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소설 (6)
숙소에 차를 대고 주인아주머니를 만나 2층으로 안내받았다. 내심 자신의 판단 미스를 아쉬워하며 몇 번이고 “사람들이 오늘도 이렇게 많을 줄 모르고 싸게 줬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총각들이 자주 이곳을 찾아줬다니까 그냥 싸게 주는 거야."라고 한마디를 더 거든다. 우리는 "네, 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는 한시라도 빨리 아주머니를 벗어나기를 바라며 키를 넘겨받았다.
아주머니가 떠나자 차에서 가져온 짐을 풀고 항구 및 그 주변 해수욕장을 둘러보았다. 장호항은 이미 스노클링으로 유명해져서 꽤 많은 사람이 있었다. 오히려 그 옆에 있는 갈남항이 사람이 적고 놀기에도 적당해 보였다. 물은 작년에 왔을 때보다 탁했으나 날씨만큼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작년에는 너무 아쉬웠던 게 성수기를 피해왔기에 드넓은 해수욕장을 전세 낸 것처럼 편하게 이용했으나 휴가 기간 내내 흐리거나 비가 와서 충분히 스노클링이나 해수욕을 즐기지 못했다. 반면에 이번에는 사람이 많고 물이 탁해서 깊은 곳이 잘 보이지 않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래도 추위를 많이 타는 나로서는 날씨가 좋고 탁한 게 좋았다. 스노클링 장비와 구명조끼, 오리발을 끼고 수영에 나섰다. 스노클링 포인트라기보다 해수욕장이었기 때문에 프리다이빙을 할 생각은 없었다. 물에서 둥둥 떠다니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는데,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작년에 동생과 함께 부모님을 모시고 야외수영장을 데려간 적이 있었는데, 튜브를 몸에 낀 상태로 버둥거리며 수영을 하던 어머니가 떠올랐다. 자기도 수영할 줄 안다며 "이거 봐라!"라고 외치며 물 위에서 손과 발을 휘젓던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 동생과 내가 한참 동안을 웃으며 바라봤었다. 어머니는 물을 좋아했다. 수영도 못하면서 자기 몸에 딱 맞는 튜브를 끼고 아기처럼 발을 휘젓곤 했다. 웃는 모습도 딱 아기 같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동생과 나는 주체할 수 없는 행복감에 젖곤 했다. "이거 봐라! 엄마도 수영할 수 있다!"라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우리에게 말할 때, 그 목소리는 또 어찌 그렇게 귀여운지!
"네가 아기 때, 그 모습이 어찌나 예쁘고 귀여웠는지, 여기서 더 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까지 했을 정도였어."
엄마는 가끔 아기 시절의 감동을 지금의 내 모습에서 찾듯 감동에 차서 바라보며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있는데, 엄마 품에서 엄마만을 바라보며 손가락과 발가락을 버둥거리던 그 순수한 천사를 나 역시 엄마의 그 순수한 모습을 통해 발견하고 있었다. 더 아프지 말고 더 슬프지 말고 딱 저 모습처럼 행복할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어머니의 영상을 많이 찍어두라던 인터넷의 한 글을 보고 찍어두었던, 그녀가 짐볼에 다리를 올리고 살을 뺀다고 방방 거리던 그 귀여운 영상처럼 그렇게 계속 즐거움 속에서만 살아가기를 바랐다.
이런 생각을 할 때면, 어머니의 저 아기 천사 같은 모습을 보며 행복감을 느낄 때, 동시에 언제고 찾아올 슬픔의 그림자를 떠올리게 되어 이내 두려움과 슬픔을 느낀다. 제발 그 운명의 잔을 피하게 되길, 또는 긴 세월의 끝자락으로 보내 천수를 누리다 떠나길 동시에 바라게 된다. '슬픔이 그대 삶으로 들어와 마음을 흔들고 소중한 것을 쓸어가 버릴 때면, 다만 그대 가슴에 대고 이렇게 말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그러나 삶은 그렇게 흘러가도 소중한 것으로 채워졌던 그 마음은 텅 빈 공간으로 남아, 억누를 수 없는 슬픔이 될 것이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고 수없이 되뇌어도 한 번 터져 나오기 시작한 울음은 멈출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알게 되겠지. 모든 것이 복구되고 삶을 다시 온전하게 이룬다고 할지라도 소중한 이가 머물다가 간, 그 마음의 빈자리를 떠올릴 때마다 슬픔이 차오른다는 걸.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은 그런 시기에 주문처럼 외게 될 거란 걸.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간신히 다잡기 위한 자신의 다짐일 뿐이라는 걸. 더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고통과 후회를 잠재울 옴마니밧메훔일 뿐이라는 걸. 신이시여, 제발 제게서 이 작은 행복마저 가져가지 말게 하옵소서. 당신이 만약 때가 되어 저 어여쁜 천사를 다시 그대 품으로 부르고자 하신다면, 그 천사를 아끼던 내 마음마저 가져가소서.
