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내 가족 이야기.

연재소설 - 그림자를 찾아서.

by Chris

내 이름은 견우이다. 어머니가 임신하고 있을 무렵 태몽에서 검은 소를 보았다고 한다. 그 이후부터 내 이름은 이미 견우라 지어졌다. 꿈 이야기를 잠시 하자면, 어머니는 아주 아름다운 산기슭을 걷고 있었다고 한다. 마치 신선이 살 법한 지역이었고 그곳에서 혼자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거대한 검정 소를 발견했다. 매우 육중하고 거대한 소였다. 강함이 눈에 보였고 어떻게 해도 길들어지지 않을 것만 같아 보이는 검정 소였다. 그런 소가 그녀를 보았고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어머니는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소는 천천히 그녀의 앞으로 왔다. 소는 무엇인가를 입에 물고 있었다. 그녀의 눈앞에까지 와 한참을 바라보더니 그것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다섯 잎이 달린 자그마한 꽃이었다. 그 꽃은 세상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아름다운 꽃이었다. 그녀는 꽃을 받아 들고 향기를 맡아 보았다. 그윽한 향기가 온몸을 휘감으며 신선한 바람이 자신의 머리를 향해 불어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손을 뻗어 소를 안으니 소는 점차 하얗게 변해갔다.

꿈에서 깨어나자 그녀는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했고 그는 나의 이름을 견우라 칭했다. 그렇게 이름을 부여받고 나서 얼마 안 있어 내가 태어났다.

어디서 나의 태몽 이야기를 들었는지 내가 태어나고 어느 날, 어느 절의 주지 스님이 우리를 찾아왔다. 그리고 아이를 불가에 입적시키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렇지 않으면 불운이 온다고 했다. 어머니는 불운이 온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나를 보낼 수 없었다. 독실한 기독교도였던 아버지는 그 말에 무척이나 화가 났지만, 평소에 안면이 있던 분이었기에 정중하게 그를 보냈다.

“항상 그대가 믿는 신에 대해 잊지 말게.”

주지 스님은 떠나기 전 이러한 당부를 하고 가셨다.

그 스님과 아버지와의 관계는 조금 독특했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주지 스님의 암자에서 공부한 적이 있었다. 그때 역시 그 스님은 아버지를 불가에 입적시키고자 다방면으로 노력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불가의 원칙이나 속세를 버리고 사는 것들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 백성들을 구하려면 속세를 등지고 있는 것보다 속세 안에서 그들을 구원해야 하는 게 옳지 않겠냐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래도 그 절 안에 있으면 대자연의 기운을 받는 것 같았고 선을 행하려고 하는 그분들의 행동에 대해 존경했다.

이후 아버지는 그곳에서 나와 석공이 되었다. 어린 시절에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지만 돌을 깎아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은 마치 불교의 참선 행위와 비슷했다. 끊임없는 집중이 요구되었고 조금이라도 마음을 집중하지 않으면 실수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는 얼굴을 조각할 때 기계에 의존하지 않았으며 순수하게 망치와 정으로만 작업했다. 그에게는 그것이 하나의 수련이었고 망치와 정만 있으면 세상을 보듬을 수 있는 인자한 얼굴을 만들어 냈다. 그 일은 영혼의 정화를 끌어냈다. 그가 주지 스님을 다시 보게 된 것은 그가 그곳을 떠나고 한참이 지난 뒤에 돌부처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 때문이었다.

