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노력의 대가는 누가 결정하는가/스타벅스 싸게 즐기기
나의 일상 여행기. (24)
※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예전에는 열심히만 하면 다른 이들이
알아봐 주겠지 싶었지만,
내 가치를 스스로 말할 수 없다면
다른 이들도 내 가치를 알아봐 주지 않았다.
8시쯤 일어났다. 아침의 할 일을 생각하다가 누워서 영어 회화 복습을 좀 더 하고 영어 단어장을 보았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침대에서 나오기가 좀처럼 어려웠다. 온라인으로 아침 기상 모임을 한지도 약 40일 정도 지났는데, 이제 슬슬 약발이 감소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컴퓨터를 켜고 예전에 작성했던 아침 운동 모집 글을 찾아봤다. 지금은 하지 않지만 4년 전부터 작년 초까지 계속 진행해왔던 모임이다. 보통 아침 7시에 했으며 여름에는 6시 30분쯤에도 진행했었다. 이것을 할 경우 좋은 점은 아침에 운동하고 바로 씻을 수 있다는 것이며, 씻고 나서는 멀쩡해진 정신으로 다른 일들을 차례대로 해결할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어떻게든 계속 유지하고 싶었으나 겨울과 봄의 심한 미세먼지 때문에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올해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모집했지만 결국 같은 이유로 포기해야 했다. 이랬던 모임을 다시 시작하려는 까닭은 얼마간 대기 환경을 지켜본 결과 무슨 일 때문인지 미세 먼지가 정상 수치를 유지했기 때문이며, 어떤 방식으로든 정상적인 기상 시간을 유지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모임의 다른 후보군도 있었는데, 역시 마찬가지로 과거에 진행했었던 서양 미술사 토론 모임이나 아침 고전 읽기 모임이었다. 운동모임이든, 아침 독서 모임이든 모두 대체로 성공적이었으며 나의 지적, 육체적 성장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아침을 충실히 보낸다는 측면에서도 너무나 뿌듯했던 모임이었다. 또한 독서 모임을 통해 수많은 사람을 얻은 것도, 함께 동아리를 만든 경험도 행복한 일이었다. 운동 모임 역시 신체의 수양 측면에서 좋았다.
지금 내가 자랑할 수 있는 것들은 대체로 이러한 통해 얻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들을 이끄는 데 따른 책임감이나 참여자에게 기대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느끼는 실망감들이 때로는 큰 심적 부담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런데도 그런 것들마저도 돌이켜보면 배움과 경험의 대상이었다. 이와 더불어 소정의 참가비를 받으며 진행하던 모임은 내 검소한 삶의 경제적 부담을 일부나마 덜어준 것도 사실이다.
운동모임을 글을 다시 올리려고 수정을 하다가 문득 지난번 무료로 진행하려던 단어 학습의 글에 비추천이 4개나 달렸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문득, ‘내가 뭐하러 더 힘들게, 시간을 들여 이런 일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쓰던 것을 다시 모두 지워버렸다.
모임을 준비하는 것은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한 상황에서 어떤 대가 없이 누군가를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것은 즐거운 일이면서 동시에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비용을 받지 않거나 혹은 소정의 비용을 받는 경우 간혹 모임의 가치는 그 비용에 기대어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싶을 때가 있었다.
운동 모임에 관한 글을 지워버릴 때에도, 차라리 나를 알아봐 주고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곳에서 내 가치를 증명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저 모임들을 시작했을 때에도 대학생의 눈으로는 적은 나이가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때로부터 5년 정도가 지났으니 더 적은 나이가 아니다. 그 기간 내 신체와 지적 능력은 더 성장했으며 사회의 물가 또한 증가했다. 본인의 가치는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예전에는 열심히만 하면 다른 이들이 알아봐 주겠지 싶었지만, 내 가치를 스스로 말할 수 없다면 다른 이들도 내 가치를 알아봐 주지 않았다. 참가비를 적게 설정하나 그보다 많게 설정하더라도 참여하는 이들의 숫자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참여자들의 만족도는 오히려 후자가 높다. 나 또한 그렇다.