행복한 것들은 언제나 불안정하다. 지금의 행복감이 영원히 지속하길 바라는 것은 욕심일 뿐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행복이 크면 클수록 뒤이어 올 슬픔은 더 커진다. 인간이 망각하는 것, 매번 행복할 수 없는 까닭은 어쩌면 다가올 슬픔에 대비하던 인간 심리의 진화적 메커니즘이 아니었을까? 한순간 무너질지도 모르는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진화는 망각을 만들어 내고 매번 마음이 행복하고 기쁠 수 없게 만든 것은 아닐까?
어젯밤에 달을 보았어요. 나는 그게 처음에는 한 여인의 초상인 줄 알았는데, 그것은 엄마 그 자체였어요. 하늘 저 높은 곳에서 내려와 일렁이는 물결을 타고 내게 온화한 빛을 내려 준 그대였어요. 이내 지고 말 달과 달빛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대 떠날 새벽을 잊을 만큼 아름다운 달이었어요. 모든 생명에 온화한 빛으로 편한 잠자리를 만들어 주는 그대였어요. 수많은 그대의 아들, 딸이 그 안에서 그대가 옆에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로 잠이 들었어요. 나 역시 그렇답니다. 그러나 이 순간만큼은 그대의 달덩이같이 예쁜 얼굴을 보는 것이 너무도 행복합니다. 너무 행복해져서 그대를 옆에 두고 사진까지 찍었어요. 이 순간을 이렇게라도 하면 붙잡아 둘 수 있을 거 같아 옆에 있는 사랑하는 이에게 찍어달라고 말했어요. 그대는 언제나 내 어둠을 밝혀주시는군요. 온화한 미소로 어둠 속에서 두려움을 몰아내면서 잠들 수 있도록 하는 불빛이었군요. 당신이 떠난다면, 이 어둠을 내가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요? 매번 낮만 계속되는 게 아닐진대, 나는 밤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요? 그때가 되면 밤을 어떻게 이겨낼까요?
세상에는 대체 불가한 것들이 있었다. 오로지 하나뿐인 것은 모두 그렇다. 저 달도, 태양도 그리고 내 엄마도 그렇다. 이 해수욕장은 필시 엄마가 좋아할 곳이었다. 엄마 목소리라도 듣고 싶었지만, 그러나 전화하지 않았다.
갈남항 해수욕장은 움푹 들어간 작은 만의 형태를 띠고서 양쪽을 방파제로 막은 뒤 그 사이로 물이 들어올 수 있게 작은 공간만을 열어둔 곳이었다. 그 까닭에 파도가 크게 치지 않았고 곳곳에 작은 바위섬이 조금 있어서 스노클링을 하기 아주 적당했다. 수심 또한 깊은 곳은 7~8m 정도 되는 듯하여 이따금 구명조끼 없이 프리다이빙을 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사람도 장호항과 비교하면 그리 많지 않아 보였고 방파제를 기준으로 스노클링을 할 곳과 모래사장이 구분되어 있어서 해수욕을 원하는 이들이나 아이가 있는 가족 단위 손님들은 그곳에서 주로 놀고 있었다. 우리는 우선은 숙소가 장호항 쪽이었기 때문에 오늘은 그 근처에서 놀자고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숙소로 향했다.
이틀 동안 차에서 잠을 청한 탓인지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졸음이 밀려왔다. 대현 또한 계속 운전하고 온 탓인지 졸린듯했다. 스노클링이고 뭐고 일단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눕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고 잠깐 잠을 청하자고 합의를 보고 자리에 누웠다. 잠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대현이 가져온 자연풍이라고 광고하던 비싼 흰색의 디자인의 예쁜 선풍기는 실로 편안한 잠을 청할 수 있도록 그 역할을 다했다. 넓지는 않았으나 대낮부터 제 역할을 다하기에는 적절한 숙소에서 적절한 에어컨과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적절한 잠을 청했다. 창밖으로 해가 쏟아지는 날씨 또한 행운이었다.
족히 1시간을 자고 숙소에서 5분 거리의 해수욕장으로 갔다. 역시 사람이 많았고 앞이 뻥 뚫려 있어서 파도가 제법 쳤다. 수영하면서 내심 장호항의 스노클링 포인트로 가자고 할까 생각했지만 아까 본 차들로 볼 때 주차할 곳도 없을 것 같고 사람도 많을듯싶어 그냥 오늘은 이곳에서 놀고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저기에서 고무보트를 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런 곳에서는 스노클링보다 저게 더 재밌을 것 같았다.
