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소설 (10)
안에 들어가니 동굴은 생각 이상으로 거대했다. 그 안에는 고층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높은 아파트가 들어가도 무방할 정도로 웅장했다. 산의 정상으로부터 내려오는 듯한 물소리도 그 규모에 맞게 오케스트라 반주의 웅장한 소리를 내는 듯했다. 거대한 동굴의 천장 부근에 거대하면서도 평평한 면을 보고 있노라니 어린 시절 배운 라스코 동굴의 벽화가 떠올랐다. 역사 이전 시대를 이야기하는 역사책의 첫머리 또는 원시 예술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인지라, 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처음, 이 벽화에서 소나 말만을 떼어낸 삽화를 교과에서 볼 때는 큰 감흥이 없다가, 인터넷으로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사진을 보았을 때, 그리고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이 그림을 어떻게 그렸을까를 찾아보았을 때, 그 장엄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그때에는 영상이나 사진으로 보면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면, 지금의 눈앞의 펼쳐져 있는 이 거대한 동굴과 그 벽면을 보면서는 1만 5천 년 전의 원시 인류의 거대한 그림 프로젝트를 실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때의 원시인은 마치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에 누워 그림을 그리던 미켈란젤로처럼 저 거대하게 펼쳐진 벽면을 보면서 머릿속으로 어떤 그림을 그릴지 상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한쪽에서는 육중한 소가 뛰어다니고 그것을 잡으려는 광경, 시스티나 예배당에서는 천상의 사람들이 뛰놀고 있다면 이곳에서는 현실의 사람들과 동물들이 뛰어놀고 있는 그림을 상상했으리라. 이들에게는 천국에서의 삶이 아니라 현실에서의 삶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중세인들이 천국에 지향점을 두고 그림을 그렸다면 이들은 현세에 지향점을 그림으로 담아 그려낸 일생일대의 작품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교회보다도 더 큰 천연의 건물에서 오르간에서 뿜어져 나오는 천국을 위한 노래 대신 자연의 웅장한 물소리를 들으며 이 그림을 그리고 얼마나 뿌듯해했을까? 시원한 공기가 코끝으로 들어와 정신을 맑게 했다. 이곳에는 비록 그런 거대한 그림까지는 없었지만, 어떤 신성한 느낌이 감돌았고 어쩌면 1만 년도 더 전엔 이곳 역시 원시 종교의 예배당으로 쓰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길과 계단을 따로 올라가니 갖가지 형태의 종유석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사람은 그것들에 제멋대로 이름을 붙였다. 그중에는 역사 시대 이후에 이름을 남긴 누군가가 왔다 가고서 이름이 만들어진 것도 있었고 그저 우연히 만들어진 종유석의 형태가 특정 동물이나 무언가와 비슷하게 보여 만들어진 이름도 있었다.
추상적인 물체를 어떻게든 구체적인 무언가로 한정 지으려는 욕망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의미부여를 하려 하고 있었다.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다른 사람도 그렇게 보게 하려고 동굴의 발견자들은 나름의 이름을 붙였다. 이는 어쩌면 한계를 정하는 것인데, 이렇게 함에 따라 어떤 존재하는 사물에 관하여 무한으로 뻗어 나갈 생각에 한계를 정하게 되는 일이기도 했다. 그 이름은 목적이나 본질을 규정해주는 것이기도 했고 이름 지은이의 생각이나 사물을 보는 보편적 관념의 반영이기도 했다.
그 이후에는 알다시피 인간의 손이 미술이나 조각에 익숙하지 않을 때 오로지 자연물을 상상으로 대상화하던 습관은 점차 구체성을 띠어 상상의 대상을 조각하고 그림으로 정교하게 표현하는 단계에 이른다. 마치 그 대상이 이미 그 구체성을 띠지 못한 것에 애당초 있었던 것처럼, 자연이 만들어 놓은 투박하고 거대한 돌기둥에 실제 불상을 조각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자연물이 아닌 인공물에 구체성을 파괴하고 이름을 없애버림으로써 다시 상상하여 스스로 이름 붙이도록 요구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창조주는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다.
이 수많은 예술의 과정의 첫 번째 페이지를 나는 이 동굴을 통해 감상하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내게는 이곳이 수많은 예술의 전시관과 다를 바 없었는데, 아무것도 없는 동굴의 웅장한 벽면을 보며 라스코나 알타미라를 상상하고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상상하기 때문이며, 자연의 조각품들을 통해 원시 시대의 작품뿐 아니라 불상이나 마리아상과 같이 정교한 조각상과 인간이 만든 현대 미술의 추상적 조각상마저 상상하기 때문이었다. 탁한 석회질의 물방울이 수만 년에 걸쳐 아래로 떨어지면서 만들어간 저 50㎝ 미만의 울퉁불퉁하지만 번들거리는 저 석순에 누군가 성모 마리아라는 이름을 붙였을 때, 현대 미술 작품의 이름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하다가도 점차 이해하게 되는 것을 이곳에서도 유사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존재에 이름을 붙이고 우리에게 인식게 했을 때, 모든 사람이 그저 지나치지 않게 수만 년 동안 동굴의 노력을 유심히 지켜보는 것처럼 이름의 중요성을 깨닫게 했다.
