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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Mar 03. 2020

파노프스키의 『고딕건축과 스콜라철학』 해제 요약 노트.

『해제 제목 : 철학의 첨탑, 첨탑의 철학 | 김율』


에르빈 파노프스키의 저서 『고딕건축과 스콜라 철학, 김율 옮김, 한길사』에 나온 역자의 55페이지 가량의 해제를 좀 더 간단하게 요약정리한 자료(사실 요약이라기보다 발췌 정리에 가깝다)이다. 이 요약본은 본래 개인이 읽어볼 목적으로 정리한 것이나 좋은 책을 소개하고 지식을 함께 나누면 좋을 것 같아 이곳에 기재를 했다.


그렇다면, 책을 요약하지 않고 해제를 다시 정리한 까닭은 무엇인가?

책이 아닌 몇 페이지 안 되는 해제를 다시 정리한 까닭은 첫째, 내용을 충실히 정리하고 있는 해제만으로도 책에서 전달하는 핵심적인 내용을 습득할 수 있고 또한 해당 책에 관한 관심을 유도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둘째는 파노프스키가 스콜라철학자들과 고딕 건축가들 사이의 관계에 관해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 요약만으로도 (책의 전체적인 내용보다도) 저자의 독특한 서술 방식을 통해 바쁜 독자들이 예술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관한 방법을 조금이나마 일깨울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우려가 되는 것은 개인적 목적으로 시작한 요약이기에 조악할 수 있으며 그것이 역자에게 외려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혹 맥락이 이상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이 해제의 문제가 아니라 전적으로 요약자인 본인의 문제이다.)

여하튼, 이 내용을 통해 중세 고딕 건축이나 예술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되거나 관련 책을 찾아본다면 바랄 게 없겠다.(책 자체도 두껍지 않다.)


※ 이 글은 원래 『미학』80, 한국미학회, 2014, 33~80쪽에 개제 된 옮긴이의 논문「스콜라철학과 고딕건축의 '심적 습성'」을 해제 성격에 맞게 수정한 것이라고 한다. 관심이 있거나 좀 더 포괄적인 이해를 필요로 하는 독자는 해당 논문이나 이 책을 찾아보길 바란다.  




저술의 경위와 내용적 특징


이 책은 1948년 12월 펜실베이니아의 성 빈센트 칼리지에서 비전문가 청중을 대상으로 행한 학술강연 원고이다. 이 책의 특징은 수많은 구체적 자료에 대한 미시적 조사를 토대로 중세라는 한 시대 전체의 정신적 맥락을 거시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가 담겨 있다. 이 책의 특기할만한 점은 책의 이름처럼 중세 미술과 중세 철학과의 관계, 좀 더 구체적으로는 중세 건축 자료와 철학 문헌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동원하는 '문화적 평행현상'이라는 해석 틀에 있다. 그전에도 고딕 건축물에 대하여 스콜라 철학과의 연관성을 언급한 학자가 있었다. 그러나 그의 기여는 그러한 선행자를 뛰어넘는데, 두 문화적 현상의 관련성에 관한 단편적 언급으로 그친 게 아니라, 평행의 발생 구조와 전개 과정에 관한 논리적 설명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평행의 발생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개념적 도구가 이 저서의 핵심 개념인 '심적 습성(mental habit)'이다. 이 텍스트를 소화하려면 이 개념의 선이해가 필요하다.


