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병원에 들어가다 (1)

연재소설 - 그림자를 찾아서

by Chris

요양 병원은 조금 지대가 높은 언덕 위에 있었다. 앞에는 옛날부터 자연 발생적으로 생긴 것인지 아니면 인공적으로 파서 만든 것인지 잘 모르는 그다지 크지 않은 호수가 있었고 그 옆으로는 산책로가 있었다. 그 뒤로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낮은 높이의 산이 있었는데 중턱에는 군데군데 집들이 눈에 띄었다. 산과 호수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하얀 병원의 건물만이 이질적으로 놓여 있었다. 병원 옷을 입은 많은 사람이 산책로에 나와서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부분 혼자 있다기보다 호스피스 혹은 그들의 가족과 함께 있었다. 어떠한 생각을 하는지 병원에서 지급한 옷을 입은 이들은 말이 없었고 대체로 무심히 호수를 바라보는 듯했다. 그도 그렇게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만 그는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혼자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초점이 없는 그의 눈을 보며 혹시라도 나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는 단서를 찾을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멍한 듯한 눈빛으로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자 잠시 동안 가망이 없을 것 같은 절망감에 빠졌다. 그때 어느 간호사가 그에게 다가와 귀에 속삭였고 이윽고 반가운 사람을 만난 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선 차츰 흐리멍덩했던 그의 모습이 길거리에서 보았던 열정적인 모습과 같이 변해 갔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는 최근 내 무의식의 세계에 들어가는 방법을 터득했다네. 그 모습이 방금 자네가 본 나의 모습이지.” 그는 자기가 입고 있는 옷을 한동안 이리저리 바라보았다. “아마 자네는 우연히 무의식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었을 거야. 그러나 그 방식은 참으로 불안한 방법이었겠지. 난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생기는 마음의 병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고민을 했었네. 그리고 그것을 치유할 방법이 무엇인지도 생각을 해보았지. 무당굿과 같은 주술적인 방법도 생각해 보고 심리학에서 말하는 치유법도 사용해 봤네. 그리고선 결국 직접 무의식 세계로 들어가 치유하는 방법을 생각하게 된 거지. 그러한 훈련을 하기 위해선 자신의 무의식부터 정복해야 할 필요를 느꼈지. 물론 부작용도 있었네. 어떤 경우에는 지나치게 무의식에 빠져 현실과 분간을 못 하게 되는 일이 있더군.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마치 퓨즈가 나가듯이 갑자기 정신을 놓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되었다네.” 그는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웃었다. “그런 경우가 많아지다 보니 무의식의 세계에 있을 때 나를 돌보아 줄 사람이 필요하게 되었지. 그래서 바로 이곳에 온 것이라네. 내 발로 걸어 들어왔어. 적어도 이곳에서는 내가 무의식에 빠져도 비교적 안전하니까. 그래, 자네는 아직 자네의 그림자를 찾지 못한 거로군.” 그는 나의 발끝을 바라보며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 세계에 가면 자네의 그림자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나?” 나는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사실 아직도 그곳에 가면 잃어버린 그림자를 찾을 수 있을 거라 단정할 수 없었다. 다만 그곳에 가면 찾을 수 있다고 그리고 그림자를 잃어버리고 나서 내가 보았던 꿈이 무의식의 세계를 가리켰기에 그곳에 가면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은 것뿐이었다. 혹시라도 지금 내가 찾고 다니는 것이 헛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에 누구도 정확하게 그곳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가 없었기에 내게 주어진 것들을 토대로 그곳에 가보자 생각한 것뿐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기에. 그는 나를 보면서 다시 한번 미소를 지었다.

나는 나의 무의식의 세계에서 경험했던 일들과 다시 이곳에 돌아오게 되고 나서의 이야기를 그에게 말했다. 도깨비불을 본 경험, 그곳에서 스승을 만난 경험, 사막을 건너서 산 중턱에 있는 사원을 갔고 그곳에서 나와 닮은 거대한 성상을 보고 경악했던 일, 그리고 다시 유상과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된 것까지…… 그는 내가 하는 말 하나하나를 귀담아들었다. “무의식의 세계는 자네의 의식 세계와 비슷한 모습을 띨 수밖에 없지. 왜냐하면, 자네의 기억을 바탕으로 기본적인 무의식이 상호작용하니까.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지곤 하네. 그 무의식에 묻어 있는 것을 통해 의식의 흔적을 추측해볼 뿐이지. 자네를 닮은 성상은 바로 자네가 다른 이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이 비롯된 것은 아닌가 싶네. 다시 말하면 현실 세계에서의 결핍이 그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것이라 말이지. 자네는 잊히는 것이 두려웠고 많은 이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인가 보네. 어쩌면 자네는 스스로 희미해져 가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빛이 강할수록 어둠도 강한 것처럼 자기 색이 강한 이들은 그만큼 무의식이 어두울 수 있다네. 하지만 그들은 그 빛을 따라가며 강한 의식의 세계에서의 삶을 만족스럽게 살아갈 수 있어.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의식의 세계에서 자신의 존재가 희미해지는 거야. 그렇게 될수록 무의식은 점차 더 선명해지거든. 무의식이 선명해지면 둘 중 하나지. 죽거나 혹은 나처럼 정신병자가 되거나……."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하더니 내게 다짐을 구하듯 다시 이야기를 했다.

