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불의 태양을 보며

연재 소설 (2)

by Chris

저 태양을 보며 할머니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필연이며, 바로 어린 시절 할머니 집에서 본 아궁이의 군불에 관한 강렬한 인상 때문이다.


할머니의 집에는 솥과 그 아래 불을 지피는 아궁이가 있었다. 그리고 아궁이의 맞은편 벽에는 산에서 해온 나무가 하나 가득 있었다. 이따금 할머니와 나는 아궁이 앞에 앉아서 그 안에 나무를 넣어 불을 지피고 신문지에 쌓아온 고구마를 꺼내어 그 안쪽에 넣었다. 붉고 따뜻한 불 속에서 장작이 이따금 ‘쩌억!’이나 ‘타닥!’과 같은 재미있는 소리를 냈고 그 안을 불쏘시개로 휘저을 때면 불과 나무가 내는 갖가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할머니는 그렇게 타오르는 아궁이를 보다가도 나로서는 곡조를 알 수 없는 노래를 혼자서 구슬피 부르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할머니를 나직이 올려다보고 그녀의 손을 가볍게 잡거나 뒤로 돌아가 안아주었다. 예나 지금이나 뼈밖에 없는 앙상한 할머니였지만, 얇은 옷에 느껴지는 조금은 쳐진 살이나, 아기와 같은 냄새나 저 아궁이의 장작처럼 활활 타오르는 건 아니지만, 아직은 타오르는 생명임을 암시하는 그 따스함이 너무나도 좋아 그렇게 업히고 있노라면 그대로 최면처럼 잠들어버리기도 했다.

내 어릴 적은 할머니와 할머니를 둘러싼 공간에 대한 추억으로 가득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결혼 후 나를 낳고 다섯 살 때쯤부터는 할머니 댁에서 함께 살았다. 그때에는 아버지가 전국 각지로 나가 며칠간 일을 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흔했고, 할머니는 갑작스럽게 할아버지를 떠나 보내고 혼자서 돈을 벌며 아버지와 터울이 큰 어린 동생들을 돌보고 있었다. 이러한 까닭에 어머니는 생활비를 아낄 겸, 아버지의 어린 동생들을 돌볼 겸 해서 할머니 댁에 들어와 살게 된 것이었다.

그때의 겨울은 지금보다도 훨씬 매서웠다. 그러나 내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고 행복했던 시기였다. 안방에는 아랫목이 있었는데, 그곳에 등을 대고 있노라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뜨겁지만 기분이 좋은 감정이 들었다. 그뿐 아니라 그 방 안에서 매번 나와 놀아줄 형제와 같은 장난꾸러기 삼촌과 천사 같은 고모가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더구나 하루가 멀다고 삼촌과 고모를 찾아오는 그들의 친구들은 빈손으로 오는 일이 드물었고 매번 나와 잠깐이라도 놀아줬다. 행복한 것은 그뿐 아니었다. 시골의 정취나 아침에 풀에 맺힌 이슬에서 느껴지는 싱그러운 냄새, 언덕 중턱에 있는 탁 트인 전망도 지금의 내가 추억하는 행복의 한 요소였다. 방에 관한 추억 가운데 가장 떠오르는 것은 할머니의 오래된 장롱 속의 두꺼운 이불이었다. 장롱 안에는 두꺼운 겨울 이불들이 가득했고 그 위에는 조금씩 가벼운 이불들이 무지개떡마냥 층층이 쌓여 있었는데, 외부와 차단된 밀실과 같은 공간의 이불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분 좋은 냄새와 시원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따금 그 안에 들어가거나 혹은 얼굴이나 손을 그 틈 사이로 밀어 넣기도 했는데, 그렇게 두꺼운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있노라면 머릿속 어딘가에서 우주 안에 있는듯한 아득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아졌다. 그때의 아련함이 그리울 때면, 이따금 나는 지금도 고향 집에 있는 장롱 속 두꺼운 이불의 틈에 얼굴을 파묻거나 손을 그 틈 속에 몰래 집어넣곤 한다.

