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다짐 / 비도덕적 인간이 되는 까닭.
나의 일상 여행기. (22)
※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시험 감독 때문에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였다. 전날 늦게 잔지라, 아침에 제시간에 못 일어날까 봐 계속 신경을 써서인지 새벽에 잠깐 깨었다. 창밖으로 빗소리가 제법 크게 났다. 비몽사몽 간에 잠시 귀로 빗소리를 듣고 휴대폰의 시계를 본 뒤에 다시 1시간가량 잠을 청했다.
아침에 해야만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사람을 피곤하게도 하는 것이지만, 실로 좋은 것이다. 하루의 기준점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한 일들이 하나의 점을 만들고 다음 점을 연결할 다리를 지을 구실을 만든다.
‘카탄’이라는 보드게임이 있다. 광물과 곡식, 양털 등의 자원을 모아 마을을 짓고 교량을 건설하여 룰에 따라 주어지는 점수로 10점을 먼저 따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이 게임에서 자원을 모아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마을을 짓는 일이다. 그리고 마을을 확장해 나가려면 다리를 지어야 한다. 마을이 없는데 다리만 지울 수는 없다. 마을을 짓는 것은 ‘카탄’이라는 가상의 공간에 어떤 기준점을 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시간에도 그런 기준점이 있어야만 다음 기준점을 지어나갈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늦잠을 방지해준 주말의 이 일이 감사하다.
버스에서 내리니 비가 거의 그쳤다. 그저 흐린 하늘에 빗방울만 가끔 떨어질 뿐이었다. 우산을 쓰지 않은 채 배정받은 학교까지 걸으며 아침에 할 일을 생각했다. 흐린 하늘이 차분한 기분이 들게 했다.
간단히 시험 감독에 관한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대기 시간 동안 어제를 곱씹으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내 하루를 어찌 보냈으며 어떤 생각이 드는지, 그리고 쓰고 있는 지금은 이에 대해 또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등등.
역사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면 이것 또한 '나의 역사'에 대한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였다.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보고 해석을 하는 것이었고 현재의 생각이 과거에 투영된 것이기도 했다. 가령 어제의 일기에 쓴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대해서는 그제의 경험과 어제의 생각이 결합한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어제 시점의 일관된 생각이 그제의 경험 전체, 아침 저녁으로 반영된 것이다. 이것을 쓰는 당시에는 의도하지 않았다. 그저 당시의 내 사고를 강렬하게 붙잡고 있던 게 무의식적으로 반영된 게 아닐까 싶다.
한 개인의 현재 생각이 전날의 경험 전체를 꿰뚫듯, 현재 인류의 사상이나 도덕, 통념, 시대정신 등은 과거 인류의 역사 전체를 일관되게 꿰뚫어 해석한다. 이러한 패러다임은 우리의 의식 구조를 강렬하게 지배하며 여기에 쉽사리 도망칠 수는 없다.
문명은 이러한 것과 상호작용한다. 서로 다른 집단의 강렬한 의식 구조가 서로 다른 문명을 창조하기도 하지만, 그 문명이 내부에 살고 있는 인간의 의식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일종의 공진화를 이루는 것인데, 그래서 각 부분에서 사회를 이끌어가는 집단은 그 책임 의식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이 집단은 사회지도층이나 엘리트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오히려 볼테르의 책, ‘캉디드’에 나오는 노인처럼 자기의 정원을 충실하게 가꿔나가는 이들을 의미한다. 그 아름답게 가꾸어진 정원은 타인에게 그 안에 담긴 성실한 노력과 생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정원을 본 다른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따른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각각의 정원들이 결국 문명이 되는 것이다.
