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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Jun 18. 2020

Stay Hungry, Stay Foolish

나의 주짓수 도전기 22.

"형, 수능에서 거의 다 맞는 학생이 1~2문제를 더 맞으려면 무엇이 필요할 것 같아요?"

대학을 졸업하고 본인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늦게나마 다시 수능을 준비하는 후배 L 이 내게 물었다.

"그것은 능지(能知)의 영역인 거 같아요."

"능지?"

생소한 말을 들은 나는 그에게 되물었다. 

"지능이요."

그는 이따금 이렇게 언어를 꼬아 말하거나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 자신의 지성을 빛내곤 했다. 

"이미 웬만한 유형의 문제를 다 풀어본 사람에게는 다 맞느냐, 한두 개 틀리느냐는 집중력의 차이이거든요. 그러한 집중력은 멘탈이나 능지의 영역에서 오는 거라고 보고요."

"그래?"

"네. 그리고 그것을 이루게 만드는 것은 집요함이라고 봐요."

그는 이에 앞서 자신이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전체 300등에서 수능 보기 전 반 1등까지 갔던 이야기를 잠시 했다. 

"그때에는 절박함이 있었어요. 내가 나를 놀리는 저 사람들, 혹은 나를 무시하는 저 선생 앞에서 내가 노력한 결과를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그 절박함으로 공부를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좀 더 좋은 점수를 맞으려 했다면 절박함을 넘어 집요함이 있어야 했던 거 같아요. 그 절박함은 어느 수준에 이르면 마치 Log 곡선처럼 한계가 있거든요. 자칫하면 번아웃이 올 수도 있고요. 그때부터는 디테일에 집요해야 해요. 모든 부분에서요. 문제에도, 그리고 제한된 시간에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서 어떻게 과목별 시간을 분배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요. 물론 천재 과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서울대를 가려면 집요해져야 한다고 봐요."

그런 말을 하더니 자신이 요즘에는 낮에 전처럼 공부하기보다 퍼질러 쉬고 있다며 웃으며 이야기를 했다. 아마 그는 그 자신에게 채찍질하는 차원에서라도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다 보니 어느 게임과 더불어 주짓수 블랙벨트까지 과정이 떠올랐다.

"형 때, 최고 레벨이 56인 온라인 게임이 있었어. 그 게임이 얼마나 극악이었냐면, 55에서 56이 되려면 레벨 55까지 올리고 그때부터 1을 올리기 위해서 레벨 1에서 55까지 했던 노력이나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거야. 그래야 56이 되는 거지. 그런가 하면, 형 요즘에 주짓수 하잖아? 주짓수의 띠 체계는 흰 띠, 파란 띠, 보라 띠, 갈색, 그리고 검정이 되거든. 그런데 보라 띠나 갈색 띠가 되면 웬만한 기술들은 다 습득을 하는 거 같더라고. 블랙이 되기 위해서는 기술의 디테일이랄까? 그뿐만 아니라 기술의 창의성, 수많은 경험 등등 이 모든 게 결합이 되어야 하는 거 같더라고. 네가 말한 집요함이랄까? 그런 게 있어야 하는 거 같아. 레벨 55에서 56으로 넘어갈 때처럼, 공들이는 시간도 많아야 하는 거 같고. 그게 없으면 검정이 아닌 띠에서 만족해야겠지. 어쩌면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점일 수도 있을 거 같아. 물론 블랙만이 프로라는 소리는 아니겠지만."