심적 습성


희랍어 hexis에 해당하는 습성이라는 말에 관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이해했다. 그 중, 두 번째 의미에서 이 습성을 그 자체로 독자적 범주를 가리키는 것 대신에 질(poiotes)범주의 한 갈래를 가리키는 개념, 즉 diathesis(성향)이라는 개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했다. 이는 어떤 사물이 놓이게 되는 특정한 상태이며 쉽게 변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더 강한 'hexis'와 덜 강한 'hexis'가 존재할 수 있고, 하나의 관점에서 훌륭한 'hexis'와 저열한 'hexis'를 가를 수 있다. 이러한 개념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차용되어 인간의 성격을 규명하는 개념적 틀로 기능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특정 활동을 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 반복적 활동을 통해 갖게 된 변하기 어려운 성질이라고 말한다. 즉 사물의 본성은 아니지만, 사물이 마치 돌이킬 수 없는 제2의 본성처럼 갖게 된 '활동의 태세'라고 할 수 있다. 파노프스키가 포착하는 이 용어의 스콜라철학적 의미는 '활동에 대한 관련성을 내포하는 원리'로서 이다. 그 의미를 원용하여 그는 이 심적 습성의 의미를 '인간의 행위에 규제적 영향을 발휘하는, 그리하여 특수한 행위 방식으로 표출되는 심리적 성향'이라고 말한다. 그가 부각하는 습성의 의미는 이처럼 '행위의 심리적 원리'이지만, 정말 중요한 특징은 첫째 그가 습성을 사회적이고 집단적인 개념으로 이해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집단적 요인의 틈입은 거의 불가역적인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그가 습성의 역사적 변천에 주목한다는 점이다. 습성의 시간적 불가역성을 강조했지만, 역사적 시간 차원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다양한 역사적 시간 차원에서 심적 습성은 다양한 문화 영역에 작용해 평행 현상을 만들어 내며, 그 평행 현상이 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고딕건축과 스콜라철학의 시공간적 일치


파노프스키는 역사학의 일반적인 '시대(period)'라는 개념을 문제 삼으면서 그 시대의 통일성은 역사에 포함된 다양한 현상 사이의 어떤 유비적 특성을 찾아냄으로써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을 중세로 논의 영역을 좁혀서 고딕건축과 스콜라철학 사이에 유비성이 있음을 밝히고, 이 양자가 '평행현상'(parallels)이 있음을 일컫는다.

그에 따르면 이 동시 발생은 네 단계로 진행된다고 한다. 첫째는 초기 스콜라철학과 초기 고딕 양식의 동시 발생이다. 스콜라철학은 신앙과 이성의 조화라는 방법론적 원리를 기초로 한다. 이때 11~12세기를 중심으로 활동한 '프랑스 양식'이 초기 고딕양식으로 등장한다. 둘째는 전성기 스콜라철학과 전성기 고딕 양식 역시 발생 시기가 일치한다. 전성기 스콜라철학이 시작된 13세기 전환기는 전성기 고딕 양식인 샤르트르 대성당과 수아송 대성당이 건축된 시기이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라 역사상 최초 대전인 알렉산더 할렌시스의 『신학대전』이 저술되기 시작한 1231년 피에르 드 몽테로가 생-드니 대성당의 새로운 네이브 건축에 착수했다. 저자는 이러한 시기적 일치를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성기 스콜라철학과 전성기 고딕 양식의 상응하는 내용적 특징을 찾아냈고 일치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려 했다. 전성기 고딕의 대표적인 건물인 랭스, 아미앵, 스트라부로, 나움부르크 대성당에서는 그전에 찾아볼 수 없었던 생생한 동식물과 인물 조각상이 나타나는데, 이는 전성기 스콜라철학을 특징짓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영혼론의 승리를 표현하고 있다고 했다. 즉 그는 생물체에 대한 생생한 묘사와 재현의 열정이 바로 이러한 철학적 시각의 변화와 결부되어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전성기 스콜라철학과 전성기 고딕 양식의 최종 단계(1270~14세기 초반)에서 발견된다. 이는 보나벤투라와 토마스 아퀴나스가 서거한 1274년 이후 50~60년간이며 이 시기의 경향은 지리적 탈중심화의 경향과 퇴조와 복고의 경향이다. 건축물에서도 마찬가지로 덜 체계적이고 종종 다소 소박하기까지 한 해결책에 의해 폐기된다. 이 시기에는 스콜라철학과 고딕 건축은 대략 각각 세 흐름으로 분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철학에서는 강단적 전통, 대중적 문헌으로 세속화, 인간 능력의 한계에 이르기까지 정밀화가 진행되며, 고딕 양식 역시 교조화되거나 축소 또는 단순화, 세련 또는 복잡화된다. 14세기 중반 이후에는 좀 더 근본적인 이행 단계가 도래한다. 이때 스콜라철학의 에너지는 단테나 페트라르카를 통해 시와 인문주의로 흘러들어 가며 에크하르트를 통해 반이성적 신비주의로 흘러들어 간다. 그리고 스콜라철학으로 남아 있는 한에서는 유명론적 경향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철학적 주관주의에 상응하여 예술 현상의 원근법적 공간 해석이 등장한다. 그리고 파노프스키는 초상화, 풍경화, 실내화는 유명론의 정신과 연결하며, 이 시기의 성화를 신비주의와 연결한다.


