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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Feb 13. 2020

흰 매트 위에서의 몇 가지 깨달음.

나의 주짓수 도전기 5.

이 이야기는 이제 막 주짓수에 등록하고 운동을 시작한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 기록을 시작한 까닭은 첫째, 내가 배운 지식과 기술에 대해 잊지 않기 위함이며 훗날 어느 정도 성장을 했을 때 나 자신을 뒤돌아 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둘째, 나와 같은 초심자들이 알아야 할 기본적인 지식을 찾는 수고로움을 덜어주기 위해서이다. 마지막은 그 과정 중에 만나고 알게 된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함이기도 하다.  

주짓수와 같이 시작한 이 이야기는 시작은 있지만, 언제 끝날지는 나 자신도 알지 못한다. 어떤 사정에 의해 도중에 수련을 그만둘 수도 있고 혹은 바쁜 나날이 이어져서 기록을 중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쓸 수 있을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 써보고자 한다. 이야기는 경험, 그 당시의 생각이나 느낌과 지금 시점에서의 생각, 그리고 그 당시에 배운 기술이나 알게 된 용어의 정리 등이 중심이 될 것이다. 참고로 주짓수에 관한 여러 기술과 관련된 용어는 간단히 정리하되 추가적인 정보가 필요한 이들이나 관심 있는 이들을 위해 될 수 있으면 출처를 기재할 것이니, 관심 있는 사람은 확인하기 바란다.

알다시피, 이야기의 힘은 세다. 이야기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사회를 바꾸기까지 한다. 내 글이 사회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 내 삶의 일부가 되어버릴지 모를 이 주짓수를 보면서 누군가 그 어떤 영감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 없겠다.


※ 참고로 글은 완성본이 아니므로, 틈틈이 수정될 수 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저녁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주문한 래시가드 두벌이 와 있었다. 그와 함께 주문한 도복도 한 벌이 도착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매일 운동을 한다면 아무래도 한 벌로는 어려울 것 같았다. 상담할 때 들어보니, 도장에서는 흰색의 팀 도복만 허용한다고 하고 기존에 운동하셨던 분은 다른 도장에서 입었던 흰 도복까지는 허용해 준다고 했다. 그렇다면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이미 가지고 있던 것이라고 말하고 대충 입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혹은 ‘주짓수를 하던 동생이 보내준 거라고 하고 입으면 무방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흰 도복이라는 규정을 제외하고 비교적 느슨한 원칙이라고 여긴 게 실수였다.

다음날이 되고 도복을 가져가 입어보니 딱 맞았다. 그렇게 운동을 시작하려는데, 관장님이 부르더니 미안한 얼굴로 말을 꺼냈다.

“미안해요. 우리는 팀 도복 중심이라 외부에서 구매한 도복은 허용하지 않아요. 부득이하게 다른 도장에서 수련하다 온 관생의 경우에는 흰 도복만 인정하고요.”

모든 단체에는 그에 맞는 규정이 있는 법이니, 그것에 대해 항변하거나 까칠하게 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도장이 도복 판매에 관하여 상업적 목적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대단히 미안해했고 나 역시 이미 숙지하고 있던 규정을 어긴 셈이니 별로 할 말이 없었다. 더구나 할인도 받았고 도복과 띠, 마우스피스도 무료로 받았기 때문에, 달리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생각을 해보면 상대를 이해한다고 말하고 의사소통을 시도해봤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도장에서 적극적으로 대화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 운동은 어떻게 하지요? 이것만 가져와서 입을 옷이 없는데….”

그저 이렇게 말했더니, 그는 관내에 비치되어 있던 연습용 도복을 다시 건넸다. 품이 좀 커 보이는 옷을 입고서 다시 준비운동을 했다.


민첩성 훈련



오늘은 사다리 같은 긴 줄을 비치하고 발을 이리저리 굴리는 스텝 연습을 했다. 이러한 준비 운동을 하면서 문득 이런 운동이 주짓수에 어떤 효과를 기여하는지 설명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이런 운동을 ‘step ladder, 사다리 운동, 스텝 운동, 순발력 운동’이라고 했다. 이 운동은 ‘speed ladder, agility ladder’라고도 부르는데, 말 그대로 민첩성을 강화해주기 위한 운동이었다.

