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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Nov 05. 2019

『객관성의 칼날 - 찰스 길리스피』에 관하여.

추천 도서 소개.


 1.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어린 시절에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갔던 교회에서 성경을 읽으면서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라는 식으로 시작되는 구절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글은 성경의 역사에서 유명한 각각의 인물들의 가계도를 나타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성경 안에 있는 수십 개의 전서에는 그들이 이룬 업적에 대해서 비교적 자세히 기술(記述)이 되어 있었습니다.


  찰스 길리스피의 『객관성의 칼날』을 보며 느꼈던 감정은 마치 성경에서 보았던 가계도와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다만 성경, 특히 구약이 신과 이스라엘의 계보와 역사라면 『객관성의 칼날』은 르네상스 이후 과학의 꽃을 피운 인물들의 계보와 과학의 역사라고 할 수 있겠죠.


 2. 이 책은?


  이 책은 중세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인간이 어떻게 객관성을 갖춘 과학을 얻게 되었는가를 설명하는 일종의 역사서입니다. 책의 맨 앞 장에는 근대 과학 발견의 초석이라 할 수 있는 갈릴레오의 낙체 운동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당시 신 중심의 유럽 사회를 지탱하고 있던 것은 지구가 천체의 중심이고 행성은 완벽한 원형으로 지구 주변을 돈다는 관점이었습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사상과 신 중심의 사상이 함께 결합하면서 모든 자연의 법칙은 신의 뜻에 따라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믿어오게 됩니다. 객관성보다도 주관성이 강했으며 무실험적이며 이성의 만족만으로도 논의가 끝날 수 있었죠. 그러나 이것은 근대 과학이 추구하는 수학적, 분석적, 경험적, 계량화와 거리가 먼 것들이었습니다.

  『객관성의 칼날』은 르네상스 이후 서구의 근대 과학이 그러한 체계를 갖추기까지 있었던 과학사적 사건들을 마치 가계도와 같이 유기적으로 기술합니다.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티코 브라헤, 갈릴레오의 사상이 어떻게 뉴턴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의 실험 방법이나 이론들이 또다시 여러 역학과 화학, 생물학 등의 세분화된 과학의 분야들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를 그들의 에피소드를 빌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갑니다.


3. 과학 사상의 역사에 관한 에세이?


  『객관성의 칼날』은 “과학 사상의 역사에 관한 에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부제를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이 책이 과학 사상서라는 것과 그것이 전개된 역사 그리고 그것을 에세이로 풀어서 썼다는 말일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은 현대 과학의 과학적 기법이나 방법, 사상, 이론 등 모든 전반에서 어떻게 신 중심이나 주관적인 해석을 벗어나 합리적이면서 객관성을 유지하게 되었는지를 논의하는 과학 사상서입니다. 그리고 저자 찰스 길리스피는 그러한 과학 사상이 어떻게 계몽주의나 철학 등의 사상에 유기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이 책의 제목의 원제를 잠시 살펴보면 『The Edge of Objectivity』입니다. 우리 책에서 칼날이라고 번역이 되었지만 사실 ‘Edge’라는 것은 ‘모서리, 가장자리’의 의미로 쓰이기도 합니다. 많은 분이 동의하듯, 중세에서 근대로의 변화처럼 하나의 시대가 다른 시대로 넘어가게 되는 것은 단순하게 어느 한 명의 영웅의 등장만으로 해결될 수는 없습니다. 시대가 변화하는 것은 변화를 바라는 수많은 군중과 학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그러한 변화의 시기에는 혁명적인 인물이 한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단순히 천재적으로 혼자 완성한 것이 아닌 많은 이들의 이론과 뜻이 응축되어서 하나의 통일된 사상으로 매듭짓는 때가 오죠. 마치 동이 트기 전까지 차츰 빛이 새어 나오다가 이윽고 태양의 전체 모습이 보이듯이 어둠을 완전히 몰아내는 시기가 있듯이, 우리의 시대도 새벽에서 오전으로 그리고 오전에서 오후로 가게 되는 기준이 존재합니다. 이 책은 그 변화 기준의 가장자리에 있는 대표적인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역사는 대중을 통해 움직이지만, 그 시대의 끝 또는 『가장자리』에 존재하는 인물들의 노력이 새로운 시기를 여는 문을 열어주었기에 저자는 이 책을 『객관성의 칼날』이라고 명명했다고 봅니다.


4. 교과서에 나오는 것을 중심으로…….


