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내 가족 이야기

연재소설 - 그림자를 찾아서.

by Chris

어릴 적에 간혹 아버지의 일터에 놀러 가는 일이 있었다. 아버지는 불상을 만들고 나서 나날이 그 실력을 인정받아 여기저기 많은 일거리가 들어왔기에 쉬지 않고 일을 할 때가 많았다. 어머니는 종종 아버지가 끼니를 거르기라도 할까 봐 먹을 것을 싸 들고 나와 함께 아버지가 작업하는 곳으로 갔다. 아버지의 일터는 내게는 놀이터나 다를 바 없었다. 수많은 돌이 주변에 널려 있었고 그 돌로 비석 치기를 하기도 하고 깡통 맞추기나 막대기로 작을 돌멩이를 쳐 멀리 날리기도 했다. 우리는 그에게서 조금 멀리 떨어져 그의 등을 보거나 조각이 되는 작품을 감상하기도 했다.

내 기억으로는 우리 가족이 단칸방에 세 들어 살 정도로 형편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 누구보다 화목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여느 가장이 그러하듯, 아버지는 자신이 돈을 많이 못 벌어다 줘서 어머니를 고생시키는 것 같아 무척이나 미안해했다. 그래서 그는 무리하면서까지 많은 일을 맡았고 점점 그렇게 돈을 버는 일에 집중했다. 때로는 자신이 믿는 신께 기도하는 것까지 잊은 채 일을 하기도 했다. 그의 신앙은 그가 망치질 한번 할 때마다, 통장에 돈이 들어올 때마다, 조금씩 줄어들어 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에 대한 핑계는 항상 ‘나와 가족을 위해서’였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항상 걱정했다. 아버지가 몸 상할까 봐 걱정하고 그의 신을 잃을까 걱정했다. 어머니는 때때로 스님이 마지막에 했던 말을 꺼냈지만, 아버지는 그럴 때마다 그 말을 무시했다. 그녀의 걱정 속에는 항상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지나친 걱정이 오히려 걱정들을 무디게 만들었다. 더 큰 문제는 그러한 걱정 가운데 자신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남편을 걱정하고 아이를 걱정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랄 판이었다.

“여보, 어차피 걱정해서 될 일이라면 걱정을 안 해도 될 일이었을 거야. 걱정해서 안 될 일이라면 걱정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어? 어차피 안될 건데? 주지 스님의 말은 신경 쓰지 말자고. 뭔 일이야 있겠어? 우리 아이는 부처님의 밑에서 태어났고 하나님이 키워 줬으니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아버지는 현명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현명함 말고도 많은 것들이 필요했다. 믿음이나 신앙 같은 것이 바로 그런 것들이었다. 그런 것들은 때로는 살아가면서 뜻하지 않는 어려움을 접했을 때 이겨낼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것들이었다. 내가 태어난 이래로 좋은 일들만 계속되자 분명 그때의 아버지는 그가 믿고 있던 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한때는 그토록 간절하게 믿었던 신이었지만 변치 않는 믿음을 간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도 생각한다. 만약 그때 아버지가 주지 스님의 말을 듣고 절로 보냈더라면, 혹은 그가 믿고 있는 신을 조금 더 믿었더라면 그런 일이 있었을까? 아니면 어차피 그것은 일어날 운명이었기 때문에 언제 일어나도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을까?

어머니가 폐암에 걸린 건 내가 아버지와 함께 작업장에 가서 놀던 바로 그 시절 무렵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감기인 줄 알았던 기침이 멈추지 않자 아버지를 어머니를 데리고 큰 병원으로 갔다.

“폐암 말기입니다.”

의사는 그녀에게 항암치료를 권했지만, 이미 여기저기 전이가 된 상태라 그저 생을 연장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는 나를 쓰다듬고 슬픈 듯 미소만 지었다.

“우리 새끼, 어떻게 할꼬….”

외할머니를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끌어안으며 계속 눈물을 참으려 노력했다.

“할머니, 왜 울어? 엄마 많이 아파? 할머니, 울지 마.”

