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 그림자를 찾아서
‘이곳은 현실인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저 보이는 것이라곤 그리 높지 않은 흰색의 천장뿐이었다. 의식은 또렷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병원인 건가?’
직감적으로 이곳이 병원임을 눈치챘다. 눈의 초점이 맞지 않아 의식적으로 맞춰보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어떻게 올 수 있었지? 아까까지 꿈의 세계에 있었던 내가 올 수 있었던 것은, 잠들었기 때문인가? 나는 병원에는 무사히 도착했나 보네. 사부님은 다시 이곳으로 돌아가려면 그림자를 만나야 한다고 했는데, 그렇지 못해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인가?’
갑자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가 내게로 다가왔다.
‘누구지? 눈을 돌릴 수도 없고 초점을 맞출 수도 없으니 누구인지 모르겠네. 느낌으로는 여자인 것 같은데….’
몸에 감각은 없었으나 그 사람이 왠지 팔을 주물러 보고 몸을 더듬어보는 것 같았다. 간신히 이 사람의 존재를 알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이불을 덮어주면서 몸을 가깝게 들이댔을 때였다. 그녀의 목이 내 시선에 닿는 곳까지 오자 그녀의 목에 있는 십자 목걸이를 볼 수 있었다. 그 작은 목덜미에서 중력에 이끌려 아래로 떨어지는 흔들리는 작은 금목걸이가 흐릿한 초점으로 인하여 여러 개로 보였지만, 제법 매혹적인 느낌이 들었다. ‘누굴까?’ 그녀에 대한 단서는 그것뿐이었다.
소리도 들리지 않고 몸에 어떤 감각도 없었다. 감각으로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런데도 그녀가 날 주무르고 있을 때는 감각 밖의 느낌이 들었다. 명확하지 않지만, 뭔가 알 수 있는 듯한 직감이었다. 그녀는 한참을 나를 바라보는 듯하더니 잠시 후 그 방을 떠났다. 점점 내 의식은 다시 흐려졌다. 어떻게든 의식이 흐려지는 것을 막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눈을 뜨자 다시 황량한 사막이었다. 흐릿한 현실과는 달리 선명하게 보였다. 모닥불을 중앙에 두고 내 맞은편에는 내가 사부라고 부르기로 한 그 노인이 아직도 잠들어 있었다. 더는 잠이 오지 않아 앉아서 가만히 생각을 해 보았다. 흐릿한 눈으로 바라본 그녀의 목덜미와 목걸이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이 되자, 길을 나설 채비를 할 무렵 나는 더는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그에게 물었다.
“사부님, 현실에 다녀온 것 같습니다.”
그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꿈을 꾼 게로구먼….”
그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다가 이윽고 나를 보며 말했다.
“자네가 말하는 현실은 그저 여기선 꿈일 뿐이지. 꿈을 꾼 것일 뿐이야. 그림자를 찾아 나가기 전까지는 자네는 그저 꿈만 볼뿐일세. 그것이 현실인지 그대가 그저 바라는 꿈인지는 알 수 없다네. 어쩌면 이곳이 진짜 현실일지도 모르지.”
나는 그곳이 현실일 것이라고 확신에 찬 듯 말했다.
“현실일지도 모르는 그곳은 분명 병원이었습니다.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고 눈동자를 굴리거나 말을 할 수조차 없었지만,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어떤 여자를 본 것 같습니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는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그녀는 목걸이를 차고 있었습니다.”
그는 조용히 나의 말을 듣고 있었다.
“나로서는 그것이 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네. 그저 그 모든 게 단지 그대가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지.”
“사부님은 그러면 현실일지도 모르는 반대편에 대한 꿈을 꾼 적이 없습니까?”
“이곳에 오는 이들은 십중팔구는 망자들이야. 이미 육신을 잃고서 그림자를 이곳에 두고 떠날 뿐이네. 우리는 자네처럼 육신이 있지 않아. 돌아갈 곳이 있지 않기에 이곳에 뿌리를 박고 살아갈 뿐이지. 이곳이 현실이야. 이곳을 보게나. 저 세상과 다른 게 무엇이 있지? 우리도 꿈을 꾸지. 이따금 자네가 살던 세상을 떠올리기도 해. 그러나 이곳에 존재하는 대부분이 사람들은 육신의 기억을 잃어버리고 이곳에 도착한다네. 기억은 육신 안에 저장된 것이기 때문이지. 우리에게는 자네가 말하는 육신이 없기에 기억을 하기 어렵지. 그래서 이따금 육신을 가지고 살았던 시절에 남아 있던 기억의 잔상이 꿈에 나타나더라도 그것이 자네처럼 진짜 그것이 현실이라고 믿기란 쉽지 않다네.”
