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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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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Apr 07. 2020

작은 꽃과 거지 이야기 1.

어느 날 마을의 길옆에 작고 예쁜 꽃이 피었다. 그 길에는 많은 사람이 다녔기에, 꽃은 여러 사람주목을 받았다. 그중에는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이따금 길 옆을 허락 없이 가로지르는 사람이나 때로는 가까이 머물다 간 사람들이 있었고 이따금 그들에게 밟혀 상처를 입기도 했다.

길 위에서 뿌리를 박고 있는 자신이 어딘가로 숨어버릴 수는 없었으니 꽃은 어느 때부터 땅만 바라보고 있게 되었다. 자기도 예전처럼 고개를 들어 피어오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아물지 못상처와 더불어 땅을 바라보는 게 너무나 익숙해졌기에 쉽지 않았다.

작은 꽃은 그렇게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있었다. 그 상처 때문에 어두운 마음생겼다. 그래서 누군가 그 꽃을 보고 눈부시게 칭찬이라도 한다면 작은 꽃은 자기는 그렇게 빛나는 존재가 아니라고 속으로 되뇌고 움츠려 들곤 했다.   

  



작은 꽃은 두 가지 마음이 있었다. 그냥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한편으로는 자기를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작은 꽃은 갈수록 분홍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음에도 어두운 마음을 양분 삼아 가시키워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길 한가운데에서 우스꽝스러운 거지 하나가 여기저기 소란스럽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 보였고 또 꾀죄죄했지만, 거지는 늘 밝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거지는 매일 거리 한가운데에서 즐거운 노래를 불렀다. 작은 꽃은 바람결에 들려오는 거지의 노래를 따라 몸을 흔들곤 했다. 그 노랫소리를 들으며 흥얼댈 때면, 어두운 마음 사라지고 잠시나마 밝은 마음으로 햇살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따스한 햇살이 가득한 거리를 여느 때처럼 콧노래를 부르며 활보하다가 길가에 핀 작은 꽃이 있는 근처에 오게 되었다.                




꽃은 그에게 용기를 내어 인사를 건넸다.

“안녕? 거지야? 너는 어떻게 그렇게 즐겁게 노래를 부를 수 있니?”

작은 꽃은 조금 고개를 들어 눈 앞의 거지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요. 뭘 바라지 않으니까 자유롭고 즐거울 수 있는 거죠.”

그는 꽃을 바라보고 활짝 웃으며 이야기했다.

“작은 꽃님은 왜 그렇게 고개를 숙인 채로 있요?”

“사람들이 나를 웃음거리로 만들거나 밟고 지나갈까 봐 두려워서지.

거지는 꽃이 햇빛을 받지 못할까 봐 더 다가서지 않고 가만히 서서 꽃의 이야기 귀를 기울였다.

작은 꽃은 오랜만에 편안하게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가까이 온 사람들은 처음엔 내가 밝고 예쁘다고 좋아했어. 그런데 나는 그렇게 환한 꽃이 아니야. 그저 길가에 핀 들꽃일 뿐인걸. 그런데도 그 사람들은 나에게 계속 밝은 모습을 요구했어. 그리고는 가까이 왔다가 가시를 보고 찌푸리거나 비웃거나 밟고 떠나갔….”

거지는 그동안 상처를 받았던 작은 꽃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다. 꽃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눈앞의 꾀죄죄한 거지 앞에서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신기했다.   



             

작은 꽃은 실은 많이 외로웠다. 꽃은 어느 날부턴가 제 마음을 닫은 채 지내왔다. 그렇게 된 까닭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기에게 친근함을 보이여 가까이 온 사람들이 결국 가시가 돋친 말을 하고 떠났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결국 마음을 닫고 상처 받지 않으려고  시를 잎사귀로 숨기고 있어야만 했다.

“나한테 온 사람들은 그렇게 상처를 입히고 떠나갔어.”

거지는 참을성 있게 작은 꽃이 하는 말을 귀담아들었다. 그리는 연분홍 꽃잎과 푸른 잎사귀와 그 속에 언 듯 비치는 뾰족한 가시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꽃님, 많이 힘들었죠?”

거지는 그런 여린 꽃이 안쓰러운 듯 물었다.

“음……. 그래도 꽃님 잘못이 아니에요.”

“알고 있어. 그 사람들이 먼저 나에게 가시 돋친 말을 하고 발길질을 했으니까.”

“결코, 꽃님의 가시 때문에 사람들이 떠난 게 아니에요.”

“그래. 네 말이 맞아.”

정말  탓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그저 우연히 그렇게 됐을 뿐인 거예요.”

“당연하지. 말했잖아! 너 바보 거지구나!”

"정말 힘들었겠다…."

"……"

"내가 할 줄 아는 거라곤 노래뿐이니 꽃님을 위해 노래 불러줄게요."




거지는 자기가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로 오로지 꽃을 위해 노래를 불렀다. 작은 꽃은 잠시 그 모습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노래가 끝날 때쯤 푸른 잎으로 잠시 얼굴을 가렸고 거지는 그저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실은 꽃은 자기와 가까웠던 이들이 모두 그렇게 떠나자, 자신을 의심했다. ‘실은 모두 내 탓이 아닐까. 실은 내가 먼저 가시로 모두 밀어낸 것은 아닐까? 내 우울한 모습에 그 사람들이 떠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나는 결국 무가치한 들꽃인 건가? 나도 활짝 꽃 피우고 싶은데…….'


작은 꽃은 자기 밑에 드리워진 림자를 한번 바라보고 고개를 들어 햇빛을 가리지 않을 만큼의 거리에서 계속 머물러 있는 거지를 보았다. 그는 그때까지도 그 자리에 있을 것처럼 가만히 작은 꽃 안에 맺힌 물방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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