열 여섯살에 이미 세속에 나와 그는 석공이 되었고 뒤이어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렇게 종교인이 된 뒤로는 부처의 얼굴을 새기지 않게 되었다. 종교적 가치관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부처의 얼굴에 영혼을 불어넣는 것이 자신의 종교적 편향으로 인해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 때문에 주지 스님의 요청이 돈을 벌기 위한 벌이일 뿐이라고 스스로 합리화해도 마음 한쪽이 무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요청을 받고 여러 날이 지나서야 주지 스님의 요구에 거절했다. 돈만 보면 꽤 매력적인 일이었지만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주지 스님은 몇 번이고 그에게 와 사정을 했고 옛정으로 인해 더는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어쨌거나 그는 과거 자신이 힘들 때 도와주던 사람이었고 결코 그 은혜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 뿐 아니라, 이쯤이면 다른 사람을 찾아가서 돌부처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었건만, 주지 스님은 한사코 아버지가 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렇게 하기로 하고 한참을 기도했다. 몇 번이고 신에게 용서의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만든다면 가장 최고의 형상으로 만들게 도와 달라고 기도했다. 자신이 조각한 인자한 미소 속에서 자신이 갖고 있던 모든 죄악이 사라지게 되게 해 달라고 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우리의 죄를… 사하여… 아멘……”

수년간 교회를 다녔지만, 그는 아직도 주기도문을 잘 몰랐다. 그래도 아는 만큼 더듬더듬 외워갔다. 그렇게 눈을 감고 기도를 드리니 처음 석공이 되고자 다짐하고 다른 석공 밑에서 일을 할 무렵이 떠올랐다. 그 시기에,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자기를 받아준 석공과 함께 유명한 지역의 부처의 조각상을 보러 다녔다. 부처를 조각하는 게 돈도 되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부처의 미소를 볼 때마다 느껴지는 따스한 감정과 정화의 감정을 담고 싶었다. 온화하나 강함이 있는, 그 앞에서는 모든 죄악을 실토할 수밖에 없는 그 미소, 그리고 어떤 죄를 짓고서도 모두 다 용서해 줄 것 같은 인자함이 어디서 나오는지 연구하고 싶었다. 그는 전문적으로 조각과 미술을 배우지 않았지만, 그 누구보다 작품에 대한 해석과 안목이 있었다. 그것은 수많은 삶의 경험을 통해 얻은 것이었다. 그는 최고의 조각 작품을 만들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의 조각상을 찾으러 돌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땅거미가 깔리던 어스름 저녁이었다. 아버지는 홀로 어느 유명한 절에 있는 부처상을 보고서 천천히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그의 생각에 그 부처는 매우 웅장했으며 모든 것을 지배하고자 하는 절대 군주의 모습과 비슷했다. 그런 부처의 모습도 좋았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온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온화하면서도 모든 것을 휘어잡을 것 같은 그런 부처를 기대했기에 조금은 아쉬움도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산에서 내려오던 중에 불현듯 배에서 “꾸르륵”하고 소리가 났다. 급한 마음에 어쩔 수 없이 산기슭으로 들어가 바지를 내렸다. 눈앞에 커다란 바위가 있어 남들의 눈에 쉽게 띄지 않을 만한 곳이었다. 볼일을 보다가 눈앞의 바위를 보았다. 고개를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니 결코 예사 바위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손을 들어 바위를 더듬어 보았다. 흙이 잔뜩 묻어 있는 것을 덜어내고 나니 사람의 윤곽이 보였다. 비바람에 다 깎이고 흙으로 뒤덮여 그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진 않지만 분명 그것은 부처의 형상을 한 부조였다.

주변에 있는 흙을 다 덜어내니 그 얼굴이 석양에 반사되어 환상적인 미소를 비췄다. 마치 내가 똥 싸는 모습을 보고서도 ‘괜찮다, 괜찮다.’라며 미소를 지어 주는 그 모습. 나의 모든 고통, 고독, 과거를 모두 덜어내 줄 수 있는 그 미소였다. 문득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똥을 누면서 울다니, 다른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았다면 참으로 웃을 노릇이었다.