초입을 지나 들어왔을 때 처음 보는 광경은 실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홀과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듯한 큰 물소리에 천장에 결을 이루 부분이 거대한 연주 홀 위에서 연주가 끝나길 기다리는 휘장 막과도 같이 느껴졌다. 실로 장대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었다. 한 눈으로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공간의 구성은 자연의 스케일 앞에서 작아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초라함을 실감케 했고 '아!' 하는 감탄 이외의 어떤 말도 필요 없게 했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원시적 아름다움이 이 광활한 공간 안에 있었는데, 아마 이와 대조할 수 있는 것은 밝고 거대한 교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기에 그 까닭을 생각이 떠오른 이후에나 찾아야 했지만, 그것은 아마도 많은 사람이 거할 수 있는 거대한 공간이라는 실재성 위에서 아마도 그것은 원시성과 인위성이 서로 대립하는 것이었고 또한 동굴의 어둠과 교회의 밝음의 대립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공간의 어둠은 그러나 악마적 성격을 가진 혹은 조셉 콘래드의 소설 '어둠의 심연'에서 커츠가 말한 '공포'의 느낌은 아니었다. 어쩌면 동굴 안 곳곳에 설치된 헤드라이트와 램프 때문인지도 모르겠는데, 그것들이 동굴 안 곳곳을 알아볼 수 있도록 촛불처럼 밝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둠의 색이 좀 더 크지만 그렇다고 아예 어둡지만은 않았기에 그것이 신비로운 느낌을 전달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러한 불빛들이 동굴의 어둠에 닿을 때, 마치 선을 모호하게 그린 그림처럼 빛과 어둠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었다. 인위적으로 만든 재단 위에 원시 시대부터 내려오던 존재를 숭배하는 것, 원시의 공간에 인간의 문명이 침투해 들어가는 것이라는 두 가지 서로 다른 것들 사이에서 관계를 재설정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원시 시대부터 내려오던 존재는 원시의 공간에 두고 인위적으로 만든 재단 위에는 인위로 만든 불빛을 세워두는 것이다. 영적인 존재가 있어야 할 공간은 바로 이곳이었다.
그 공간을 옆으로 하고 한 두 명 정도가 간신히 건널 수 있는 길을 지나 철제 계단을 따라 위로 올랐다. 왼쪽은 넓은 좌대가 연이어 계단처럼 놓여 있는 공간을 통해 물이 위에서 아랫단으로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투명하게 비치는 물 아래로 간혹 동전 등이 놓여 있는 것을 볼 수도 있었는데, 그 앞에는 쓰레기나 동전을 던지지 말라는 경고 팻말이 놓여 있었다.
난간 위에 서서 아래의 투명한 물을 내려다보았다. 약한 불빛이었지만, 그 불빛으로 물은 나를 비추었다. 물에 비친 무표정하게 있는 내 모습이 자못 우울해 보였다. 살이 빠지면서 팔자 주름도 생겼는데, 그 주름이 사람을 더 처량하게 했다. 결코 강희안의 그림처럼 웃는 모습으로 물을 바라볼 수 없었다. 일부로 입꼬리 주변을 당겨 미소를 지어보았지만, 그저 어색할 따름이었다. 내가 바닥을 바라보자 대현도 잠시 내 곁으로 와 물을 바라보았다. 이제 물에는 두 명의 사람이 얼굴이 있었다. 나이를 먹은 볼품없는 아저씨들의 얼굴이었다.
"우리 나이를 이제 많이 먹었네. 그렇지? 저 물 위로 나이 먹은 아저씨가 보여."
그는 새삼스럽다는 듯 쳐다보고는 아무 말 없이 그냥 앞으로 향했다. 갑자기 찾아온 우울감의 원인을 찾아보기도 전에 우리는 앞으로 길게 난 철제 난간을 따라 길을 걸었다.
이따금 어떤 우울함이 불현듯 찾아올 때면, 그것의 원인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내 의식의 영역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확인해보고 사소한 것이라도 우울의 방아쇠를 당길 만 한 것이 발견이라도 되면, 왜 그것이 지금의 우울 상태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를 과도할 정도로 조사하게 된다. 실로 과도하여 그 원인 자체보다도 그것을 곱씹는 지금의 순간이 우울을 더 과도하게 이끄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사실 원인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지금의 우울은 모든 장르의 문학에 결국 존재해야 할, 결말이라는 마침표처럼 반드시 존재할 그런 성격의 것이기에 설령 이것이 원인이 아니었더라도 우울할 만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관련 지었을 것이다. 동굴 안 작은 연못에 비친 내 못난 얼굴을 보면서도, 혹은 동굴의 한기와 무거운 기분을 몸으로 느끼면서도, 혹은 내 눈으로 보고 있는 이 어둠 자체로서도 반드시 존재할 우울이었다. 그 흔적을 지울 수 없으니 가급적 생각을 하지 않거나 다른 유쾌한 일을 하면서 존재 자체를 잊어버리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때가 되면 느끼는 시장기 같은 것이기에, '이 순간이 지나면 곧 괜찮아지겠지.'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보내야만 하는 것과 같았다. 그 밖에는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주변을 맴도는 우울의 그림자를 벗어나려면 지금으로서는 이 난간을 따라 앞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