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의 교양 수준 향상과 TV 채널 트렌드에 관하여

'예능과 교양을 결합한 프로그램이를 인기를 끈 까닭은?'에 관한 답변.

by Chris

예능과 교양을 결합한 형태의 TV 프로그램들이 현시점(참고로 이 글은 2017년 즈음에 작성된 글입니다)에 어떠한 트렌드가 된 까닭에 대해 좀 더 생각을 해본바, 해당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시청자층의 교양 수준의 향상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에는 조금 어폐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다수’의 대중의 전반적인 교양 수준의 향상이 되었다는 데에는 아직도 생각이 변함이 없으며 또한 그것이 TV 예능 프로그램의 외연 확대에 영향이 없었다고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보다 대중이 그러한 포맷을 받아들이는 인식의 폭이 확대되었다고 해야 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급한 것을 다시 들어보았을 때는 그 상황에서 말을 전개하다 보니 이 둘을 제가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말하자면 대중의 인식 영역의 확장과 교양 수준의 확대를 같은 것이라 보고 이야기했으며 이를 통해 상대방이 과거의 교양을 현재의 교양에 비해 떨어지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이러한 대중의 인식 영역의 확대와 교양 수준의 확대는 그릇과 내용물의 관계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릇의 크기가 커지게 되면서 거기에 들어갈 수 있는 내용물의 양도 많아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에 비해 똑같거나 적어질 수도 있겠죠. 그릇의 크기가 커졌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인류의 지식과 경험의 양이 증가하는 것처럼 대체로 사실의 영역에 속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그릇을 받아 교양이라는 음식을 담는 개개인의 수준은 다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릇 크기의 증가가 내용물의 증가로 이어지는가?’라는 것은 분명히 의심해볼 만한 일인 듯싶습니다. 제 발언에서도 저 부분을 혼용해서 쓴 것 같고요. 물론 저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상관관계가 있으며 내용물의 증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국가, 사회, 문화라는 거대한 식당 위에서 어떠한 그릇에 다수의 고객인 대중을 상대로 더욱 큰 그릇을 내놓았고 그 큰 그릇은 그 기준에 부합하기 위하여 자의적으로나 혹은 사회 교육이나 경험 등에 의한 타의적으로나 더 많은 음식을 담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렸었던 것 같습니다.

모임에서 제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바는, ‘의무 교육과 사회의 발전, 시간에 따른 지식과 경험의 축적, 인터넷을 통한 정보와 의견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비교적 소수의 집단이 독점을 해오던 교양의 영역이 대중 다수에게 확산되었고 이러한 대중을 가진 사회는 새로운 형태의 예능 교양 프로그램들을 만들고 또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였습니다.


이러한 말을 언급하기에 앞서 속으로는 에라스뮈스의 ‘우신예찬’을 떠올렸습니다. 그 책이 다른 때도 아닌 16세기에 출간되어, 웃음으로 정치와 종교의 권위에 도전하고, 그것이 많은 독자에게 읽힐 수 있었던 까닭은 그 당시 사회의 교양 수준이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향상되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현대의 트렌드 속에서 대중으로 사는 우리에게도 비슷한 해석이 가능할 것으로 보았습니다.

말하자면, 개개인이 받아들이는 교양의 수준은 서로 다를 수 있으며, 각자가 가지는 교양의 수준은 과거의 사람이 현재의 사람보다 높을 수도 있으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누적적으로 증가하는 지식의 총량은 개인이 아닌 대중의 인식 확장에 기여하고 또한 이것은 특정 계급이 전유하고 있던 문화나 권위마저 그 경계를 허물게 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것은 소위, 통념이나 패러다임으로서 대중 다수에게 영향을 미치는데, 바로 이러한 지식의 외연 확장이 대중이 받아들이는 인식 폭의 확장이 되며 그것을 접하는 대중의 교양 수준의 향상과도 연관된다고 보았던 것이고요.

이 이야기를 하면서 1950년대, 누벨바그 운동이 생각납니다. 아시다시피, 누벨바그의 감독들은 기존의 영화와 다른 여러 변칙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영화를 찍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새로운 시도로서 비판과 찬사를 받았습니다만, 초창기에는 대중으로부터 외면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에 매력을 느낀 많은 감독이 그러한 방식을 이용하기 시작했고 점차 대중의 인식 속에서 자리 잡혔으며 또한 대중에게도 인기를 얻는 작품들이 생겨났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해당 스타일이 영화를 보는 대중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여러 방식으로 훈련되고 그로 말미암아 인식의 영역이 확장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질문을 던져 ‘이것이 대중의 교양 수준의 향상이라 볼 수 있느냐?’라고 할 때, 그에 앞서 몇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첫째는, ‘여기서 말하는 대중은 누구를 지칭하는가?’ 둘째는, ‘교양 수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대중은 영화를 보는 대중일 수도 있고 절대다수의 사람들을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트렌드를 두고 이야기할 때, 같은 사회 문화 속에서 통념을 따르며 비슷한 교육을 받은 다수를 의미하며 누구나 접할 수 있기 때문에 고급 문화, 저급 문화처럼 따로 구분되기 어렵습니다.

‘교양 수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있어서 ‘교양이 해당 분야의 지식을 의미하는 것인가?’ 혹은 ‘학문, 지식, 사회생활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품위를 의미하는가?’에 따른 문제가 있을 것 같습니다.