그는 조각할 바위를 눈앞에 두고 그 시절의 부처를 떠올렸다. 말하지 않아도 미소만으로 모든 것을 정화해 줄 수 있는 부처를 만들고자 다짐했다. 몇 날 며칠을 계속 몰두했다. 다른 일은 생각할 수 없었다. 그 바위에는 원래부터 부처가 자리했던 것처럼, 부처의 머리, 어깨, 온몸에 뒤덮인 사념의 돌덩이들을 걷어 내야만 했다. 그의 머리 위에는 사리사욕을, 어깨에는 삶의 무거운 짐들을 조금씩 조금씩 걷어 내었다. 많지도 않고 그렇다고 적지도 않은 충분한 양을 덜어내었다. 가슴에는 애욕을, 무릎에는 욕심을 걷어 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인간을 닮은 형상이 점차 그 모습을 드러나고 있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만난 것은 바로 그곳에서였다. 들은 이야기를 재구성하자면, 대략 둘의 만남은 이러했다. 어머니는 그때, 타지에서 몇년 간의 직장 생활이 너무 힘들어 일을 그만두고 휴식이 필요해 고향으로 내려와 휴식을 취하던 중이었다. 그녀는 집 근처의 산에 괜찮은 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따금 절까지 나 있는 코스를 따라 산책을 하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조용한 산책로에서 ‘캉캉’하는 돌을 깨부수는 소리가 들려와서 신경이 쓰였다. 어머니는 ‘캉캉’하는 소리가 마치 산책을 하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인적이 드문 이 산기슭에서 돌을 쪼개는 소리가 문득 궁금해진 그녀는 가던 길을 돌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향했다. 자신의 산책로에서 갈라지는 좁은 오솔길 방향으로 10분가량 걸어 들어가니 점점 나무들이 적어지고 널찍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석양 노을이 지고 있었지만, 아직 길이 무섭거나 그렇진 않았다. 계속 그 소리를 따가 들어가 보니, 그곳에 부처와 한 남자가 있었다. 얼굴의 형태는 아직 완전히 보이지 않았으나 이미 부처의 미소가 석양에 반사되어 충분히 아름답게 새겨질 형상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녀는 집중하며 조각을 하는 그의 뒤에서 조용히 앉아 그와 부처를 감상했다. 심혈을 기울여 조각하는 그의 땀방울이 하나 떨어질 때마다 옷자락의 주름이, 가만히 부처의 형상을 바라볼 때마다 그의 동글동글한 머리카락이 새겨졌다. 그녀는 그런 그의 얼굴에서 부처를 보았고 부처의 상에서 그를 보았다. 그의 얼굴 또한 석양을 비추고 있었다.

어머니는 한참을 아버지와 부처를 보았고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그 시간 무렵에 그를 찾아가 조용히 감상하고 돌아오곤 했다. 그녀에게는 심혈을 기울인 조각이 점점 완성되어 가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하여 수고를 아끼지 않는 그의 등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어깨와 가슴과 무릎이 형태를 완연하게 갖출 무렵, 그 무렵부터는 정을 두드리는 속도가 느려졌고 아버지의 얼굴에도 고민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버지는 어느 순간에 그녀가 조용히 와서 자신과 부처상을 감상하고 가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별로 개의치 않았다. 모든 것을 다 쏟아 내고 있었기에 다른 것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오로지 하나의 일에만 몰두해야 했고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얼굴을 제외한 모든 형태를 바위로부터 덜어내고 난 후에는 머뭇거리게 되는 시간이 많아졌다. 세월과 비바람에 깎인 그 부처의 얼굴은 완전히 기억하나 문제는 그러한 미소를 만들어 낼 자신이 없던 것이다. 만들어 낸다고 하더라도 그때의 뭐라 형용할 수 없었던 감정을 어떻게 담아내야 할는지 고민스러웠다. 그런 고민이 들자 온갖 번잡한 생각들이 온몸과 마음을 휘감았다.

