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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Aug 12. 2020

비도복(No Gi) 주짓수를 시작하다

나의 주짓수 도전기 23.

그림 출처 : 위키 백과 https://en.wikipedia.org/wiki/Submission_wrestling


노기(No Gi, 비도복 주짓수)를 시작하다.


“사범님들과 상의 후에 화요일과 목요일에 노기(No-Gi)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쓰!" 수업이 끝나자 관장님은 우리에게 이 말을 꺼내고 모두와 악수를 하고서 수업을 마무리했다. 기 주짓수만 가르치는 줄 알았는데, 노기를 배울 수 있다니 내심 기뻤다. 그러나 모든 관원이 나처럼 기쁜 건 아니었고 일부는 기 주짓수 시간을 빼서 노기를 하는 것에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입관 시기가 비슷한 Y 군이 그러했다. 그는 "기 주짓수도 잘하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상황에서 노기를 배운다는 게 아쉬워요."라고 말했다.

인터넷에서는 노기 주짓수를 검색하면 몇 가지 논란거리가 뜬다. 그중에 하나는 어떤 주짓수가 좀 더 실전적이냐 하는 것이다. 이 논란에서는 계절이나 상대가 입는 옷에 따라 다르다고 결론을 내리는 듯하지만, 실상 싸움을 위한 주짓수를 하는 게 아니라 축구나 게임과 같은 평생을 함께할 좋은 취미, 스포츠로 접근하는 나로서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차라리 기술의 다양성 측면이나 MMA와 같은 격투기를 위한 운동으로 무엇이 좋은가를 따진다면 모르겠다. 그러나 보통 사람이 맨땅에서 누군가와 치고받고 할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현실에서는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노력하는 게 첫 번째이고 설령 그런 일이 있다면 나라면, 경찰에 신고를 먼저 할 것이다.

내가 노기 주짓수를 배우고 싶어 한 까닭은, 그것이 내가 오랫동안 해나갈 주짓수라는 나무의 두 거대한 줄기 중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마치 영어를 배우고자 할 때, 회화만 할 줄 알고 읽기나 쓰기를 할 줄 모른다면 영어의 전체를 모르게 되는 것처럼, 기 주짓수만 하게 되면 반쪽짜리 주짓수를 배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Y 군의 말처럼 나 역시도 매일 허우적대는 상황이었기에 매일 기 주짓수 수련만을 하는 것에 대하여 불만은 없었으나, 그런데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계속 있었다. 다른 이유는 습관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한쪽에만 집중하다가 익숙해지면, 다른 것에는 멀리하기 마련이다.      


"노기 주짓수를 위해서는 상의는 래시가드, 하의는 파이트 쇼츠나 아니면 주머니가 없고 쇠붙이나 단추 같은 게 달려 있지 않은 반바지를 착용해 주세요. 그게 없으면, 도복 바지를 입고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도복이 없으면 땀이 바닥에 많이 떨어지니 수건은 꼭 지참 바랍니다."

노기를 위한 기본적인 복장은 이러했다. 주머니가 있으면 운동을 하다가 손가락이 들어가 다칠 수 있고 쇠붙이 등은 긁힐 수 있기에 엄격하게 금했다. 노기 팬츠를 살까 싶어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다양한 가격의 팬츠가 눈에 띄었다. 대체로 운동할 때 아니면 안 입을 듯싶은 화려한 색상이거나 왜색이 짙은 것들이 많아 보였다. 여러 가지를 살펴보다가 일단은 도복 바지를 입고 첫 수업에 참여했다. 이 수업이 여름에만 반짝 수업하는 것인지 앞으로 계속할 것인지 물어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장기적으로 본다면 사는 게 훨씬 이득일 터였다.      


“얼굴을 가까이 둔 채로, 상대의 목을 잡습니다. 그리고 다른 쪽 손은 마찬가지로 상대의 손을 잡고 힘겨루기를 하죠. 그러다가 몸을 낮춥니다, 그 상태에서 내디딘 무릎이 땅에 닿을 수 있도록 전진하세요. 이때 무릎은 상대의 다리 사이쯤에 있는 것이 좋습니다. 그 상태에서 계속 몸은 전진한다는 느낌으로 밀어나가세요. 얼굴이 상대의 몸 측면에 부딪히면 두 손으로 다리를 잡고 뒤쪽 발은 들고 있는 상대의 발 옆으로 디디고 걸어 나가세요. 그리고 뒤로 돌아가 잡습니다.”