한 번은 운동모임 초기에 몇 달을 진행하고 나서, 조금은 친해진 한 참가자에게 참가비를 조금 올리면 어떻겠냐고 물은 적이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리고 많이 받을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는 올리면 안 할 것 같다는 식으로 말을 했다. 실제로 올리고 나서 그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게 비용 대비 효율 때문에 그가 포기한 것은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이라고 했지만, 여하튼 그는 더는 모임 참여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올리고 나서 더 많은 사람이 참여했고 나 역시 더 큰 책임감과 노력을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의 가치는 많은 경우 임금이나 소득으로 결정된다. 그러나 임금을 3배, 4배로 받는 사람과 그 사람의 1/2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 사이에서 노동의 가치가 임금과 비례할 것으로 생각하는가? 혹은 내가 한 달에 참가비 명목으로 1만 원 받고 매일 운동을 가르치던 것과 P.T 1회당 5만 원 받고 가르칠 때 운동 효과가 그만큼 차이가 난다고 생각하는가?
사실 경험상 참여자들은 코치의 가치가 5만 원이든, 1만 원이든 자신이 심리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범위, 지불할 수 있는 범위에 있는 것이라면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다. 그리고 5만 원일 때에도 할인받고자 원하고 충분히 저렴할 때에도 할인받고자 원한다. 또한, 허용할 수 있는 범위에서 지불하고선 자신이 충분히 만족할 수 있거나 시장의 통념 안에 있는 가격이라면 다음 지불 전까지는 지불한 비용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 까닭에 시장에서 자율적인 가격 경쟁이 깨지고 담합이나 카르텔이 형성되는 것이다.
가격 설정에서 중요한 것은 명목이며 시장의 통념이다. 어떤 명목으로 그 가격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 비슷한 상품이나 재화가 얼마큼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느냐, 가격이 관련 시장의 통념을 넘어선다면 무슨 까닭에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이런 것들이 고객의 가격 인지에서 중요한 요인이 된다.
사실 학교 게시판은 이러한 점에서는 돈을 벌 목적으로 모집 글을 올리기에는 좋은 장소는 아니다. 나 역시 그러한 점을 알기에 자신의 수양을 위한 장소로서 선택했고 노력에 대한 최소한의, 모임 진행과 운영의 책임 의식과 동기부여를 위해서라도 받아야 할 최소한의 비용을 받아온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자기의 수양보다도 더 필요한 것은 정당한 대가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돈이 필요하다. 과거처럼 최소한 생존을 위한 돈이 다른 일을 통해 나온다면 나는 과거처럼 자기 수양을 위해서라도 기쁜 마음으로 모임을 진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르바이트 외에 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 지금은 나의 실력을 보여주고 그에 따른 대가를 받는 게 최선인 시기가 되었다.
‘더닝 크루거 효과’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과소평가하고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과대평가한다
평소보다 조금 늦게 스터디룸으로 향했다. 가장 열심히 참여하던 진규 님도 학기가 시작하고 바빠져 일주일에 2~3번밖에 참여하지 못하신다. 타인의 일정에 따라가다 보니 점점 내 게으름도 늘어가고 있다. '어차피 자기 수양이 어렵다면 정말 돈이나 벌까?' 계속 이 생각이 머리를 맴돈다. 지난주에 인터뷰한 사장님이 내 이력을 높게 평가해주고 나서 내 가치에 대해 조금은 더 높게 평가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닝 크루거 효과’라고 있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과소평가하고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과대평가한다는 이론이다. "무지는 지식보다 더 확신을 갖게 한다"는 다윈의 말이나 "이 시대의 아픔 중 하나는 자신감 있는 사람은 무지한데, 상상력과 이해력이 있는 사람은 의심하고 주저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한 버트런트 러셀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내 능력에 대해 사실 지나치게 낮게 평가했던 것은 아닐까? 너무 지나치게 부끄럽다고 생각해서 결국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을 주저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조금 더 돈을 받아도 되고 조금 더 자신을 뽐내도 되며 그 덕분에 조금 더 행복해도 되는 것 아닐까?
