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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Nov 19. 2019

「아파트 공화국」이 된 대한민국.

발레리 줄레조 아파트 공화국 리뷰.


외국인들이 63 빌딩과 같은 높은 곳에 올라가 한강을 바라볼 때 무엇이 제일 눈에 띌까? 아마 비슷한 형태의 아파트와 교회의 빨간 십자가일 것이다. 그중에서 아파트는 내 집 마련의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 번쯤 저 많고 많은 아파트 중에 한 곳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그러한 소망이 수없이 많기 때문인지, 아파트 모델 하우스에는 언제나 사람이 많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파트가 제공하는 수많은 혜택과 어떠한 보이지 않는 특권은 단순히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하는 거주지의 개념을 넘어서 한 가정의 꿈을 실현하는 장소가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가 이 책처럼『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은 아파트가 생겨나는 까닭을 인구밀도에서 찾는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 인구 밀도가 높아서 어쩔 수 없이 고층의 건물을 지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이다. 많이 이들이 이 논리에 수긍했고 아파트 개발을 지리적 형편상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인구 밀도라는 측면으로 아파트의 개발 붐과 과열되는 아파트 시장에 대한 열기를 이해할 수 있을까? 가까운 일본의 사례를 보더라도 도시 지역의 인구 밀도가 높아도 우리나라처럼 아파트 시장이 과열되지 않는다. 저자는 이에 대해 심층적이고 객관적인 분석을 통해 인구 밀도 이외의 측면들을 밝혀 나간다.


책에 따르면, 1960년에 이르러 권위주의 정부의 등장과 함께 시작한 경제 개발 정책은 아파트의 개발 의지를 북돋았다. 그녀의 말을 요약하자면, 아파트는 건설 경기를 진작시키고 그를 통해서 기업을 키우고자 했던 권위주의 정부와 재벌의 합작품이라는 셈이다. 더불어 프랑스에서는 아파트 단지라는 개념이 저소득층, 서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다면 우리나라는 실질적으로 전체 사회 계층을 볼 때는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도 꼽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70년대 이후 증가한 평수의 아파트들이 생겨나고 중산층이 그곳에서 머물기 시작하자 많은 이들이 아파트를 중산층으로 계층 상승이 될 수 있는 하나의 상징적 지표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책에서는 다루지 않지만, 더불어 하나를 꼽는다면 경제 개발 당시에는 수도권 집중 개발 정책에 힘입어 아마 서울로 올라오는 수많은 인원과 그곳에서 결혼하고 터를 잡는 인구를 수용할 공간을 급하게 마련해야 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제공해야 할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정책과 우리나라의 ‘빨리빨리’ 문화와 맞물려 급속하게 증가한 것도 하나의 요인을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하면 재벌들의 기업 부풀리기가 정부의 경제 개발 정책과 맞물리면서 급격하게 늘어난 인원을 수용하기 위한 수단으로 아파트가 탄생한 측면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책은 비교적 술술 읽혔으나 내용의 전반부는 예상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권위주의 정부의 개발 정책과 재벌의 이해관계 속에서 피어났다는 사실은 이 책이 출간된 2003년에는 특이할 만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2015년 현재 정부가 부동산 경기 진작을 위해 시행하고 있는 행동과 건설 기업들의 개발 정책, 대출을 받아서라도 아파트를 사려고 하는 국민의 욕망에 대해서는 여러 미디어나 뉴스를 통해 상당 부분 다루고 있다.


후반부에 점차 사회 구조적으로 접근하면서 여러 소득 계층이 아파트에 대해 가지는 심리를 꼼꼼하게 다루고 있다. 좋은 아파트가 계층적 지위를 대변하게 되는 까닭들에 대해 실증적 사례들을 보여주고 평수에 따라 거주자들의 사회 계층이 다른 것을 실증적 자료를 바탕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놀라울만하다. 더군다나 대단지 아파트의 감시체제나 통제의 문제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부분은 저자의 한국에 대한 통찰이 엿보인다.


