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로 가는 길에서

연재 소설 (9)

by Chris

다음 날이 되고 우리는 인근의 동굴에 구경을 가기로 했다. 거리는 이곳으로부터 약 60㎞ 정도로 1시간 이상을 내리 달려야 했다. 가는 동안은 조용했다. 우리는 이렇듯 별 말이 없어도 편안한 사이였고 그 시간의 침묵을 갑자기 깨뜨려 이야기해도 이상할 것 없는 사이였다. 옆으로는 높은 산맥이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길게 이어졌다. 스피커에서는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왔고, 나는 높은 산 위에 걸려 있는 여러 형태의 구름을 보았다. 이렇게 조용함이 한동안 지속하고 어떠한 말도 서로 오고 가지 않는 시간이 오자, 언제나 그렇듯 먼 산을 바라보던 내 시야는 창문에 비치는 내 모습으로 전환되었다. 거기에는 주름지고 이제는 과거보다 나이 들어 보이는 내가 있었다. 친구들은 내가 동안이라고 말을 하지만, 가까이에서 적나라하게 보이는 내 얼굴은 그들의 말처럼 결코 세월을 비켜간 것이 아니었다. 그 얼굴의 주름이 시선에 이르고 나니, 그 주름이라는 나이테에 깃든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그저 케세라세라,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이 전부였고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누구나 꽃을 피우나 그 시기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자포자기의 심정과도 같은 기분이었으나 이 생각을 하고 나면 마음이 한껏 위로가 되며 행복감마저 차올랐다. 그러나 전날의 달을 보다가 떠오른 그녀를 떠올리게 되면, 나는 그녀를 잡을 수 없을 거라는 어떤 무기력과 서글픔이 온몸을 감쌌다. 그러한 감정은 네 인생이 잘못된 거라고 내게 계속 말하는 듯했다. 그녀를 잡지 않을 명분을 계속 만들었고 가진 게 없으니 그녀를 가질 자격 또한 없다고 여겼다. 처음부터 그런 감정이 더 올라오기 전에 시작도 말아야 한다고 창문에 비치는 환영은 계속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까짓것! 해보자. 어떻게든 잘 되겠지.'라는 생각과 다짐도 창가에 비치는 우울의 그늘은 피할 도리가 없었고 오히려 나를 더 사랑을 못하는 인간으로 만들었다. 휴대폰을 들어 넌지시 메신저에 띄워진 그녀의 프로필 사진만 눌러보았다. '채팅하기' 버튼을 눌러 '시간이 되면 이번 주에 함께 식사하지 않을래요?'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저 깜빡이는 커서를 보다가 옛 대화들을 다시 들여다보며 그녀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헤아려 볼 뿐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도대체 무엇을 했던 걸까?' 운전하는 대현을 보며 이 말을 하려다가, 그냥 다시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어느 날부터 이렇게 내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법을 잊었다. 고함을 지르고 싶은 충동, 참고 울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며 속으로는 두려워함에도 겉으로는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사실 나는 아직도 어린 아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럼에도, 겉모습이 어른이라 그저 어른스럽다는 행동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누군가에게 두렵고 겁난다고 말하고 싶었다. 나를 사랑해 달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꿈에서조차 허용되는 일이 아니었다. 한 번은 사랑하는 여인이 나와 내게 구애하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 누구였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그녀는 꽤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그녀와 사랑을 나누려는 순간, 어떤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겨나 그 다음으로 이어 나갈 수가 없었다. 나의 꿈이었음에도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 꿈에서도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에 한숨을 쉬다가 다시 누웠다. 피곤했으나 잠이 쉽게 들지는 않았다. 몸을 벽 쪽으로 붙이고 고개를 벽으로 돌리니 차가움이 감돌았다. 벽 주변에는 언제 때려잡은지도 모르는 모기의 피와 파편이 몇 군데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혼자 누울 때면 언제나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차가운 벽면의 단순한 패턴을 손가락으로 따라 그리며 잠을 청했다. 때로는 벽에 몸을 대고 벽으로부터 느껴지는 차가운 온도를 느꼈다. 밤낮으로 제일 먼저 맞이하게 되는 벽면이었고 앞으로도 그 차가운 벽면의 오돌토돌한 실크 벽지를 적어도 10년 이상은 더 바라볼 것 같았다. 어느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았으나,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했으나 그럴수록 더 그렇게 될 것 같은 확신마저 들었다. 오래전 기억이었음에도 서글프게도 그 기억이 계속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었다. 실로 두려웠다. 