스타벅스의 자릿세(?)를
지불하기 위한
가장 저렴한 방법
모임이 끝나고 집에서 점심을 때우고서, 문득 어제 상윤이와 함께했던 스타벅스가 떠올랐다. 상윤이는 우스개로 점심 먹는 대신 스타벅스에 와서 커피를 마신다고 했다. 그가 돈을 아끼려고 그러는 것도 있지만, 그 공간이 그에게는 충분히 유용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것이다. 나 역시 어제 그곳에서 그와 함께 있으면서 하루 3천 원 정도의 커피 값이면 지불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것은 커피에 대한 대가라기보다 공간의 사용에 대한 대가였고 어제의 효율 정도라면 충분히 그 대가를 지불할만했다. 그래서 스타벅스의 자릿세(?)를 지불하기 위한 가장 저렴한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첫째는 기존에 자주 이용하던 방법인 온라인 장터에서 기프티콘을 사는 것이었다. 주로 4,100원짜리 아메리카노가 올라오는데 가격은 3,200원 전후였다. 텀블러 할인은 안 되지만 200원을 추가하여 그란데 사이즈로 마신다. 통신사 멤버십이 있다면 200원 추가하지 않고 먹을 수 있으나 알뜰 통신사이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었다. 기프티콘을 활용하는 방법이라 스타벅스 카드나 앱으로 구매하면 주는 별을 모을 수 없다. 참고로 별 12개 적립 시 무료 음료 쿠폰을 한 장 준다.
두 번째는 상윤이가 활용하는 방법으로 스타벅스 카드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그는 5만 원 자동충전을 하고 있는데 충전 시 별도로 할인은 없으나 BOGO 쿠폰 한 장을 준다. 그는 가장 싼 3,300원짜리 오늘의 커피 숏 사이즈를 구매한다. 텀블러 300원 할인이 되며 스타벅스 카드를 활용하여 무료 1 샷 추가를 해서 3,000원에 마신다. 스타벅스 앱의 사이렌 오더까지 활용하면 별이 2개가 적립되므로 6잔, 18,000원에 1잔꼴로 무료 커피를 즐길 수 있다. 무료 커피는 거의 아무거나 톨 사이즈로 제조할 수 있다. 무료로 아메리카노 톨(4,100원)을 주문하는 것까지 고려한다면, 잔당 약 2,300~2,400원가량으로 커피를 즐기는 셈이다. 별 2개 적립 이벤트가 끝나면 12잔에 1잔 무료가 되고 이는 잔당 약 2,700원 정도로 마시게 되는 셈이다. 그밖에도 별 25개마다 들어온다는 BOGO쿠폰까지 고려한다면, 스타벅스 충성고객이라면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세 번째는 이번에 내가 선택한 방법이다. 일단, p~모 사이트나 여러 온라인 장터에서 e-gift를 약 11% 할인 가격에 구매하는 것이다. 우선 5만 원 자동 충전과 비교를 한다면 BOGO쿠폰을 받지 않는 대신 약 5,500원가량을 할인받는 셈이다. 나머지는 상윤의 방법과 동일하다. 2만 원짜리 스타벅스 카드를 17,800원, 약 18,000원에 구매하는 셈이니 3,000원짜리 오늘의 커피만을 마시면, 사이렌 오더 이벤트로 별까지 추가 적립시, 잔당 2,100~2,200원가량에 먹을 수 있는 셈이다. 이 정도 비용은 나쁘지 않은 듯싶어, 이 방법을 선택했다.(요즘에는 텀블러 300원 할인 대신 에코별이 이득이라 별로 적립한다. 더불어 사이렌 오더 이벤트는 끝났다. 그러나 다른 별 적립 이벤트들이 많으니 앱으로 수시로 확인해 보는 게 좋다.)
텀블러와 스타벅스 카드를 활용하여 3,000원짜리 오늘의 커피 숏 사이즈에 에스프레소 샷을 무료로 추가해서 마시니 노곤한 정신이 확 트이는 것 같았다. 오늘의 커피를 검색하면서 알게 된 것은 드립 커피에 에스프레소를 추가한 커피를 레드아이라고 하며 카페인이 엄청나게 높다고 한다. 여하튼 맛도 나쁘지 않고 정신이 번쩍 뜨이기도 해서 당분간 이 방식을 고수하지 않을까 싶다.