일반적으로 이 운동은 계단을 건너뛰거나, 옆으로 움직이거나, 사다리 위아래로 움직이는 다양한 운동을 통해 심혈관을 강화해주거나 균형감각이나 집중력을 향상해주고 또한 근육이나 관절, 힘줄을 강화해주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출처 : https://www.runnersblueprint.com/agility-ladder-drills/>

이 운동은 모든 스포츠에서 기본이기 때문에 거의 모든 운동에서 활용하는 프로그램이었고 주짓수도 예외가 아니었다. 운동은 위에서 앞서 언급한 대로 계단을 하나씩 건너뛰기, 두 개나 세 개씩 건너뛰고 뒤로 한 칸 뒤로 가기, 옆에서 앞을 바라보며 발 교차해서 뛰면서 앞으로 전진, 측면으로 서서 발 교차하며 앞으로 전진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응용 가능했다. 대충 할 생각이 없었기에 최대한 빠른 속도로 스텝을 밟았더니 땀이 나기 시작했다. 워낙 범용적인 운동이라 잘 배워두면, 앞으로 다시 아침 운동 프로그램이나 다이어트 코치를 할 때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제품의 가격이 궁금하여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가격도 저렴한 편이었다.


구체적인 운동 방법과 영상은 인터넷에서 'agility ladder drills, 사다리 운동' 을 검색하거나 다음을 참고하기 바란다.

https://www.runnersblueprint.com/agility-ladder-drills/


스텝 운동이 끝나자 가볍게 물을 마시고 드릴(기술 연습)로 들어갔다. 어제 배웠던 다리 한쪽이 교차한 상태에서 상대가 방어하고 있을 때, 스매시에서 사이드 가드를 잡거나 상대가 다가오지 못하게 방어하면 대처하는 응용 동작을 보여주었다. 관장님은 위에서 상대가 파고들지 못하고 깃을 잡아 밀어낼 때, 목을 잡은 손 아래로 돌려서 회피하고 바로 공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물 흐르듯 보여줬다. 왜 인지는 모르나, 검은색과 흰색이 서로 맞물려 부드럽게 움직이는 태극의 모습이 떠올랐다. 군더더기 없이 간단하며 부드러운 동작 속에서 상대의 공격을 회피하고 제압한다는 느낌 때문이었나 보다. 어제, 오늘의 주짓수를 보면서 공간을 확보하고 상대에게는 공간을 주지 못하도록 압박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는 마치 바둑과도 같았다.


‘자신의 공간을 확보하고 타인이 공간을 만들지 못하게 압박한다.’


그리고 그 공간을 최대한 압박하지만, 딱딱한 힘이라기보다 체중과 무게 중심을 최대한 활용하고 부드럽게 압박하는 느낌이 좋았다. 모든 운동이 그렇겠지만, 동작의 효율성이 돋보이는 듯했다. 물론 실전에서는 바로 이렇게 할 수야 없기에, 기술에 준하는 체력과 힘 역시 중요할 듯하나, 기술만을 보고 있노라면 그 메커니즘이 꽤 운동 역학적이며 재밌었다. 무게 중심, 관절의 방향과 위치, 효율성, 공간의 활용… 서로 가깝게 부둥켜 있는 상태에서도 상대보다 조금이라도 유리한 조건을 만들려면 어떤 모습을 해야 하는지 고군분투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얼마 전에 읽었던 책이 떠올랐다. 『해빗(Habit)-웬디 우드』이라는 책이었다.



상황을 통제하라.


이 책의 요지는 습관을 기르려면 의지보다는 상황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의지력을 보이려고 하는 경우 그것은 에너지와 같아서 이내 고갈되지만, 상황으로 이어지면 생각을 하면서 생기는 에너지 소모를 고려할 필요 없이 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려면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만들거나 생각을 하도록 하는 저항을 줄이도록 상황을 설정 및 통제를 해야 하는데, 저 주짓수에서도 내게 유리한 상황으로 이끌려면 공간을 만들고 압박을 기본으로 전제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억지로 힘을 짜내어 하기보다 무게중심과 체중의 방향을 이동함으로 체중으로 압박하는 상황(포지션)이 되어야 하는데, 이는 마치 『해빗』의 저자가 말한 의지력과 상황과의 관계와도 유사한듯했다. 지금으로선 어렴풋하고 모호한 언어로 말할 수밖에 없지만, 대략 정리하면 이러했다. 상황을 유리하게 만드는 것이 맞물려 승리로 이어진다는 것, 어떤 일을 목표까지 완수하기 위해 그럼에도 의지력도 필요하듯, 강한 힘과 체력 역시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부드러운(저항이 적은) 상황 통제라는 것이었다. 요는 체력을 소진하지 않는 효율은 내가 의식적으로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거의 무의식적으로 행해지게 될 무게 중심의 이동과 체중 압박, 공간 확보에 있달까? 그렇다면, 지금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본적인 것들을 충분히 숙달시키는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내 의지로써 힘을 써야 할 때, 상대보다 체력이 고갈되지 않도록 체력을 계속 길러 놓는 것도 필요했다.

