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소설 (8)
하늘의 달은 아직도 예뻤고 문득 다시 그녀 생각이 났다. 처음에 내게 관심을 보이던 그녀는 이제 점점 그 관심이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연락이 뜸해졌다. 내가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않아서 더 그랬을 것이다. 그것도 그런 게, 살아가면서 이렇게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 '이렇게 귀엽고 보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그녀가 나를 향해 관심을 보이는 건 분명히 다른 의도가 있어서 일 것이다.'라는 의심에서 멀어질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게 그녀에 대한 아무런 신뢰할만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었으며, 이제는 순수하게 사람을 믿기에는 나이를 먹어버렸다. 그러나 그녀를 처음 본 순간만큼은 마치 개츠비가 데이지를 처음 만나던 그 순간처럼 내 내면에서는 환희와 기쁨이 샘솟았다. 겉으로는 교양인의 자세를 유지하고 그녀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평정심을 유지한 채 가끔 대화를 나누었지만, 머릿속에서는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얼굴을 볼 때마다 폭죽이 터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곳은 어느 소모임에서였다. 어떤 곳이냐고 캐묻지는 말기 바란다. 나는 그녀의 신상을 지킬 신성한 의무가 있다. 여하튼 연습삼아 만들어 본 온라인 소모임에 어느 날 익명의 누군가가 들어왔다. 당시에 집 주변에 내가 원하는 소모임이 없어서 채널 만드는 연습을 할 겸 만들어놓고 잠시 잊고 있던 채널이었다. 이름도 나이도 그리고 성별도 모르는 누군가였지만, 낯가림도 없이 꽤 사교적이었고 한편으로는 수다스러웠다. 때마침 나 역시 할 일을 마치고 시간이 좀 있던지라 친절하게 답변해주고 약간의 고민을 들어주었다. 끝으로는 내가 근래에 다니고 있던 다른 소모임을 소개해줬다. 지역을 들어보니 그녀가 사는 지역에서 가까운 위치에 있는 모임이었던지라 적당할 듯했다. 그러자 그녀는 대뜸 내 전화번호를 물어봤고 나는 최근에 포교나 다른 불순한 목적으로 이러한 온라인 소모임에 접근하는 이들이 많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던 지라 따로 알려주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그녀가 처음으로 가게 된 때에는 내가 일이 있어서 갈 수 없었다. 모임이 끝나고 다음날 그녀는 내게 잘 다녀왔다고 메신저로 묻지도 않은 답변을 발랄하게 했고 어땠냐고 물으니 재밌었다고 했다. 두 번째 모임에는 그녀가 조금 늦는다고 했다. 커피숍에 평소보다 일찍 와서 먼저 와 있던 다른 한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막 취미활동을 개시하려는 순간 2시 방향의 문에서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면서 그 위에 달아둔 작은 종이 가볍게 울렸고 우리는 일시에 고개를 들어 막 들어온 흰 반팔 셔츠를 입은 그녀를 보았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다가 고개를 흔든 적이 몇 번 있지만, 그녀는 내 몇 안 되는 상상 가운데 가장 깨끗한 피부를 가졌고 가장 단발이 잘 어울렸다. 160이 조금 넘을듯한 키에 귀여운 외모를 하였으며 크고 동그란 눈을 가진 여성이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내 옆자리에 앉았고 편안하게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온라인상에서 대화한 것처럼 편안하게 그러나 수다스럽지는 않게, 그렇게 자연스럽게 자주 본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었다.
저녁의 맑은 밤하늘과 별과 달은 그렇게 한참을 그녀를 떠올리게 했다. 선선한 바람이 멀리서 불어오고 폭죽 소리가 잠시 젖어들었던 생각을 깨웠다. 그리고 그 바람 소리에 한숨을 실어 보냈다. 물질에 대한 소유욕이 없는 것이 그것에 대하여 무감각함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여우와 신포도처럼 가질 수 없기에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무던한 마음은 여자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마저도 무디게 만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할수록 내 욕망은 여우와 신포도와 같은 가지지 못하는 것들에 관한 자기 합리화가 아니라 가져본 일이 없었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욕망과도 같았다. 마치 담배를 피워보고 끊은 자는 끝없이 그 욕구가 있음에도 참아내어 결국 평정심을 유지하지만 한 번도 펴보지 못한 사람 혹은 한두 번 어설프게 피어봤다가 호되게 당한 사람은 욕구 자체를 느끼지 못한다. 그저 호기심만 있을 뿐이다. 삶의 수많은 크고 작은 소유에 관한 욕망이 그러했다. 가져본 일이 없으니 관심도 없었다. 심지어 그러한 욕망이 좋지도 않다고 말하던 도덕관념은 호기심마저 억제해 주었다. 그렇게 억제된 호기심과 자기 검열로 말미암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러한 반거충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학습이 된 반거충이는 이제 유사한 범주의 욕구를 자극하는 다른 일들마저 호기심과 상상력을 없애버렸다. 바로 그게 나였다. 실로 도덕관념이 호기심과 상상력을 없애버리는 데까지 온 것이다. 개발되지 않은 욕망의 감각들은 나이를 먹어가며 점점 더 무뎌지고 또한 삶의 다른 것들로 덮이고 있었다. 내면의 제국의 표피층에는 감각적인 것들보다 이성적인 건축물들이 올라와 있었고 그 밑에 잠들어 있는 감각의 제국에 속한 것들은 점점 거대해지는 이성의 건물 아래에 무겁게 눌려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이들은 오늘처럼 만월이 떠오른 밤이나 되어서야 간신히 좀비처럼, 뒤덮인 흙더미에서 팔을 뻗어 표층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그것도 무거운 이성의 건물이 세워진 곳이 아닌 무덤같이 음침하고 은밀하며 이성이라는 건물 따윈 거의 없고 죽음의 냄새만이 감도는 곳에서 감각의 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일부 욕망의 군대만이 달을 보려고 태양이 저문 틈을 타서 흙을 파헤치고 올라오는 것이다. 그마저도 이내 이성의 건축물에서 나온 윤리 위원회 소속의 부대에 진압당하고 말겠지만, 그럼에도 이 레지스탕스들은 지칠 줄 모르고 제국의 부활을 꿈꾼다.