위의 설명은 기억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니 세부적인 측면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여하튼 첫 노기 수업에서는 롤링 시작 시 스탠딩 상태에서 기본이 되는 동작과 태클 방법을 배웠다. 마치 레슬링에서 선수들이 민첩하게 들어가 상대를 태클하는 걸 상상하게 되는 기술이었다. 단짝 Y 군과 함께 쉴 새 없이 드릴을 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원래부터 땀이 많은 Y 군은 이내 온몸이 젖어 미끌거렸다. 드릴이 끝나고 우리는 가볍게 기 주짓수에서 배웠던 기술을 바탕으로 롤링을 했다.      

“도복을 잡으시면 안 됩니다. 노기 주짓수는 옷을 잡고 하면 반칙이에요.”     

기 주짓수에서 하던 습관이 있어서 자신도 모르게 옷을 붙잡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관장님은 소리를 지르셨다.   

“물론 시합에서는 이따금 상대나 자신의 옷을 잡기도 해요. 상대가 유리한 포지션을 잡아서 점수를 빼앗기거나 탭을 치는 것보다는 주의나 지도를 받는 게 나으니까요. 그러나 원칙적으로는 특히 상대와 롤링을 할 때에는 안 됩니다.”     

도장의 노기 수련은 기본적으로는 기 주짓수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주로 가르치는 듯했다. 그래서 그런지 도복을 활용할 수 없다는 면을 빼고는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이는 내가 기 주짓수 수련을 오래 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기 주짓수를 받아들이는 데 부담이 적어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기 수련을 오랫동안 했다면 도복 기술의 매력에 푹 빠져 노기에 흥미를 잃을 수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참고: https://rank5.kr/news/articleView.html?idxno=5561)     



노기 주짓수와 기 주짓수의 차이점


참고로 기본적으로 노기 주짓수와 기 주짓수에 관한 설명을 찾아보면 bjjee.com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전문 번역가가 아니기에 오류가 매끄럽지는 않지만,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Here are the main differences

주된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Dress (복장)     

In Gi, you will of course wear a BJJ Gi. In No Gi, you wear shorts and a T-shirt or rash guard.

기에서는 당연히 브라질리언 주짓수의 도복을 입어야 할 것이다. 노기에서는 반바지와 티셔츠 또는 래시가드를 입는다.      


Grips (잡기)     

The Gi has a huge amounts of grips on both the jacket and pants. The most common jacket grip is the collar/sleeve grip. The grips allow you to have great control on the fight and to submit your opponent using their or your own Gi. It allows a much smaller opponent to control a bigger one. In No Gi you have more wrestling based grips such as neck, and grabbing all joints in the body. It is harder to control an opponent and can slip or power out of controls.

기는 상의와 하의에 엄청나게 많은 그립이 있다. 가장 일반적인 상의 그립은 칼라(깃)/슬리브(소매) 잡기(그립)이다. 그립은 당신이 싸움에서 훌륭한 컨트롤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그들 또는 당신의 도복을 이용하여 상대에게 항복을 받아낼 수 있도록 한다. 노기에서는 목처럼 레슬링을 기반으로 한 그립과 그리고 신체의 모든 관절을 붙잡는 그립이 더 있다. 노기의 그립은 상대를 컨트롤하기 더 어렵고 미끄러질 수 있거나 동작 시 힘이 풀릴 수 있다.      


Strategy (전략)     

No Gi i BJJ is faster paced. Gi slows things down due to the natural friction of the garment.

노기 주짓수는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기 주짓수는 도복의 마찰 때문에 좀 더 천천히 진행한다.      