기술 연습이 끝나고 롤링(대련) 시간이 되자, 기술 연습을 하던 많은 사람이 대련을 시작했다. 한 달 동안 대련을 못할 것을 생각하자, 조금은 아쉬움이 일었지만 지금으로서는 주어진 상황에 전력을 기울이는 게 필요했다. 주변을 보니 어제, 함께 연습했던 중학생 친구가 누나와 말장난을 하고 있을 것이 보였다. 꽤 오랫동안 다녀서 실력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분들보다 나와 비슷한 초심자 중에 어린 사람과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 까닭은 내가 가르쳐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내 실력에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적어도 내가 방금 배운 일부분에 대한 복습을 위해서라도 그 방식이 좋겠다 싶었다. 그 중학생의 이름은 물어보지 못했지만, 우리는 남들이 롤링하거나 쉬고 있을 때에도 계속 연습했다.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었다.

‘학습, 반복, 숙달, 학습, 반복, 숙달…. 내 시간을 그냥 흘려버리지 않으리라. 더는 누구를 신경 쓰지 않으리라.’

그 생각을 하면서 문득 그 사람이 떠올랐는데, 아무래도 그 사람을 신경 쓰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그냥 주어진 시간에 내 존재를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무언가 자존감이 올라가는 듯했다.


나는 자유롭다!


인터넷에 보니 타인에 의해 자존감이 떨어진다는 것은 원래부터 자신의 자존감 상태가 그 정도였기 때문이라고 말을 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은 타인에 의해 떨어지는 것은 자신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다. 자존감은 자신에 대한 평가이며, 그 평가는 아무래도 주변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내 주변의 다른 존재와 비교하게 될 때, 그 어느 때보다 자존감은 흔들린다. 정신적으로 성숙하거나 강한 신념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존재하더라도 자존감이 흔들리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는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 밝히는 촛불이며 그 불꽃으로 어둠을 이겨내지만, 사소한 것 하나에도 흔들린다. 다른 존재가 약한 영향력을 가졌으면 약간 흔들리더라도 다시 중심으로 돌아갈 수도 있으나, 그렇지 않으면 자신은 바람 앞의 등불이 될 수도 있다. 만약 자신을 계속 위태롭게 하는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와 멀어지거나 존재의 영향을 가리고 자신을 스스로 바로 세울 수 있는 장치를 설치해야 한다. 내 자존감은 특히 심적으로 강하게 영향을 미치던 이들로부터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나는 방어할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영향을 받았고 이윽고 심하게 요동치고 나서야 그 심각성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 사람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왔던 것이 아니다. 그저 나의 기대와 희망이 꺾여갈 때마다 스스로 깎아내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 내가 무슨….’ ‘나란 놈이 그렇지 뭐.’ ‘나는 어쩔 수 없어.’ ‘내가 좀 더 잘났더라면, 그렇지 않았겠지.’ ‘나는 왜 이렇게 생겼을까?’ 때로는 자신도 잘 알지 못한 사이에 만들던 이러한 악마의 속삭임은 내 영혼의 촛불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아니, 잊어버렸던 생각이 다시 바닥을 뚫고 솟구쳐 오는 느낌이 들었다.

『자존감 수업 - 윤홍균』이라는 책에서는 자존감에는 세 가지 기본 축이 있어서 사람들마다 자존감의 의미를 달리 해석하고 있다. 자기 효능감, 자기 조절감, 자기 안정감이었다. '자기 효능감'은 자신이 얼마나 쓸모 있는 사람인지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자기 조절감'은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본능을 의미한다. '자기 안정감'은 자존감의 바탕이 되는 것으로 가진 것이 없어도 안전하고 편안함을 느끼는 정도이다. <출처: 자존감 수업 - 윤홍균> 이를 토대로 평가하자면, 나는 점점 쓸모 있는 사람이 아니라 여겼고 내 뜻이나 의사대로 할 수 없었으며 나의 상황이 생각보다 편안하거나 안전한 상황이 아님을 깨달으면서 자존감이 낮아진 것이었다.


내 삶에서 이제는 누구도 의식하지 않을 거야. 내 시간에 최선을 다할 거야. 누구에게도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살 거야. 나는 자유로우니까.

뭔가 머릿속에서 어떤 울림처럼 목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려왔다. 무언가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다른 잡념에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하나에 집중할 때 느끼는 그 마음이었다. 흐르는 땀 사이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듯했다.


어제 배운 운동

- 엑스가드와 가드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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