‘어떻게 해야 세상을 감쌀 수 있는 얼굴을 만들 수 있을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때의 불상은 사람이 만든 얼굴이 아니었다. 비바람이 만들어 낸 얼굴이었고 석양의 노을이 만들어 낸 얼굴이었다. 인간의 힘이 아니라 바로 자연의 힘이었고 신의 온화함이었다. 거의 다 완성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크나큰 오산이었다. 이것이 자기 능력의 한계라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그녀는 그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부처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소리를 내서 울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는 그 바위에 손을 대고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그가 울자 덩달아 어머니도 왈칵 눈물이 났다. 내게 말하기를 왜 눈물이 나는 것인지 몰랐다고 했다. 다만 아버지의 울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을 뿐이었다고 할 뿐이었다. 그 느낌 이후에는 그렇게 울고 있는 아버지를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이 슬펐다고 했다.

그녀는 계속 앉아서 그를 방해할까 봐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손으로 닦는 것을 반복하다 피곤했는지 어느새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아직도 계속 바위를 깎고 있는 그를 보았다. 그는 얼굴을 새기고 있었다. 온화하지만 세상을 다 비추고 있는 부처의 눈을 새기고 조금은 낮은 듯하나 세상을 바로 가리키고 있는 코를 새겼다. 그가 새기는 얼굴은 차츰 생기가 돋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자신의 얼굴처럼 변해갔다. 꿈에서 아버지는 그녀의 얼굴을 부처상에 옮겨 새기고 있었다.

아버지는 하염없이 울다 잠든 그녀를 그제야 조용히 고개를 돌려 보았다. 얼마나 울었는지 그녀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었다. 나무에 등을 기대어 잠들어버린 얼굴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길게 드리워진 햇살을 담은 그녀의 얼굴은 예전의 산기슭에서 변을 보다가 보았던 부처의 형상과 닮아 있었다. 형태는 달랐지만, 하염없이 온화하고 세상을 용서할 수 있는 얼굴이었다. 저녁이 가까워지자 그는 공구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그녀를 깨우려 했다. 그녀를 여기서 재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깰 생각을 안 했다. 더 흔들어 깨울까 하다가 그녀의 자는 모습을 계속 보고 싶었다. 온화한 미소를 띤 잠든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한참을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다 결국 마지못해 흔들어 깨웠다. 이미 저녁이 된 상태라 내려가야 할 그녀가 걱정되었다. 잠이 깬 그녀를 데리고 가파른 산에서 내려왔다. 산을 타본 경험이 많지 않았기에 어머니는 잘 보이지 않는 산길을 내려오기가 쉽지 않았다. 자신은 앞에서고 한 1미터쯤 떨어져서 그녀에게 천천히 따라오라고 했다. 한참을 걸어내 내려오던 차에, "아얏!" 하는 소리와 함께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급하게 뒤를 돌아보니 어머니는 울퉁 불퉁한 나무 뿌리에 걸려 넘어져 있었다. 다시 억지로 걸으려고 일어섰지만, 그녀가 힘들어하자 아버지는 도저히 못 참겠는지 쭈그려 앉아 자신의 등을 빌려주었다. 그렇게 그는 그녀를 업고 조심스럽게 어두워진 산에서 내려왔다. 내 어린시절 어머니는 간혹 나를 재우기 전에 가끔 이 이야기를 하면서 그 때 아버지의 등이 마치 산 같았다고 말하곤 했다. 남자라는 이름의 그 산에는 계곡과 같이 팬 곳도 있었고 산의 줄기처럼 높이 솟아오른 곳도 있었다. 그의 등이 어머니의 가슴에 닿았을 때 어머니는 온몸에 전기가 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아버지 역시 등에 안긴 그녀의 감촉이 너무나 좋아 최대한 천천히 내려갔다. 아찔하고도 향기로운 냄새가 계속 그의 귀와 볼과 코를 자극했다. 아버지는 마음 같아서는 그저 이대로 업고 계속 있고 싶었다. 그는 지금 부처를 업고 있었고 부처의 감촉을 느끼며 온 세상에 감사하고 있었다.

