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 그림자를 찾아서.
눈을 뜨니 온몸에 극심한 통증이 왔다. 특히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 자리에서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아마 떨어지면서 허리를 다친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내가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사실이었다. 분명히 절벽에서 물 위로 곤두박질친 것까지는 기억할 수 있었다. 아마 그 이후로 기절을 한 것 같았다.
‘얼마큼 잠이 들었고 여기는 또 어디일까? 나는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까?’
자리에서 일어나서 주변을 살펴보고 싶었지만,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이를 악물고 일어서려다가 극심한 통증에 다시 누울 수밖에 없었다. 갈증이 났지만, 더 움직이다가는 온몸이 산산이 부서질 것 같았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보니 작은 방 안 이었다. 방안 한쪽에는 조그마한 좌식 책상과 책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또한, 반대쪽에는 무엇인지 모를 문양과 글씨처럼 보이는 것들이 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소용돌이처럼 끊임없이 그려져 있었다. 느낌상, 마치 이곳은 어떤 절의 암자같이 보였다.
‘절의 스님이 날 발견한 것일까?’
근처에 다른 건물이나 집이라곤 본 적이 없으니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컸다. 온몸이 안 아픈 곳이 없었지만 그나마 살아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꽤 깊은 곳으로 떨어진 것 같았는데 어디 뼈가 부러진 곳은 없어 보였다.
도대체 그 밤 중에 나를 향해 달려왔던 존재는 무엇이었을까? 분명 그것은 죽은 내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영혼이었던 것일까? 왜 그리 슬픈 모습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을까? 왜 그렇게 무섭게 내게 다가와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했을까?
정신을 차리고 나니 너무나 갈증이 났다.
“거기 누구 없습니까?”
문을 향해 소리를 질러도 응답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아픈 몸을 굴려 문 쪽으로 기어가 문을 열었다. 문을 여니 높은 산봉우리들과 구름이 보였다. 내가 떨어졌던 산도 그리 낮은 곳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구름이 걸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곳은 온통 주변이 높은 산으로 뒤덮여 있었다. 조금 있자 부엌으로 보이는 옆에서 누군가가 나왔다.
“정신을 차렸는가?”
한 남자가 말을 걸었다. 덥수룩한 수염에 나이는 50~60대쯤으로 보이는 듯한 인물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쯤인가요? 그리고 실례지만 누구신가요?”
그는 나를 바라보며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기는 죽기 전에 의식이 머물다 가는 곳이고 나는 이 집의 주인이며 생과 사의 안내자이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이 집은 주인이라니? 그리고 죽기 전에 의식이 머물다 간다는 말은 또 무슨 말인가? 그럼 난 죽었단 말인가?
천진난만하게 날 바라보고 있는 사람을 향해 물었다.
“혹시 제가 죽은 건가요?”
“아직 완전히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니지. 자네는 지금 그사이의 지점에 있는 거라네. 그대는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된 것인가? 자네는 애초에 그림자가 없구먼.”
그는 나를 보더니 신기한 듯 물었다.
“저는 이런 곳에 오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단지 잃어버린 그림자를 찾기 위해서는 소중한 것들을 따라가라기에, 소중한 존재가 묻혀 있는 장소에 갔을 뿐입니다. 그런 다음 이상한 불이 절 쫓아다녀 도망치다가 벼랑에서 떨어진 것뿐입니다. 결코, 제가 원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에게 항변하듯 말했다.
“어느 누가 이곳에 오고 싶어서 오겠는가? 다 생과 사의 운명인 거지. 소중한 것을 쫓다가 우연히 이곳에 오게 되었다면, 뭔가 우리가 알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이겠지. 이곳에 오게 된 연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겠나? 나는 자네를 저곳 벼랑 아래에서 발견하긴 했네만, 그대를 처음 볼 때부터 이곳 사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지.”
나는 그간에 있었던 이야기를 그에게 했다. 어느 날 그림자가 사라져 버렸다는 것에서부터 벼랑에서 떨어질 때 두 불꽃을 보았는데, 분명 그 안에 내 부모의 형상이 있다는 것까지…. 그는 아무 말하지 않고 나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었다.
“도깨비불 안에 그대의 부모가 있었다는 거지? 무덤 주변에는 도깨비불이 있기 마련이지. 조용히 그대를 찾아온 게 아니라 그렇게 찾아온 것은 분명 이렇게 되어야만 자네가 그림자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었겠지.”
“그렇군요. 그나저나 저를 좀 일어설 수 있게 부축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몸이 너무 아파 혼자서 일어서기가 힘드네요.”
그에게 정중하게 요청을 했다. 하지만 그는 웃으면서 되레 물었다.
“이미 움직일 수 있지 않은가?”
어찌 된 일인가? 좀 전까지만 해도 아팠던 몸이 전혀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날아갈 것 같은 상쾌한 기분마저 들었다. 엎어져 있던 몸을 일으켜 여기저기 더듬어 보았다. 아픈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너무 이상해 고개를 들어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분명 어처구니없던 상황이었지만 그것을 그는 단지 미소만을 띠며 바라보았다.
“좀 전까지만 해도 너무 아팠는데, 이제 몸이 괜찮아졌네요?”
