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사막에서

연재소설 - 그림자를 찾아서

by Chris

끝없이 이어진 사막 위에서는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도 있었다. 어떠한 먹을 것조차 보이지 않는 사막에서는 생존을 위해서 서로 뺏고 빼앗길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고 그러한 일에 관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이 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생존을 위해서도 도움이 되었다. 스승으로부터 전해 들은 바로는 사막에는 이러한 말이 전해져 온다고 했다.

‘사막을 지나는 이에게 물 한 잔을 주는 이는 목숨을 구원받을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관용을 베푼다는 것 자체가 목숨을 내놓는 일이었고 물 한잔을 건네는 것은 다른 이의 목숨을 살리는 행위였다. 로마에는 로마의 법이 있듯이 사막에는 사막의 법칙이 있었다. 비록 그것이 성문화 되어 있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자연의 법칙이었고 생존을 위한 약육강식의 법칙이었다. 아무리 이것이 내 무의식의 세계라 하더라도 이러한 사실은 변하지 않았고 사실 내가 이 안에서 법칙을 바꿀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어 보였다. 단지 처한 환경만 의식의 세계에서 무의식으로 변경된 것뿐이었고 이마저도 스승의 말대로 다른 이들의 그림자와 함께 공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의식의 세계를 다른 사람의 그림자와도 공유한다면 왜 다른 사람들이 사막에 나타나지 않는 건가요?”

공유한다고 해서 이 세계에서 다 사는 것은 아니네. 의식의 세계에 있는 사람이 아무리 무의식에 사막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곳에 발을 디디지 않을 수도 있는 거지. 또한, 자네처럼 반식물인간 상태로 어쩔 수 없이 강제로 이 세계로 온 것과 꿈 등을 통해 잠깐 왔다가 떠나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니까.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사실 지금 상태에서는 어떠한 감흥조차 없었다. 마치 비행기를 타고 우리나라에서 먼 오지의 사막지대로 온 느낌이었다. 눈앞에 있는 것은 현실이며 또 현실이 아니기도 했다. 한 가지 명확한 것은 그에 말에 따르면 나는 의식세계에서 분명 어떤 상태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이고 이것이 환상이라고 어찌 말을 할 수 있으랴. 지금 눈 앞에 펼쳐지는 광대한 사막의 전경은 내 무의식의 현실이었다. 사막은 한눈에 들어오지 못할 만큼 거대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그 느낌은 두려움과 동시에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다. 고운 모래사막이 아닌 약간은 삭막한 듯한 자갈들이 펼쳐져 있는 사막 한가운데 나와 스승만이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마치 이 세계에 오로지 우리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으나 자갈과 자갈 사이로 나 있는 길은 평탄하여 다른 누군가도 역시 이 길을 통해 이동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 이 시점에는 고독한 수행자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었다. 그러한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한참을 스승과 나는 아무런 말도 없이 걸어갔다. 처음에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나 싶은 조바심도 났지만 이내 그러한 감정도 사라지고 지금은 매우 편안한 상태가 되었다.

문득 의식세계에서 내 상태가 궁금해졌다. 혹시 식물인간뿐 아니라 어디가 부러진 것은 아닌지, 심각한 상태여서 깨어나게 되더라도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절벽에서 떨어졌다면 부러지거나 다치지 않았다는 보장이 없었다. 뇌가 다쳐 살아서 돌아가도 그전의 상태와 같아지지 않는다면 그림자를 찾는다고 해서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에 미치자 그림자를 찾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단 내 상태를 확인할 방법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한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그렇다면 그림자가 다 무슨 소용인가? 내가 불구가 된다면 그것이 더 문제인 것인데…… 결국 난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태운 것이나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갑작스레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만약 그림자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면 그곳에 가지 않았을 테고 이런 봉변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운명이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그러한 선택을 하게 만든 일들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워졌다. 시간이 가고 점점 어두워지자 눈앞의 사막이 점점 두려워졌다. 어둠이 가까워지면 질수록 그날의 추락 기억이 떠올랐고 어두움과 비례하여 슬픔이 커져만 갔다. 왜 나만 이런 일을 겪어야 하나 하는 억울한 감정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입술을 깨물어 어떻게든 참으려고 했지만 한번 입 밖으로 터져 나온 슬픔을 다시 담기가 쉽지 않았다. 참았던 울음이 어금니 사이로 터져 나오자 스승은 가던 길은 멈추고 뒤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그 덕분에 나는 스승과 부딪힐 뻔했고 간신히 부딪히는 것을 멈추고 나서야 그를 쳐다볼 수 있었다.