우리의 추억과 의식이 즐거운 까닭은 서로 전혀 다른 두 개의 경험이나 사물이 조금의 연관성이라도 갖게 되면 어느 때고 상관없이 시간을 초월하여 그때 그 시절로 나를 안내한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러한 행위가 익숙했다. 그리하여 이제는 내 눈높이까지 올라온 저 태양에서 할머니의 아궁이 속의 불을 헤집던 기억을 떠올리게 되고 결국 할머니 집의 아련한 냄새마저 떠올리게 되면, 그 시절 할머니와 집과 그 마당을 그림 그리듯 추억하게 된다.

그 집 앞에는 자그마한 마당이 있고 마당의 중앙에는 앉을 수 있는 평상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옆을 쳐다보면 수도꼭지가 아닌 옛날식 수동 펌프와 더불어 세수를 할 수 있는 대야가 놓여 있었다. 작은 마루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노라면 여기저기 할머니가 정성스레 심어둔 꽃나무들과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모르나 아마도 이 집보다도 더욱 오래되었을 법한 나무들이 곳곳에 심겨 있었다.

이렇게 집안에서 밖을 바라보던 시선은 이제는 점차 원경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는 동산의 중턱에 있는 우리 집 너머에 그 시선이 이르게 되면 꾸불꾸불한 길과 험준한 산과 황금색의 논과 푸르른 밭이 모두 한눈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탁 트인 시야는 보는 곳곳마다 프레임에 담기 힘든 그림이었다. 그래서 더운 여름이면 이 평상 위에 앉아 수박을 먹으면서 바람을 느끼며 바깥의 농촌 풍경을 보는 게 일품이었다.

이러한 마을은 시내를 가로지르는 2차선 도로로부터 뻗어 나오는, 나뭇가지와 같은 작은 도로를 두 번 정도 꾸불꾸불하게 거쳐야 드러나는 곳이었다. 버스가 마을 어귀까지 들어오는 일은 하루에 다섯 번 정도였고 이를 놓치면 큰 도로에서 내려 어른의 걸음으로 1시간은 족히 걸어야만 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내가 유일하게 시내에 나갈 수 있는 때는 할머니와 함께 교회를 나설 때였다.

할머니는 일요일이 되면 평소보다도 더 일찍 일어나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아궁이에 불을 확인하고 닭이나 염소가 밤사이 잘 있었나 점검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이따금 산에서 내려온 삵이 소중히 키운 동물들을 잡아먹거나 혹은 우리를 열고 빠져나가는 일이 간혹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아침에 해야 할 일들을 마무리 지은 뒤에는 주름이 심한 얼굴에 덕지덕지 화장품을 바르고 눈썹을 그리고 입술을 붉은색으로 칠했다. 할머니는 오로지 붉은빛의 루즈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너무나 진하고 그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색이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할머니가 저렇게까지 얼굴에 화장하는 게 이상해 보이기도 했지만, 그녀도 분명 꽃을 사랑하는 여자였음을 알게 된 이후로는 그녀의 화장과 약간의 허영심을 이해했다. 그뿐만 아니라 할머니는 간혹 시골을 돌아다니면서 커피잔이나 접시 또는 그릇을 비싼 값에 판매하는 사기꾼들에 속아 이것저것 구매하기도 했는데, 이 또한 예쁜 것을 좋아하는 할머니의 약간의 허영이었음을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서 이해하게 되었다.

어린 눈에도 그 허영이 재미있던 것은 할머니는 접시나 그릇을 사두고 쓰는 일이 없이, 집에서는 하도 많이 써서 검게 그을리고 바닥은 하얗게 벗겨진 놋 냄비나 스테인리스 그릇만을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도자기 그릇은 매번 장롱 위쪽에 꽂혀 내려올 줄 몰랐다. 내 기억으로는 할머니 자신이 그것을 다시 꺼내어 쓰는 일은 없었고 결국 포장지 위로 먼지가 소복하게 쌓이고 장롱 위에 더는 무언가를 꽂아둘 공간이 없을 때가 되어서야 어머니가 받아 사용했다. 어머니는 뜻하지 않는 선물을 받을 때마다 한숨을 쉬었고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보며 할머니의 허영심을 나무랐다.