문득 그 집요함, 다른 말로 어떤 디테일이나 집요함으로부터 비롯되는 올바른 문제 해결의 창의성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했기에 나는 이러한 말을 했다. 보라나 갈색 띠에 이르는 것이 수능 문제에서 한두 개 틀리는 영역이고 블랙이 한 과목을 다 맞는 영역처럼 느껴졌다. '이제 4개월이 된 흰 띠의 나는 지금부터 어떤 습관으로 주짓수에 임해야 할까?" 물론 블랙을 비롯한 띠에 관한 욕심은 아직 없었지만, 오랜 경험과 노하우가 쌓여 주짓수라는 시험 문제에서 꽤 잘 맞히는 학생이 되었을 때, 그때를 생각하면 무엇이 바른 자세일지 궁금해졌다. 내게 지나친 열정, 절박함은 없었다. 몇 개월간 경험한 이 주짓수는 마치 마라톤과 같아 보였다. 인생은 부모를 죽인 원수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수련을 하는 무협물도 아닐뿐더러, 운동의 노하우를 깨치는 게  단시일에 될 수는 없었다. 수능처럼 2~3년이라는 단기간에 해결하면 끝나는 것도 아니었기에 만약 흰 띠가 처음부터 절박함이나 지나친 열정으로 수련을 한다면, 어느 시기에 번아웃이 되어버릴지도 모를 운동이었다. 자신만의 페이스가 필요했다. 그러나 디테일, 집요함은 다른 문제였다. 그것은 블랙벨트에 이르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겠지만, 흰 띠인 나로서도 내가 배우는 이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즉,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에 이르는 과정이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을 되살려 보면 초등학교 저학년 때 수학에서 올백을 맞는 집요함을 추구하면 고학년 때에도 그 집요함을 보여줄 수 있었다. 즉, 그 태도 역시 습관화하는 게 중요했다. 그리고 그런 습관은 천재가 아닌 이상에야 우직한 성실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프로가 되고 나서도 매일 1000개의 자유투를 던졌다는 농구선수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본 운동을 했다는 운동선수들은 그 지루하리만치 집요한 노력 속에서 디테일이 강화되고 태도가 완성된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한 태도가 레벨 1의 절박한 플레이어가 달성할 수 없는 기본 상태(게임의 status와 같은)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역시 마라톤의 마지막 결승점에서의 경쟁이나 상대를 이겨야만 하는 어느 결정적인 시기나 순간에 이르면 절박함과 결합하여 폭발적인 능력을 보일 것이다. 그렇다. 프로란 평상시에도 집요한 상태를 유지하며, 모든 순간이 아닌 어느 시점에 적절히 절박함을 활용할 줄 안다. 집요함과 절박함은 반대말도 아니고 어느 그릇에 채워야 하는 다른 색깔의 음료수 같은 것도 아니다. 그 둘은 태도로서 어느 특정 시기에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꾸준함 혹은 습관과 결합하면 그것이 그가 말한 능지(能知)가 되겠지. 실로 'Stay hungry'와 'Stay Foolish'가 연결되는 순간이다. 물론 나는 프로가 아닐뿐더러, 취미로 하는 입장이니 hungry가 foolish보다 적다.

"내 경우는 말이야. 내가 조금 나태해진다거나 혹은 조금 지친다 여길 때에는 환경이나 상황을 바꾸는 게 중요하더라고. 그냥 나태해진 상태 그대로 놔두면, 잘 안 하게 되거나 다시 제 궤도로 올라오는 데 시간이 걸리잖아? 중요한 시기에는 조금의 시간도 중요한데, 나중에 다시 정상 궤도로 오거나 결전의 순간에 이를 때 돌이켜보면 그 나태했던 시간을 후회하게 될 수밖에 없어. 그 시간을 어떻게든 줄이기 위해서라도 환경이나 처한 상황을 바꾸는 것이 나한테는 유용했어. 가령 혼자서 운동하기 힘드니까 헬스장에 가고 아침에 일어나기 힘드니까 아침 기상 모임을 했던 것처럼 말이야. 나와 같은 관심사 혹은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눈으로 인식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자신을 자극하는 데 도움이 되니까. 그게 굳이 경쟁일 필요는 없어. 물론 라이벌이 있다면 계속 자신의 상태를 상대에 맞춰 비교해볼 수 있으니까 도움은 되겠지만, 그것이 아니더라도 자기 자신을 점검해볼 수 있는 존재가 있는 곳, 혹은 그런 상황을 만들 수만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 도움이 되거든. 공부든 뭐든 상대를 이기는 것에 앞서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이겨내야 하는 거니까. 도장에 매일 가는 까닭도 그곳에 가면 마치 스위치가 켜진 듯 그 도장 안에서 즐겁게 운동하는 나 자신을 보게 되기 때문이고."

수능까지 4~5개월밖에 남지 않은 그는 잠시 생각하는 듯했다.

그를 떠나보내고 나는 무엇을 위하여 주짓수를 하는지 생각했다. 누군가를 이기기 위하여? 아니다. 멋진 몸을 만들기 위해? 아니다. 그저 그 자체가 즐거웠다. 도장 매트 위로 가서 준비운동을 하고 새우 빼기나 기본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하고 워크아웃을 하고 기술 훈련 시간에 충실히 연습하고 롤링(대련) 시간에 대련하거나 배웠던 기술을 보충 연습하며 내 시간을 충실히 채우는 것이 즐거웠다. 그 시간을 주짓수라는 의미로 채워나가는 그 자체가 즐거운 것이다. 실로 foolish이며 hungry의 영역에서는 누구를 이겨보려거나 띠의 색깔을 바꿔보겠다는 욕심보다도 그저 기술을 잘 배우고자 하는 조금의 욕심만 있을 뿐이다. 그 밖의 배고픔은 아직 고려하지 않은 운동이다. 그러나 언젠가 때가 되면 hungry, 어떤 갈증이나 욕심이 더 생기겠지. 지금으로서는 공허나 나태를 지워나가고 어느 한계까지 밀어붙이려는 그 자체가 즐거울 따름이다. 문득, "좋은 취미 생활 가져가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던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실로 좋은 취미가 되고 있다. 부디 바라는 건, 내 앞에 이 취미를 막을 상황이 생기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그저 hungry, foolish에 앞서 stay 만이라도 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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