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에 올라 바다를 내려다보며.

연재 소설 (17)

by Chris

나는 방향을 잃어버렸다. 무엇을 써야 하는지 감도 못 잡고 허우적댔다. 따분한 세상에서 벗어나 저 무한한 바다에 용기를 내어 뛰어들었건만, 이 예술의 바다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가라앉고 있었다. 저 세상 바깥으로 뛰어들어, 하고 싶은 것을 하니 행복하다고 스스로 되뇌었지만, 사실 고독의 연속일 따름이었다. '이대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인생이 끝나버리면 어떻게 하나?'라는 두려움, 하얀 백지장처럼 머릿속에 하얘져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게 되는 상실감. 이러한 감정의 소용돌이는 내 삶 전체에도 영향을 미쳐갔다. 차라리 죽어버릴까? 더는 돌아갈 곳도 없었다. 내가 뛰어든 예술의 바다에서 나오기에는 이미 세상과 너무 멀어졌다. 돌아갈 수 없는 길이었고 아직도 그 바다 한가운데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차라리 죽어버릴까?' 마음은 또 하나의 생각을 낳았다. 이내 그 생각은 사라졌지만, 나는 그곳에서 살아남으려고 어디로든 헤엄쳐 나아가야만 했다.

나만의 길을 만들어내는 일은 내게는 허락되지 않는 일인가? 나는 무능한 것은 아닐까? 이 삶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너도 행복해지지 않았을까? 지금이라도 다시 방향을 돌려, 바다 밖으로 나오는 게 낫지 않을까? 내 안의 작은 악마가 계속 속삭였다. 그러나 나는 그 물음에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와 나는 바다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남들처럼 구명조끼를 몸에 끼우고 물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며 헤엄을 쳤다. 그러나 조금은 어두우며 조금은 신비로운 깊은 곳이 궁금해졌다. 구명조끼를 벗어두고 좀 더 깊은 곳으로 헤엄쳤다. 몸을 수직으로 돌려 아래로 헤엄쳐 들어가자 물의 강렬한 저항이 얼굴과 몸을 압박해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바다의 바닥을 만지고 싶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이 점점 가빠오고 심장이 요동쳤다. '할 수 있어.' 그러나 같은 극을 댄 자석처럼 바닥은 헤엄을 치며 다가오는 나를 계속 밀어냈다. 헤엄치기를 멈추고 손을 뻗자마자 바닥은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나를 수면으로 올려 보냈고 나 역시 죽을 것 같은 공포에 이르자 한시라도 빨리 위로 올라가야만 했다. 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었다.

바위로 올라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물 밖으로 나오니 몸이 으슬으슬했다. 입안에서 뜨거운 침과 섞인 바닷물이 아래로 뚝뚝 떨어졌다. 잠시 그 상태로 발아래의 바다를 바라보니 현기증이 일었다. 물속 공간에 있던 나에 대해 아득함마저 느꼈다.

사실, 지금의 나로서는 결코 바닥에 닿을 수 없었다. 바닥에 닿도록 충분히 숨을 참지도 못했으며, 저항을 줄이는 방법도 배우지 못했다. 더욱 이것이 되지 않는 까닭은 반복을 통한 충분한 훈련이 되지 않은 까닭이었다. 누군가는 이 모든 과정을 뒤섞은 꾸준한 연습을 통해 이루던 것을 한 번에 해낼 수는 없었다.

그렇게 바위에 앉아 있자 대현이 가까이 왔다. 손을 삽처럼 만들어 바닷물을 그에게 던졌다. 그러나 그를 향해 던진 물이 그 뒤의 여성의 머리와 얼굴에 맞았다. 난데없이 맞은 물에 여성은 잠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녀에게 죄송하다고 연방 고개를 숙였다. 얼굴을 들어 보니 점심에 마당에서 보았던 여자였다.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흘기는 그 여성의 모습이 제법 에로틱하다고 느껴져, 맑은 물을 퍼서 더 뿌려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자못 매끄러운 그녀의 얼굴에 순간적인 인상을 지으며 생기는 몇 가닥의 선들이 그녀의 밋밋한 얼굴을 매혹적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사과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아직 그녀가 만든 순간적이지만 선명한 몇 가닥의 인상만이 그 자리를 지키는 듯했다.