"나는 죽어 본 적은 없으니 죽음에 관해서는 뭐라 말할 수 없겠군. 그러나 자네는 이 세계를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네. 그것을 잊지 말게.” 그는 갑자기 다시 멍한 얼굴이 되어 호수를 바라보았다. 마치 전구의 퓨즈가 나간 것처럼 갑자기 멍한 모습을 내게 보였다가 다시 멀쩡한 모습을 보였다.

“자네는 공통의 꿈을 꿀 수 있다고 생각하나? 마치 영화와 같이 서로가 같은 꿈속으로 접속을 하는 거지. 서로의 무의식이 결합하는 거야.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의식의 세계에서 사람들에게 강한 영향을 끼친 무언가로 인해 비슷한 무의식이 주입되는 때도 있다네. 그리고 때로는 그것의 의식의 세계로 나타나기도 하네. 예를 들면 집단 광기 같은 것이 그런 것이지. 의식의 세계에서 대중을 향한 강력한 공포감은 대중의 무의식에 영향을 미치네. 그것은 다시 살아서 존재하는 대중에 영향을 미치지. 전쟁과 죽음 그리고 공포감이 한데 뭉쳐서 대중의 마음속에 심어졌고 그 무의식은 현실 세계의 차별과 혐오, 파괴라는 의식에 영향을 미치고 강화하지."

나는 사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의식과 무의식이 유기적인 관계가 있다는 사실만을 어렴풋하게 알 수 있을 뿐이었다. 그는 말을 계속했다. "바로 이 공통의 꿈을 통해 나는 타인의 무의식에 들어가는 방법을 생각했다네. 그리고 자네는 당분간 이곳에서 나와 함께 있어야 하네. 훈련이 필요하니까."

그 말은 나더러 정신병원에 들어가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정신병원에서 날 받아 줄 리 만무했다. 노인은 이곳 병원장이 자신의 친구라며 그 점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자네는 일단 이곳에서 고독을 극복하는 법에 대해서 배워야 해. 전에 말했지만, 의식의 세계와 무의식의 세계는 서로 영향을 미치네. 그리고 그 무의식에 가장 많이 영향을 끼치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고독이지. 마음의 병은 바로 고독으로부터 시작하네. 그러나 사람들은 이 고독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지. 육체적인 병은 약이나 음식으로 다스릴 수 있다지만 이 고독을 고치는 방법은 아직 개발된 것이 없네. 아니 다만 극복하려면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중요하지. 다시 말하면 어디에 있어도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 보이지는 않지만, 누군가 항상 나와 함께 있다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하네. 하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야. 원래 눈에 보이는 것을 믿기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 더 어려운 법인 것처럼 내 옆에 실제로 아무도 없을 때 누군가 있다고 믿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 나는 다른 방법은 없나 물었지만, 그는 자신이 알려줄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내게 자기와 통화할 수 있는 휴대폰 번호를 알려 주고 마음먹거든 연락을 달라고 했다.

