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편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ris Apr 02. 2020

'행복하다'의 반대말

'사랑한다'의 반대말은 '사랑했었다'라고 한다. 사랑을 그리워하며 그 사랑 때문에 그 순간 더할 나위 없이 힘든 이들을 생각할 때, 이 말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와 유사하게 '행복하다'의 반대말 역시 다시 정의되어야 할 것 같다. '불행하다'말고 '행복했었다'라고.

'행복했었다'는 많은 생각을 동반한다. '행복했었다'는 말에는 지금 순간이 '불행하다'는 말일 수도 있지만 행복했던 순간에 대한 추억이나 혹은 감사함마저 보인다. 그렇게 따지면 '사랑했었다' 역시 그렇지 않느냐라는 반문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행복했었다'는 내게 그보다 더 애틋한 느낌을 준다.

'사랑했었다', '행복했었다' 같은 과거형에는 그리움이 진하게 묻어 있는 듯하다. 후회 없이 사랑했고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던 기억들이 지금의 순간에는 자신의 폐부를 찌르는 듯한 고통과 슬픔을 준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입에 달고 사는 말 중 하나는 '행복하다'였다. 정말 삶이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뭐랄까 행복하다는 말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행복에 대해 의심을 하고 반문을 하게 된다. 정말 행복한 것일까?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든다. '행복하다'의 반대말은 '슬프다'도 아니고 '행복했었다'도 아니고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공허한 반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 자신의 행복에 대해 의심하는 순간 슬픔이 찾아오고 공허함이 밀려온다. 하지만 해변이 파도를 막는다고 해서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정기적으로 밀려오는 이러한 기분을 막을 수는 없다. '행복하다'는 말의 방파제로 높게 쌓으면 쌓을수록 파도는 해일이 되어 더 많이 무너뜨린다.


그리고 나면 다시 처음부터 쌓아야 한다. 차곡차곡. 차곡차곡. 하나하나. 하나하나.
이번에는 좀 더 꼼꼼히 쌓아야겠다. 제발 무너지지 않기를 기대하면서. 행복에 대한 고민이 또다시 내 삶에 들어와 내가 쌓을 것을 무너뜨리려고 할 때에도 웃으면서 나를 지킬 수 있도록, 그렇게 행복한 추억들을 채곡 채곡 쌓아야겠다. 그리고 이번에는 도움도 많이 받을 것이다. 지금껏 혼자 쌓아온 것들이 이리도 쉽게 무너져 버렸으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쌓으면 좀 더 낫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담아서 쌓아나가야지...


또다시 보이지 않는 파도가 밀려온다.


2013.

--------------------------------------


이따금 오래전에 낙서처럼 그적거려 놓은 글을 볼 때면, '참 많이도 썼구나!'라는 생각과 '내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못한 존재로구나!' 싶을 때도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손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