평행관계 형성의 인과적 구조


중요한 과제는 둘 사이의 유비성을 단지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평행관계의 발생 원인을 해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연결은 단순한 평행(parallelism)과는 다른 본래적 의미의 원인-결과 관계(cause and effect relation)이다. 그런데 이 원인-결과 관계는 직접적 충격보다는 확산에 의해 생겨난다는 점에서 개별적 영향과 대비된다. 이것은 일종의 심적 습성(mental habit)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어떤 것이 퍼져 나감으로써 생겨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평행현상에 두 가지 경우가 있다고 생각한다. 평행을 이루는 두 현상 간에 뚜렷한 인과관계가 관찰되지 않는 경우가 있고, 인과관계가 관찰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특히 상이한 문화적 현상 간에 인과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은 한 현상으로부터 다른 현상으로 심적 습성이 확산됨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해명이 언제나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제한된 역사적 시공간 속에서 가능한 경우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1130~40년부터 성왕 루이가 서거한 1270년까지 파리 주변 반경 100마일 지역의 스콜라철학과 고딕 건축이 그런 사례이다.

인과 관계가 존재한다는 그의 판단은 일단 순수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관찰에서 기초한다. 당시 건축가와 학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정신적 연결을 맺고 있었고 긴밀히 협력하거나 지식인과 거의 유사하게 사회적 존경을 얻고 있었음을 일컬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료는 인간관계의 조건 또는 정황에 대한 설명은 될 수 있지만, 인과관계의 내용에 대한 설명은 될 수 없다. 둘 사이의 인과관계를 밝힘으로써 평행의 발생을 설명한다는 것, 또는 평행 관계의 인과적 구조를 설명한다는 것은, 외적 사실 자료의 증빙을 넘어서는 정신적 영향의 내용에 관한 해석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는 스콜라 철학 교의의 개념적 내용은 일단 제쳐놓고 교의의 작용 방식에 집중하는 편이 좋을 것이라 말한다. 즉 건축가는 당시 사상의 실체를 적용했다기보다는 건물의 형태를 고안할 때 그것을 소화하여 전달한 것이다. 이는 사상의 실체가 아니라 독특한 진행 방식에 있다. 저자가 말하려는 핵심은, 스콜라철학의 심적 습성은 교의의 내용이 아니라 교의의 작용 방식에서 드러난다고 말하는 것이다. 즉 특정 철학, 사상, 종교의 심적 습성이 직접적으로 기록되는 게 아니라 묻어 들어가는 것이다. 요컨대 습성은 관념'으로서'기록되는 것 또는 관념 '안에'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관념'으로써'기록되는 것 또는 관념 '위에' 기록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관념의 내용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과 무의식 어느 한쪽에 갇히지 않고 관념의 움직임 - 관념이 어떤 방식으로 선택되고 산출되는지, 관념이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고 작동하는지 - 을 폭넓게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동상이나 작품의 근원 또한 마찬가지이거니와, 이론이든 작품이든 어떤 정신적 산물의 본질적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대상 안에 들어와 있는 밖(의 근원)을 탐지해낸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저자가 들고 나온 심적 습성과 평행 개념은 말하자면 바로 그 밖의 근원을 가리키기 위한 개념이다.