사실 발이 완전히 접질려진 것이 아니었기에 부축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산을 걸어 내려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등이 좋았고 그의 등에 업혀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조심조심 길을 내려가는 석공을 보면서 산에서 내려오기 전까지는 절대 이 등에서 내려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어머니는 자는 척, 자신의 머리를 그의 등에 대었다. 등을 통해 자신의 심장인지 아버지의 심장인지 모를 쿵쾅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무래도 자신의 심장에서 나는 소리인 것 같았지만 어떻게 조절할 수 없었다. 그 소리는 아버지가 바위를 깰 때 났던 소리보다도 더 크게 느껴 졌다. 어머니는 자신의 심장 소리와 석공이 바위를 깰 때 나는 소리와 비교한다면 분명 심장 소리가 더 크리라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고 했다. 그 웃음을 참으려다 보니 몸이 움직여졌다. 아버지의 등은 정말 강하고 탄탄했다. 그의 뒤에 업혀 그의 온기를 느꼈다. 그의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바라보았고 그의 어깨와 등을 조심스레 바라보았다. 저녁이라 그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진 못했지만 가까이에서 본 그의 옆 모습을 보며 그에게 키스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멋있고 사랑스러웠다. 어깨는 부처의 어깨처럼 넓었고 등은 참으로 따뜻하고 온화하게 느껴 졌다. 그의 목은 가볍게 키스를 하고 싶을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남자가 아름답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였다.

산기슭을 다 내려오고 나서야 남자의 등에서 내려왔다.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급하게 내려오는 척, 미안한 척을 하다가 더 어색한 느낌이 들게 되었다. 어둠이 그와 그녀의 얼굴을 가려 주었지만, 낮이었다면 분명 둘 다 귀까지 빨간 얼굴에 어쩔 줄 몰랐을 것이다. 서로 가볍게 통성명을 하고 그녀를 집에까지 바래다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자는 웃었고 여자도 함께 웃었다. 집에 도착하자 보내는 것이 너무나도 아쉽게 느껴졌다.

“내일 다시 가도 되죠?”

그녀가 수줍은 듯 물었다. 그전에도 묻지 않아도 계속 갔던 곳이라 새삼스레 물어보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 졌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의 차이점은 그에게 허락받음으로써 단순히 조각과 석양의 풍경의 감상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와 함께 그 석양이 주는 예술 작품 속의 인물이 될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물어보는 게 이상하더라도 꼭 물어봐야 했다. 그것은 그가 나를 인식해 달라는 요구였고 나를 보고 미소 지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기의 이름을 불리기를 바랐다. 그녀의 존재를 그의 의식에 담아 두고 싶었다.

‘혹시나 그가 오면 안 된다고 하면 어쩌지?’

어머니의 요구 속에는 걱정도 숨어 있었다. 마치 좋아하는 것을 고백했을 때, 그 고백이 거절당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과 같았다. 차라리 고백을 안 하면 그저 바라보며 행복할 수 있지만, 고백 후에는 그럴 수 없는 것처럼, 그녀에게는 절대 가벼울 수 없는 질문이었다.

“…네……”

순간의 정적 이후 아버지의 대답은 긍정이었다.

“…다행이다……”

그녀 역시 안도했다. 다시는 못 보고 추억의 일부로 간직해야 할지도 모를 순간을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이제 둘은 전과는 다른 풍경 속에서 지내게 될 것이었다. 전에는 부처, 석양, 그리고 그 남자였다면 이제 그 안에 그녀도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있음으로써 그 풍경은 더 풍성할 것이다. 그와 그녀가 인식하는 것보다도 더….

그녀는 매일 그를 만나러 왔다. 날마다 그와 함께 도시락을 먹었다. 부처의 얼굴에 머리카락 하나가 새겨지고 온화한 미소 하나가 새겨질 때마다 둘의 사랑도 점점 무르익어 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1. 나에겐 그림자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