나는 내 정원을 가꾸고자 성실한 자세로 임하고 있는가? 잡다한 생각들로 하여금 정원을 망치고 있진 않은가? 부족하고 부끄럽다. 내가 할 일은 남들이 뭐라 하든 나의 정원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내 이름은 최선이라는 단어와 비슷하여 어린 시절에는 이 단어가 가진 의미를 이루고자 부단히 애를 썼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나서 어느 새부턴가 이 말을 떠올리지 않게 되었다. 어느 때부터일까? '최선을 다하자!'라는 내 좌우명을 잊게 된 것을. 그 말이 어느 순간 고리타분하고 개성이 없다고 생각한 그때부터일까? 혹은 대학을 입학하고 술에 찌들어 살 때였을까?
부끄럽고 부끄럽다. 이 단어를 생각하면 마치 지저분한 내 방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 같은, 그것을 숨기고 싶은 기분이 든다. “나는 내 삶에 온 힘을 다하지 못한 인간입니다!”라는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아, 타인에게 나를 속인다. “최선을 다하자! 진심으로 내 정원을 가꾸자! 누가 내게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나를 바라봐주지 않더라도 온 힘을 다하자!”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이가 한 명도 없더라도, 나에게 잘한다고 칭찬해주는 이가 단 한 명도 없더라도, 나를 위해 울어줄 이가 단 한 명조차 없더라도 최선을 다하자. 내가 스스로 울어주고 위로해주고 아파해주면 된다. 그러나 그렇게 한숨을 쉴 때도 들었던 곡괭이를 내팽개치지 말자. 늘 그래서 실패하지 않았던가? 슬프고 힘들고 아플 때, 울어야 할 시간이 필요할 때, "이런 정원이 다 무슨 소용이야!"라며 정원을 갈던 곡괭이를 집어던지고 한쪽 편에서 하염없이 울지 않았던가? 그러는 와중에 다시 풀이 자라고 해충이 들끓어 결국 과일나무의 열매는 보지도 못하고 이내 죽어 없어지지 않았던가?
두 손에 박힌 굳은살에 최선이라는 이름을 새기자. 환란의 날이 와,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오로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려 할 때도 똑똑히 볼 수 있도록, 그 이름을 새기자. 슬픔이 내 마음을 흔들 순 있어도 결코 내 정원마저 빼앗도록 내버려 두진 않으리라. 흐르는 눈물마저도 맛 좋은 과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자양분이 되도록 하리라.
시험 감독이 끝나고 집까지 걸어가는 약 1시간 동안 휴대폰으로 영어 공부를 했다. 이제 더는 ‘이렇게 해서 잘할 수 있을까?’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할 뿐이며, 현재 내게 이것이 영어 공부의 최선이라고 믿기로 했다.
바로 커피숍으로 갈까 하다가 졸음이 밀려와 집에 들어왔다. 전날 대전에서 늦게 올라온 터라 새벽 2시가 다 되어 잠을 청하고 시험 감독 때문에 아침부터 정신없이 움직였기에, 정작 수면 시간은 4시간 정도였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방에 들어오자마자 피곤함을 느꼈다. 두유와 계란, 그 밖의 견과류로 간단하게 점심을 때우고 1시간 정도만 자야겠다 생각하고 침대에 누웠다. 그러나 자고 일어나니, 시계는 5시를 가리켰고 다시 한번 허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알고 있었다. 이렇게 될 줄. 그런데도 잔 까닭은 해야 할 일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시간을 자도, 2시간을 자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자도 내게 뭐라 할 사람이 없었고 해야 할 일은 미뤄둘 수 있었다. 그저 늦게 일어나면 한숨 한 번만 쉬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마저도 익숙해진 한숨이었다.