나는 푹신푹신한 할머니의 배를 끌어안고 할머니의 몸에서 나는 구수한 냄새를 맡으며 울지 말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제 더는 어떻게 할 수 없는 폐암 말기였다. 의사의 말대로 항암치료를 한다고 해도 단지 수명을 조금 더 연장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그 어느 때보다도 즐거웠던 시절도 그렇게 어머니의 폐암 소식과 함께 곤두박질쳤다. 기적을 바랄 뿐이었기에 아버지는 다시 신에게 매달렸다. 모든 것을 버리고 매달렸다. 십자가 앞에서 사랑하는 아내를 살려달라고, 대신 자신의 목숨을 데려가라고 부르짖었다. 하지만 그렇게 밤낮을 기도해도 병의 차도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다가도 신을 원망했다.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주지 스님에게 달려갔다. 아마도 그가 말한 불운이 나와 관계된 것으로 생각하여 입적시키려고 마음먹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머니는 끝내 나를 데려오라고 요구했고 어쩔 수 없이 나를 다시 데려와야만 했다. 그는 일도 다 팽개친 채로 몇 날 며칠을 그렇게 방도를 찾다가 자신이 만든 불상 앞으로 갔다. 수년 동안 비바람을 견딘 불상은 그전보다 더 온화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무엇인가 결심한 듯 다시 산에서 내려와 망치와 정을 가져온 뒤 불상 앞에 섰다. 그녀가 아픈 것도 자신이 고통스러운 것도 모두 이 불상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자신이 불상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그녀를 만나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러한 일들이 없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불상의 머리를 부수고자 정을 들어 내려치려고 했다. 하지만 내려치는 순간 구름 안에 갇혀 있던 석양빛이 온화한 불상의 얼굴을 비췄다. 모든 것을 다 떠안는 사랑스럽고 인자한 그녀의 얼굴이 바로 그곳에 새겨 있었다. 아버지는 그 얼굴을 차마 깨뜨릴 수 없었다.

그는 망치를 떨어뜨리고 망연자실하게 불상을 붙잡고 울었다. 불상은 그의 고통을 아는지 모르는지 생기 넘치던 어머니의 모습으로 변해 석양의 붉은빛을 곱게 반사하고 있었다. 석양의 빛을 머금은 불상은 그가 사랑했고 앞으로도 사랑할 그녀였다.

“견우야. 아비를 용서하렴. 여보 용서해줘.”

아버지는 내게, 그리고 어머니에게 용서를 구했다. 용서해달라는 말이 어린 나를 입적시키려고 했던 것에 대해서 용서를 구하는 것인지 혹은 자신과 아내가 그토록 믿던 신에게 원망과 저주를 퍼부은 것에 대해 용서를 해 달라는 것인지 잘 몰랐다. 혹은 자신이 좀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한 것에 대한 용서일 수도 있었다. 그 나지막한 목소리 속에서 함께 흘러나오는 미세한 떨림이 너무나도 슬프게 느껴졌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향해 나지막한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의 모습은 예배당에서 본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상과 같았다. 이미 몇 달간의 극심한 항암치료로 인해 온몸은 거의 뼈와 가죽밖에 남지 않았다. 머리카락도 이미 거의 다 빠지고 있는 것들도 희끗희끗 해졌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변해 가는 어머니의 모습은 어린 나에게는 너무나도 충격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머니 곁에 있으면 항상 따뜻한 온기와 특유의 향기가 났다. 병원의 냄새로도 지울 수 없는 어머니의 향기가 있었다. 병이 악화되면 악화될수록 그 향기 역시 더 편안하게 느껴졌다. 어머니는 친척이나 지인이라도 온다고 하면 본인의 몸보다도 머리카락이 없는 것에 대해 더 부끄러워 매번 모자를 쓰셨다. 어머니는 여자로서 최소한의 예의라고 했다.

“견우야, 여보. 나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엄마를 용서해주렴. 그리고 견우 꼭 잘 돌봐줘.”

어머니는 앙상한 나뭇가지 같은 손으로 나를 쓰다듬고 아버지를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렇게 서로에게 용서를 구했다. 두 분 모두 남아 있는 나를 안타까워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기도 시간에 좀 더 마리아를 곁눈질하지 말고 열심히 기도드렸으면 엄마가 아프지 않았을 텐데….’

나는 나대로 어린 마음에 선하지 못해서 이러한 일이 생긴 것 같았다. 그랬기 때문에 아버지가 어머니를 위해서라며 나를 강제로 주지 스님께 넘기려고 하자, 조금 눈물이 나려고 했지만, 꾹 참기도 했다.

내 안에는 뿔 달린 사악한 악마가 살고 있었다. 그 악마는 이따금 아픈 엄마보다도 친구들과 나가서 놀고 오라고 속삭였다.

