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내면세계에 영향을 끼친 것은 무엇인가? 특히 문학과 아무런 상관이 없던 내가 인문주의적인 세계관을 만들고자 부단히 노력하려던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그저 의미 없는 것이었던가? 아니다. 그것은 단순한 지적 허세의 욕구가 아니라, 위대한 글을 써보고 싶은 지적인 노력의 일환이었다. 가장 최고의 것을 보고 느끼면서 그것을 계승할 위대한 작품을 만들기를 소망하는 바람이었을 뿐이었다. 그럼 바람 가운데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은 내가 몇 년간 지내온 환경이 지적인 토론이 가득한 세상이었다는 것이다. 독서 모임과 토론과 글쓰기를 위한 공간을 만들고서 그 안에서 계속 몇 년간 성장해왔다. 그러한 까닭에 어떠한 고통이나 의식적 노력 없이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을 작가라고 혹은 어린 시절의 나와는 다른 지적인 이성을 갖춘 성숙한 누군가라고 아직도 자신하지 못한다. 약 십여 년 가까이 그렇게 지내왔음에도 우울할 적에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온몸을 엄습한다.
돈! 돈! 돈을 벌어. 가난은 죄악일 뿐이야. 도스토옙스키는 내게 말했다. 가난은 죄가 아니다. 어리석은 글쟁이는 말한다. 나는 행복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으니 난 부자야! 글쟁이는 항변한다. 그러나, 내가 아닌 내 가족이 돈으로 인해 겪는 슬픔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도대체 지금까지 무엇을 해왔던 것인가?라는 생각과 더불어 내 행위 자체가 죄가 된다. 돈을 벌어 내 가족을 행복하게 하지 못한 죄, 그들에게 슬픔을 안겨준 죄, 나는 아들로서 모든 의무를 저버린 죄를 겪는다. 차라리 헛된 꿈이라며, 남들처럼 살아가고 그의 대가로 돈을 받았더라면 나는 그 굴레는 벗어났을지도 모른다. ‘버리지 못하는 꿈으로 인하여 무가치한 글 따위를 쓰다가 이대로 내 인생은 끝나버리는 것은 아닌가?’라는 두려움. 그러면서도 글을 쓸 때가 제일 행복해지기에 그것을 또한 버릴 수조차 없다.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글을 쓰지만, 동시에 그것은 삶의 의무 따위는 져버리는 죄악이 되기도 한다. 모든 이들이 나의 꿈을 응원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불안한 눈빛에는 현실을 인식하고 내게 그들과 같은 현실을 마주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안다. 네가 조금 더 현실을 인식했다면 돈이 되는 글을 써야 해. 글은 취미로나 하고. 너는 글을 전문적으로 쓰고 싶다고 하면서 지금의 태도는 취미로 쓰고 있을 따름이야. 멍청이. 너를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 너의 아버지의 깊게 팬 주름을 봐. 너의 어머니의 퉁퉁 부은 손가락 마디마디를 봐. 네 동생의 한숨과 눈물을 봐. 너는 이 모든 것을 네가 안 보이는 곳에 둔 채, 너 혼자만의 공간에서 행복하다고 하고 있어. 너는 독립투사처럼 의로운 일을 위하여 네 가족을 저버리는 것도 아니야. 그저 그냥 너 혼자만의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등한시하고 살고 있어. 그러는 동안 네 동생이 네가 져야 할 의무를 모두 감당했고 너는 그 사실을 알고도 일부러 모른 척했지. 겉으로 착한 척하지만, 실상 너만큼 이기적인 존재도 없는 것 같다. 어리석은 글쟁이 안에 또 다른 자아는 나를 보고 비웃으며 말을 했다.
너는 지금의 선택을 후회 없다고 말할 자신이 있냐? 과거로 되돌아간다면, 네가 선택한 글쟁이로서의 삶을 포기할 수 있겠냐? 또 다른 자아가 계속 말했다. 과거 어느 시기로 되돌아가야 할까? 글을 써서 처음으로 상을 받았던 초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연습장에 소설을 써본 중학교 시절? 아니면, 기호학에 관하여 청강을 했던 대학 4학년 시절? 혹은 취업과 글쟁이 사이에서 고민했던 대학 졸업 이후? 어느 시기로 되돌아가야 나는 이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걷게 될까? 사실 나는 최초의 글을 쓰던 시기부터 이 길로 가게 될 것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어떻게든 이 운명을 피해 보려고 대학을 다른 학과로 진학했지만, 결국 이 길에 들어서게 되지 않았는가? 그래, 무슨 선택을 해도 결국 나는 이곳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어느 곳에서 있었더라도 나는 글을 그리워했을 것이고 위대한 작가를 동경했을 것이다.