스콜라철학의 존재 이유와 명료화의 원리


스콜라철학의 심적 습성이 교의의 작용 방식에서 드러난다면, 고딕 건축가가 스콜라 철학자를 따라 적용했던 그 방식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을까? 이를 위하여 저자는 초기와 전성기 스콜라철학의 존재 이유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스콜라철학의 존재 이유가 '신앙과 이성의 항구적인 평화조약'을 체결하는 것이었다고 파악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이성의 역할은 '명료화'였고 이를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신은 존재한다든가 신은 유일하다는 식의 '신앙의 서문'에 해당하는 지식들에 한해서 인간의 이성은 적극적인 증명을 시도할 수 있다. 둘째, 인간 이성은 신앙의 조항에 제기되는 반론들에 맞서 방어적 논변을 펼 수 있다. 셋째, 인간 이성은 그 자체로는 이성적 접근이 불가능한 신앙의 신비를 적절한 유비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파노프스키가 '초기와 전성기 스콜라철학의 첫 번째 규제 원리(first controlling principle)라고 부르는 이 명료화는 단순히 사유 대상뿐 아니라 사유 과정 자체를 명백하게 만들려는 열정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원리가 가능한 최고도 수준에서 작용하려면 그 원리가 이성 그 자체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유 체계 속에서 완결성, 자기 충족성, 한계가 '명백해져야' 한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사유 체계 속의 '명백해짐'에 관하여 문헌 서술의 도식(a schema of literary presentation)에서 관찰한다. 즉, 스콜라 철학자들이 저술한 대전과 같은 책에서, '총체성(충분한 나열), 체계적 배열(충분한 분절), 판명 성과 연역적 설득력(충분한 상호 연결성)'과 같은 명료화의 습성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저자는 초기와 전성기 스콜라철학의 특별함을 사상 자체의 명료성에 있는 게 아니라 명료성에 대한 무의식적 강박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한 압박감, 그들 사유의 방향과 범위를 규정했던 명백하게 함의 원리가 사실은 사유의 해설 방식도 규제했으며 그 해설 방식을 '명료화를 위한 명료화의 요청'이라 부를 수 있는 태도에 종속시켰다. 그리고 이것은 건축이나 다른 여타의 문화적 현상에 전이시켰다. 문학에서는 체계적 장절 구분과 활음조를 중시하는 경향, 음악에서 나타나는 정량 기보법이 그 단적인 예이다. 재현적 미술에서는 서사적 맥락이 명료화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건축 영역에서는 기능적 맥락들이 명료화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전성기 고딕 대성당의 건축 기법상 특징을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전체성이다. 그 안에서 그리스도교의 신학적, 도덕적, 자연적, 역사적 지식 전체를 구현하고자 했다. 둘째는 부분 간의 상동성이다. 가령, 네이브와 트랜셉트 모두에서 삼분식 형태가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동성은 건축물을 구성하는 부분들의 점진적 가분할성 또는 세분화라는 특징을 낳는다. 셋째는 상호적 추론 가능성이다. 말하자면, 피어 하나의 단면도에서 전체 체계의 구조를 추론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일치의 원리와 변증론으로서의 건축


