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어리석은 글쟁이를 위한 변명 13.

by Chris

글쟁이가 글이 쓰기 싫어질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글을 쓰는 것에 가장 오랜 시간을 들이고 있고 밥 먹듯 일상처럼 글을 쓰고 있음에도 이따금 글을 쓰기가 싫어질 때가 있다. 글감은 떠오르지 않고 간신히 의식의 흐름대로 몇 줄 써 내려간 글조차 재미가 없어진다. 그러다 보면 키보드 자판을 아무렇게나 눌러대다가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라며 한숨 한번 내쉬고는 그대로 노트북을 덮어버리거나 인터넷을 한다.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이는 일이 그 순간만큼은 무의미한 일이 된다. '이게 뭐가 되겠어? 너는 도대체 돈도 안 되는 글을 쓰고 자빠진 거야?' 멍한 상태로 인터넷을 하는 와중에도 귀 안쪽에서는 이런 말이 맴돈다. 그리곤 깊은 한숨.

'이래서 담배를 태우는 건가?' 단전 깊숙이 답답함이 밀려 들어오면 한 번도 피워본 적 없는 담배 맛이 어떨지 잠시 생각한다. 담배 대신 깊은 한숨으로 대신하고는 주식 프로그램을 켜서 총손익이 얼마인지 살펴본다. 많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빨간불이다. 전보다 수익은 많이 떨어졌지만, '+' 기호와 빨간 숫자를 보기만 해도 기분이 조금은 좋아진다. '지금 빼야 할까?' 우유부단하고 어리석은 글쟁이는 여기서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변해가는 숫자만 잠시 바라본다.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이 그렇게 사그라지기 시작하면, 글을 쓰기 위해 할애한 아침과 오전의 시간은 게으름으로 채워진다. 아침에 누구보다 일찍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글을 써 왔건만, 그 행동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여기게 되면 아침에 일어나는 것 자체가 곤욕이 된다. 일상 자체가 부서져 버리게 될까 봐 간신히 몸을 일으켜 샤워장으로 들어간다. 찬물로 머리를 씻고 거울로 제 모습을 보고 '정신 차려야지'라고 주문을 한번 건 뒤에,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선다. '글은 궁둥이로 쓰는 거야.' 카페에 앉아 껌뻑이는 커서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주문을 외운다.

엄밀히 말하면, 글이 잘 써지지 않는 것이 아니다.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어떻게든 쓰려고 하면 뭐든 결과물이 나오는 것은 알고 있다. 직장인들이 정해진 시간에 일하면 어떻게든 결과물이 나오듯,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이 영역에서는 나는 직장인처럼 매일 글이라는 놈을 써 재낄 수 있다. 물론 그렇게 싸질러놓은 녀석이 좋은 놈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나중의 문제이다. 문제는 내 마음이다. 회사에 묶여 있으면 그곳에서 일하든, 혹은 화장실에서 똥을 싸든 돈이 나오겠지만, 나는 하루에도 여러 번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이 말이 몸속에서 맴돌다가 한숨으로 바뀌어 빠져나올 때가 되면, 실로 외로워진다. 공허감을 동반하는 고독이다.

글을 쓰는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 그 모든 것 중에서도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라는 질문만큼 강력한 게 없다. 특히 직업으로서의 글쓰기를 추구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이게 내 청춘을 바칠 만큼의 가치가 있는 일인가? 그런 생각이 들면, 다시 한번 주식 프로그램을 켠다. 몇 달 전부터 시작한 주식이지만, 요즘 들어 주식 창을 바라보는 일이 많아졌다. 그 순간만큼은 밥벌이도 되지 않는 글 따위보다는 지금이라도 당장 수익을 실현할 수 있는 저 몇 푼 안 되는 숫자가 있는 주식 창이 더 좋아진다.

글을 쓰는 데에도 동기 부여가 필요하다. 밥 먹듯이 하는 일임에도 그 일을 포기하지 않고 집중해서 하기 위해서는 뭔가가 필요한 시기가 있다. 어떤 때에는 그것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낙관이었고 또 어떤 때에는 사랑이었다. 다른 때는 무엇이었을까? 그런데 그것보다도, 실상 더 글을 쓰게 한 것은 실로 아련한 눈꺼풀같은 아침햇살이 있던 커피숍이었고 글쓰기가 밥 먹는 것처럼 당연한, 생각도 하지 않고 해야만 하는 일처럼 여긴 습관이었다. 어느 시절에는 그곳에 가면, 생각할 것도 없이 당연히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쌓여 꽤 많은 분량이 모였다. 연료가 많은 자동차가 내리막길에서 속도를 밟지 않아도 일정한 속력 이상으로 가는 것처럼 연료를 채우지 않아도, 액셀레이터를 세게 밟지 않아도 글의 분량이라는 일정한 거리를 자연스럽게 가던 시기였다. 그러나 거의 모든 게 그러하듯, 시간이 흐르면 연료는 떨어지게 되어있고 오르막길도 보이게 된다. 지금 내게는 찾기 어려운 동기 부여, 의욕은 바로 이러한 시기에 정말 필요한 것이 된다.

