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환란에도 이겨낼 나의 배를 충실히 만들고 있는가?

나의 일상 여행기. (21)

by Chris

※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영호가 결혼하는 날이었다. 대전까지 내려갈지 말지 아침까지 고민하다가 결국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돈 한 푼이 아쉬운 시점인지라 나도 모르게 돈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돈에 쫓기지 말자고 했지만, 그것이 돈을 외면하라는 말은 아니구나 싶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났다.

나는 지나치게 돈을 외면한 것일까?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믿어왔지만, 돈이 필요할 때면 그게 행복의 방해조건은 되지 말아야 할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의도 샛강 부근에서 정모의 차를 얻어타기로 했다. 그냥 타기가 미안하기도 하고 점심 먹기는 모호한 시간에 출발할 것 같아 가격파괴 분식점에 가서 김밥 세 줄을 샀다.

식당에 가기 전에 여분으로 사 놓았던 선크림과 함께 약국에 들러 박카스 2병을 가져갔다. 이모가 늘 나보다 더 많은 것들을 주니 이런 건 전혀 아깝지 않았다. 내가 돈이 조금 더 있다면 더 좋은 것을 사줬을 텐데, 이런 것밖에 줄 수 없어서 미안할 따름이었다. 이모는 치즈, 참치, 일반 김밥을 하나씩 싸줬다.

버스와 지하철 위에서 천천히 일기를 썼다. 남는 시간, 애매한 시간에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가? 스스로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직업을 만들고 그 일로 하여금 자신의 시간을 흘려보내도록 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생이라는 것은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의 긴 여정의 시간을 소모하는 것이다. 이 시간은 흐르는 강물이며 생명은 그 위에 또 있는 작은 배와도 같아서 그냥 두어도 결국 그 끝을 향하게 되어 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뛰어들든, 육지에 다다라 내리기 전까지는 그저 배 위에서 내 의지를 갖추고 발버둥치든가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것을 따르든가 혹은 그냥 멍하니 있든가 할 뿐이다. 발버둥치면 남들과는 다른 형태의 배로 성장하고 누군가의 것을 따르면 누군가와 다를 바 없는 배로 성장할 것이며 가만히 있으면 그저 그 형태로 있게 될 것이다. 이 배에 내리는 행위를 죽음이라 부르며 배에 내리기 전까지는 우리는 이 거대한 강물을 어떻게 할 수 없다. 이 강에서, 이 깊고 거대한 강 위에서 거친 풍랑을 만나기도 할 것이다. 작은 배는 쉽게 뒤집히거나 부서지고 충분히 큰 배는 눈보라를 뚫고 목적지로 갈 것이다.

지금의 이 기록이라는 행위가 나라는 배를 어떤 형태로 만들 것인가? 기왕에 배를 탔다면 좀 더 멋진 배를 만들고 싶다. 빈 시간에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을 나만을 배를 만드는 좀 더 효율적인 방법이다.

예정 시간보다 일찍 와서 기다리는 동안에도 계속 일기를 썼다. 글을 쓰는 게 이토록 즐거웠던 적이 언제였을까? 예전처럼 몸이 붕 떠오르는 기분까지는 아니지만, 그것 못지않게 즐겁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도착했다. 차 안에서 이모가 싸준 김밥과 우유를 뜯었다. 김밥은 이모의 애정이 느껴질 정도로 충분히 컸다. 또한, 치즈, 참치, 일반 김밥인 줄 알았는데, 그 하나가 소고기였다. 이 또한 이모가 생각해서 넣어주신 것이었다. 내가 가진 게 없으니 도리어 소중한 사람만 남는 듯하다.

4시쯤 식장에 도착하니 이미 재정이와 근형이가 도착해 있었다. 둘 다 일찍 결혼해서 처, 자식을 함께 데려왔다. 영호에게 인사를 하고 결혼식을 보았다. 오래전에 녀석이 내게 나 결혼하거든 축가를 불러달라고 했었는데, 말이 없기에 내심 서운했던 기억이 났다. 그러나 결혼식을 보니 그 까닭을 알 것 같았다. 자기가 부르려고 했던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노래를 잘하든 못하든 간에 신랑이 부르는 게 가장 좋긴 하다.

함께 결혼식을 보고 뷔페 장소로 가서 식사했다. 지방에서 결혼식을 함에도 제법 많은 친구가 왔다. 상길이, 정모, 나, 윤상이, 재정, 근형이. 생각해보면 상길이를 빼고는 모두 군시절 같은 보직에 있던 식구들이었다. 그만큼 영호가 잘했던 거겠지. 군 생활 한 지도 10년도 더 되었는데 이렇게 꾸준히 연락하고 경조사에 참석하는 것을 보면, 참 우리가 그때 돈독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섬으로 발령받아 비교적 적은 인원이 한 공간에 부대끼다 보니까 돈독해진 것 같다. 제대하고도 날 잊지 않고 기억해주고 불러줘서 고마웠다.