초기 전성기 스콜라철학의 존재 이유인 신앙과 이성의 평화조약을 따르는 적용 방식에는 '명료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두 번째 규제 원리가 있는데, 곧 '일치'의 원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해석한다. 일치의 원리란 중세의 신학이 승인했던 권위 사이에 잠재적 갈등이 내포되어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이것을 해석과 재해석과 과정을 거쳐 이성적으로 충분히 동의할 수 있는 화해를 이끌어 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룰 위해서 아벨라두스가 갖고 있던 무기는 '변증론'이었다. 전형적인 대론과 반론, 그리고 대답을 통하는 대론의 해결이라는 논증 방식과 그에 상응하는 교육 방식이야말로 초기와 전성기 스콜라철학을 규제하는 일치라는 원리의 뚜렷한 증표였다. 이러한 원리들이 무조건적 명료화라는 습성 못지않게 결정적이고 포괄적인 심적 습성을 형성할 수밖에 없었으니 전성기 고딕 건축가에게도 동일한 태도가 관찰된다. 고딕 건축도 스콜라철학처럼 '~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반대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고 답한다.'의 도식적인 틀에 따라 진행되었던 것이다. 저자는 일치라는 심적 습성 아래 진행된 고딕 건축의 변증론적 발전 과정을 크게 세 가지를 통해 입증하려 한다. 첫째는 대성당 서쪽 파사드의 장미창이다. 최종적 해결이 생-니케즈에서 나타나는데, 위그 르베르지에가 건축한 이 성당에서 장미창은 거대한 아치 안에 통합된다. 이로써 아치형 창과 장미창이라는 두 건축적 요소의 긴장이 완전히 해소됨을 의미한다. 두 번째 변증론적 발전 과정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자료는 대성당 양 측면 채광창 하부 벽면의 조직원리이다. 전성기 고딕 양식이 시작되는 사르트르와 수아송 대성당의 트리포리움은 수평주의적 조건을 따르고 있지만, 랭스와 아미앵에서는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수직주의가 나타난다. 그에 비해 생-드니 트리포리움은 또 다른 새로운 구조를 보여준다. 이는 수평적 반복과 수직적 연속성을 함께 부각한 방식으로 이 둘 사이의 화해, 즉 최종적 해결에 해당한다고 해석한다. 마지막은 네이브 피어의 형태이다. '필레에 캉토네'라고 불리는 네이브 피어는 후에 보합 피어의 높고 연속적인 주신들과 보조적 소원주들을 아미앵의 원통형 필리에 캉토네와 결합시킴으로써 긍정과 부정을 종합하는 최종적 해결책을 내놓는다.