잠시 그녀와의 로맨스를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저 일그러진 얼굴을 다시 내게 보낼 때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그녀로서는 짜증스러움의 표시임에도 나는 사랑스러움으로 받아들일 것만 같았다. "당신이 미워 죽겠어!"라는 표정으로 날 바라볼 때 나도 같이 그런 표정을 지어야 할까? 그때가 되면 그 표정에서 에로틱한 상상을 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 표정이 계속 사랑스럽더라도 혼나는 것을 무서워하는 강아지처럼 고개를 처박고 눈을 들어 그 인상이 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또 어느 시기가 지나고 나면 혼나더라도 그 인상을 보고 싶은 욕망이 어쩌면 같은 실수를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도록 자신을 이끌지도 모른다. 마치 상처가 아물려고 하는 곳을 뜯고 싶은 욕망처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세 번 찾아온 이 장소에서 우연히 그녀를 두 번을 보았다. 미지의 바다라고 하기에는 이미 조금은 익숙해진 장소지만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곳이었다. 나로서는 두 번째 본 그녀가 반가웠으나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고작 해야 수영할 때에도 아까 본 파란 반바지에 래시가드를 입고 있었다는 사실과 인상을 쓰고도 두렵지 않고 도리어 예쁘다는 사실 뿐이었다. '한 번의 우연함이 더해진다면,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말을 걸어볼까?' 자신 없는 악마 하나가 내 안의 다른 악마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잠시 생각하는 동안, 대현은 내게로 와서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벗었다. 바다가 조금 익숙해진 그는 그전까지 해보지 않은 시도, 구명조끼를 벗고 좀 더 깊은 바다 세계를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다. 다만, 아직은 자신이 없는지 벗은 조끼에 달린 노란 끈을 손에 묶었다. 일종의 안전장치인데, 그는 그렇게 작은 도전을 하고 있었다. 우리의 삶이 탄생(B)과 죽음(D) 사이의 선택(C)이라고 하던데, 그는 지금 순간의 삶에 좀 더 행복을 더할 작은 선택을 하고 있었다.

'나는 혹시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그저 상상만 하다가 끝나는 삶을 살고 있나?' 그를 보다가 문득, 오래전부터 해오던 우울한 생각이 떠올랐다.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일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변명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너는 안돼." 대현은 내가 "곧 할 거야!"라고 말하면 언제나 웃으며 단정을 짓듯 말했다. 이 대화는 마치 둘 사이에 게임처럼 되고야 말았다. 그 말이 나를 자극하여 사랑에 도전하기를 바라는 그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쩌면 그것이 마치 자기 예언적 실현처럼 그렇게 되어서 늙어버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면, 나는 이내 우울해지고 말았다. 기한을 정하지 않은 이러한 점쟁이식 예언은 어느 시간을 관측하느냐에 따라 성공하거나 실패를 하게 마련인데, 현재를 사는 나는 지금 그의 예언이 실현되고 있음을 민감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는 이내 '나는 안되나 보다.'라고 과거보다 더 심하게 자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상태로 가다간 미래에는 더 우울감을 느끼며 포기를 할 게 분명했다.

사실, 모든 불행한 예언은 실패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예언이 선언되었을 때부터 사람들은 실패를 벗어나려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리고 그러한 것이 예언의 실패를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 예언은 어느 시점에 성립할 수도 있는 잠재적 위험으로 간주한다. 예언의 실현을 막으려면 감각을 유지하고 그 전조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말만 앞서고 있었다. 때로는 자신 없는 자신, 능력도 없어 보이는 자신의 나약한 심리를 이겨내기 위하여 자기기만에 가까운 자신감이 필요하지만, 나로서는 내면의 악마들이 기만의 문턱을 넘도록 허용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치 마을의 거대한 건물이 세워지면 그곳이 이정표가 되듯, 내 마음의 빈 곳에 생긴 그녀라는 이정표는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를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바위처럼 무거운 한 걸음을 내딛기가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적어도 이정표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매일 한 발이라도 디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그냥 쓰기로 했다. 길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더라도. 나는 예전처럼 피하지 않겠다. 그녀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모든 게 그녀로 말미암아 깨달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보면, 가질 수 없다는 예언의 실현에 슬픔을 느끼다가도 예언의 실패를 위해 발버둥을 치도록 했기에 너무나 고마웠다.

그것은 현실을 낭만적으로 바라보던 나에게 진짜 현실을 가르쳐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지금껏 살아온 삶에 대한 저항이었다. 계속 이렇게 따분하게 살기를 바라는 어떤 이들에게 던지는 저항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타인의 정원에서 벗어나 나만의 정원을 일구고 값진 수확을 얻어 언젠가 내게 올 그녀를 기쁘게 하고 싶었다. 나는 한참 동안 구명조끼를 벗은 대현을 바라보다가 다시 바다에 뛰어들었고 잘 보이지 않는 바닥을 헤엄쳐 내려갔다. 아득하게 느껴졌던 세상이 다시 눈에 들어왔고 두 번째 들어간 그 공간에서 익숙한 저항이 느껴졌다. 물은 수면의 경계 바깥으로 다시 나를 밀어내려고 했다. '나는 저 바닥에 기필코 닿으리라.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저 바닥에 닿으리라.' 나는 그녀를 진실로 사랑한다. 그녀가 저 바닥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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