‘교양을 쌓는다.’라고 할 때, 많은 경우 어떤 특정 교육, 특히 특정 인문학적 교육을 많이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서는, 과거의 인간이 현재의 인간보다 인문학적 지식이 더 많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현대에는 알고 배워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에라도 그러한 소양은 적을 수 있겠죠. 그러나 인식 영역의 확장에 따라 확장된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품위를 갖추고 있느냐라면 교양 수준은 증가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포맷이 과거의 한 시점으로 돌아가 벌어질 경우 물론 그 시대에도 성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가정이 언제나 흥미롭지만, 사실이 아닌 소설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이 역시 특정 시대에 해당 포맷을 가져갔을 때 어찌 되었을 것이라 말하는 것은 상상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생각해보자면, 역사 해석의 문제에서 그 근거가 무엇인가가 중요한 것처럼, ‘대중의 교양 수준이 늘었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나?’, ‘예능교양 프로그램 트렌드와 대중의 교양 수준이 정말 상관관계가 있으면 그 근거가 있는가?’ 대한 의문으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은 연구에 가까워질 것 같아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앞서 에라스뮈스에 관한 언급이 전자의 질문에 대한 저 나름의 생각을, 누벨바그 운동이 후자를 조금이나마 대변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러한 것을 해석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까닭은 우리가 트렌드에 대해 말하고 해석할 때, 그것은 ‘have + p.p’ 구문과도 같은 과거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대중임에도 대중의 수준이 올랐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역사에서와 같이 과거에 발생한, 해석에 타당한 어떠한 사실적 지표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겠죠. 가령, 촛불 집회와 같은 비폭력 집회가 일종의 트렌드가 된 것을 통해 어떤 학자는 이것이 대중의 교양 수준의 향상이라고 해석합니다. 물론 이러한 해석도 예능 교양 프로그램과 프로그램 시청자들의 교양 수준의 향상처럼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말씀드리고 싶은 바는, 이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며, 그 까닭은 우리는 우리를 객관화할 수 있고 ‘제 3자 효과’에서처럼 설득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능 교양 프로그램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대중의 교양 수준의 측면에서 보고자 한 시도는 교양이 새롭게 등장하는 트렌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의문을 들게까지 합니다. 교양이 추구하는 바가 당대의 문화를 이해하는 지식과 소양을 갖추는 것이라면, 그러한 교양을 통해 누군가 기존에 없던 인식의 확장을 꾀할 수 있는 것을 만들고 또한 그것을 다수 수용자가 받아들이거나 혹은 갈등을 줄일 수 있도록 하는 요소로서 작용하게 하는 것이 교양의 한 가지 목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끝으로, 제가 사용한 언어에 대해 생각할 때, 인식의 확장을 좀 더 의미하고자 했다면 ‘교양 수준의 향상(혹은 정확하게는 높아졌다)’이라는 말보다 (인식의 확장보다도 그 말을 꼭 써야만 했다면) ‘교양 수준의 확장’이라는 말이 좀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미흡하지만, 저 자신도 위와 관련된 생각이 뇌리에 남아 글을 남깁니다. 모임을 통해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시고 다양한 생각을 해볼 수 있도록 해주신 xx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제 3자 효과 : 제3자 효과 이론은 사람들이 미디어의 영향력을 평가할 때 일반 사람들에 대한 영향력과 자기 자신에 대한 영향력에 대하여 이중적인 잣대를 사용하는 경향을 말한다. 즉, 사람들은 일반 사람들에 대한 영향력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영향력을 과소평가한다.(위키백과)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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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지 불과 3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그 몇년 동안에 유튜브나 다른 영상 채널의 외연이 엄청나게 확대했다. 그 뿐만 아니라 각 플랫폼의 채널 역시 엄청나게 다변화되었다. 그렇기에 위의 글은 트렌드에는 적절치 않을 것이다. 다만 시청자 층의 교양수준 향상에 관한 부분에 관해서는 생각해 볼 수 있을텐데, 가령 '대중 혹은 시청자의 교양수준 향상이 지금의 프로그램의 다변화에도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보기에 따라 적절한 답변이 아닐 수도 있다.(그럼에도 난 대중의 교양수준 향상과 그에 따른 진부성 측면에서는 위의 답변이 지금도 바로 위 질문에 나름의 답변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글에 관한 배경 설명을 하자면 이렇다. 과거 어느 독서 모임에서 썰전이나 알쓸신잡 등과 같이 예능과 교양을 결합한 형태의 TV 프로그램들이 어떠한 트렌드처럼 여겨진 적이 있을 때, 그 까닭에 관한 질문에 너무도 단순하게, 숙고 없이 답변을 한 적이 있었다. 위의 답변은 모임이 끝난 뒤 그것에 관한 보충 설명으로 따로 해당 모임의 게시판에 남긴 것이다.


당시 이 대화를 통해 반성하게 된 것이 몇 가지 있었는데, 추상적인 것에 관하여 토론을 할 때에는 똑같이 쓰는 단어에도 합의가 필요할 수 있다는 생각과 통념적인 답변 혹은 당연하게 여겨 쉽게 넘길만한 답변에도 '왜?, 정말 그러한가?, 그것을 무슨 근거로 정당화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상대의 '왜?'라는 질문에 깊게 생각해보지 않거나 마땅히 답이 떠오르지 않거나 혹은 잘 모를 때에는 솔직하고 겸손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좀 달라졌을까? 아니, 여전히 나는 부족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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