그럼에도, 나는 마치 이미 학습되어 새장을 열어놔도 날아가지 않는 새처럼 이 새장 속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학습된 무기력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굳이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매번 그러했다. 아침에 내 의지대로 일어나기보다 편안한 침대에 누워 있는 편안함, 전날 잠을 충분히 못 자거나 혹은 바쁘게 일을 한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저 공허함과 함께 오는 무기력감 탓에 그 침대 바깥을 벗어나기 싫어하는 마음, 옳지 않다고 여기면서도 그 침대 밖을 나서고 싶지 않아 약속 시간 직전까지 누워 있게 되는 마음과도 같았다. 30대 후반의 나이는 무기력감과 타협하는 나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를 적극적으로 대하지 못하는 까닭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정보 부재에 따른 의심병이었다. 학교나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같은 소속이라는 한 가지 면에서만큼은 믿을 수 있었다. 그리고 대체로 만나게 되는 인연들은 계속 얼굴을 보며 서로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아갔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 없었다. 혹은 소개팅이라면 주선자의 신뢰성으로 말미암아 상대를 믿을 수 있었다. 말하자면, 자신의 평판이 있고 나와의 관계가 있는데, 설마 그런 사람이 이상한 사람을 소개해 주겠냐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임에서 만난 사람은 어떠한 정보를 얻거나 물어보기가 어렵다. 더군다나 친목을 가꿀 수 있는 회식자리조차 없다면 더더욱 그러했다. 또한, 최근에는 이러한 소모임을 중심으로 취미 활동이 아닌 종교나 다단계 등의 목적으로 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뒤로부터는 그 의심은 더 커졌다. 이 사람은 나를 보고 시시때때로 웃어줬으며, 먼저 전화번호를 요구했고, 먼저 연락을 했으며, 오빠라고 불러줬다. 오늘은 무엇을 하는지 나에 대해 궁금해하고 또 오늘은 어땠는지 물어봤다. 이러한 관심이 괜히 의심스러우면서도 또한 관심을 두는 게 싫지는 않았다. 어쩌면 이것이 나이를 먹어 외로운 사람들이 반쯤은 알면서도 사기를 당하는 까닭이 아닐까 싶었다. 누군가가 곁에서 관심을 둔다는 그 자체가 위안이 되는 것이다. 그 목적이 결국 그들에게 쓸데없는 무언가를 팔아먹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반쯤은 알고 있으면서도 잊고 있었던 자신에 대한 관심이 좋아서 끊임없이 그릇이며 엉터리 약을 사고 마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 자식들은 쓸데없는 것을 왜 또 사 왔느냐며 노인을 나무라겠지만, 진정 반성을 해야 하는 것은 노인이 아니라 그 자식들이다. 이러한 자들은, "좋다, 귀엽다, 잘한다." 나이를 먹으면서 잊어버린 말들의 불씨를 살려준다. 그 달콤한 말과 온정 이면에 있는 독을 의심하면서도 동시에 행복감에 젖어 그 감미로운 사과를 베어 문다. 천성이 회의주의자에 속한 나로서도 이러한 말에 설렘을 느끼는데, 이들은 오죽할까? 내 아버지가 팔랑 귀인 까닭은 어쩌면 우리가 좀 더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여하튼 그녀의 감미로운 미소와 달콤한 말이 뱀의 혀일지 혹은 천사의 친절일지는 모르나 전자라면 언젠가 독 이빨을 드러낼 것이다! 한번 과녁을 맞힌 이 생각은 지울 수가 없었고 그녀로부터 연락이 올 때마다 설레면서도 동시에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나 자신이 싫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에 누군가로부터 배신을 당해서 그러는 거라면 그럴 수 있다고도 여기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길게 뻗은 산줄기를 보며 문득 얼굴은 바닥에 대고 섧게 우는 한 사람이 생각났다. 높고 낮은 줄기가 머리를 만들고 어깨와 등을 타고 허리쯤에서 살짝 아래로 내려가다가 엉덩이 부근에 와서는 다시 한번 가볍게 위로 솟았다가 아래로 떨어지는 그 선이 그러한 상태로 울고 있는 한 남자가 떠오르게 했다. 그 산줄기에 눈을 떼지 않고서 혼잣말을 하듯 친구에게 이야기를 했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니까 의심병이 커지는 것 같아." 뜬금없이 던진 이 말에 대현은 문득 뭔가를 알아차렸다는 듯 웃으면서, "그냥 네가 이상한 거 아니야?"라고 되물었다. "연락 오는 친구가 있다고 했잖아?" 나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 친구가 한 번은 내게 메신저로 인문학 특강 티켓이 생겼다고 같이 가자고 했어. 그러나 그 티켓이 뭔가 조잡하고 이상해 보이는 거야. 그래서 강연자는 누구인지 물어보니 제대로 답하지를 못하잖아. 표 받은 누나한테 알아보고 연락해준다고 하고." 그에게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이러한 의심 속에서도 그녀가 그립고 보고 싶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은 채, 그저 의심이 든다는 말로서, 어떤 목적이 없이는 그녀가 결코 나한테 이런 친절을 베풀지 않을 거라고 여기도록 그에게 진짜 속마음을 숨기고선 겪었던 사실만을 이야기했다. "그래도 네가 관심이 있다면, 그리고 의심이 들더라도 네가 손해 볼 게 없다면 한번 가봐. 혹시 알아 정말 그녀는 누군가의 호의로 티켓을 받은 거고, 그것을 너랑 가고 싶어 하는 건지도 모르잖아. 조금은 의심이 들더라도 확증이 없다면 융통성을 발휘해서 너의 선을 넘어볼 필요도 있지 않겠어?"