While and Gi and No Gi are very similar, the way both styles evolve are very different. In Gi, the numerous grips and Gi material mean that alot of set ups are based on using the Gi matrerial for ex: lapel or worm guard (which is impossible in No Gi). In No Gi, you look more at taking your opponent’s back because mounting in No Gi has limited submisions, and the back position has the rear naked choke and other options. You will find No Gi players using more guillotines and brabo/darce chokes as well as using more foot locks.

기와 노기는 매우 비슷하지만, 두 스타일이 진화한 방식은 매우 다르다. 기에서는 다양한 그립과 도복이라는 소재는 노기에서는 불가능한 라펠이나 웜 가드처럼, 많은 설정(세트업)이 도복이라는 소재 사용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노기에서는 마운팅에서 제한된 서브미션으로 상대의 등을 더 많이 파며 백 포지션은 리어 네이키드 초크나 다른 옵션이 있다. 당신은 발을 잠그는 기술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더 많은 기요틴과 브라보/다스 초크를 사용하는 노기 선수를 발견할 것이다.      


It is hard to say what is more technical as both styles are different and you also have much smaller No Gi players that submit bigger ones (taking the back is a great way of doing that).

두 스타일이 다르고 또한 훨씬 작은 노기 선수들이 더 큰 선수에게서 항복을 받아내기(뒤를 잡는 것은 그걸 하는 대단히 좋은 방식이다) 때문에 무엇이 더 기술적인지를 묻기란 어렵다.     


Rules (방식)     

Most No Gi tournaments have slightly different rules from Gi. IBJJF rules do not allow heel hooks for Gi and ADCC (biggest No Gi tournament) allows them.

대부분의 노기 토너먼트는 기와는 약간 다른 룰을 가지고 있다. IBJJF 룰은 기에서 힐훅을 허용하지 않고 ADCC(가장 큰 노기 토너먼트)에서는 그것을 허용한다.     


출처:

https://www.bjjee.com/articles/gi-and-no-gi-jiu-jitsu-what-are-the-differences/

(직접 번역, 좀 더 자세한 설명은 위의 사이트를 참고 바란다.)     



노기(No Gi)의 시간, 그리고 도복이 주는 의미


몇 번의 드릴과 롤링 후에 느낀 점은 노기는 좀 더 빠른 순발력과 체력이 있어야 하는 듯했다. 위의 사이트에서도 설명한 바 있지만, 기 주짓수에서는 도복을 입고서 운동하기 때문에 여러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점이 있지만, 마찰력이나 무게감 때문에 상대적으로 빠른 움직임을 보이기 어렵지만, 가벼운 옷만을 입는 노기에서는 오로지 순발력이나 체력만으로 상대의 백을 잡는 적도 종종 있었다. 이러한 장점은 아직 기 주짓수 초보인 내게는 이점이 되기도 했는데, 평소에 인터벌 트레이닝이나 기능성(functional) 운동을 중심으로 해왔기에 지치지 않고 계속 빠른 움직임을 하여 유리한 포지션을 점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재밌던 점은 태클 등을 배울 때였는데, 마치 레슬링 같은 움직임이 주짓수를 배우고 있음에도 레슬링과 같은 다른 운동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 글의 큰 제목이 『도복의 시간』인 만큼 그 시간에 도복이 주는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기도 했다. 마음가짐에서 좀 차이가 있었는데, 노기를 할 때는 흰 도복을 벗었다는 데에서 뭔가 좀 더 자유로운 느낌이 있었다. 마치 정장을 차려입을 때와 예비군 군복을 입을 때 마음 자세가 달라지는 것처럼, 도복을 벗으니 뭔가 홀가분해지는 것 같았다. 이는 도복을 입고 때를 매면서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어떤 정신이나 마음가짐을 좀 더 내려놓게 되거나 도복 자체가 주는 무게감에서 벗어났기 때문은 아닐까 싶었다. 알다시피, 인간의 정신은 주변의 환경과 그로 인한 감각에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      