그는 말없이 서서 나를 지켜보았다. 아무런 말도 없었지만, 그의 눈동자에서는 내가 왜 우는지를 알고 있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선한 눈빛에 인자함이 묻어 있었고 그 눈빛을 보니 편안함과 동시에 나른함마저 느껴졌다. 그 안에는 아주 순수한 어린아이의 광채가 들어 있었고 어머니의 자애로움도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눈빛만으로도 모든 것을 감쌀 듯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스승님. 저는 어찌 되는 겁니까? 제 몸의 상태며 지금 제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이것을 찾는다고 할지라도 다시 세상에 나가 똑같이 살아갈 수는 있는 건지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혹 어디 하나 불구가 되어서 있으면 어떻게 하죠? 그림자를 찾고 여기를 빠져나간다 한들 몸이 그렇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절망과 노여움이 섞인 목소리로 스승에게 하소연했다. 물론 그가 어떠한 해결책을 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때로는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만으로 해결이 될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스승에게 말하는 것 역시 그런 의미였다. 울음을 그치고 스승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점차 나의 눈은 그의 눈과 코를 지나쳐 그의 입술에 머물렀다.

“어찌 그대는 눈앞에 있는 장애물보다도 앞으로 있을 문제에 대해서 걱정하나? 지금 우리는 이 사막을 어떻게 건너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해보지 않는 것인가? 나와 함께 걸어간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안전하리라 생각하나? 내 자네의 의식의 세계에 대해선 내 뭐라 말할 수는 없으나 지금 이 사막을 건너지 못한다면 영영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명확하네. 살고 싶다면 지금에 집중하게. 자네가 걷고 있는 이 사막도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엄연히 현실이야. 지금을 제대로 이끌어 나갈 수 없다면 미래도 없는 것일세.”

이미 태양은 뉘엿뉘엿 사막의 끝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태양이 아래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강렬하고 붉은빛이 온 세상을 뒤덮었다. 그리고 그 빛이 우리를 비추면서 끝없이 이어지는 그림자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어두움은 더 진하게 번지고 있었다. 밤이 오고 있었다. 우리는 이 근처에서 서둘러 자리를 깔아야 했다. 무의식의 세계였지만 실제로 우리는 실제로 추위를 느끼고 있었다. 추위는 한낮의 더위만큼 강하게 느껴졌다.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에서 수백 년간 오로지 그 자리에만 있었을 법한 주변의 나뭇가지들을 끌어모아 불을 피웠다. 마른나무들은 제 역할을 찾는 양 활활 잘 탔고 우리는 서로 그 불 하나만 의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옷을 몇 겹 껴입고 침낭 안에 들어가 있어도 싸늘한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수 없이 많이 떠 있는 별들을 보니 의식의 세계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무덤 옆에 누워 하늘을 바라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와 같이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하늘 위에는 수없이 많은 별들이 있었고 저 별들은 의식세계와 비슷한 모습을 띠고 있었다. 문득 저 별들이 의식세계와 무의식 세계를 연결해 주는 하나의 다리와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의식의 세계에서도 저 별을 보면서 꿈을 노래했었고 이곳에서도 무엇인가 희망을 찾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별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은 오래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네. 고대의 위대한 사람들은 별들의 대화에 항상 귀를 기울였어. 과학이 발달하면서 아무것도 그것들은 우주의 먼지거나 행성 따위라고 했지만, 행성 이상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그대의 무의식 범위를 더 넓게 확장해주는 것이기 때문이지. 그 안에 실체가 무엇인지는 때로는 중요하지 않아. 단지 중요한 것은 네가 그것을 보고 상상할 수 있느냐라네. 별이 없었다면 이 세상은 죽음과 같았을 거야. 별 아래에서 우리는 멋진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네. 별자리는 우리의 꿈이야. 별이 있다는 건 그래서 멋진 일이지. 자네의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별을 보는 법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어. 어둠은 때로는 두려움을 느끼게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많은 것들을 담고 있다네. 그중에 하나는 빛에 관한 신비로움과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감사함이지. 삶의 절반이 빛이고 또 절반이 어두움인 까닭은 바로 거기에 있다네. 변할 수 없는 진리지. 그러나 빛이 세상에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 어두움은 자네 안으로 숨어버릴 거야.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에는 밝음보다 어두움이 드리워지겠지. 의식세계의 빛이 많을수록 무의식에는 어두움이 많아지는 법이라네. 만물의 창생 원리이지. 빛이 강할수록 어두움은 더 강해질 수밖에 없어. 그래서 우리는 어두움을 안고서 늘 그것을 경계하면서 살아가야 해.”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어두움을 느끼면서 우리는 잠이 들었다. 잠이 들면 의식으로 다시 귀환하기를 바라면서 별을 향해 기도했다. 저 별이 보이는 곳에는 아득함이 느껴졌고 문득 불상의 바래진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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