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여정의 준비

연재소설 - 그림자를 찾아서

by Chris

내 나이 이제 막 인생의 중간을 이르렀건만 이렇게 허망하게 죽음을 맞이할 줄 몰랐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죽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살아 있는 것도 아닌 상태로 살아갈 수는 없었다. 이 상태에서 다시 그림자를 데리고 삶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얼마나 먼 여정이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림자를 만나면 진짜 돌아갈 수 있을까?

“이 세계는 자네 무의식의 세계이기도 하지만 신화의 세계이기도 하다네. 자네가 무의식적으로 보고 자라온 것을 토대로 구성된 세계이기도 하지만 자네의 오랜 조상 때부터 여러 그림자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이기도 하지. 그러한 정보가 때로는 의식 세계로부터 넘어와 새로운 창조물들을 세상에 선보이기도 하는 것이라네. 이 세상은 자네의 의지대로 직접 변화시킬 수 있는 게 사실 많지는 않아.”

그는 이 세계가 나라는 인간이 무의식 속에서 만들어놓은 세상이면서도 그저 방관자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의식의 세계에서 넘어온 수많은 기억이 이곳을 형성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것에 대하여 나 자신이 이곳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나는 현실에서도 그리고 이곳에서도 나약한 존재였다. 내 무의식 세계의 주인은 나 자신이었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마음대로 조정하거나 망가뜨릴 수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 이렇게 이 사막 위에서 힘들어하지 않을 것이었다.

이 넓은 세계가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마치 우리의 실제 세계를 그대로 갖다 놓은 듯한 것도 신기했지만 지금 눈 앞에 펼쳐진 사막의 모습도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주변을 구경시켜주겠노라고 그와 함께 산에서 내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눈앞이 끝이 없을 정도로 막막하게 펼쳐진 사막을 건너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산 아래는 사방이 다 사막이었다. 사부는 그림자를 찾기 위해서는 이 사막을 건너야 한다고 말했다. 사막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다못해 선인장이라든지 죽은 동물의 사체라도 있어야 하는데 주변에는 그저 황량한 모래와 자갈 그리고 죽은 나뭇가지뿐이었다. 어차피 이제는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그를 따라 사막을 건널 수밖에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무사히 이곳에서 살아나가고 싶었다.

여행을 떠나려면 저 사막을 지나야만 했다. 집에 돌아가 간단히 짐을 챙겼다. 어차피 빈손으로 이곳에 도달했기에 가진 거라곤 없었기에 그가 준 옷가지 몇 벌만을 챙겼을 뿐이었다. 이곳이 무의식의 세계이기 때문에 먹을 것도 필요 없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내 배고픔을 느꼈다. 그는 먹을 것에 관해 별로 걱정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필요한 곳에 먹을 것이 있다는 것의 그의 말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에도 불구하고 사막에 도대체 먹을 것이 있을지 의문이었다.

“이 세상은 우리에게 적절한 순간에 먹을 것을 제공할 것일세. 자네가 또한 이 세계의 주인인데 무엇을 걱정하는가?”

그가 웃으면서 말을 했다. 하지만 믿어지지 않는 것이 지금 나는 제 몸 하나 간수 못 하는 어리석은 인간이었다. 잘못하면 사막에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무의식의 세계에서 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 영향을 미치는 서로 다른 세계라면 의식에서 죽으면 무의식의 세계에도 분명 어떠한 일이 생길 것이었다.

“이 세계에서 죽게 되면 어떻게 되나요?”

며칠 먹을 양식과 음료를 준비하면서 그에게 물었다.

“죽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군. 혹자는 의식세계에 영향을 미쳐 죽는다는 말도 하고 또 다른 이들은 다른 누군가의 무의식의 세계로 이동한다는 말도 해. 완전히 소멸하여 영원한 무로 되돌아간다는 말도 있어. 하지만 자네의 경우는 분명 이곳에서 죽으면 의식의 세계의 자네의 신체에도 영향을 미칠 걸세.”

