엄습하는 슬픔 속에서는 더더욱 이 자세가 좋았다. 고독감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혀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독은 어둠처럼 모든 존재를 시야에서 가려버리고 나 혼자라는 느낌이 들게 했다. 바로 그때, 실로 혼자라는 느낌이 들 때, 벽에 닿는 차가운 감촉과 몸을 구부리는 느낌은 그것을 조금이나마 완화해 주었다. 그리고 어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바로 지금도 그러했다.




알람이 울리자마자 눈을 떴다. 세상은 이미 어둠을 점차 걷어내어 검은색 남색 주황색으로 이어지는 그러데이션을 만들어냈다. 대현을 깨우고 좀 더 해를 가까이 볼 수 있는 곳으로 차를 옮겼다.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여기저기 있었지만, 대체로 하늘색이 공간을 채웠다. 5분 전… 대현은 의자를 뒤로 젖히고 음악을 감상했고 나는 붉어질대로 붉어진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붉은색 민머리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하자 난 흥분하여 대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태양은 마치 적진을 침투해 들어오는 위장 군인처럼 천천히 자신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그 영화의 관객이 된 우리는 숨을 죽이며 점점 클로즈업되는 태양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휴대폰 카메라로는 결코 그 위용을 담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추억에 남기고 싶어 카메라를 들이댔다. 카메라에 찍힌 태양은 나와의 거리가 1억 5천만 킬로미터라는 사실을 깨닫게 할 정도로 작았다. 아쉬운 마음에 디지털 줌으로 당겨서 흐릿하게나마 크게 찍어보았다. 흐릿하게 이글거리는 그 모습도 보기에 나쁘지 않았다.

태양이 서서히 수면 위로 오르자 서서히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에서 모여들었다. 매일 보는 태양임에도 마치 처음 보는 것 마냥, 그들은 빛나는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하늘 위에 높게 떠 있는 태양의 존재를 인식하지만, 그때는 너무 빛나서 볼 수 없었던 존재였기에 그의 방심한 틈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것일지 몰랐다. 우리는 일정 부분 관음의 욕망이 있고 태양은 부끄러움에 온몸이 빨개진 것이다. 저렇게 관찰하듯 그리고 욕망에 이글거리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는데 어느 누가 빨개지지 않을 것인가? 태양이 부끄러움을 아는 하와였다면 나뭇잎으로라도 몸을 가릴 것이며 분노하는 아르테미스였다면, 우리를 가만두지 않았을 터였다. 그러나 태양은 비너스와 같아서 굳이 자신의 몸을 감추지 않는다. 부끄럽다면 수면 위에서 얼굴만 빼꼼히 드러내고 한동안 움직이지 않을 것을 그녀는 음란하게도 온몸을 내보인다. 아니, 사랑의 여신에게 음란이라는 말이 가당키라도 하단 말인가? 그녀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처럼 신체적 아름다움을 내보이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온 세상이 아름다움을 경이로 바라보라고 소리 없이 명한다. 파도는 태양의 등장을 축복하는 오케스트라가 되어 끊임없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음악으로 찬양을 한다. 태양이 존재하기 이전의 파도 소리가 우리를 꿈의 세계로 안내하기 위한 자장가였다면, 지금의 파도는 오로지 태양만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창밖으로 보이던 달무리는 빛으로 만든 바닷길을 오로지 내게만 열어주었지만, 태양은 광대한 온 세상을 붉게 물들었다. 감히 인간이 거역할 수 없는 붉은빛이었다. 가장 길지만 가장 약한 이 주황색 천이 대현의 얼굴과 온몸을 덮었다. 어린 시절 아궁이의 불빛 같은 온화한 태양이었다. 이따금 할머니 대신 그 앞에서 앉아 불을 보고 있노라면 사타구니 사이로 느껴지는 따스함이 좋았던 그 주황의 불이었다. 입이 심심할 때마다 자신이 품고 있던 고구마를 꺼내 주던 그 열정적인 주황의 불꽃이었다. 그러한 주황빛의 세상은 그때 나를 바라보던 할머니 같은 미소로 하루의 시작을 알렸다. 조금은 젊었던, 지금처럼 늙은 강아지마냥 멍한 눈으로 애처롭게 날 올려다보는 할머니가 아니라 지극히 상냥하며 살아있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할머니였다. 태양은 강인한 체력을 소유한 아폴론이며 동시에 관능미를 가진 비너스였고 동시에 온화한 미소를 가진 우리 할머니로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었다. 그 따스함은 분명 아궁이에서 올라오는 따스한 장작불이었으며 고구마를 건네는 할머니의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