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편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ris May 19. 2020

모기

단편소설

손바닥으로 내리치자 꽤 많은 피가 벽에 묻어났다. 황급히 손가락으로 흰 벽의 피를 문지르다가 개새끼라는 말이 화들짝 나왔다. 내려친 손바닥을 보니 피 반죽에 뒤섞여 찌부라져버린 모기가 실보다 더 얇은 다리를 파르르 떨고 있었다. 그것이 아마 모기의 마지막 움직임이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미 죽은 지 오래고 손바닥을 뒤집어 그 상태를 볼 때 내 손의 움직임에 따라 잠시 흔들거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손바닥의 핏자국과 시체를 휴지를 뜯어 대충 닦아 내고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흰 휴지 뭉치 속에 쓰레기처럼 남아있는 모기를 다시 보면서 나도 모르게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전에까지 개새끼라 부르던 그 녀석이, 시체가 되어, 그마저도 형체를 알 수 없는 파편이 되자 나조차도 알 수 없는 생에 관한 연민과 슬픔이 밀려들어 왔다. 가식과도 같은 연민일 것이다. 어차피 내일이 되면 잊어버릴, 아니 잠시 뒤에라도 저 어리석은 해충의 동족이 날 가렵게 만들면 난 똑같이 거대한 손바닥으로 죽음 이외의 운명 따윈 주지 않을 것이기에 지금의 연민은 가식일 뿐이다.

네 잘못이다, 이건 모두 내 피를 먼저 빨아먹고 평온한 잠을 설치게 만든 네 잘못이다, 내 귓가에 맴돌며 개새끼처럼 앵앵거리던 네 잘못이다. 씨발놈 모기로 태어나지나 말 것이지. 이건 모두 네 잘못이다.

휴지로는 지워지지 않는 손바닥과 벽에 남은 핏자국을 번갈아 보았다. 혹시 주변에 나의 평온함을 다시 뒤흔들 다른 존재가 있는지를 한 번 더 살피고 불을 껐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았다. 이리저리 뒤척이고 얼굴을 침대에 파묻어 봐도 잠이 오질 않았다. 문득 중이 되면 어떨까 싶었다.

생명은 귀하고 값진 것인가? 그렇다. 모기도 생명인가? 그렇다. 내 피를 빤 모기도 귀한 생명인가? ……. 날개를 뜯고 부리를 잘라내고 사지를 뜯어내어도 시원치 않을, 그래도 누구 하나 잔인하다고 말하지 않을 저 모기도 우리가 언젠가 값지고 귀하다고 말한 생명이다. 제기랄!

세상의 모든 선생이 원망스러워졌다. 그들은 내게 최초의 거짓과 가식을 가르친 존재였다. 그들이 없었다면 난 좀 더 편히 잠을 청할 수 있었을 것이다. 중이 될까? 가식 덩어리 거짓말쟁이, 될 마음도 없으면서! 그리고 중이라고 다를까? 모기에게 피를 내어주느라 등이 퉁퉁 부었다는 이야기나 혹시나 개미라도 밟을까 빗자루로 쓸어 내고 걷는다는 중의 이야기가 있잖아. 중이 되면 적어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파닥거리다가 결국 한쪽으로 누워 입만 뻐끔거리는 물고기나 도살장에 끌려가는 황소 눈깔을 보며 잠시 슬퍼하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면서 먹어버리는 반복의 끈을 조금은 끊어버릴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네가? 네가 중이 된다고? 웃기지 마! 결국, 공상일 뿐이야. 이 새벽이 지나면 잊힐 하루살이 공상일 뿐이야. 너는 내일도 모레도 모기를 죽이고 뼈에서 살을 발라낸 고기를 먹을 테고 다른 생명을 거리낌 없이 죽일 거야. 생명이란 결국 그런 존재니까! 네가 하루살이 목숨에 연민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이들에게 피를 조금 나눠준다고 할지라도 모기는 끊임없이 너를 물어뜯고 욕심대로 배를 채우며 밤낮으로 귓가에서 앵앵거릴 거야. 결국, 죽이지 않고선 못 배기도록 널 미치게 만들고 말걸? 너는 결국 오늘처럼 똑같이 일어나 거대한 공간 안에서 모래만큼 작은 존재를 기어코 찾아내어 피해 갈 수 없는 운명을 선물할 거야! 그리고 나선 또 잠시 생각하겠지! 오늘 했던 이 생각들을.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결국 그 생각 따윈 무뎌지게 될걸? 그렇지 않으면 새벽을 계속 오늘처럼 뜬눈으로 지새우게 될 테니까. 그러니 적당히 올바른 척, 도덕적인 척하라고. 살아가려면 타협할 수밖에 없고 교과서는 교과서일 뿐이니까.

타협해. 어떤 생명은 다른 생명보다 귀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그것이 너를 괴롭히고 사회를 괴롭히고 세상 누구도 함께 공존하길 바라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죽여도 된다고. 박멸의 대상, 그 대상이 너는 아니지만, 세상의 어떤 생명은 심지어 태어날 때부터 그런 운명을 갖고 태어난다고 타협해. 저 모기같은 새끼가 그런 새끼라고 말해. 네 손바닥에 얼룩진 핏자국을 보고 맹세해. 너를 물어뜯어 솟아오른 무덤 자국에 손톱으로 십자가를 그리고 말해. 박멸의 대상이라고. 그러면 네 마음이 편해질 테니까. 못다 이룬 잠을 이룰 수 있을 테니까. 네가 안식에 이룰 수 있는 길이니까.