나는 분명 좀 전까지 온몸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자네가 죽기 전에 기억하고 있던 것이겠지. 몸이 낭떠러지로 추락하면서 자네의 몸에 기록된 아픔일 거야. 지금은 몸과 분리된 상태라는 것을 인지한 것일 테고. 생과 사의 중간지대인 여기는 다른 말로 하자면 자네의 꿈의 세계야. 모든 이들은 죽기 전에 한 번은 오는 곳이기도 하지.”
그는 천천히 내게 설명을 해주었다.
“저는 절대 이렇게 되길 바라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살고 싶었습니다!”
나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그에게 말했다. 그림자를 찾기 위해서, 실은 살고 싶어서 불상과 내 부모가 있는 산까지 왔던 것이 내게 죽음을 가져다줄지 누가 알았겠는가? 차라리 집에만 있었더라도 그림자가 없어서 신경이 쓰였겠지만, 결코 죽음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생이 허망한 것임을 진작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나 자신이 이렇게 허망하게 생과 사에 경계에 머무르게 되자 망연자실해졌다.
“자네가 벼랑에 떨어지기 전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았다고 그랬지? 그렇다면 분명 그들은 그대가 그곳에 올 것을 알았다는 것이고 이렇게 해야만 그대가 그림자를 찾을 길을 발견할 수 있음을 알려준 것이 아니겠는가? 아마 그렇다면 자네의 그림자를 찾기 위해 이곳으로 인도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깨비불 속에 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슬픈 눈빛이 떠올랐다. 분명 그 눈빛은 그들이 죽기 전에 미안함을 보일 때 내게 보여줬던 눈빛이었다.
“이곳이 저의 꿈의 세계라면, 왜 전 왜 이런 곳에 와 있게 된 것입니까?”
“눈을 뜨자마자 이 절에 그대가 온 까닭은 그대의 신체가 현재 어느 절 안에 있기 때문이겠지. 사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직 남아 있는 의식의 마지막 기억이 이곳에 머물러 있기 때문일 거야. 혹은 뭔가 잊지 못할 강렬한 기억이 있어서 일수도 있겠지.”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뭔가가 머릿속에서 기억이 나는 듯했다.
내가 떨어지고 의식이 희미해지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나를 발견하여 조심히 둘러업고 절 안쪽에 눕혔던 기억이었다. 아주 희미하지만, 나는 등의 따뜻함을 느꼈고 천장의 무늬를 통해 이곳이 절임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러나 그것이 저 노인인지 혹은 현실 세계에서 나를 발견한 누군가의 형상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바깥세상에서도 그대는 지금과 같은 장소에서 누워 있을 걸세. 운이 좋다면 병원으로 이미 옮겨졌을지도 모르지. 아마 치료 중에 그대의 의식이 약간 돌아올 수도 있을 걸세. 그러나 현재로선 의식이 그렇게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완벽하게 돌아올 수는 없으므로 그저 바깥세상을 그대의 눈으로 바라보는 정도밖에 되지 않을 걸세. 그저 지금 그대 눈에 현실의 창이 되어 그저 환상을 보듯, 보이게 되는 것뿐이겠지. 그러니까 눈앞에 갑자기 환상처럼 다른 세상이 보이더라도 놀라지 말게.”
지금이 환상 같은데, 저 노인이 바깥세상을 환상이라고 말하니 이상했다. 어쨌든 의식이 연결되더라도 현재로선 움직일 수 없다는 것, 눈앞에 현실 세상이 갑자기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림자를 찾아야만 이곳에서 나갈 수 있는 것입니까?”
“그 그림자가 그대와 함께하기를 원한다면 아마 나갈 수 있겠지. 그러나 그림자가 이곳에 남기를 원한다면, 어쩔 도리가 없네.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자네가 이 세상을 벗어나려면, 그림자를 찾는 게 우선이야.”
그 말을 끝으로 한동안 말이 없던 그가 다시 나를 바라보며 무엇인가 다짐을 한 듯 말을 했다.
“자네는 이제 나와 그림자를 찾는 여행을 하게 될 걸세. 그대의 그림자는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해. 이곳은 자네 무의식에 존재하는 세계임과 동시에 육신을 떠난 그림자가 살아가는 세상이기 때문이지. 사람들은 죽기 전에 생과 사의 경계인 이 세상에 그림자를 반납한다네. 그 그림자는 이곳에서 그대의 모습으로 살아가지.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그대의 모습을 한 존재를 본 적 있는지 단서를 찾아가며 그 그림자를 붙잡을 거야.”
“그럼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여기서 기필코 빠져나가고 싶습니다. 나가서 좋은 사람도 만나고 결혼도 하고 저도 행복이라는 것을 맛보고 살고 싶습니다. 남들이 누리는 행복이라는 것을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고 이렇게 끝날 수는 없습니다.”
“자네는 우선 이곳에 적응할 훈련이 필요해. 이곳은 그대의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그 모든 것이 존재하는 세상이야. 그대를 비롯하여 죽은 자를 위한 곳이기도 하지만, 그대가 기억 속에서 깊게 묻어버린 것이나 잃어버린 것들을 위한 곳이기도 하지. 그러니 이 세상에 이상한 것이 나오더라도 절대 놀라지 말게. 그것들은 다 그대를 위하여 한때 존재했던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