조금 있으니 상윤이가 왔다. 상윤이도 나와 같은 방식으로 음료를 주문했다. 숏 사이즈 커피는 아이스가 없고 톨 사이즈 아이스커피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가격이 같아 둘 다 조금은 아쉽게 생각하긴 했지만, 커피보다 공간이 목적이기에 가격만 싸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 글을 보는 누군가는 스타벅스 말고 조금 더 저렴한 곳으로 가서 공부하는 건 어떠냐고 물을 수도 있다. 나 역시 다양한 곳에서 공부를 해봤다. 그러나 내게는 스타벅스처럼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곳도 별로 없었고 위의 가격을 고려한다면 다른 프랜차이즈보다도 훨씬 저렴하며 혹 공간을 쓸 수 있는 다른 저렴한 커피숍과 비교해도 비슷하거나 오히려 저렴한 금액이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싶은 날에도
내 삶은 수많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일기를 작성했다. 끊임없이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오히려 쓸 게 있을까 싶었던 그제였는데, 평소보다도 더 많은 양을 작성했다. 고 카페인 커피의 효과였을까? 고리오 영감을 비롯하여 엄청나게 많은 책을 저술한 오노레 드 발자크의 경우 하루에 커피를 50잔 이상 마셨다고 한다. 칸트나 루소 같은 경우에도 엄청난 커피 애호가였고 조앤 롤링의 경우에도 생활 보조금을 받으면서 매일 커피숍에서 해리포터를 저술했다. 커피가 그들의 글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머릿속에 흐릿한 안개 같은 몽롱함이 좀 전에 마신 레드아이를 통해 걷히는 느낌을 이들도 받았다면, 결코 커피가 주는 긍정적인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게 한자리에서 5시간 정도를 내리 글을 써 내려갔다. 이게 내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까? 마르셸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보면 시간의 흐름과 의식의 흐름을 절묘하게 결합한다. 자신의 어린 시절의 자전적 사건 가운데 하나를 꺼내 거기에 따른 상념들을 의식의 흐름에 따라 결합한 것이다.
처음의 내 글은 프루스트를 의식한 것은 아니었으나 차츰 내 보잘것없고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하루를 더듬어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에 따라 떠오르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주변에서 너무 평범하고 진부하게 볼 수 있는 상품, 레디 메이드들에게 의미를 부여하듯, 나는 무표정한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글을 쓰면서 놀라웠던 것은 저번에도 말한 바 있지만, 매일 같은 삶에도 결코 내 생각은 같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싶은 날에도 내 삶은 수많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히려 무언가를 많이 행위를 한 날보다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싶은 날에 더 많은 의식의 세계를 탐험하고 있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각의 길을 따라서 쓰는 글들은, '비록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행복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리고 어쩌면 보리수 아래에 앉아 끊임없이 명상했던 석가모니나 광야에서 40일 동안 기도했던 예수는 다를 바 없는 단조로운 그들의 삶 속에서 영원에 가까운 의식의 세계를 탐험했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 의식의 길이 너무나 길어 글로 써내기조차 어려운 무한의 세계를 탐험하고 있던 것일까? 정말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와 우주를 보고 있었던 것일까? 그들이 보던 세계는 문자로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의 세계였던 것일까?
하루는 ‘영원’이 되고 영원은 단지 하루 사이의 일이 될 수도 있음을 지금 끊임없이 적는 이 글들을 통해 어렴풋하게 느낀다. 의식의 세계에 존재하는 안개를 걷고 새로운 세상을 글을 통해 창조하는 이들이 새삼 부러워진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나 역시 그렇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새삼 내 발 앞의 안개가 걷히고 흐릿하던 길들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글로써 성공하지 못할 게 두려운 게 아니라 글이 보이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끊임없이 쓰지 못하고 안갯속에서 허둥대다가 주저앉고 말까 두려웠다. 그러나 한없이 이어지는 어제의 글은 적어도 시간이 많지 않은 게 아쉬울 따름이었지, 글이 써지지 않아서 괴롭지는 않았다.
아메리카노 커피에서
'맛있게'라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그렇게 어제의 글을 완성하고 다시 ‘부분과 전체’를 꺼내 들었다.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도 시간이 되면 함께 보려고 가져왔지만, 도저히 시간이 남을 것 같지 않았다.
한쪽에서 음료를 제조하는 종업원들의 "커피 맛있게 드세요!"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문득, 시럽이나 다른 것을 첨가하지 않은 아메리카노를 맛있게 먹은 적이 있나 싶어 생각해 봤지만, 딱히 맛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던 것 같았다. 문득 상윤이는 아메리카노나 오늘의 커피를 맛있게 먹은 적이 있나 싶어 물어보았으나, 그 역시 그리 맛있게 먹은 적은 없는 것 같았다. 종업원들이 매번 일상적으로 말하는 '맛있게'라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물론 맛은 상대적이며, '맛있다'는 사전적 정의는 '음식의 맛이 좋다.'이다. 그리고 '맛'은 음식을 혀에 댈 때 느껴지는 감각이다. 그래서 맛은 상대적이며 주관적인 감각이다. 그런데도 어느 음식의 맛이 있고 없음은 통계적인 측면에서 객관성을 가지기도 한다.