집에 돌아왔더니 유미가 먼저 들어와 있었다. 그녀에게 정신병원에 들어간다고 하면 어떠한 모습을 보일까 궁금했다. ‘제정신은 아니라고 그러겠지? 물론 제정신이 아니니까 들어가는 것이겠지만……' 그녀가 날 이해해 줄 것을 바라지 않았다. 다만 내 곁에 있으면서 그녀가 상처를 받지만 않았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었다. 아마 정신병원에 들어가면 지금처럼 볼 수도 없을 것이다. 나는 소파에 앉아 조용히 그녀의 등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정신병원에 들어가기로 했어. 내 그림자를 찾아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일이야. 물론 그것을 통해서 내가 찾을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지푸라기라도 잡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시도해보는 거야. 부디 날 이해해 주길 바라. 다행히도 그곳에서 날 도와줄 한 노인이 자신의 친구가 병원장이라며, 병원에 들어가는 건 걱정하지 말라 하더군.” 그녀는 한동안 아무런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나도 들어갈 수 있겠네? 어차피 지금 대본을 쓰려고 했는데 병원에 있는 사람들에 관한 드라마 극본을 써 볼까 했거든. 자기 들어갈 때 나도 같이 들어가게 해 주라.” 그녀는 병원에 들어간다는 것이 향후 진료 기록 등에 남는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연하게 말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그러한 것들을 설명해야만 했다. “괜찮아. 어차피 그런 것들은 글 쓰는 사람에게는 중요하지 않거든. 오히려 경험이 더 중요하지. 아무래도 그 안에서 직접 느끼고 체험하는 것만큼 글 쓰는 데 도움이 되는 게 어디 있겠어? 그 안에 들어가서 그 사람들의 삶을 직접 관찰할 수도 있는 거잖아.” 그녀는 기대감에 부풀어 이야기했다. “난 말이야. 자길 만나기 전까지 인생의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어. 이제 갓 서른의 문턱에 넘어왔지만, 인생이라는 것이 별거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들더라. 결국, 이대로 가다간 남들처럼 결혼하고 아기를 낳고 평범한 아줌마의 삶을 살게 되겠지. 그래 물론 그것이 행복일 수도 있어. 하지만 난 그게 참 싫었어. 그런 와중에 자기를 만났지! 그리고 나선 놀라움의 연속이야. 그림자가 없다는 사실 만으로도 놀랄 일인데, 더군다나 정신 병동에 자처해서 들어가겠다니……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자기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 그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끝나게 될지는 잘 모르지만 지금 쓰는 시시한 드라마 대본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어. 그러니 나도 함께 들어가게 해 줘.” 그녀는 내게 간곡히 요청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그녀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아니면 당장에 그녀는 내가 좋아서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닌가? 혹시라도 후자라면 지금이라도 말려야 한다. 아니면 내가 그녀에게서 멀어지던가. 그녀는 내게 대답을 요구하듯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을 잡고 말을 꺼냈다. “지금 당장 결정할 것이 아니라 좀 더 생각을 해봐. 생각보다는 중요한 문제라고. 네가 나랑 잘되어서 결혼까지 한다면 크게 상관없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네가 결혼이나 삶을 살아가는 데 이게 지장이 안 된다고 보장할 수 없어. 그리고 나 역시 단순히 놀러 가는 것이 아니야. 그림자를 찾기 위해 다시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고자 하는 것이고 다시 무의식으로 들어간다면 그때처럼 의식 불명 상태가 될지, 정신 이상자가 될지 모를 일이야.” 문득 낮에 보았던 노인의 멍한 모습이 떠올랐다. 정신을 놓친 상태에서의 노인의 모습이 바로 내가 얻어야 할 모습이라는 사실에 조금은 두려움도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이 정신이 이상한 곳 같다는 말도 했다. “자기는 세상이 미쳤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 나는 내가 예민해서 그런지 몰라도 때로는 세상이 정말 미쳐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어. 사람들은 죽으라고 일만 해. 어떻게든 돈을 벌어보려고 혈안이 되어 있어. 진정한 삶의 행복이라는 것은 보이지도 않아. 모두가 다 똑같아. 나도 거의 미치기 직전에 자기를 만난 거야. 자기는 뭔가 달라 보였으니까. 유별나 보이기도 했어. 그림자 따위가 없다는 것이 뭐가 대수냐 싶기도 했지만, 그것을 어떻게든 찾으려고 일조차 그만두었다는 것이 뭔가 달라 보였거든. 그러니 내가 자기를 따라가려는 것을 막지 말았으면 좋겠어. 설령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하여도 자기를 원망하거나 그럴 일은 없을 거야.”

그녀는 눈에는 단호함이 보였다. 그녀가 마음을 먹으면 누구도 못 말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아마 그렇게 마음을 먹었을 때 그녀의 부모가 보았던 눈빛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도 말릴 수 없는 눈, 삶의 단조로움을 느껴 새로운 도전을 할 때마다 누군가는 그녀의 저 눈을 보았으리라. 누구도 감히 말릴 수조차 없는 그런 눈빛을. 그녀는 자기 방식대로 세상을 살고 있었고 항상 그 도전에서 멋진 결과를 얻어냈을 것이다. 문득 그녀의 눈빛을 꺾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간신히 다짐했던 일들은 너무도 쉽게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생각을 잠시 접어 두고 난 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단호한 모습의 그녀는 매력적이었다. 화룡점정이라고 했던가? 강한 빛을 뿜는 듯한 그녀의 두 눈은 가느다란 선으로 이루어진 그녀의 얼굴과 몸에 너무나도 멋지게 어울렸다. 그러한 두 눈이 있었기에 그녀가 더욱 매력적일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녀를 안고 싶고 입 맞추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손가락 마디 하나하나에 찬사를 보내고 싶었고 그녀의 두 눈동자에 입을 맞추고 싶었다. 우리가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리도 열정적이며 사랑스러운 그녀를 내 곁에서 떠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 순간 나는 잠시뿐이지만 고독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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