“그런데 스승님은 어떻게 이러한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그는 조용히 나를 바라보더니 이야기를 꺼냈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일세. 그때에도 자네처럼 그림자를 찾으러 온 한 여인을 발견한 적이 있네. 그녀는 이따금 저 세상에 관한 이야기를 내게 해 주었지. 말했다시피 우리는 그곳에 대한 기억이 없기에 그녀가 하는 이야기는 그저 그녀의 머릿속에서 지어낸 이야기 정도로 치부했을 뿐이었네. 그러나 그 이야기가 너무나 생생하고 재밌었기에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었지. 이따금 그녀도 꿈을 꾸었다네. 꿈을 꿀 때면 이곳에 대한 꿈이 아니라 저 세상에 관한 꿈이었지. 그녀 역시 그것이 현실이라고 주장했다네. 그리고 돌아가기 위해서는 그림자를 찾아야 한다고 했어. 자신의 세계에서 그림자를 잃어버렸을 때, 누군가 자기에게 ‘그림자를 찾으라’라고 말했다는 거야. 그녀는 그는 뒤쫓아 그림자가 있는 곳에 대한 단서를 찾게 되었고 결국 이곳에 왔다고 했지. 나는 그것을 믿을 수 없었네.”
“'그림자를 찾으라'라고 누군가 말했다고요?”
나는 깜짝 놀라서 그에게 되물었다.
“그렇다네. 그 말에 이끌려 그녀는 이곳으로 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다시피 했다고 말했지. 그리고 꼭 찾게 도와달라고 내게 간곡히 부탁했네.”
그러나 나는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 정도로 치부했을 뿐이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일이 있어서 홀로 마을로 내려왔을 무렵, 그녀와 똑같은 모습을 한 존재를 우연히 발견했다네. 그 모습이나 행동은 같았지만, 그 존재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지. 나는 깜짝 놀라 그녀에게 달려갔다네. 그러나 그녀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린 후였지. 그 뒤로는 어떻게 되었는지 나도 모르겠어. 방방곡곡으로 돌아다니면서 그 흔적이라도 찾아보려고 했지만, 누구도 그녀를 알지 못했어.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말이지. 그녀는 떠난 것일까? 나도 모르겠네. 아마 내가 그녀의 그림자를 발견한 것처럼 그녀 역시 그림자를 찾아내서 이곳을 떠났을 거라고 믿고 싶네….”
그는 잠시 생각에 젖는 듯하더니, 떠날 채비를 하면서 더는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아마 궁금한 게 많을 거야. 하지만, 나로서도 아는 것은 이게 전부일세.”
그녀에 대해서도 궁금한 점이 많았지만, 상념에 젖은 듯한 스승의 모습에 차차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자 궁금한 점이 더 늘어났다. 자신이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이곳에서 이렇게 여행하게 된 것이 누군가의 의지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우연이었던 것인지, 그보다 왜 그렇게 그림자가 사라지게 된 것인지도 궁금했다. 그리고 그녀도 그렇고 나도 그림자를 잃었다면 그림자를 찾으러 온 다른 사람들도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그림자를 만나고 현실로 갔을까?’
그의 말에 어쨌거나 그림자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서는 여행을 해야만 했다. 이 안내자를 따라서 나와 같은 모습을 한 그림자를 만나는 선택지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의 길은 하나뿐이었고 지금으로선 그는 그 길을 따를 만한 안내자였다. 그렇기에 나는 나의 운명을 이 스승에게 맡기기로 했다. 오로지 믿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내 운명은 불안함을 처음부터 안고 갈 수밖에 없었다. 그 불안에 따른 보상은 그림자를 되찾아 현실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를 안내해주는 그는 어떤 보상이 있기에 이렇게 나를 안내하는 것인가? 그의 등을 바라보며 약간의 불안과 의심이 생겼다.
그는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이 걸음의 속도를 줄이더니 내 옆으로 와서 이야기를 건넸다.
“원하는 것을 구하기 위해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날 때, 모든 여행자는 불안을 느끼지. 하지만 어떠한 결정도 없이 소심하게 한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어떠한 것도 얻을 수 없는 법이네. 원하는 것을 얻기 전까지는 우리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네. 그리고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림자의 흔적을 찾아 움직이는 거야. 무엇인가를 얻으려면 그만큼의 수고를 감당해야 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태양이 하늘 위에 머무는 동안은 걸어야 한다는 것뿐이야. 그리고 어둠이 오거든 걸음을 멈추고 쉬어야 하지. 그 길 가운데 우리에게는 하나의 원칙만이 존재하네. 끝까지 그림자를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는 것일세. 그 원칙을 버리지 않을 때, 그가 있는 곳에 이르는 길은 열려 있을 것일세. 포기하지 말게.”
그는 부드러운 미소로 나를 바라보며 말을 했다.
‘만약 현실에서도 이러한 존재가 있었더라면, 나는 그림자를 잃어버리진 않았을까? 그를 만난 것은 운명일까?’
풀리지 않는 의문을 앉고서 우리는 걸음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