미안합니다. 아버지. 당신이 너무나 힘들 때, 저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었다고 했던 말을 어머니께 들었어요. 그런 당신을 두고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나는 어리석게도 지금도 이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네요. 미안합니다. 어머니. 병원에 갔더니 당신의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다고 하는데, 나는 지금도 이렇게 먼 곳에서 희희낙락하며 살고 있네요. 미안하다 동생아. 전화기 너머로 "형……. 난 형을 믿어."라는 목소리에 담긴 한숨의 의미를 모르지도 않으면서 아무것도 모른 척 살고 있구나. 아니, 사실 그대가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습니다. 다만 모른 척할 뿐입니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면서. 결국, 그러다가, 수많은 이들이 그러했듯 결국 효도도 하지 못하고 떠나버리지 않을까 두려움을 느끼면서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이 지랄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내 마음의 평화와 행복은 결국 조작된 것이며, 내 현실을 멀리하고서 얻은 행복임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저 히키코모리와 다를 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나는 매일 글을 씀으로써 삶을 보람차게 보내고 어떤 의미를 추구한다고 스스로 자위할 뿐이지만, 실상 다를 바가 있겠습니까? 2~3년만, 아니 1년만, 그것도 아니라면 6개월 만이라도 기다려주세요. 나는 그대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실로 두렵습니다. 어떤 위험이 갑자기 닥쳐올까 봐 너무나도 두렵습니다. 고백하지만, 내가 집에 내려와도 도망치듯 빠져나가는 까닭은 내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그대들을 보고 있으면 나는 내 행복마저 빼앗길까 봐 도망칩니다. 그렇게 고속버스를 타고 내 작은 방에 도달하고 나서야 나는 평안을 되찾습니다. 그대들이 있던 터전이 어느 시절에는 천국이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옥이었던 적도 있습니다. 나는 그대들이 있는 곳이 다시 젖과 꿀이 흐르는 천국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대들은 결코 서글픈 지옥 속에 있어야 할 존재가 아니니까요. 그대들은 언제나 내게 말합니다. "너의 행복만을 찾아. 우리는 괜찮으니까. 내 새끼 마음에 짐을 주고 싶지 않단다." 아! 그대를 보면 눈물밖에 나지 않는데, 내가 어찌 괜찮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그전까지 그대는 아파서도 안 되고 고통을 겪어서도 안 됩니다. 그대가 그렇게 되면 저 역시 무너질 테니, 그대들이 저를 위한다면 제발, 아프지도 힘들지도 마세요. 어리석은 글쟁이는 고속버스에 올라타 자신에게 손짓하는 가족을 바라보며 속으로 다짐을 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런 다짐이 몇 년 전부터 계속 이어져 오던 것이었음을, 다짐한다고 하여 쉽게 저세상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원래 세상이란 그런 거니까.
세상은 아름다운가? 커피숍 너머로 햇살에 흔들리는 풍성한 은행나무 잎을 보고 있노라면 실로 그렇다. 세상은 아름다운가? 내게 보여주기 싫어하는 아버지의 근심 어린 주름살을 이따금 볼 때면 그렇지 않다. 세상은 아름다운가? 젊은이들의 해맑은 웃음을 보면 그러하다. 세상은 아름다운가? 내 어머니의 퉁퉁 부은 손과 굳은살을 보면 그렇지 않다. 정말 세상은 아름다운가? 아름다움은 실로 독이다. 나는 아름다운 것보다 비참한 것들을 사랑할 거다. 아름다운 것들은 누구나 사랑할 테니, 나는 비참하고 고독하고 슬픈 것들을 사랑해줄 것이다. 사랑한다, 비참한 세상이여. 나는 그대들을 위하여 내 어머니가 눈물로 나를 위해 기도했던 것처럼 기도할 것이다. 힘든 그대 곁에서 공감하되 그대에게 결코 힘든 내색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대, 그대 자신을 위하여 울고 결코 날 위해 울어줄 생각 따윈 하지 마시라. 당신 자신을 위한 기도를 하고 나를 위한 기도 따위는 절대 하지 마시라. 나는 기도받을 생각도 없고 어떠한 것도 그대로부터 원하지 않을 것이리라. 내가 구원받기를 원한다고 해도 나는 그것을 뿌리칠 것이며 나는 피를 흘릴지언정 내 발을 딛고 가시밭 위에 설 것이리라. 그러니 그대, 그대 자신을 위한 기도를 하시길.
어리석은 글쟁이는 동정, 연민 따위는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더는 누군가를 기대지도 않겠다고 다짐했다. 차라리 더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여 자신을 더 단단하게 만들자고 생각했다. '기대면 쉬고 싶어 한다. 나는 차라리 번민과 고독과 그에 따른 고통을 근육통처럼 여기며 살겠다.'라고 다짐했다. 글쟁이는 자신에게 조금 더 엄격하고 그 대신 다른 이들에게는 조금 더 관대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렇게 생각하자, 글쟁이는 조금은 행복해졌고 당장 프로메테우스라도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을 지켜주고 또한 행복하게만 하던 공간을 조금씩 벗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