주짓수나 유도와 같은 운동이 서구적인 영향을 받아, 실전적이거나 스포츠화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어떤 정신, 이를테면 동양적인 정신의 수양을 조금이나마 유지하려 하거나 혹은 강조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주짓수는 정신 수양을 위한 운동으로 적합한가? 혹은 정신이라는 것이 스포츠화된 현대 주짓수에도 영향을 끼치는가? 이따금 나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곤 했다. 도복이나 띠를 매면서 뭔가 잘 알지 못하지만, 정신의 수양과도 연관된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정신 수양이 실제 수련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고 느끼기 때문이기도 했다. 정신의 강조가 주짓수의 기술적, 실용적 측면을 발전시킬 수 있는가? 반대로 기술적, 실용적 측면만을 강조하여 신체 단련과 대련에 집중하는 주짓수가 과연 옳은 것인가? 그런데도 난 왜 주짓수를 보며 매번 정신의 수양을 무의식적으로 떠올리게 되는가?      

예전에 ‘효율적으로 연습하는 법(https://brunch.co.kr/@wringkle/215)’이라는 글을 통해서 생각으로만 세세한 부분까지 머릿속으로 연습하면 실제 연습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무도에서 정신 수양으로서의 명상은 기술 연습을 위한 명상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道라는 이름 아래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불교적, 도교적인 명상에 가까운 방법이 아닐까 싶다. 궁금한 점은 그러한 정신을 강조하는 것이 이 주짓수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실전성이 전혀 없어서 대중의 조롱을 받는 무술이 되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다. 정리하자면, 어느 정도의 실전성이 있고 대중 스포츠로서도 주목을 받는 이 주짓수가 정신 수양의 측면에서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그것이 필요한가이다. 헬스장에서 하는 운동에서 道에서 요구하는 정신 수양을 발견할 수 있는가? 어쩌면, 현대 주짓수가 브라질에 건너가 실전성이 강조되고 MMA 등의 여러 격투 스포츠와 비슷해진 탓에 애초부터 道 대신 術(jiu jitsu라는 용어는 일본어 주짓츠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우리말로 하면 유술이다)을 사용하고 있는 것일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이따금 띠에서 도복에서, 그리고 도장에 도착하여 보이는 수많은 예의범절에서 道와 관련된 정신적 측면을 느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마음에 되새김으로써 신체의 건강만큼이나 정신이 건강해짐을 또한 느낀다. 물론 이 브라질리언 주짓수는 그 실질적 기원이 브라질인 것처럼 신체의 단련이나 실제적인 기술의 수련만큼 정신이 강조되는 것은 아니다.(브라질리언 주짓수의 기원은 이전 장을 참고 바란다.)

생각해보면, 이러한 측면 때문인지 신체 단련과 기술 수련을 통해 신체적으로 나를 지키는 것만큼이나 도복을 입고 도장에 발을 디디고 있을 때, 마음이 안정되곤 한다. 이를테면, 주짓수를 통해 몸을 지키는 수련과 함께 마음을 지키는 수련을 하는 것이다. 허무한 마음, 모든 것을 쓸어가 버릴 것 같은 정신적 고독이 있다가도 도복을 입고 흰 매트를 바라보고 나면 마음이 안정되어 '오늘 하루도 잘 보냈다'라고 '내일도 잘 보내자'라고 자신을 위로하게 된다. 적어도 내게는 그것이 의식적이기보다 무의식적이며 자동반응적이다.

도장 안에 들어서면 신체적 단련이 강조된 현대 주짓수일지라도 수많은 형태화된 의미와 기호들이 나를 반기기에 마음가짐을 달리할 수밖에 없다. 도복, 흰색의 매트, 관원들이 메고 있는 빛바랜 벨트들, 사범님의 빛바랜 유색 벨트와 관장님의 존경스러운 블랙벨트, 수천 번은 짓눌렸을 저 만두가 된 귀, 예의 있는 모습을 보이려는 관원들의 자세들까지도.

어쩌면 노기는 그 수많은 의미와 기호의 압박 속에서 도복이라는 의미를 조금 벗음으로써 조금은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마치 정장만 입다가 일주일에 두 번은 캐주얼 복장으로 회사를 가는 기분이랄까? 나는 그 캐주얼 복장 속에서 내 마음의 근육을 조금은 더 이완시키다가 정장을 입고 다시 이곳의 의미를 되새긴다. 내게 매번 감사함을 주는 이곳의 의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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