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 그림자를 찾아서
그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사고가 났던 낭떠러지를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몸도 이제는 거의 정상이 되었거니와 두고 온 물건들에 대해서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다시 그림자를 찾아야 한다는 의지가 생기기도 했다. 그곳에 간다고 해서 답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싶었다.
내가 떨어진 장소는 유미가 더 잘았기에 그녀는 선뜻 함께 길을 나서 주었다. 자기 일처럼 먼 곳까지 나를 따라와 주는 유미가 고마웠다. 자주 산을 타 본 경험이 있는 사람답게 그녀는 어렵지 않게 산을 오르고 있었다.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낭떠러지에 도착했다. 위를 바라보니 엄청 높은 낭떠러지는 아니었지만, 족히 5~6m 이상은 되어 보였다. 산의 한쪽의 토사가 유실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낭떠러지였다. 어쨌든 이런 곳에서 떨어졌는데 어디 하나 부러진 곳이 없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한참을 서서 내가 떨어진 곳을 바라보았다. 과연 그때 내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녀의 손을 붙잡고 부모님의 산소가 있는 쪽으로 올라갔다. 날씨가 조금 더워지고 그전보다 풀이 좀 더 무성해진 것 빼놓고 변한 것은 없었다. 나의 기묘한 여행은 이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다행히도 침낭과 가방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유미와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가져온 꽃을 꽂았다. 그리고 맞은편의 불상을 바라보았다. 떨어진 곳과 가까이 있던 불상이었고 나는 분명 이곳에서 그 이상한 불빛, 나를 쳐다보는 강렬한 눈과 같은 불빛을 보았다. 그러나 실마리가 될 만한 것들은 아무것도 없었다. 맨 처음 도깨비불을 보았던 곳에는 수풀밖에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유미의 물음에 나는 그림자를 찾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방법을 몰랐다.
“그냥 살아갈 수는 없는 거지? 사실 없다고 해도 너만 신경 쓰지 않으면 상관없잖아? 누가 그림자 따위에 신경을 쓰겠어?”
오래전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었지만 분명 찾아야 할 것이었다.
“나도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하지만 그렇게 안 되더라. 모두가 가진 것인데 나만 없다는 느낌 알아? 네 말대로 그것이 없어도 살아갈 수는 있어. 하지만 그러고 싶진 않더라.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찾았으면 좋겠어.”
“네가 이성을 잃고 쓰러졌을 때 무의식의 세계를 여행했다고 했지? 아마도 네가 여행하기 위해선 네가 이성을 찾으면 안 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해도 저 낭떠러지를 향해 투신하고 싶지는 않았다. 문득 나를 붙잡으라고 말하던 길거리에 있던 사람이 떠올랐다. 그 노인이라면 무엇인가 답을 알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방법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한동안 그를 만난 곳을 중심으로 그를 찾아 돌아다녔다. 그곳의 노숙자들을 상대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들 그 노인이 한동안 보이지 않는다고들 했다. 누구는 죽었다고 하고 또 누구는 다른 곳으로 간 것 같다고 말했다. “급하게 찾는 것 같은데 그 노인네의 가족이오? 내가 알기론 그에게는 가족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 남자가 의심의 눈초리를 나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가족은 아닙니다. 그러나 제게는 반드시 찾아야 할 사람입니다.” “내가 그가 있는 곳을 알고 있네만 지금은 허기가 져서 말이야. 내게 점심 한 끼를 사줄 수 있겠나? 그럼 그가 지금 있는 곳이 어딘지 알려주도록 하지.”
그는 그 노인이 있는 정보에 대한 대가를 요구했다. 배가 고팠는지 그는 허겁지겁 점심을 먹었고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기만을 기다렸다. 먹으면서 그는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했다. “우리는 뭔가 부족한 사람들이야. 그래서 가족이 있어도 그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하지. 그 부족함 때문에 다른 가족들에게 짐을 지우고 싶지 않으니까. 과거에는 이러한 부족함을 어떻게든 메꿔 보려고 했지만, 이제는 그럴 힘도 없어 포기하게 되었지. 그랬더니 마음이 편하더군. 겉치장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고 그 무엇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도 없지. 자네! 내가 예전에는 무슨 일을 했는지 아나?”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크진 않았지만, 꽤 잘 나가는 의류 업체 사장이었어. 잘 나갈 때는 직원 수가 300명 가까이 되었지. 그러나 IMF가 오면서부터 경기가 바닥을 치더니 사람들도 하나둘씩 떠나게 되더군. 어떻게든 공장을 살려 보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네. 마침내 가진 것들 것들을 탈탈 털어 직원들 봉급으로 주니까 남는 게 없더군. 오히려 잔뜩 빚만 지고야 말았네. 그땐 수도 없이 스트레스를 받았지. 죽고 싶다고 한강에 올라가 뛰어내릴 결심을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야. 그에 비하면 지금은 비록 노숙자지만 목숨은 부지하고 있으니 죽음 앞에 다다른 것보다야 좀 더 나은 것이 아니겠는가? 가끔 이렇게 자네같이 친절한 이들이 돈도 주고 음식도 주니 말일세.” “그럼 가족들은 이렇게 지내고 있는 사실을 모르는 겁니까?” “잘살고 있을 텐데 알릴 필요 있나? 보고는 싶다만 차라리 안보는 게 속은 편해. 며칠간은 가족의 상봉으로 행복할지 모르겠지만, 다시 현실적인 문제로 서로 고민하겠지. 더군다나 아직도 난 빚이 있는 상태라네. 나와 내 빚 때문에 내 가족들이 고생하고 있을게 눈에 선한데, 어찌 내가 그 앞에 갈 수 있겠는가? 낳기만 했다고 아버지 노릇이 끝난 것이 아니더군. 나는 내 가족이 차라리 없었더라면 하네. 아니 그럴 수 없으니까 인연을 끊어야만 했지. 그러나 마음 한쪽에는 아직도 살아 보자 하는 마음이 있어. 개똥밭에 누워도 이승이 좋다는 말이 사실이긴 한가 봐.”
