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불꾸불하게 나 있는 계단과 경사를 따라 내려오자 결국 바다에 닿았다. 바닷가 앞으로는 작은 도로가 나 있었다. 그 도로를 따라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우리에겐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약간의 수다가 필요했다. 주문을 하고 커피숍에 앉아 창밖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서진은 아무렇지 않게 우리와 대화를 나눴다. 믿진 않지만, 바라던 대로 친구로 남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운명이나 인연 따위는 믿지 않았다. 그 사람과 운명적으로 다시 조우하게 되거나 드라마처럼 어떤 인연들이 계속 얽혀들어 결국 해피엔딩을 맞이할 것이라고 여기지도 않았다. 결국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에서 인연이 탄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늘 그랬듯,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될 것이다.
나는 조르바가 되고 싶었다.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는데, 지금까지도 굴레가 계속 이어져 왔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습관이었다. 늘 그렇게 해오던 일이었기에 이번에도 그렇게 돌아갈 것이라고 나도 모르게 여기던 패배주의의 습관이었다. 한 번도 그것에 관해 깊게 생각하고 의식적으로 바꿔보려고 하지 않았던 데에서 발생한 어리석은 습관이었다. 운명과 인연을 믿지 않는다고 말해놓고선 정작 나 자신은 운명이 되어버린 그 습관을 떨쳐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먹고 마시고 사랑하는 일, 하고 싶은 대로 산다고 믿어온 나 자신이, 결국 또 하나의 굴레를 만들어 살고 있었고 오히려 침울한 아웃사이더가 되어 있었다.
무엇이 그리 두려운가? 너는 무엇이 그리 두려워, 이렇게 살고 있었는가? 안정적인 삶이 아니라 모험적인 삶을 동경해서 이렇게 살고 있다면,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는가?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녀는 결국 네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똑같은 사랑을 받을 거야. 너는 특별하지도 멋지지도 않아. 그저 그런 놈일 뿐이지.' 내 안에서 끊임없이 반복하는 악마의 속삭임에 나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했다. 나는 내 안의 악마들 앞에서 조르바처럼 당당해지고 싶었다. 돈이 없어서, 생긴 게 이래서, 나이가 많아서, 준비된 게 없어서…. 다 같잖은 변명일 뿐이다. 나는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가을로 저물어 가는 황금빛 석양 속에서 몇 번이고 다짐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돌아가 그녀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까? 분명히 그녀에게 내 마음을 드러내면 불행해지리라. 그러나 이 가면극은 언젠가 끝이 나게 마련이며, 해피엔딩으로 끝날 가능성이 별로 없더라도 나는 이 형편없는 이야기의 결말을 지어야 했다. 어떻게 지어야 할까?
시나리오 1. 과거처럼 아무렇지 않게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시리얼로 식사를 한다. 간혹 그녀에게 연락을 하며 지낸다.
이렇게 집을 나서는 전과 비교하여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을 수도 있다. 내 삶은 변한 게 없으며 아무런 위기나 위험도 없이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결말이다. 아마 그 다음은 이렇게 되어 있을 것이다. ‘어느 날 문득 SNS에서 버스 안에서 그녀를 찾으니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사진을 슬픈 듯 바라보다가 버스 창가로 고개를 돌리게 될 것이다.’
시나리오 2. 그녀에게 내 마음을 전한다. 그녀가 안쓰러운 얼굴로 마음은 고맙다고 그러나 자신은 나에게 마음이 없다고 말한다. 나는 그 말에 슬픈 얼굴로 알았다고 한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다시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얼마 동안 가슴이 저렸으나 전처럼 잘 이겨내고 삶을 살아간다. 아마 그 다음은 이렇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고백을 거절당하고서 한동안 작품 활동에 전념한다. 그녀를 생각하고 그리워하지만, 절대로 연락하지 않는다. 간신히 노력하여 성공하고서 한 여자를 만난다. 그녀를 점차 잊고 삶을 살아간다. 그녀와의 이야기는 끝이 나겠지만, 삶은 계속되니까 다른 이야기가 아마도 이어질 것이다.
시나리오 3. 그녀가 기쁜 마음으로 내 마음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가 문제다.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영화 <졸업>의 마지막 장면처럼 그녀가 나를 받아들인 것을 기뻐하지만, 그 이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녀를 보며 고민에 빠진다.