여하튼 커피 음료도 커피가 가지는 독특한 맛에 의해 맛이 있고 없음이 판단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쓴 아메리카노나 오늘의 커피를 마실 때, '맛있다'라고 생각하기보다 '쓰다', '구수하다', '크!'라는 말을 하는데 이를 '맛있다'라고 해야 할 것인가? 분명히 기억을 더듬어 보면 커피에다 대고 '맛있다'라고 한 적도 있을 것이다. 다만, 좀처럼 쓴 커피에 '맛있다'라는 말을 붙이는 게 어색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내가 맛을 잘 모르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습관적, 중독적으로 마시다 보니 혹은 정말 공간 이외의 커피 맛을 중요시 생각하지 않다 보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또한, 생각해보니 어떤 커피숍에서 마신 쓰디쓴 커피에는 인상을 찡그리며 '맛없다'라는 말을 쓴 적도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내 통념에 맛이란 새콤하거나 달콤하여 군침이 돌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담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저녁 시간이 다 되어 상윤이와 쌈밥 집에 갔다. 다른 곳에 비해 비교적 비싼 가격이었지만, 반찬의 가지 수가 10개가 넘고 넉넉한 쌈 채소와 고기를 생각하면 그리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근처 밥집의 가격이 보통 5,500원가량인데, 반찬의 가짓수는 고작 3~4개 정도이고 그것조차 어느 곳에서는 쌈무나 식은 밥 튀김 같은 것을 내놓았다. 그에 반해 여기는 야채와 반찬만 먹어도 배부를 수 있는 곳이었다. 이들이 이렇게 무한정에 가깝게 채소와 음식을 조달할 수 있을까? 이는 아마 이 식당과 더불어 운영하는 식당이 많아서일 것이다. 이 집의 이모는 쌍둥이인데 내가 아는 곳만 해도 샤부샤부 집, 해장국집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술집이나 고깃집도 운영했던 것 같다. 고깃집에서는 상추와 깻잎 같은 게 필수이고 샤부샤부에도 마찬가지로 여러 채소가 필요할 테니 필요한 야채와 반찬들이 공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하튼 그녀들이 후문의 상권을 어떤 식으로 장악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6,500원의 가격에 이 정도 품질과 맛이라면 그 비용을 부담하는 게 아깝지 않다.
어쩌면 난, 가난을
고결한 것으로 착각하고
이를 찬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식사 후 상윤이와 헤어지고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통장에 돈을 확인해 봤다. 지난 2월에 작업을 해주고 받을 급여가 아직도 안 들어왔다. 20일에 아르바이트비가 들어올 때까지는 크게 금전적 문제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한숨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부모님의 걱정과 대전에서 들었던 상현이 형의 충고가 떠올랐다. 그리고 적지 않은 내 나이도 떠올랐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던 것일까?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것이었을까?
후회하지 않을 거라는 최초의 다짐은 통장의 잔고를 보면서 약간의 회의감과 서글픔으로 위축되었다.
가난은 죄인가? 가난은 죄가 아니지만, 나는 부모님 앞에서 죄인이었고, 내 신념 앞에서 죄인이었고, 이따금 남들 앞에서 죄인과 같은 기분이 들도록 했다. 그런 기분은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기 전에 느끼던 공허함이나 불쾌감과 비슷했다. 사실 가난하다는 느낌보다 돈이 넉넉하지 않다, 남들만큼 앞날을 대비하지 않는다는 감정에 더 가깝지만, 이런 생각이 내 무의식 속을 짓누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마음이 약해질 때면, 혹은 오늘처럼 통장에 얼마 남지 않은 돈을 볼 때면, 앞으로도 악몽처럼 나타나 마음을 휘저을 것이었다.
문득 든 생각인데, 어쩌면 난 가난을 고결한 것으로 착각하고 이를 찬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이처럼 스스로 이런 구렁텅이로 몰아넣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득 내 곁을 떠나간 그리운 사람과 가난한 사랑의 노래가 떠올랐다. 어쩌면 난 그 시의 주인공을 동경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필시, 그러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