그는 자신의 삶을 더 발전시키고 싶은 마음도 없는 듯 지금 삶에 만족한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내게 그렇게 세상에 괴롭힘을 당하고 자포자기한 삶이 오히려 더 편하기도 하다는 말을 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아예 잊히게 되고자 했고 그러한 삶을 용인하고 있었다. 그와 나의 차이점이 있다면 그는 잊히는 것을 인정하고 있지만 나는 잊힐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도 역시 두렵네. 내가 사랑했던 가족과 사람들로부터 잊혀진다는 것이……. 자포자기하게 되자 사는 것도 대충 살게 되더군. 마음이 편한 것 같아 보여도 결코 편한 게 아니야. 그저 괴로운 일들을 모른 척하고 있으니 마음 편해 보이는 것뿐이지. 그러나 조금이라도 그 괴로운 일들에 곁눈질하면 그것은 여전히 옆에 한가득 쌓여 있거든. 방안의 쓰레기를 치우지 않으면 점점 더 많아지고 더러워지듯이 지금 내 마음이 그 더러울 대로 더러워진 방과 같다네. 그냥 치우는 게 힘들고 귀찮아 쉴 곳만 만들어 두고 쓰레기들은 옆으로만 밀어 둔 셈이지. 자네는 아직 젊으니까 결코 그대 마음에 쓰레기가 가득한 방을 만들지 말게. 그것은 오래 두면 둘수록 증식을 하게 될 걸세. 괴롭더라도 당당히 보고 치워 버려야 해.”
‘당신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사실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내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 혹은 살길을 열어 줄 방법도 몰랐다. 그는 무언가를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나이를 먹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를 동정하진 말게. 그저 자네가 원하는 바를 열심히 찾게. 이런 삶을 살다 보니까 돈 버는 것도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더군.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는 말. 그 말을 일찍이 알았지만, 과거의 삶을 돌이켜 보면 내 삶을 내팽개쳐둔 채 어떻게든 돈을 벌려고만 하는 삶을 살아왔던 것 같아. 무엇인가 진정한 나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은 전혀 없었지. 그저 사는 거였어. 그나마 그런 삶에 지탱이 된 것이 나와 내 가족이었는데, 그들에게 고통을 준다는 것이 나로서는 더 괴로웠던 거지."
가족의 이야기를 하자 과거를 회상하던 그의 얼굴에 고뇌가 비쳤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정말 내 삶이 후회스럽네. 정말 열심히 살았어. 그러나 해보고 싶은 것들은 포기해야만 했지. 그렇게 보면 지금의 삶도 결코 나쁜 것 같지는 않네. 적어도 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은 그때보다 좀 더 많이 생겼거든. 물론 그렇다고 문제에 대해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까지 가진 것은 아니네만……”
국밥에 마지막 건더기를 다 먹을 때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는 말을 이었다. “그 노인은 이제 없어. 아니 있어도 없다고 봐야 맞겠지. 그는 지금 요양 병원에서 지내고 있어. 정신이 이상해진 것 같더라고. 사람도 못 알아봐. 그 양반.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상한 말을 건넬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듣자 하니 젊은 시절에는 꽤 신통력 있는 목사였다고 하더군. 몸이나 마음이 아픈 사람을 치유하기 위해서 주술적인 일을 하기도 했다고 하네. 그런데 알다시피 종교가 그런 게 있나? 사람을 아끼고 정말 사랑해서 내부적으로는 평판이 좋았지만, 문제가 있었지. 그 때문에 교단으로부터 파면을 당했다고 하더군.” 그는 그 노인이 있는 장소를 알려 주었다. 여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성원 요양 병원이라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