군 생활을 생각하면, 난 정말 행운아였구나 싶다. 매일 레이더를 보면서 그 자체도 재밌는 편이었지만, 함께 했던 친구들이 다들 성실하고 함께 파이팅을 하는 게 있었다. 영호는 그 시절 나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전방의 섬으로 발령받은 부사관이었음. 부사관임에도 나이가 한 살 차이라 시간이 흐르고 친구가 되었다. 휴가 때 만나 함께 여행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었다. 아마 이 친구 덕택에 우리가 모두 다 돈독해진 점도 있을 것이다. 상황실을 좋은 분위기로 만들고자 노력했던 게 기억난다.

이처럼 나는 늘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다 갚지도 못할 사랑과 위로를 받아왔다. 그래서 미안하다. 내가 좀 더 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때로는 어쩌면 내가 말로만 이렇게 말하고 어쩌면 이들을 이용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괴롭기까지 하다. 그래서 내가 돈이 있어야 하는 까닭은 나를 위함이 아니라 이들을 위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가족이 힘들 때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내 간을 내어줘도 아깝지 않을 친구 대용이가 힘들어할 때 그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하다못해 이 친구들에게 보답하는 데 필요한 게 무엇인가?’를 물으면, 어쩌면 진짜 필요하고 위기의 상황에 저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은 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식사하고 나서 애들을 보내고 대전에 온 김에 상현이 형을 만났다. 사실 이 형을 만날 생각에 대전에 온 까닭도 있었다. 원래는 형과 함께 다음날까지 함께 있고 싶었으나 일요일 아침에 갑자기 시험 감독을 해야 했기 때문에 만날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을 놓치면, 얼마 전에 통화하면서 4월에 보자 했던 약속을 또 저버릴 것 같아, 급하게 아침에 연락한 것이다.

그를 만나 대전의 뿌리 공원을 산책했다. 이 사람은 만나면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주려는 형이었다. 내가 살라치면 손사래를 치며 꼭 자신이 사는 형이었다.

이따금 자조 섞인 한탄을 해서 슬플 때가 있어 좀 더 힘을 내라고 뭐라 하지만, 그것은 그 형을 통해 나의 그림자를 이따금 보기 때문이었다. 그 형을 뭐라 하는 것은 언제나 나 자신에게 뭐라 하는 것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9시가 다 되어 대전 터미널로 가서 10시 차를 예약했다. 1시간가량의 시간이 남아 잠시 커피숍에 가서 어머니가 들어 놓은 종신 보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낀 것은 내가 이러한 것에 손을 아예 놓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단지 내 일이 아니라고 거리를 두고 무엇이 나은지 생각해 보려 하지 않았다. 특히 부모의 일이나 계약 관련 일은 부모의 사정이지 내 사정은 아니라고 여겼었다. 그러나 부모님들 역시 나와 사정이 비슷하여 자신이 현재 어떤 상태이며 어떤 계약과 혜택이 있는지조차 알고 있지 않았다. 그저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하는 게 전부였던 것이다. 그렇게 가만히 놔두다 보니 그것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우리의 삶을 더 있었던 것이었다. 이번 아버지 환불 사태를 경험하고 어머니의 보험을 보면서 이제 나이가 있으신 부모의 일들을 그저 내버려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아야만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알고 있어야만 미래의 위험을 피할 수 있다.

형은 그 밖에도 건강보험, 국민연금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정보를 알려주었다. 물론 줄기차게 홍보하던 것이긴 하나 평소에 관심이 없어서 지나치던 것들인데, 형한테서 들으니 더는 그냥 지나쳐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은 어머니의 보험도 연락해봐서 이것을 계속 내는 게 이득인지 손해인지를 계산해보라고 했다.

‘남들 일에는 오지랖까지 부려 감 놔라 배 봐라 온갖 똑똑한 척하더니 정작 자신과 제 부모에게는 헛똑똑이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을 살면서도 미래에 반드시 닥칠 환란을 대비해야 했는데 그런 걸 전혀 안 했던 것이다. 형은 너도 돈을 벌면서 해야 할 때라며 넌지시 충고를 했다. 그 말을 귀담아들으며 ‘나는 어떤 환란에도 이겨낼 나만의 배를 충실히 만들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의 척도는 결코 돈이 될 수 없다. 지금도 그 생각은 마찬가지다. 그러면 돈은 무엇인가? 불행의 씨앗은 될 수 있다. 너무 많아도 불행의 씨앗이며 없어도 불행의 씨앗이다. 그리고 가장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씨앗이다. 그 까닭은 수치로 손쉽게 많고 적음의 '비교'가 타인과 그리고 자기 자신과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돈은 단순히 교환수단이 아니다. 한 인간의 자랑 하고픈 구매력이고 권력의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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