"선을 넘는 다라……."

문득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의 내 별명은 '할아버지'였다. 외모나 이름을 가지고 놀리는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에 나는 내 모습이 당첨된 것이다. 머리는 지나친 곱슬머리에, 여기저기 새치도 가득했다. 그뿐 아니라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고 옷차림도 간신히 더러움을 면한 신세였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나를 늙어 보이게 만드는 것은 고지식하며, 융통성이 없는 나의 말과 행동 때문이었다. 심지어 선생님마저도 너는 FM이라며, 때로는 융통성을 좀 더 갖췄으면 싶다고 말할 정도였다. 나만의 원칙과 선이 있었으며, 도덕관념에 똘똘 뭉쳐 살았던 시절이었다. 할아버지 같은 외모에 내면마저 꼬장꼬장 한 정도였으니 자유분방한 아이들로서는 내가 놀리기 딱 좋은 상대였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어느 사회나 무언가 하나라도 자신보다 우월한 사람에게 쉽게 놀리지 못하듯, 나 역시 공부를 꽤 잘하는 편이었고 싸움도 나쁘게 하지 않는 편이었기에 시간이 갈수록 쉽게 날 놀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뿐만 아니라 나이를 먹고서는 나 역시 그러한 놀림에 힘이나 말싸움으로라도 적극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에 그렇게 놀리는 사람은 점점 더 줄어들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보자면, 이러한 내 콤플렉스가 지금의 지적 능력과 건강함을 유지해 준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겉모습은 어린 시절의 그 모습에서 크게 변하지 않아 이제는 제법 동안 소리까지 듣고 있지만, 아직도 내 안에서는 채 부수지 못한 도덕관념들이 나 자신의 알을 깨고 나오지 못하게 하는 벽을 단단히 만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 점으로 하여금 남녀 관계에서도 때로는 넘어야 할 보이지 않은 선을 넘어서야 할 때, 그것을 지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라는 실체는 정작 겉모습이 아니라 그 내면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친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동창이 옛 추억을 떠올리며, 장난으로라도 '할아버지'라고 내 어린 시절의 별명을 부를 때면, 나는 그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지금도 점잖지 못하게 화를 냈다. 그 까닭은 그것이 내가 지금도 떨치지 못한, 그리고 잊으려고 노력하는 내면의 콤플렉스를 민감하게 건드리기 때문이었다.