남은 질문들


도시적 전문직 체제 안에서 스콜라철학자와 건축가들 사이에서 전면적인 정신적 교류가 가능했던 12~13세기 파리 주변 지역에서, 스콜라철학과 고딕 건축 사이에는 뚜렷한 인과관계가 관찰된다. 이것은 전자가 특수한 심적 습성이 후자에게 확산된다는 의미이며, 저자는 명료화와 일치의 작용 방식을 파헤침으로써, 심적 습성 개념을 매개로 스콜라철학과 고딕 건축의 평행관계가 발생하는 원인을 설명하겠다는 저술 의도를 충실히 실현한다. 물론 그는 고딕 건축의 발생 원인에 대한 총체적인 설명을 제공하겠다고 자임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고딕 건축이라는 문화적 현상을 낳은 한 원인이라고 설명할 뿐이며, 유일하거나 충분한 원인이라고 말한 것은 아니다. 그의 논의에서 여러 중요한 질문을 파생시키는데, 첫째, 심적 습성의 형성 요인을 분간해내고 전파 경로를 그려내는 것이 그의 말대로 예외적인 일이라면, 그것은 심적 습성이라는 개념이 역사적 시대 분석의 도구로서 보편성을 갖기 어렵다는 의미인가? 이 둘 사이 이외에도 다양한 문화적 평행현상에 적용될 수 있는가? 충분한 실증적 타당성을 지니는가? 심적 습성은 과연 스콜라철학의 결과물일 뿐인가? 오히려 스콜라철학 자체가 파노프스키가 규명하려는 그 심적 습성의 표현으로 간주될 수는 없는가? 라는 점이다. 저자가 언급하는 정확한 심적 습성 연구의 예외적 가능성은 심적 습성 개념 자체가 제한적이라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적으로 이 개념의 적용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뜻에 가깝다. 또한, 상이한 문화적 당사자들 사이의 정신적 영향이 반드시 의식적인 접촉을 통해 일어나기도 하겠지만, 반드시 그렇게만 해서 일어나느냐는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무의식적이고 간접적일지라도 정신적 연결의 정황이 존재한다면 유비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구체적인 문화 현상의 자료에 입각하여 정신적 작용 방식의 상동성을 얼마나 신빙성 있게 그려내는지에 달렸다. 이것은 전적으로 해석자의 역량에 달렸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떻게 확인될 수 있는가? '실증'될 수 있는 것인가? 심적 습성의 해석에서 우리는 과연 '어느 정도의' 객관적 확실성과 타당성을 기대해도 좋을 것인가? 이러한 의심은 누구든 품을 수 있다. 그 역시 이런 공격이 제기될 수 있음을 스스로 언급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 제기에 대해 고딕 건축의 변증론적 전개가 특출한 일관성을 지닌다는 점과 고딕 건축에서는 긍정과 부정과 해결의 원리가 철저히 의식적으로 적용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자신의 해석에 타당성을 주장한다. 문제의 핵심은 사실 심적 습성이란 실증이 가능한 '사실'의 영역이 아니라 해석 작업과 결부된 '의미'의 영역에 속한다는 데 있다. 이는 예컨대 창조 교의에 대한 가장 이상적인 설명이나 종말 교의에 대한 가장 명료한 예술적 제시와 같은 창작자의 직접적이고 의식적인 지향(교의의 내용) 이면에 존재하면서 그 지향의 발현을 규정하는, 사고의 습관이자 태도(교의의 작용 방식)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저자가 말하는 둘 사이의 인과관계 또는 심적 습성의 확산이 적어도 사실 또는 사건의 인과 관계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이 둘 사이의 인과관계가 사건의 인과처럼 반드시 시간적 선후 관계를 내포한다고 생각해야 할 필요가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네 번째 질문인, 더 근본적인 관점에서 보면 고딕 건축뿐 아니라 스콜라철학 역시 그 심적 습성의 동등하고 동시적인 결과 또는 표현이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만일 심적 습성을 개별 문화적 현상이 아닌 다수의 문화적 현상을, 또는 한 시대의 문화 전반을 규정하는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세계관적 요인으로 이해한다면, 스콜라철학 역시 심적 습성의 원인이 아니라 여러 결과 중 하나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스콜라철학이라는 말은 다수의 개인이 유사한 방식으로 수행하는 개별적 교육 행위, 저술 행위, 사유 행위, 직업 행위를 가리킬 수도 있고 일종의 집합 개념으로서 행위들의 기저를 이루는 일반적인 학문 제도나 학문 규범을 가리킬 수도 있다. 스콜라철학이 고딕 건축에 표현된 심적 습성의 원인이라는 저자의 서술이 단적인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스콜라철학이라는 말이 전자의 의미로 이해되는 경우뿐이다. 만일 우리가 스콜라철학을 후자의 의미로 이해한다면, 그 철학이 중세 전성기 문화적 습성을 만들어 낸 것인지 아니면 (명료성과 일치의 정신을 발산하는) 스콜라 철학 자체가 모종의 문화적 습성에서 비롯된 의미의 명시적 태도인지 열린 문제로 남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스콜라철학을 습성의 원인으로 간주하든 습성의 표현으로 간주하든, 전성기 중세를 규정하는 역사적, 사회적 심적 습성이 분명히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만일, 우리가 이 심적 습성의 참된 발생 원인을 탐구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바로 지혜와 용기를 겸비한 개인의 존재로 나아가는 길이다. 파노프스키에 따르면, 시대의 전환이란 심적 습성의 교체를 뜻한 것이거니와, 어떤 시대에도 속하지 않음으로써 두 시대를 연결해주는 한 인간은 하나의 심적 습성에서 자유로운 행위를 감행함으로써 자신 안에 새로운 심적 습성을 '미리 만들어 내는' 개인 것이다. 모든 역사 연구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과거의 수많은 '창조적' 행위의 의미 그리고 그 결과물 (작품)의 의미를 그 개인의 '인격'과 더불어 이해하는 것이다. 해석이라고도 불리는 이러한 행위가 우리 자신의 심적 습성 (세계관적 태도)의 일일 수밖에 없는 한에서, 심적 습성의 탐구로서의 역사학은 과거뿐 아니라 나 자신과 우리 시대의 정체에 대한 탐색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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