나는 이런 할머니의 집이 너무나 좋았다. 다 쓰러져가는 세 칸짜리 작은 집 곳곳에 그러한 신비로운 보물과 같은 것들이 숨어있다는 사실이나 먼지가 쌓이고 바래진 종이 안에서 사람의 손길 한번 닿지 않은 깨끗한 것들이 있다는 게 흥미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따금 할머니가 없을 때는 의자를 가져와 장롱 위를 더듬어 보거나 다락방 안에 들어가 뭔가 신기하거나 새로운 물건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그 자체가 물건을 팔러 장터에 갔다가 돌아올 할머니를 기다리는 고요한 시간을 극복하는 재미있는 모험이기도 했다.

내가 아는 할머니는 언제나 마르고 앙상한 체형이었는데, 가녀리다기보다는 누구에게 지지 않을 만큼 당당하며 심지어 마른 체형과 얼굴로 인해 사나워 보이기도 했다. 아마도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결혼 생활을 시작했을 때에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자식을 낳고 남편과 사별 후에도 모진 세상을 버텨 내려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억세야만 살아남는 세상에서 살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은 어머니를 보고서 알게 된 점인데, 천사 같던 엄마도 욕을 하고 누구를 비난할 줄 안다는 사실은 가세가 기울고 그녀가 일을 나가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여하튼 할머니는 누구한테 지지 않을 강단이 있었고 그 강단으로 아버지를 비롯한 여섯 남매 식구를 먹여 살렸다. 할머니는 돈이 조금이라도 되는 일이라면 안 해본 일이 없었다. 화장품을 떼다가 방문 판매도 했었고 텃밭에서 키운 채소들을 시장에 팔기도 했다. 근처에 마을에서 약 3㎞ 떨어진 거리에 고속도로 휴게소가 있었는데, 그곳에 나가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필시 할머니는 강하고 억센 사람이 되었을 것이었다. 억척스럽게 변해버린 그녀임에도 사색이 된 것처럼 하얗게 칠한 얼굴과 그 얼굴에 전혀 어울리지 않은 붉은 립스틱은 단지 그녀가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함을 넘어 그녀 역시 예뻐지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여자임을 은연중에 알리고 있었다. 거기에는 모진 삶의 풍파 속에서 만들어진 주름의 흔적들을 어떻게든 지우고 예쁘게 남고 싶어하는 수줍은 한 여인의 꽃과 같은 모습이 있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나는, 분명 이러한 마음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겠지만, 화장하고 있는 그녀를 보노라면 언제나 이쁘다고 말해줬다.






이제는 내 머리 바로 위까지 올라온 저 태양은 수십 년을 건너뛰어 힘들었던 그 시절, 할머니와의 추억을 계속 떠오르게 했다. 연이어 떠오른 이 추억이 사실인지 아니면 왜곡된 기억 일부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 나에게는 그러한 기억이 있었고 나는 그것이 사실일 거라고 믿는다. 여하튼 저 바다에서부터 차츰 올라오며 다른 색을 모조리 몰아내던 붉디붉은 태양 속에서 처음에는 어린 시절, 함박눈이 온통 내리던 겨울에 할머니와 함께 아궁이를 뒤척거리며 이글거리는 불을 감상하던 그때의 추억과, 또 하나는 할머니와 길고 먼 길을 함께 걸었던 그때의 붉디붉은 석양이 떠오르는 것이다.