한 번은 한 친구의 아내가 자신과 남편 사이의 교육관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자신은 아무리 횡단보도가 멀리 있더라도 아이와 함께 있을 때에는 무단횡단을 하지 않지만, 남편은 무단횡단을 해서 걱정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말인즉슨, 자신은 자녀가 보고 배울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그렇게 한다는 것이었고 도덕적으로 옳은 것을 가르치고 싶어서 그렇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에 반해 내 친구는 타인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굳이 돌아갈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교육적인 차원에서는 무조건 친구보다 아내의 말이 바르다고 생각하고 준법 의식을 고취한다는 차원에서도 이것이 옳다고 여긴다. 자기 이익적 측면에서 행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법과 도덕의 테두리 안에서 허용되어야 한다는 게 기본적인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어린 시절의 내 고리타분함이 문득 떠올랐다. 지나치게 도덕관념이 박혀 있을 때 그것이 다른 행위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기 때문이다. 지나친 도덕의식이 금기를 깨뜨리려는 노력이나 욕망을 해소하지 못하고 자신 안에 삭혀 버리는 상황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저러한 일 하나로 그렇게 될 수는 없겠지만, 가령 지나치게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의식을 고취해버리면 창조적 파괴나 자신에게 만들어진 금기를 뛰어넘으려는 시도는 하지 못하고 그저 새장 안에서 날아오를 생각 따위는 하지 못하는 새나 혹은 훈련되어 더는 담장 밖으로 뛸 수 없게 벼룩처럼 그렇게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친구의 아이가 아니라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 되어 알을 깨고 나와 날아오르려는 시도는 하지 않고 그저 알 속의 인간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진정 어린 시절의 강력한 도덕관념이 욕망을 억압하였던 것인가? 아니면 다른 문제일까? 내가 남녀 간의 사랑의 선을 조금 더 뛰어넘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까닭이 바로 이러한 어린 시절의 도덕관념일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도덕의 두 가지 관념인 당연히 해야 할 의무와 비난을 받기 두려워하는 마음, 그 사이에서 허우적 거는 것일까? 금기를 깨뜨리는 속에서 애로티즘이 탄생하는 것이라면, 나는 그 반대의 위치에 서 있는 것인가?

좀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손만 잡고 자자!'라는 말에 진짜 그렇게 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작 집에서는 못한 것을 후회하고 혼자서 누구를 향한 욕지거리인지도 모르는 욕을 해대며 야한 영상을 찾아 수음하고 만다. 그리고선 손목을 그어버리고픈 절망감을 느끼며 잠이 드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껏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나 자신의 참담한 기분이었다. 나 자신이 이제는 동안이라고 우겨봐도 나 자신은 아직도 그 어린 시절의 못생기고 놀림당하던 누군가가 살아서 내 행동의 적극성을 막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연애를 해보지 않거나 사랑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글을 쓰기로 다짐한 이후 꽤 오랫동안 사랑을 하지 못했으며, 그럴수록 한때는 잊었던 어린 시절의 강박에 가까운 도덕의식이 점점 더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실제로 경험하지 않고 상상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잊어버렸던 어린 시절의 강박감이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가고 사람들과의 교류가 더욱 적어질수록 자가 증식을 거듭하는 암세포처럼 그 강박은 점점 더 커졌다. 어쩌면 성욕에 대한 젊은 시절의 욕망이 점차 사라져 가면서 그 아래 묻혀 있던 도덕성과 성실함이 고개를 쳐드는 것일 수도 있었다.

동굴에 가까워지자 산은 제 모습의 반쯤을 구름에 숨기고 있었다. 그 모습이 신비롭기까지 했다. 우리는 저 구름을 향해 올라가야 했고 그 산이 감추어 놓은 오장육부 속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그곳은 아직은 어둠이 머금고 있으며 태고적의 우울이 차갑게 숨 쉬는 곳이었다. 우리는 그 안으로 차츰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아마도 어느 날 우연하게 물이 밖으로 향하는 작은 구멍을 하나 만들고 수십만 혹은 그 이상의 세월이 이처럼 거대한 공간을 만들어냈으리라. 이곳에 오기까지 우연히 만들어진 공간에 우연한 기회로 친해진 친구와 우연한 여행으로 우연히 이곳에 다다른 것이다. 우연이라는 한 번의 가치가 높이 평가받는 까닭은 바로 이러한 우연한 기회, 시도, 만남이 그 미래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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