나는 대현에게 대체로 어떤 요구를 하지 않는데, 그 까닭은 실제로 그다지 큰 욕구가 없을뿐더러 어찌 보면 학습의 결과이기도 했다. 그는 나와 다른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떠날 때면 운전을 비롯하여 거의 모든 것을 도맡아 했다. 그것을 즐기는 듯이 했기 때문에 우리는 전적으로 그의 선택과 취향을 신뢰했고 그를 지지했다. 그러한 것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학습되다 보니 여행을 가자는 그의 제안에 별도로 해야 할 일을 잘 찾지 않게 된 게 아닐까 싶어 나도 모르게 놀랄 때가 있다. 한 번은 그에게 어떤 여자가 좋은지에 관해서 물은 적이 있는데, 자신의 말에 맞장구쳐 주면서 함께 여행할 때 가만히 있기보다 하다못해 지도를 펼치며 더 나은 곳으로 안내를 하거나 인근 맛집을 찾아봐 주는 이가 좋다면서, 예전에 잠시 만났던 나도 아는 누군가를 회상하는 듯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며 그가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적극적인 의견 표출을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내심 놀랐고 그 이후로 스스로 너무 수동적으로 혜택을 받아먹기만 했었는가 돌아보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가 주도하되 그가 고민할 시간을 덜어줄 수 있도록 조금은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거나 조수석에서 지원하였다. 가령, 가고 싶은 곳이 있느냐는 질문에 "네가 원하는 곳은 어디든!" 보다도 "간다면 경주에 다시 가고 싶어!"라고 말을 한다든지, 네비가 안내하는 최단 거리 대신에 지도를 보며 여행의 취지에 좀 더 어울리는 해안도로를 안내한다든지, "인근 맛집은 내게 맡겨!"과 같은 말로 조수석 자리에 어울리는 행동을 하였다. 그동안 너무 그에게 맡겨두고 당연시했던 것들을 재점검하고 이에 관해서 별로 말이 없는 그를 좀 더 돕고 싶었다. 물론 내가 하지 않는다고 하여 그가 불만을 가질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옆에서 제때 조력을 함으로써 나 역시 이 여행에 책임의식을 갖고 그를 좀 더 기쁘게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책임의식은 그의 여행에 내가 따라간다는 느낌보다 내가 원하는 여행이라는 욕구를 조금이나마 만족시켜줬다. 경주여행이 비교적 그러했는데, 물론 내 스타일로 하자면 자전거를 타고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그곳의 풍경이나 정취, 그리고 역사적 배경으로 바탕으로 한 생각을 충분히 했을 것이지만 그저 다시 그곳에 가서 유적들을 보고 돌아오는 것으로도 내겐 과거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책을 한 권 들고 홀로 자전거 여행을 하며 지내던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이다. 그곳의 수많은 유적을 보노라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지지만, 친구 앞에서는 말을 삼갔다.
이런 나의 여행 스타일을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와 잘 맞지 않는다고 여길 수도 있다. 특별하진 않더라도 진득하니 그 의미를 곱씹어 본다거나 한 장소나 그 주변에 반나절은 족히 있다거나, 자전거를 타고 땀을 흘리며 발로 땅을 디디며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거나 혼자 여행할 때엔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돌아보는 것은 그에게 물어보지는 않았으나, 그와의 여행 경험을 고려할 때 잘 어울리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나의 이러한 여행 의지를 누군가에게 강요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방의 스타일에 맞춰주는 건 내 성격적 측면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작가나 책을 좋아하느냐는 말에 딱히 한 사람을 꼽을 수 없고, 어떤 음식이 좋으냐는 말에도 가장 손쉬운 대답인 '아무거나'가 좋은 나는 정말 아무것에도 상관이 없이 그 자체를 즐겼다. 이것은 이것대로 의미가 있으며 저것은 저것대로 의미가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오히려 친구와 함께하며 내 스타일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내가 알 수 없던 낯선 경험과 의미들이 만들어지게 되기도 했다. 내 여행 스타일을 강조했다면 언제 내가 스노클링을 하고 스노보딩을 할 수 있었겠는가? 언제 내가 가을의 풍성한 단풍과 봄날의 바다를 무작정 볼 수 있었겠는가? 그 모든 게 매번 나 자신을 강조하지 않음으로써 그렇게 얻을 수 있던 경험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언제나 타인에 의도에 모두 따르거나 남들이 하는 것만을 따라가야 하는 건 아니다. 내 것은 내 것대로 하되 나 자신이 물처럼 경험과 변화에 유연한 자세로 있으면 된다.
이러한 물의 철학은 단순히 자유롭게 변화 가능함에만 그 장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얼음처럼 차가운 이성으로 단단하게 자신을 지켜내야 할 때도 있고 물처럼 유연하게 따라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수증기처럼 가볍지만 광범위하게 자신의 가치를 곳곳에 묻히는 것도 필요하다. 대현과의 여행에 단순히 내가 유연하게만 따른 것이 아니라 그 안을 들여다보면 내가 얼음처럼 고수하거나 의견을 강조한 부분이 있고 나의 여행 스타일이나 가치관 일부가 그에게 젖어든 것도 있으리라고 본다. 묻어 든다는 말, 혹은 젖어든다는 말은 정말 중요한데, 상대에게 내 가치관을 고수하거나 주입하지 않으면서도 내 가치를 상대가 인정토록 하는 것이다. 액체 상태의 유연함은 상대에 따라 내가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거라면, 기체 상태는 나를 상대가 자연스레 인정토록 한다. 어머니가 조금은 강하던 내 아버지를 대하는 방식이며, 가랑비에 옷을 젖게 만드는 방식이다. 이러한 점은 어머니를 닮은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