대충 정신을 차리고 저녁을 먹으러 이모한테 갔다. 싱크대에 엄청나게 쌓여있는 식기를 보니 내가 오기 전까지도 무진장 바빴던 것 같았다. 손님으로 보이는 한 분이 팔을 걷어붙이고 식탁 위의 접시들을 치우고 있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나 역시 주방으로 들어가 설거지를 시작했다. 이모는 계속 들어오는 손님들을 상대하면서 음식을 만들고 나와 다른 손님 한 분은 설거지를 했다. 이모한테 아들이냐기에 내가 장난으로 아들이라고 했더니 그분은 장난으로 자기는 며느리라 했다. 우리는 이런저런 농담을 하며 설거지를 끝냈다. 이 많은 것을 혼자 감당하는 이모를 보며, 나는 사장을 생각했다. 점심, 저녁 시간대만이라도 아르바이트를 붙여달라고 했는데 적자라고 붙여주지 않는 사장을 생각하며, 비도덕적 인간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이런 인간조차 인간성으로 보면 나쁜 사람만은 아니었다. 적어도 이모의 말을 들어보면 그렇다. 그러나 이 장에 모두 열거하지 않겠지만, 그가 자기의 이익을 위해 저지르는 짓들은 위법이며 착취이다. 이 자는 인간성은 어떨지 몰라도 비도덕적 인간이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착취하는 것이니 적어도 내가 볼 땐 나쁜 인간이었다.
엊그제 본 영화 '미성년'에서는 염정화가 고해성사를 드리는 장면이 독백처럼 나온다. 카메라는 고해소에서 기도를 드리고 고뇌하는 염정화의 얼굴 전체를 신부의 위치에서 비춘다. 그녀는 두 사람의 불륜 사실을 고백하며 그런데도 그들이 나쁜 인간들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괴로워한다. 나쁘게만 볼 수 없게 만드는 어떤 인간적 연민과 이해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쁜 인간과 좋은 인간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 한 인간에 대하여 나쁘다, 좋다는 무엇으로 판단하는 것일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 사람들이 죄를 지은 것이기에 그 둘을 떼고 생각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염정화는 미워하고 싶은 인간들을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들 탓에 정작 괴로워해야 할, 회개해야 할 인간들이 따로 있음에도 자신이 회개의 장소에서 괴로워하는 것이다. 누구에겐 좋은 사람이 누구에겐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다. 좋음과 나쁨은 상대적인 개념이고 사실만을 가지고 판단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가 저지른 죄는 우리 사회의 법과 도덕 그리고 통념에 따라 결정되므로, 그 사실에 대하여 인정을 한다면 그 판단이 어렵지 않다.
그 사장의 인간성이 좋은 인간인지 어떤지 알 수는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그 인간은 적어도 도덕과 법, 통념으로 비추어 볼 때 비도덕적 인간이며 파렴치한 인간일 뿐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했지만, 그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이모들에게 저지르는 것을 이모들로부터 사실만을 접해 들을 때에도 혐오감마저 든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자신의 잘못을 모르고 있을까?'라는 점이다. 분명히 그는 자신이 법과 도덕에 비추어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것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것이며 어디 다른 곳에서 일하기 어려운 이모들이라는 점, 자신이 적자를 보고 있다고 하는 인간적(?) 호소 등의 감정적인 부분을 이용하여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 그리고 또한 그것을 앎에도 분노하거나 적극적으로 싸우지 않는 이모들도 안타깝다.
이런 이모와 사장을 볼 때, 생각나는 두가지 이야기가 있다.
첫째는 동남아의 신발 공장에서 착취를 당하면서도 그 일을 마다하지 않는 어린 소년, 소녀들이 이야기이다. 이들이 임금에 대한 착취를 당하면서도 신발 공장을 떠나지 못하는 까닭은 그들에게 그만큼의 임금을 주는 곳이 없을뿐더러 그 공장 외에 그들을 뽑는 곳도 별로 없기 때문이었다. 빈곤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어릴 때부터 노동 시장에 뛰어 들어야만 하는 아동들은 그 안에서 어쩔 수 없이 부당한 대우에도 숨 죽여만 한다.
둘째는 솔로몬 노섭의 ‘노예 12년’이다. 이 책에서 노섭은 그의 첫번째 주인이었던 윌리엄 포드의 밑에서 일했을 때에는 노예제의 밝은 면만 보아왔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어서 가족과 함께 였다면 전혀 불평없이 그를 모셨을 거라고 언급한다.