채비를 다 마치고 다음 날 출발하기로 했다. 저녁이 되자 방안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문득 어릴 적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떠올랐다. 남들 앞에서는 하하 호호 항상 웃는 얼굴을 유지하려 노력했고 무의식중에도 밝은 모습이 많았지만, 가슴 한쪽에는 항상 공허함이 잇따랐다. 그러한 공허함이 극대화되었을 때 실제로 손목으로 그으려고 칼을 든 적도 있었다. 붉은 피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면 끝까지 그었을 것이다. 하지만 손목에 칼을 대는 순간 그 틈 사이로 새어 나온 붉디붉은 피를 보니 두려움이 들었다. 칼을 베었을 때의 아픔과 붉은 피에 대한 공포감이 온몸을 휘감았고 그다음 행동을 도저히 실행에 옮길 수 없었다. 때로는 고통이 긍정적 효과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게 되었다. 고통에 대한 감정이 없었더라면 분명 그 자리에서 손목을 그었을 것이었다. 물론 그 이후에 다른 죽음도 생각해 본 적은 있었지만, 그때처럼 실행에 옮겨보진 못했다. 그러한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극적인 변화를 주지는 않았다. 죽지도 못하고 간신히 삶을 살아갔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마자 산을 다시 내려와 사막에 발을 디뎠다.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모래사막이라니 이상했다. 마치 이 산만 신의 보호를 받는 듯 멀쩡했고 주변은 온통 모래와 자갈뿐이었다. 그 산은 마치 바다 한가운데 고립된 섬과도 같았다. 바다의 푸른색이 미지에 대한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듯이 끝없이 펼쳐진 황갈색 사막 역시 인간에게 한없는 경외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생이 존재하는 곳을 벗어나 아무것도 없을 듯한 황량한 미지의 곳으로 발을 디뎌야만 했다. 그곳에 내가 찾는 것이 있을 것이라 믿으면서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었다.

“제 무의식에 이렇게 거대한 사막이 있다니 믿어지지 않네요. 저는 사막을 가본 적도 없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요.”

“이곳에서 의식의 기억이 직접 반영이 되는 것은 많지 않지. 여기는 자네가 느꼈던 공허함이나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서 만들어지게 된 곳일세. 삶이 공허하며 무가치하다고 느끼게 되면 이러한 공간은 늘어나게 되지. 자네는 그런 기간이 많았던 것 같군.”

그는 무표정한 눈으로 나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뜨거운 태양이 정점에 다다를 무렵이 되어 어느덧 산은 자취를 감췄다. 스승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내 앞에서 묵묵히 걸어갔다. 해가 서쪽 언덕에 걸쳐 있을 때쯤 그는 멈추었다. 저녁에 걷는 것은 위험하다고 사막 한가운데에서 쉬고 아침 일찍 걷자는 것이었다. 그의 말을 듣고 평평한 곳에 자리를 쉴 자리를 만들었다.

사막은 저녁이 오면 낮의 삭막함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밤하늘에 가득한 별들은 살아 있을 때 보았던 마지막 별의 모습보다도 더 찬란한 광채를 비췄다. 그 광채 속에서 주변을 돌아다니는 조그만 도마뱀과 같은 생명체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언덕을 타고 넘어오는 바람이 있을 때면 조금은 쌀쌀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이 사막은 얼마나 길게 이어져 있나요?”

넓게 펼쳐진 사막을 바라보며, 나는 한숨을 쉬며 그에게 물었다.

“모르긴 몰라도 사막을 건너는 것까지만 해도 족히 한 달은 걸릴 걸세. 우리는 이 사막에서 몇 곳의 마을을 지나야 하네. 그대의 무의식 속에 거주하는 다른 존재들을 만나 그림자가 있는 곳을 가기 위한 단서를 얻어야 하지. 그렇기 위해선 그림자를 찾아 이곳을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네. 믿음은 항상 중요하고 때로는 대단한 일들을 행하게 하지. 특히 그중에서도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을 줄 수 있는 것은 큰 복이고 능력이네.”

그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자네는 그 믿음 안에서 또한 보고 겪는 것을 또한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네. 그 의심 속에서 확신을 발견하고 확신이 바로 확고한 믿음이 되는 것이니까.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더 위험하다네. 그 믿음이 깨지는 순간 자기 자신이 무너질 수 있거든. 또한, 다른 이들의 의심을 이해할 수도 없어. 오로지 자기 믿음이 옳다는 말만 되뇌며 그 안에서 고립될 수밖에 없다네.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틀릴 수 있음을 의심해야 해. 의심 안에서 좀 더 나은 확신과 믿음을 새겨 나가야 해. 마치 조각가가 돌을 부수고 쪼고 다듬는 것처럼 끊임없이 닦아내야 한다네. 그렇게 하다 보면 광채가 나는 자기만의 조각품이 나타나게 될 것일세. 그렇게 만들어진 조각품은 세상 그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 되지. 합리적인 의심을 하는 것을 잊지 말게.”

그림자를 찾아 무사히 갈 수 있을까에 대해 항상 의심하는 내게 위안이 되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의심하면서 믿음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찾을 수 있을 거라 믿기로 했다. 아니 어쩌면 이 사람과 함께라면 정말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해가 뜨자마자 우리는 다시 가방을 메고 긴 걸음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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