  흔히 중,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법칙들은 당대에 가장 혁명적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이 나온다고 합니다. 물리학에서 뉴턴의 운동에 관한 법칙이나 화학에서 질량 보존의 법칙, 생물에서 유전 법칙 등이 다 그렇죠. 그렇게 대단한 법칙들을 배우지만 우리는 그 법칙들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그들이 알게 되었는지 잘 모릅니다. “피사의 사탑에서의 갈릴레오의 낙하 실험, 뉴턴의 사과 이야기”처럼 단순한 몇 줄의 에피소드들이 고등학교 문제집 첫 페이지의 삽화와 함께 첨부되는 것이 전부일뿐입니다.

  그러나 그 법칙들이 도출되기까지는 수십 년 혹은 백여 년 이상의 수많은 사람의 생각과 실험 그리고 논문들이 겹쳐져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또한, 단순히 그 법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논의된 수많은 사상과 논의들은 정치나 사회 그리고 철학 등에 영향을 미치죠. 이것은 당시 학풍이 하나의 학문만을 연구하는 것이 아닌 과학자가 동시에 철학자나 작가, 목사 등을 겸했기에도 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철학자 데카르트와 대문호 괴테가 동시에 과학자였던 것처럼 말이죠.

 또한, 과학자는 아니었지만, 당시에 혁명적이었던 과학적 방법론 역시 수많은 사상가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가령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인 존 로크의 경우 인간 본성에 관한 과학을 탐구하기 위해 물리학을 모범으로 삼고 뉴턴적 물질관과 유추로부터 정신을 논하기도 했죠. 그런가 하면 애덤 스미스는 아이작 뉴턴의 자연과학 법칙에 감명받아 그것을 사회과학에 도입하고자 하는 시도로서 국부론을 썼습니다.

『객관성의 칼날』에도 그와 비슷한 그러한 내용이 나옵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았듯이 수많은 사상가는 다른 후대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어떠한 과학은 또 다른 과학을 탄생시키는 순간에 있었던 다양한 창조적 인간들의 이야기를 밝힙니다.



5. 거의 모든 것의 역사 VS 객관성의 칼날


  과학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두 책은 함께 생각해볼 수 있으나 『거의 모든 것의 역사 - 빌 브라이슨』의 경우 누구나 읽어도 크게 무리가 없는 반면에 『객관성의 칼날』은 과학 사상에 관한 논의와 전개에서 지식인이라고 하더라도 다소 지루하거나 어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과학자들이 법칙의 발견에 관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는 동시에 그것이 동시대의 다른 사상과 과학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비교적 딱딱한 문체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때로는 책이 철학적이기도 하고 에세이라고 밝혔음에도 딱딱함이 느껴집니다. 독자의 대상도 전자가 다수의 대중이라면 후자는 어느 정도 고등학생 수준 이상의 과학 법칙에 대해 아는 지식인을 대상으로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교양서임에도 지식의 확장뿐 아니라 깊이 있는 수준까지 들어 간다랄까요?

  과거에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 대한 리뷰를 진행하면서 이 책을 인터넷의 『나무 위키』에 비교한 적이 있습니다. 과학사의 다양한 에피소드들 중에서도 재밌거나 야사에 가까운 이야기들을 전개해 나가 독자들의 흥미를 돋우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에 반에 이 책은 『위키피디아』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보다 학문적이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비교적 객관적 사실과 법칙에 대입하여 기술(記述) 하기 때문입니다.


6. 과학과 역학을 배우는 또는, 배우지 않는 이들이게


  안타깝게도 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과학을 거의 배운 적이 없습니다. 과학이나 역학과 상관없는 전공의 세분화에 따른 학문의 파편화 때문이었을까요? 전공에 충실했기 때문이었을까요? 20대 이후의 삶에서 과학이라는 것은 교양서적에서 볼 수 있는 것 정도일 뿐이었습니다. 이미 과거와는 달리 세분화된 학문들은 과거 선배들은 가능했던 학문 간 교류나 다양한 전공을 함께 겸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죠.

  이 책도 역시 과학사에 대한 비교적 무거운 교양서입니다. 역학에 문외한인 저로서는 상식적인 부분을 뛰어넘어 과학 사상의 흐름이 철학을 비롯하여 다양한 사상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공학을 전공하시는 어떤 분은 현재 자신이 배우는 법칙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았다는 말을 전하더군요.

  이 『객관성의 칼날』은 대학에서 과학을 배우는 이에게도 그렇지 않은 이에게도 읽는 즐거움과 심사숙고를 할 기회를 줄 것입니다. 누가 되었건 이 책을 통해 지적 성장을 추구하는 분들에게는 분명히 어렵지만 즐거운 경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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