이 죽어간 좀비를 보며, 이성의 군대에 제압당하고 표층 위로 난자한 피의 광기를 보며 현실의 나는 욕망을 참지 못하고 결국 나는 수음을 하고 만다. 남아있는 희미한 욕망은 이성의 건축물 앞에서 이들을 모조로 부숴버리고 싶은 욕망과 함께 찾아오지만 결국 수음이라는 좀비 같은 방식으로 타협점을 찾는다. 그 뒤로 내 두뇌는 이성을 배신했다는 죄에 따라 잠시동안 고독과 우울이라는 형벌을 내린다. 일상은 언제나 그런 일들의 반복이다.
그녀는 어릴 적에는 소년 체전에 나갈 정도로 전도유망한 육상선수였다. 그러나 무릎 연골과 인대 부상 이후 찾아온 슬럼프로 어쩔 수 없이 자신이 근 10년간 해왔던 꿈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녀가 10년을 열정을 바쳐 해온 일들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게 머릿속에 그려졌다.
달리 위로의 말이 떠오르지 않아, 좌절하였겠다고 말하자 그녀는 되려 속이 시원했다고 말했다. 무릎이 아파져 오는 기간이 점차 길어지자 그녀도 차츰 마음의 준비를 해왔던 것이었다. 그래, 고생했다며, 인생은 기니까 더 재밌는 것을 하면 되지 않겠느냐며 우리는 함께 웃으면서 말했다. 그녀는 실로 긍정적이며 밝은 눈으로 나를 보았다.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으니 현재는 제과 제빵을 배우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개인 사업과 그와 관련된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문득 "나를 죽이지 못한 시련은 날 강하게 할 뿐이다."라는 니체의 명언이 떠올랐다. 삶이 끝나기 전까지는 우리는 현재가 절망스러워도 계속 살아가야 하며 현재의 절망감 때문에 남아있는 미래마저 절망으로 만들 필요는 없었다. 차라리 그 시련조차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라고 생각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편이 나에게 이로울 터였다. 바로 그녀가 그런 존재처럼 느껴졌다. 시련은 있으나 결코 자신은 인생의 실패자가 아니라는 듯이 당찬 눈빛을 모두에게 보였다. 이러한 눈빛을 가진 사람을 오래전에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었다. 하도 오래전 이야기라 가물가물하지만, 대충 선천적으로 난쟁이가 된 한 여인이 자신의 역경을 딛고 삶에 최선을 다하는 내용이었다. 그때 마지막 화면에서 무언가를 뚜렷하게 응시하던 그녀의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갈망하는 듯한, 좌절할 시간 따위는 없다며 고개를 들어 화면 밖의 무언가를 응시하는 눈빛만큼은 시간이 지나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인상이 되었다. 그녀의 얼굴과 이야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눈빛과 압도하는 분위기만큼은 결코 잊을 수 없었다. 바로 그런 눈빛이었다. 내 옆에서 자신의 삶에 관하여 이야기하던 그녀의 눈빛이! 잊을 수조차 없는 티없이 맑은 보석이 눈에 박혀 빛을 내고 있었다.
그렇게 영원히 잊어버릴 수 없는 인상들을 마주할 때면, 마치 엄청난 예술을 보고 난 뒤에 기억 속에 깊숙이 각인이 되듯, 그렇게 되어 버린다. 그렇게 바로 한순간이 ‘영원’이 된다. 존재의 기억은 이처럼 파편화된 순간의 모음이다. 사고는 파편화된 순간 중에서 비슷한 것을 모아 범주화하고 범주화된 영역 속에서 현재 보는 것을 유추한다. 나이를 먹고 경험이 많아지면 매일 다른 하루를 살고 있음에도 비슷한 것들이 많아진다. 바로 그럴 때가 이렇게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