어머니, 나를 용서하소서. 나는 오늘도 나를 괴롭히던 생명 하나를 과감히 해치웠습니다. 아마 당신도 나를 위하여 그렇게 하셨을 그 하찮은 생명을 내 손바닥으로 해치웠습니다. 그래도 용서해주소서.

모기를 위한 연민이 아니라 결국 나를 위한 연민이었을 뿐이구나. 그저 불쌍하다는 생각은 나를 위한 위로였을 뿐이구나. 나는 아직 착한 사람이라고, 비록 너희를 어쩔 수 없이 내일도 심판하겠지만 나는 실은 이런 생각도 하는 기특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었구나.

그래,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말해 들어 처먹는 존재도 아니잖아. 적어도 내 넓적다리 한 곳에만 빨대를 꽂았더라면 난 그를 용서했을 거야. 그러나 너는 내 팔뚝에도 정강이에도 이마에도 나를 공격했어. 윙윙거리는 소리로 나를 계속 자극하면서. 그건 네 잘못이잖아? 병신같이 힘도 없으면 가만히나 있을 것이지. 덤비긴 왜 덤벼? 네 잘못이야.

차라리 휴지 속에 있던 모기 사체를 방충망에 걸어놔 다른 모기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면 혹시라도 이곳에 와서 괜한 개죽음을 피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난 말만 통하면 매일 내 피 한 방울을 나눠줄 수 있는 의사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 한 방울의 피로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이 싸움은 끝나지 않겠지. 너는 내 살을 뜯고 피를 마시고 나는 너의 생명을 빼앗고. 미안해. 나는 실은 착한 사람이야. 착한 사람이야. 너희들이 개새끼인 거야. 그렇게 생겨먹은 너희들이 문제인 거야.

어둠 속에서 팔을 들어 얼굴을 덮었지만 잠이 오질 않았다. 이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일어나 불을 켰다. 문득 침대 밑에 넣어둔, 지난겨울에 사용했던 난방 텐트가 떠올랐다. 먼지를 털어내고 프레임과 천을 다시 꺼내 침대 위에 설치했다. 한 이십여 분 시간을 들이고 안으로 들어가 지퍼를 잠갔다.

이제 이곳은 나의 영토임을 선언하노라. 이곳에 들어오는 자는 나의 법률로 사형을 명하노라. 이것이 지금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 경계 안에서 나는 그들과 공존을 시도하고자 했다. 그들은 공간 밖에 있고 나는 공간 안에 있다. 나는 이 공간에 존재하며 내 피를 뜯는 자에겐 피의 복수를 할 것이다. 그들에게 선택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눈에 띄지 않게 어둠 속에서 그대로 있을 것, 다른 하나는 지퍼를 닫기 전에 빠져나갈 것. 그 외에 그들에게 존재하는 운명은 거대한 손바닥일 뿐이었다. 억수로 운이 좋다면 텐트의 틈을 발견하고 빠져나갈 수 있겠지. 행운은 존재하는 법이니까. 그러나 대부분은 운명을 피해가지 못할 것이다.

다시 텐트의 지퍼를 열고 불을 껐다. 한번 흔들어 혹시나 안에 존재할 이들이 나가도록 시간을 주고 불을 껐다. 텐트 지퍼를 다시 잠근 뒤, 휴대폰 램프로 경계에 혹시 붙어 있을 녀석이 있는지 감시했다. 이제 내게 평안을 제공하는 이 공간이 그들에게는 죽음만이 존재하는 피비린내 나는 지옥이며 도망칠 수 없는 감옥일 뿐이다. 이 안에서도 이들은 여전히 나를 물어뜯을 것이며 나는 운명을 선사할 것이다. 나의 언어는 이들에게는 알아듣지 못하는 울림일 뿐이며 이들의 언어와 몸짓 역시 내가 알아듣지 못할 행위일 뿐이다. 다만 경계가 생김에 따라 경계 밖의 그들은 날 결코 물어뜯지 못하고 나는 대학살을 멈출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그들을 보면 악의에 찬 감정이 솟아올라 개새끼라고 하고 무의식적으로 손바닥을 들어 내려치겠지만, 그래도 지금만큼은 착한 사람으로서 그들에게 보일 수 있는 선의였고 밤잠을 설치지 않게 할 이득이었다. 이로써 우리의 전쟁은 경계지어진 어둠 속에서 잠시 휴전할 수 있을 터였다.

미안해, 그러나 죽어줘야겠어. 네가 비록 내 피를 빨지 않았더라도. 날 물어뜯은 모기 A가 아니라 너는 모기 B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내겐 다 똑같은 존재이며 이 공간에 계속 존재한다면 잠재적으로 나를 물어뜯을 테니까. 난, 이 공간에서 너와 함께 하길 허용치 않아. 그리고 널 살려줘서 나와 비슷한 다른 이들이 나의 호의로 피를 빨리고 잠을 설치게 될 것을 허용치 않아. 그렇기에 난 너에게 손바닥을 들 수밖에 없어. 비록 내가 착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텐트 안에 붙어 있던 모기 B를 향해 손바닥을 내리쳤다. 이번에는 피가 묻어나지 않았다.

마지막 전쟁을 치르고도 잠이 오지 않았다. 후덥지근한 여름이 오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통풍이 될 수 있는 모기장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여름은 제법 모기가 많을 거 같았다. 다시 잠을 청하려니 뱃속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느 게시판의 취업 글을 보다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