나는 지금 무엇을 연료 삼아 달려야 하나? 그것은 다른 의미로는 나의 영혼에 에너지가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와 관련되어 있었다. 어리석은 글쟁이는 영혼을 믿지 않으니 정신이라고 해야겠다. 나를 고양해줄, 그래서 '이건 절대 무의미한 일이 아니에요.'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어야만 한다. 아! 우리나라가 총기 소유 허용국이 아니라 다행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따금 주식 창 대신 그것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알다시피 충동은 그런 것이니까.

다시 정신을 차리고, 어리석은 글쟁이는 이전에 써 둔 것 중 정리하지 못한 글들을 정리한다. 아주 오래전에 쓴 글도 다시 꺼내놓아 잠시 그 글을 썼던 옛 시절을 추억한다. 이 글은 누가 썼단 말인가? 자신이 오래전에 써 놓은 글을 보고도 그 글이 자기가 쓴 것인지 알아보지 못하고 이 훌륭한 글은 누가 썼냐고 물었다던 발자크 영감이 문득 떠올라 웃음 짓는다. '이걸 내가 썼다고? 내가 이런 생각도 했단 말인가?'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명석에 이르지 못했구나! 망각하고 싶은 것은 줄기차게 떠오르고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잊어버린 자신의 머리를 두 손으로 흔들다가 손바닥을 얼굴로 가져가 비빈다. '정신 차리자.' 얼굴을 비비면서 속으로 읊조리고는 그런 글 중의 하나를 뽑아, 다시 정리하고 아래에 지금 드는 생각을 추가하고는 오늘 일은 할 일은 다 했다며 좋아한다. 차라리 나를 위해선 궁핍한 게 좋을까? 발자크도 도스토예프키스도 많은 빚에서 벗어나려고 쉬지 않고 글을 썼다지 않은가? 나도 빚을 지면 할 줄 아는 게 글쓰기밖에 없으니 어떻게든 하려고 하지 않을까? 그런 배수진을 생각하다가 도박도 빚을 크게 지는 일도 자신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며 웃고 만다. 위대한 선배들은 알고 있었다. 글을 계속 쓰기 위해서는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빚은 그들이 글을 쓰게 하는 동기 부여의 원천이었다. 식물의 생육에 있어서 강하게 키우고 많은 열매를 맺게 하려면, 물을 많이 주어서는 안 되며 그들 스스로가 뿌리를 깊게 내려 물을 찾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지나치게 풍족한 것보다 적당한 결핍이 낫다.

어리석은 글쟁이는 이제 한 문단을 쓸 때마다, 주식 창을 확인한다. 빨간 숫자가 조금씩 오르고 있었다. '뺄까? 아니다. 더 오를 거야.' 어떤 가망성, 나도 모르게 이 창을 보게 되는 것은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어서일 것이다. 글 역시 계속 쓰게 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이득이 되는 것이 있어야 나는 이 투자를 계속할 수 있다. 나는 지금 글을 쓰는 노력을 하고 있으나 그것으로 어떤 가치를 창출해낼 생각을 하고 있진 않다. 예술성이나 창의성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으며, 그 주변에는 계속 그 정신 행위를 해나갈 수 있도록 동기를 유발할 수 있는 물질적인 이득 또한 있어야 했다.

글쓰기에 관한 것은 아니지만, 근래에 본 책인 '룬샷'이 문득 떠올랐다. 저자 사피 바칼은 그의 책에서 매우 창의적이나 실현 가능성이 적거나 지금 당장은 돈이 되지 않는 것을 '룬샷'이라고 불렀고 창의적이지는 않지만, 돈이 되어 계속 생산해내는 것을 '프랜차이즈'라고 불렀다. 이 책은 경영서답게 어느 정도 성장한 조직은 '룬샷' 부서만 있어서도 안 되고 '프랜차이즈'부서만 있어서도 안 된다고 했다. 둘 다 존재해야 하며, 둘의 균형을 이뤄야 계속 성장할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은 어리석은 글쟁이의 차원에서도 도움이 되는 말이었다. '룬샷'적인 글쓰기도 필요하지만, 내가 이 일을 계속하려면 '프랜차이즈'처럼 고정적인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글쓰기도 필요했다. 그 모든 게 계속된 예술 의욕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요소였다. 나한테는 그런 균형조차 있는가? 나는 무엇을 바라고 이짓을 꾸준히 하고 있는가?

또다시 답답증이 밀려왔다. 집중력이 떨어졌다. 주식 창을 보았다. ‘뺄까? 아니야.’ 눈을 감았다. 두 손으로 얼굴을 비비며 속으로는 ‘정신 차리자’라고 말했다. 화장실에 갔다. 휴대폰을 봤다. 글을 한 줄 썼다. 커피를 마셨다. 조금 집중하여 한 문단을 썼다. 또다시 주식 창을 보았다. 그의 어느 날 하루는 그런 식으로 흘러갔다. 그날따라 삶이 재미가 없었다.

매거진의 이전글어느 어리석은 글쟁이를 위한 변명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