그때는 할머니의 집에서 나와 우리 식구끼리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던 시기였다. 아마도 내가 8살 정도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내 손이 작아 할머니의 앙상한 손안에 딱 들어오던 시절이었다. 무슨 일 때문에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우리 집에 가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걸어갔다. 아이한테는 너무도 먼 거리였지만, 할머니는 버스비가 아까워 내 손을 잡고 시내에서 집까지 걸어갔다. 할머니는 위태로워 보이는 짐을 머리에 이고서 오른손으로는 내 손을 잡고 그 먼 길을 걸었다. 나는 칭얼대지도 않고 아직은 열기가 남아있는 2차선 아스팔트 옆 좁은 갓길을 할머니와 말없이 걸었다. 아직도 한참을 걸어야만 닿을 수 있는 거리였지만, 거의 다 왔다는 할머니의 말만 믿고,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에 칭얼대지도 않고 할머니의 걸음에 맞춰 조금은 빠르게 걸었다. 그때 내가 이 길의 지루함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할머니의 나뭇가지 같은 손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할머니의 딱딱한 손이 재밌고 좋았다. 가느다란 손가락의 끝과 중간을 이어주는 뭉툭한 옹이 같은 마디를 만지는 게 너무 좋았다. 그게 손가락 관절염 때문이고 고생한 삶의 슬픈 흔적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지만, 손을 잡을 때 마디마다 걸리는 그 부분이 너무나도 재미있어서 손깍지를 낄 때면 그 부분을 느끼고자 이리저리 꼼지락댔다. 그때 옆으로 태양이 지금과 같은 붉은 빛을 온 세상에 흩어 뿌렸고 반대편으로는 기다란 검은색과 붉은색이 혼재한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나는 할머니와 내 그림자를 번갈아 가며 보기도 하고 붉은색으로 물든 온 세상을 어린아이 특유의 주의 산만함으로 바라보다가 할머니의 옹이 진 손을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그녀에게 이끌려 계속 갓길을 따라 걸어갔다. 그 장면! 바로 어린 시절 그때의 그 장면이 태양이 붉어져 세상을 다 물들일 때마다 떠올랐고 마찬가지로 할머니를 볼 때도 떠올랐다. 명절에 요양원에서 나와 자리에 누워 있던, 흐릿한 눈을 하며 나를 올려다보던 그녀를 보면서도 붉은색의 태양이 마치 중독적인 노래 가사처럼 머릿속에서 강렬한 장면으로 맴돌았다.

할머니를 바라보다가 기억이 거기까지 닿게 되면 그 시절, 팔팔하게 살아 넘치던 그녀의 생명력이 어디로 갔는지를 눈과 손으로 그녀를 더듬거리며 찾게 된다. 그러다가 그녀에 눈과 눈동자에 시선이 머물게 되면 슬픔을 담은 듯한 알 수 없는 눈빛에서 어린 시절, 엄마와 손을 잡고 5일 장에 가서 보았던 소금과 얼음에 절여 있던 죽은 넙치의 슬프고도 흐릿한 눈을 발견하게 된다. 엄마가 가게 주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시선에 맺힌 그 흐리고 슬픈 눈에 손가락을 가져가 가볍게 눌렀다.

명절의 할머니는 바로 그 넙치와 같이 누워서 나를 힘없는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몸뚱아리, 축 늘어진 볼품없는 가슴과 곳곳에 핀 검버섯은 내가 할머니를 기억하는 최초의 모습인 그때와 별로 차이가 없었다. 차이가 있는 것은 그때는 그녀가 나를 내려다보았고 이제는 그녀를 내가 내려다본다는 것이었다. 백발이 되었고 눈동자와 그 주변이 넙치처럼 흐릿했다는 것이었다. 귀까지 검은 물을 들이던 염색을 하지 않는다는 것, 지나치게 하얗고 입술은 빨갛던 그 화장조차 더 이상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넙치가 된 그녀가 힘없이 고개를 들어 나를 살짝 올려다보고 다시 눈을 돌렸을 때, 그녀는 어린 시절에 쥐약을 잘못 먹고 드러누운 상태로 죽어가던, 가족이라 여겼던 개 한 마리가 되었다. 움직일 힘조차 없어 나를 보고도 그저 옆으로 누워 혀를 내민 채 가쁜 숨만을 헥헥거릴 수밖에 없던, 한때는 가족으로부터 그토록 이쁨을 받던 그 개가 되어 있었다. 한쪽 눈으로만 올려다보고 눈만 껌뻑거리며 자신이 머지않아 죽을 것임을 직감한 듯한 그 모습이 자꾸 아른거렸다. 나는 그 아이를 구할 수 없었고 마찬가지로 내 할머니도 구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저 내 의식의 밑바닥에서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영원히 거할 뿐이며 하늘이 밝음이나 어둠으로 덮히고 나면 이내 다시 잊혀질 것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