어머니는 이제 움직이는 것조차 불가능한 수준으로 간신히 생을 연명하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느껴오던 그 포근한 엄마가 아니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밖에 없었다. 병원을 빠져나와 교회당으로 달려가 엄마를 되돌려 달라고 기도했다. 나를 용서해주시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살려 달라고 착한 일만 하며 살겠다고 기도했다. 그렇게 기도를 하다가 까무러쳤다. 그렇게 교회당에서 쓰러진 그 날 꿈을 꾸었다.

꿈에서 나는 생전 처음 본 곳에서 여행을 하고 있었다. 어느새 내 몸은 아버지와 같은 크기의 어른이 되어 모래사막을 횡단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낙타 한 마리도 어떤 식물조차 없었다. 강렬한 태양에 온몸이 땀에 젖었으며 타는 듯한 갈증을 이길 수가 없었다. 태양은 너무나도 높은 곳에서 나를 내리쬐고 있었고 얼굴과 등은 땀으로 젖었다. 입안은 말라가는 통에 혓바닥의 까끌까끌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도저히 버틸 수 없는 더위였고 주변에는 쉴 만한 그늘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떨어져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무작정 앞으로만 걷고 있었다. 정신은 잃을 것 같았고 눈에는 아지랑이가 죽음의 형상처럼 보였다. 도저히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았고 그 찰나에 모래에 걸려 앞으로 고꾸라져 버렸다. 뜨거운 모래의 기운이 얼굴을 감쌌다. 눈을 감아 죽음을 기다리는 찰나에 바람이 불고 그 바람을 타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람은 형상이 되어 나를 감싸 안았다. 처음에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형상이었다가 점차 그 모습이 굳어져 사람의 형태를 갖추었다. 그 형태는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예전의 그 모습으로 나타나 안타까운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그녀의 곁에 가까이 가서 그 포근한 품에서 엄마의 냄새를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얼마 후 지나 눈을 떠 보니 병원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없어진 것을 알고 방방곡곡 찾다가 목사님의 연락을 받고 나를 다시 병원으로 데려왔다고 했다. 할머니는 깨어난 나를 껴안으며 내게 열이 40도가 넘었다고 말했다. 몇 달만에 폭삭 늙어버린 아버지의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가득했고 나는 그런 아버지를 조그만 두 손으로 안아 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내가 까무러치고 꿈속에서 다시 내가 알던 엄마의 옛 모습을 보았던 그 날, 그녀는 세상을 떴다. 나는 결국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하고 그렇게 떠나보냈다.

어머니를 그렇게 보내고 아버지는 전과 같이 나를 보고 웃음을 잃지 않으셨다. 나도 항상 아버지 앞에서 웃으면서 전과 같이 행복하게 지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우리 둘은 알고 있었다. 자주 웃으려고 행복해지려고 얼굴을 밝게 해도 그 전과 같지는 않다는 것을. 우리에게 어머니의 이야기는 암묵적인 금기 사항이었다. 어느 누가 법으로 정한 것도 아닌데 아버지도 나도 서로 어머니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1년의 두 번, 오로지 어머니의 제삿날과 생일 날 뿐이었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우리 교회의 마리아가 병문안을 온 적이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아픈 것에 슬퍼하면서도 어머니 덕분에 그녀를 볼 수 있다는 것을 행복해했었다. (이게 다 뿔 달린 악마 때문이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뒤 그것이 죄의식으로 남아 더는 기도하면서 그녀를 지켜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를 보는 것마저도 그곳을 떠나면서 추억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몇 해 지나지 않아 아버지도 사고로 돌아가셨다. 크리스마스 날이었다. 저녁에 케이크를 들고 집에 돌아오는 중에 추돌 사고가 났다. 상대편 트럭이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맞은편에서 오던 아버지를 들이받으며 난 사고였다.

나는 아버지가 내게 내색은 하지 않아도 자주 어머니가 있는 곳에 다녀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신발에 흙을 가득 묻혀 왔기 때문이었다. 그날도 아버지는 나 몰래 어머니를 만나고 오는 길이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어머니를 만나고 돌아오다가 그렇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어머니를 만나게 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문인지 심지어 덤덤하기까지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몸도 마음도 더 커버린 나는, 그저 아버지도 좋은 곳에서 어머니와 함께 행복하게 지내기만을 기원했다.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어머니와 함께 불상이 잘 보이는 곳에 묻었다. 비록 부모님의 종교와는 달랐지만, 그곳이 가장 그들에게 어울리는 장소였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혼자 남은 날 보고 애처롭게 슬퍼해 주었다. 그러나 나는 슬프지 않았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천국에서 함께 지내게 될 것이기 때문에 슬프지 않았다. 하지만 크리스마스는 내게 가장 쓸쓸한 날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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