프랑스와는 상반되는 사례이지만, 한국의 대단지 아파트 역시 통제의 문제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필요로 한다. 역설적이지만 한국에서 아파트 단지는 지속적인 감시체계 덕분에 매우 안정된 주거 공간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아파트 단지는 국가로 하여금 통제와 감시를 용이하게 하였다. 이러한 감시의 논리는 한국의 아파트 단지에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데, 이는 1980년대 말 민주화를 통해 엄청난 정치적 변화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단지 내 일상적 생활환경의 구조와 조건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로 나타난다.
서로 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경우와 한국의 경우를 대조해 보는 것은 여전히 흥미롭다. 이 책 본문에서도 강조했지만 도시가 특정의 형태를 갖게 된 데에는 그 어떤 필연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단지 아파트가 갖는 물리적 특성 때문에 프랑스의 대단지 아파트가 문제의 위험지역으로 변한 것도 아니다. 프랑스의 아파트 단지는 적어도 1980년대 이전까지 도시에서 가장 문제가 많은 지역이 아니었다. 그곳을 도시 폭력의 중심지로 만든 것은 합리적인 도시 정책의 대상이 아니라 점차적인 감시와 통제의 확대가 필요한 지역으로 규정하고 접근한 데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는 아파트 단지에서 감시와 통제의 체제가 민주화와 같은 정치적 격변과 경제 위기 이후의 불안정한 시기에 오히려 사회 질서를 지탱해 준 완충 요인으로 기능했고 아마 지금도 그렇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감시체제와 사회안정의 병행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발레리 줄레조, 아파트 공화국, 245p.>


우리에게는 사실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말보다 삼성 공화국이라는 말이 익숙하다. 그리고 그 공화국 안에 사는 사람들, 흔히 삼성과 같은 대기업에 다니는 이들에게 우리는 중산층이라는 시선을 던진다. 서울의 아파트 단지에 사는 사람 대부분이 중산층에 접근해 있고 실상, 이들이 바로 대기업을 다니거나 월평균 소득이 300만 원 이상인 사람들이다.


다시 말하면, 대기업 중심의 사회 구조는 아파트 개발과의 관계에 밀접하게 영향을 미친다. 가령, 첫째, 단독 주택은 손이 많이 간다. 내외가 일하는 구조에서는 집을 관리하기보다 말 그대로 쉬기 위한 공간을 활용하기를 원한다. 둘째, 아이가 있을 경우, 아이의 안전을 고려할 때 단독주택은 아파트보다 위험하다는 인식이 있다. 아파트는 단지 내부에 학교와 편의 시설, 공원 등이 존재하며 별도의 관리 사무소가 존재한다. 이들은 매일 주변을 관리하고 점검한다. 이러한 닫힌 공간에서 아이들은 부모가 낮에 없어도 비교적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다. 셋째, 자기와 비슷한 주변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게 된다. 대기업을 다니는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환경에서 거주하면서 자신의 계층적 지위를 확인하는 공간이 된다.


저자는 이러한 대규모 아파트들이 등장하면서 사회 공간적 차별화를 고착시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관리와 유지 문제로 하여금 필연적으로 비용을 증대시키고 나아가 도시 형태의 견고함을 취약하게 만들어 쇠락하거나 재개발이 불가피할 것이라 우려를 표하면서 책을 마친다.


저자의 애정 어린(?) 우려가 담긴 책이 나온 지 10년 이상이 지난 지금 여기저기에서 그 우려가 현실화된 것도 있지만, 도시 붕괴와 맞물릴지, 아파트 가격이 내려갈지는 의문이다. 보수 정부의 땜질식 부동산 정책은 아파트 개발과 재개발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듯이 보인다. 이제는 그녀가 말한 '하루살이 도시'라는 말, '주택이 유행 상품처럼 사고 팔린다'는 말이 고리타분할 정도이다. 이러한 상황과 사회 구조 속에서 어쩌면 우리는 현재 아파트 중심 구조에서 가족이 살아갈 터전이라는 전통적 주거 개념에서 가족이 잠시 쉬다 갈 곳이라는 개념으로 인식을 바꿔버려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2003년에 나온 책이다 보니 2000년 이후 등장하게 된, 브랜드 아파트들에 대해 다루지 않는다. 브랜드가 달리면 부동산 가격이 급격하게 뛰는 현상을 목격한 우리에게는 이 현상 역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과거의 부동산 정책 가운데에는 단순히 평수나 주변 입지 환경과 사람들이 입주하려는 욕구와 맞물리는 것이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브랜드 아파트에 대한 이미지가 해당 아파트에 입주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망이나 계층 문제까지도 얽혀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사회 문제를 다룬 수많은 사회 과학 서적이 그러하듯이, 이 책 역시 개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여러 의문과 약간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의 눈으로 본 우리나라의 아파트 문화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분석한 것은 놀랍다. 그러나 국가가 부동산 중심의 경제 정책으로 경기를 부양하려고 하는 한, 주거지에 대한 욕구가 있고 단독 주택보다도 훨씬 좋은 편의 시설이 존재하는 한, 질 좋은 일자리가 수도권 중심으로 편중되어 있는 한, 그리고 신혼부부들의 주거에 대한 선택 권한의 비중이 아내에게 있는 한 아파트에 대한 열기가 사그라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2015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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