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마을의 길옆에 작고 예쁜들꽃이 피었다. 그 길에는 많은 사람이 다녔기에, 꽃은 여러 사람의 주목을 받았다. 그중에는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이따금 길옆을 허락 없이 가로지르는 사람이나 때로는 가까이 머물다 간 사람들이 있었고 이따금 그들에게밟혀 상처를 입기도 했다.
길 위에서 뿌리를 박고 있는 자신이 어딘가로 숨어버릴 수는 없었으니 꽃은 어느 때부터 땅만 바라보고 있게 되었다. 자기도 예전처럼 고개를 들어 피어오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아물지 못한 상처와 더불어 땅을 바라보는 게 너무나 익숙해졌기에 쉽지 않았다.
작은 꽃은 그렇게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있었다. 그 상처 때문에 어두운 마음도 생겼다. 그래서 누군가 그 꽃을 보고 눈부시게 칭찬이라도 한다면 작은꽃은 자기는 그렇게 빛나는 존재가 아니라고 속으로 되뇌고 움츠려 들곤 했다.
작은 꽃은 두 가지 마음이 있었다. 그냥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한편으로는 자기를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작은 꽃은 갈수록 분홍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음에도 어두운 마음을 양분 삼아가시를 키워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길 한가운데에서 우스꽝스러운 거지 하나가 여기저기 소란스럽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 보였고 또 꾀죄죄했지만, 거지는 늘 밝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거지는 매일 거리 한가운데에서 즐거운 노래를 불렀다. 작은 꽃은 바람결에 들려오는 거지의 노래를 따라 몸을 흔들곤 했다. 그 노랫소리를 들으며 흥얼댈 때면, 어두운 마음이 사라지고 잠시나마 밝은 마음으로 햇살을 바라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따스한 햇살이 가득한 거리를 여느 때처럼 콧노래를 부르며 활보하다가 길가에 핀 작은 꽃이 있는 근처에 오게 되었다.
꽃은 그에게 용기를 내어 인사를 건넸다.
“안녕? 거지야? 너는 어떻게 그렇게 즐겁게 노래를 부를 수 있니?”
작은 꽃은 조금 고개를 들어 눈 앞의 거지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요. 또 뭘 바라지 않으니까 자유롭고 즐거울 수 있는 거죠.”
그는 꽃을 바라보고 활짝 웃으며 이야기했다.
“작은 꽃님은 왜 그렇게 고개를 숙인 채로 있어요?”
“사람들이 나를 웃음거리로 만들거나 밟고 지나갈까 봐 두려워서지.”
거지는 꽃이 햇빛을 받지 못할까 봐 더 다가서지 않고가만히 서서꽃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작은 꽃은 오랜만에 편안하게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가까이 온 사람들은 처음엔 내가 밝고 예쁘다고 좋아했어. 그런데 나는 그렇게 환한 꽃이 아니야. 그저 길가에 핀 들꽃일 뿐인걸. 그런데도 그 사람들은 나에게 계속 밝은 모습을 요구했어. 그리고는 더 가까이 왔다가 가시를 보고 찌푸리거나또 비웃거나밟고 떠나갔어….”
거지는그동안 상처를 받았던 작은 꽃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다. 꽃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눈앞의 꾀죄죄한 거지 앞에서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신기했다.
작은 꽃은 실은 많이 외로웠다. 꽃은 어느 날부턴가 제 마음을 닫은 채 지내왔다. 그렇게 된 까닭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기에게 친근함을 보이여 가까이 온 사람들이결국가시가 돋친 말을 하고 떠났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결국 마음을 닫고 상처 받지 않으려고 늘가시를 잎사귀로 숨기고 있어야만 했다.
“나한테 온 사람들은 그렇게 상처를 입히고 떠나갔어.”
거지는 참을성 있게 작은 꽃이 하는 말을 귀담아들었다. 그리는 연분홍 꽃잎과 푸른 잎사귀와 그 속에 언 듯 비치는 뾰족한가시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꽃님, 많이 힘들었죠?”
거지는 그런 여린 꽃이 안쓰러운 듯 물었다.
“음……. 그래도 꽃님 잘못이 아니에요.”
“알고 있어. 그 사람들이 먼저 나에게 가시 돋친 말을 하고 발길질을 했으니까.”
“결코, 꽃님의 가시 때문에사람들이 떠난 게 아니에요.”
“그래. 네 말이 맞아.”
“정말 내 탓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그저 우연히 그렇게 됐을 뿐인 거예요.”
“당연하지. 말했잖아! 너 바보 거지구나!”
"정말힘들었겠다……."
"……"
"내가 할 줄 아는 거라곤 노래뿐이니 꽃님을 위해 노래 불러줄게요."
거지는 자기가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로 오로지 꽃을 위해 노래를 불렀다. 작은 꽃은 잠시 그 모습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노래가 끝날 때쯤 푸른 잎으로 잠시 얼굴을 가렸고 거지는 그저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실은 꽃은 자기와 가까웠던 이들이 모두 그렇게 떠나자, 자신을 의심했다. ‘실은 모두 내 탓이 아닐까. 실은 내가 먼저 가시로 모두 밀어낸 것은 아닐까? 내 우울한 모습에 그 사람들이 떠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나는 결국 무가치한 들꽃인 건가? 나도 활짝 꽃 피우고 싶은데…….'
작은 꽃은 자기 밑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한번 바라보고 고개를 들어 햇빛을 가리지 않을 만큼의 거리에서 계속 머물러 있는 거지를 보았다. 그는 그때까지도 그 자리에 있을 것처럼 가만히작은꽃 안에 맺힌 물방울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