만약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그 조르바라면 어찌했을까? 나의 모든 결말에 담긴 패배주의 습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결말은 무엇일까? 실패 후에 그저 털털하게 웃음 지으며 춤을 추는 것일까? 마음의 걷잡을 수 없는 응어리를 걷어내고 웃으면서 다시 누군가에게 적극적으로 고백할까? 조르바 같은 이들의 성격이 문득 부러워졌다.
내가 만들어낸 수많은 꿈과 희망, 그리고 두려움의 감정의 끝을 낼 필요가 있을까? “대장! 모든 위선을 걷어내고 진실의 길로 이르러야 해요. 내 피 안에 흐르는 어정쩡함과 위선을 걷어내려면 패배를 하더라도 확실히 패배해야 한다고요. 그래야 다른 시합을 시작할 수 있어요.” 조르바라면 그렇게 따끔하게 말했을 것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7번 국도를 타고 올라온 이 여행도 이제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일상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었다. 이 여행 또한 내 삶의 한 부분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그녀를 떨쳐버리지도 지워버리지도 못했다. 어떻게 하겠다는 확신이 든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마주하지 않는다면 어디에나 그녀는 환영처럼 나를 따라다닐 것이고 나는 그저 그 사람 주변에서 머뭇거리다가 끝나리라는 확신에 이르렀을 뿐이다.
그 사람이 날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관계는 어떻게든 단절된다. 다만, 그 일이 지금 바로 일어나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이었다. 그냥 지금처럼 대해도 그 사람이 나라는 사람과의 인연의 끈이 옅어지면 어느 날 단절을 경험하게 될 것이었다. 이런 생각에 이르자, 그 사람과의 사소한 추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온몸이 두근거렸다.
그녀의 존재로 하여금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행복이었다. 고독한 삶에 그녀가 들어와 내게 남기고 간 것은 행복이었으며 그런 그녀가 잠깐 머물다 간다고 생각하면 불행해졌다. 이 생각에 이르자 그녀가 원망스러워졌다. 웅크리고 앉아 음울하게 있는 내게 빛을 비춰 나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 깨닫게 하고 헛된 희망을 주었으니까.
그놈의 희망이 문제였다. 그녀의 존재 때문에 모든 희망이 삽시간에 되살아났다. 나는 잘할 수 있다. 나는 이룰 수 있다. 나도 성공할 수 있다. 나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다. 난…. 난…….
그러는 동시에 머릿 속에서는 끊임없이 또 다른 나 자신과 대결을 벌이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 나는 결코 누군가에게 따스한 사랑을 받을 수 없으리라는 생각, 나는 그 무엇도 이루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되살아나서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고독 속에서 홀로 있을 때에는 알지 못하던, 너무나 진부하여 깨닫지도 못하던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내 안으로 들어와 온통 흔들고 창문을 열어대는 통에, 바닥에 있던 더러운 먼지가 부유하듯 그렇게 부유해버린 것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문득 데미안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이전처럼 살 수 없었다. 창밖의 바다를 보면서 계속 생각했다. 주마등처럼 스쳐오는 나의 이전 삶들이 결코 무가치한 것은 아니었지만, 벗어날 수 없던 것들을 하나둘씩 떨쳐버리고 나는 새롭게 일어설 필요가 있었다. 더는 어느 날 아침, 늦은 잠에서 깨었을 때 느끼는 끝을 알 수 없는 절망감을 계속 지니고 살 수는 없었다. 나는 알에서 나오려고 발버둥을 쳐야 했다. 지금껏 겸손한 척, 사랑이 필요 없던 척했던 나를 버리고, 나도 사랑이 필요한 존재임을 알려야 했다. 투쟁 끝에 알 밖으로 느껴지는 신선한 바람을 맞아야만 나는 고개를 들어 벽 바깥에 계속 존재했던 사랑의 눈길을 깨닫게 될 것이었다. "쏴아……." 귀에 익은 파도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파도는 전보다 더 높았고 바다의 색은 푸르지 않고 더 검었으며 멀리서 먹구름이 밀려 오는 것이 보였다. 우리를 비추던 석양마저도 다시 저물어 가고 있었다. 늘 그러했듯이.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