이는 남부의 노예제 아래에서는 개인의 인성과 상관없이 노예제의 수혜자일 수밖에 없는 주인과 긍정적인 유대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모 역시 그렇다. 여기선 따로 더 나열하지는 않겠지만, 그녀가 처한 환경은 비상식적이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오로지 그 환경에서만 지내오면서 사장과 종업원 사이에 생겨난 정서적 유대감은 사장의 착취를 계속 용인토록 하고 있었다.
인간은 현재 삶이 익숙해지고 일 때문에 피로하면 다른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피곤함에 두뇌는 오로지 쉴 수 있을 때는 쉬기를 바랄 뿐이며 사고 활동은 정지된다. 다른 이들과 다르게 노섭이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던 까닭은 그는 과거에 자유를 맞본 북부의 시민이었고 가족이 있었으며 첫번째 주인을 제외한 다른 주인들의 인격적 모욕과 폭력이 자유를 바랄만큼 심했기 때문이다.
이모들이 노예도 아니고 그들이 어디를 가도 이 정도를 못 할까? 그래서 나는 이모를 돕고 싶다. 그들에게 몇 번이고 움직이라고 종용마저 한다. 그러나 내가 나서서 신고하진 못한다. 사장이 법을 위반하는 사실을 그녀들을 통해 뻔히 듣고 있는데도 신고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 점이 때로는 괴롭다. 나 역시 알고 있음에도 신고를 하고 있지 않아 위법을 저지르는 것은 아닌가, 혹은 이모들로서는 끓을 수 없는 고리를 내가 대신 끊어주는 게 오히려 나은 건 아닐까? 혹은 내가 감 놔라, 배 놔라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은 아닐까? 또는 정작 도움도 안 되면서 하는 척 위로만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그저 설거지만 도와준다. 그렇게 설거지가 끝나고 나니 아르바이트를 가야 할 시간이 다 되어 그저 김밥 두 줄만 싸 달라고 했다.
그것을 집에서 간단하게 먹고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가는 길에 문득 동생이 보고 싶어 전화했다. 집안 이야기, 운동 이야기, 이런저런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주택청약에 관한 잔소리를 해댔다. 빨리하라고, 한번 해놓으면 취사 버튼을 누른 밥처럼 시간이 지나면 완성되는 것인데, 왜 안 하느냐며 역정을 냈다. 언젠가는 당연히 우리에게도 닥칠 일임에도 지금껏 너무나 안이하게 생각한 것들이 있었고 주택청약 역시, 지금 해두지 않으면 필시 나중에 후회할 만한 것이었다. 그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음에도 어느 누가 환기를 해주기 전까지는 그저 숲 속의 꿩처럼 고개만 풀숲에 처박고 모른척 하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껏 그래 왔다. 모르는 게 약이며 안 보면 그만이라며 현실과 미래의 직시 따위보다, 아예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고통과 괴로움을 회피하려고 했다. 내가 도대체 동생에게, 이모에게, 그리고 내 부모에게 뭐라 할 수 있는가? 나 자신이 부끄럽게도 그러고 있는데? 동생이라고 나는 그를 훈계조로 이야기하지만 그를 통해 어쩌면 나는 자신을 훈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가 바로 수긍하기보다 잔소리하지 말라는 식의 엉뚱한 반응을 통해 나 스스로에게도 내가 그렇게 살아온 까닭을 정당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그렇다고. 나도 알고 있으면서 저리 반응했다고. 전화를 끊으며 결코 현실을 모른 척하지 말고 귀찮아하지도 말고 할 수 있을 만큼은 최선을 다하자, 헛똑똑이가 되지 말자고 또 한 번 다짐한다. 피곤하더라도 생각을 하며 사는 게 장기적으로는 내게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꼭 그렇게 살자고 다짐한다. 절대 그 생각을 포기하지 말자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