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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May 29. 2020

'노력'이라는 단어에 관하여

나의 주짓수 도전기 21.

노력은 배신하지 않아요.


"형님, 노력은 배신하지 않아요."

매번 나의 큰 지도자가 되어주는 B 군은 그 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확신하듯 이런 말을 했다. 그에게 악수를 청하고 돌아서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노력의 기준이 무엇일까? 마음 자세? 투여한 시간? 강도 높은 훈련? 어떤 해법을 찾기 위하여 계속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

노력이라는 말은 아마 이 모든 것이 결합한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더 정확하게는 안 되던 것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고 반복 연습을 통해 숙달에 이르는 과정 전체일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숙달 내지는 체화의 과정인데, 이 과정을 '노력'이라 부르는 게 정확할 것이다.

저 노력이라는 말에는 마음 자세를 바로 하고 자신이 투여할 수 있는 시간에 강도 높은 훈련을 하고 계속 생각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마음 자세부터 생각하는 것까지는 각자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즉, 중요한 것은 각자의 기준과 그 기준으로 추구하는 목표를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만약, 목표 달성 기준을 이 친구에게 맞추고 노력의 기준은 나 자신에게 맞춘다면 노력이 배신을 할 수도 있다. 이러한 해석은 그가 의미한 바는 아닐 것이다. 아마 저 말을 좀 더 풀어보자면 이것이 아닐까?

“자신의 충분한 노력은 자신의 목표 달성을 배신하지 않아요.”



노력이라는 단어가 주는 함정


노력의 과정은 '학습 - 반복 - 숙달'의 과정을 거치는데,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맞는 반복 숙달이라는 과정을 꾸준하게 이끌어 간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노력하는 어떤 상황을 만드는 것은 이럴 때 효과를 발휘한다. 가령 어떤 목적을 위하여 이루어진 공동체는 공동의 목표를 추구한다. 주짓수 도장에서는 기술 습득과 각 띠에 어울리는 보이는, 보이지 않는 목표들이 존재한다. 이는 개인의 달성 목표가 없어도 존재하는 것이며, 그 공동체에 소속되고 공동체가 이끄는 학습과 반복, 숙달 과정에 따라 집단의 목표를 자연스럽게 추구하게 된다.

노력한다는 말은 성취에 따라 즐거움을 주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 성취 목표가 높아 쉽게 이루지 못하는 것일 때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도 성취를 계속 제공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야 하는데 사실 어떠한 운동 혹은 학습에 진입한 초심자들은 특히 그 기준을 정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목표를 정하기도 쉽지 않고 성취감도 쉽게 느끼지 못한 이들은 결국 쉽게 지치고 지루해하고 이내 포기하게 된다.

당연히 해야 할, 어쩌면 의무라고 할 수도 있는, 생각하지 않고서도 계속해야 할 상황에 계속 참여하는 일은 이럴 때 꽤 좋은 효과를 발휘한다. 잘 짜인 공동의 목표 속에서 참여하면서 '노력하고 있는데'라는 생각을 하지 않더라도 꾸준히 하게 되어 어느 정도의 성과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습관이라도 부른다.

나는 노력이라는 말보다 그 시간에 최선을 다해 즐기기를 좋아한다는 말을 더 좋아한다. 일이 잘 안 풀릴 때, '내가 이만큼 노력했는데!'라는 실망감을 줄일 수 있고 그런데도 그 시간을 최대로 활용하며 즐길 방법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역시 최선을 다한다. 다만, 노력이라는 말이 주는 추상성과 그 노력이라는 말에서 유추하게 되는 인내, 고통, 목표 달성을 위한 괴로움을 연상하기보다 최선을 다해 즐긴다는 말에서 유추하게 되는 즐거움, 행복을 좀 더 유추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사고)는 언어와 그 언어에 따른 연상 가능한 범주에 지배를 받는다.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던 말을 잠시 생각해보자. 즐기는 자는 노력하지 않을까? 나는 그 의미가 위와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즐기는 자도 역시 최선을 다하나, 그는 노력이 이따금 배신할 때를 생각하기보다, 그 자체에 행복감을 느낀다. 나의 동료 B는 노력은 자신을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으나, 생각해보면 노력은 이따금 배신하기도 했다. 어떤 경쟁에서 자기보다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 자신을 이길 수도 있고 때로는 다른 신체적 조건 등에 의하여 압도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자신의 노력은 도대체 무엇이었나?'라는 회의감이나 배신감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즐기는 자에게는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기든 지든 그 최선을 다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울 뿐이다. 실패와 노력의 배신에 괴로워하고 주저앉기보다 다시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즐겁게 도전하게 된다.


재능과 노력의 차이.gif / 노력이라고 생각하면 현타가 올 수도 있겠지만, 오르는 과정 자체를 즐긴다 여긴다면?


나는 그의 말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저 추상적인 말에서 하고 싶었던 진정한 의미를 좀 더 파고들면 "할 수 있을 만큼은 최선을 다하는 것은 자신을 배신하지 않아요." 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도 나도 실은 노력의 괴로움보다 즐거움을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지금이 아닌 심리적으로 흔들리게 될 때, 어떤 마음가짐을 좀 더 고찰해보려고 이 글을 쓴 것이다. 호황일 때는 어떤 해법조차 괜찮던 것들도 불황일 때에는 전혀 다른 효과를 보일 수 있는 법이니까.

그의 왕방울 같은 눈에서 본 살아 있는 그 눈빛과 말은 언제나 나에게 자극이 된다. 언젠가 나도 저렇게 기쁜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알려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그때가 되면 나는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최선을 다해 즐겨요. 그러한 마음가짐은 꾸준함을 이끌고, 결국 당신을 성장시킬 거에요." 이런 말이 좋을까?

이와 더불어 노력이라는 말을 생각할 때, 누군가 내게 "엄청 열심히 하시네요"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사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부끄러워진다. 나는 열심히 하는가? 열심히 하긴 한다. 적어도 도장 안에 있는 시간 동안은 쉬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 그러면 나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는가? 라고 본다면 그건 아니다. 단지 정해진 루틴대로 할 뿐이며 그러한 반복과 숙달의 과정을 즐길 뿐이다. 적어도 '열심히'라는 말을 하려면, 하루에 두세 타임을 하는 나의 선생님 B 군이나 다른 동료들에게 써야 할 말이지, 적어도 나한테 할 말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나한테 한다는 건 진짜 열심히 하는 분들에게 '누累'가 되는 말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이따금 그 말을 들으면 부끄러워진다. 나는 그저 고통, 괴로움, 할까 말까 하는 생각 따윈 하지 말고 정해놓은 시간과 루틴에 따라 어느 장소에서 그냥 정해진 목표를 하되, 성실하게 최선을 다한다. 그저 그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노력'이나 '열심히'라는 말을 생각하는 것보다 즐거울 뿐이다. 아! 바라건대, "이 사람은 진심 노력하고 있어."라는 말보다 "진정 즐기고 있어!"라는 말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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