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병원에 들어가다 (2)

연재소설 - 그림자를 찾아서

by Chris

다음 날 아침에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는 집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그곳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유미 역시 집에서 옷가지 몇 개와 타이핑을 할 노트북 등을 들고 오겠다고 했다. 그녀가 방문을 나서고 나는 소파에 앉아 잠시 생각했다. 스승과 유상은 잘 있을지 그리고 내가 다시 무의식의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지, 혹은 넘어가서도 바로 그들을 만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을 했다. 무엇도 확실한 것이 없었다. 다만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 투성이었다. 그것들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확신보다 의문과 이대로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더 앞섰다. 그러나 나는 돌이킬 수 없었다. 현재로서는 의문과 해답을 어떤 방식으로든 찾아야만 했고 그렇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나아갈 때였다.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이따금 우리가 알 수 없는 초월자가 있다고 믿으며 그로부터 응답을 듣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을 통해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단지 마음의 위안을 얻거나 도움을 얻었다고 믿을 뿐이었다. 결국, 그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해결이 안 되는 것들은 결국 상처가 아물 만큼이 시간이 흐르면 해결되었다. 사실 해결되었다기보다 그저 상처가 아물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아물었더라도 흉터와 상처의 감각은 계속 남아 있었다. 부모의 죽음이 그러했고 그림자의 분실이 그러했다. 갑작스레 닥친 부모의 죽음은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신조차 해결해 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신을 불신했고 무의식적으로 그림자만큼은 스스로 찾으려 했던 것 같다. 노인은 과거에 목사였다고 했다. 그런 그는 아직도 ‘신에게 의지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의 그림자는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창밖으로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어김없이 그들의 그림자가 바쁘게 쫓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 다시 돌아온 뒤로 남들이 가진 그림자를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다. 혹시나 나와 같은 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내게 없는 것들을 가진 부러움 때문이었다. 정오의 그림자는 그림자의 주인에 비해 매우 짧아져 있었다. 그것은 모두 다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사람들의 머리 위로 구름이 끼자 그림자는 희미해졌다. 나는 노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유미도 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알겠다고 하며 둘의 입원 절차를 밟아 두겠다고 전했다. 전화를 마치자마자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 바라보니 유미가 들어왔다.

그녀의 차를 타고 노인이 있는 병원으로 갔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다짐이라도 받을 듯 말했다. “혹시나 내가 그곳에서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되어도 놀라지 마. 그리고 있기 힘들다 싶으면 언제든 떠나도 돼.” “그런 말은 이제 그만해. 그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 진짜 내가 옆에 없었으면 좋겠어? 아니잖아. 그렇다면 솔직해지자. 나는 그곳에서도 작가로서 소임을 다 할 거야. 그리고 설령 당신이 이상해진다고 하더라도 당신을 돌보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을 거야. 자기도 내가 있는 게 더 좋잖아?” 그녀는 이제는 더는 그 점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는 투로 말했다. 한동안 둘만 있는 차 안 공간에 침묵이 감돌았다. 그렇게 우리는 병원에 도착했다. 노인은 어제와 같은 장소에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이미 병원장에게는 이야기해 두었다고 했다.

“여기는 무의식과 의식의 세계 사이에 있는 이들이 많은 곳이야. 아예 살아 있는 상태로 무의식의 세계로 넘어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디가 진짜인지 가늠을 잘 못 하는 이들도 있지. 두 개의 차원이 하나로 겹쳐서 보이는 이들도 있어. 흔히 말하는 귀신 들린 인간들이지. 저기 천장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이가 보이나? 귀신 들린 인간이야. 그는 천장에 구석에 사람이 붙어서 밤낮으로 감시하고 있다고 믿고 있네. 그는 무의식 속에서 만들어낸 환각을 실제처럼 여기는 셈이지.” 그는 병동 안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설명해 주었다.

“원래는 남녀 구분이 되어 있는 칸이지만 특별히 둘을 위해서 병원장에게 함께 지낼 수 있는 병동으로 달라고 요구했네. 바로 이곳이지.” 병동은 2인실이었다. 갑자기 어째서 노인이 이렇게까지 우리를 도우려고 하는지 궁금해졌다. 우리는 잘 아는 사이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어떠한 이해관계에 있는 사이도 아니었다. “왜 이렇게 우리를 도와주시는 겁니까?” 나는 노인에게 물었다. “내가 돕는 이유는 물론 자네처럼 그림자를 잃어버린 일은 아니었지만, 나 역시 어떠한 문제를 겪던 시절이 있었고 마찬가지로 우연히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았기 때문일세. 그 이야기에 관해선 아마 차차 알게 되리라 생각하네. 내가 왜 자네를 도와야만 하는지……. 다만 훗날 내가 자네에게 무의식에 세계에 들어갔을 때 무언가를 요청할 일이 있을 걸세. 오로지 자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 그럼 이제 이곳에 짐을 풀면 되네.” 정신병원이었지만 방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하얀색의 숨이 막힐 듯한 기분이 드는 곳은 아니었다. 오히려 어떤 사무실의 응접실과 같이 자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벽도 하얀 바탕이 아닌 밝은 색의 나뭇결이 있는 방이었다. “이곳에서 그대들이 생활할 것이며 또한 무의식에 접근하기 위한 훈련을 함께 할 걸세. 그러는 동안 이곳의 많은 이들을 보게 될 거야. 그들을 잘 살피고 자네도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네. 자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혼수상태였을 때 무의식을 여행한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었네. 잘못했으면 현실 세계로 돌아오기 어려울 수도 있던 일이었지. 그러므로 무의식 세계에서 긴 여행을 하기 위해선 훈련이 필요한 것일세. 이곳은 그 훈련을 위한 적합한 장소 중 하나이고.” 그는 침대 위의 옷을 가리키며 갈아입고 밖으로 나오라고 했다. 옷을 입자 이제 진짜 병동이구나 싶었다. 유미는 이곳에서의 삶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밖에는 꽤 많은 사람이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사람들 대부분은 50~60대로 보였지만, 그중에는 우리보다 젊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정말 멀쩡한 듯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나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정신 치료를 받는 이들은 정말 멀쩡해 보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이상하다 싶은 이들보다 보통처럼 보이는 이들도 많이 보였다. 새삼 정상적인 사람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내가 여기서 가르칠 수 있는 것은 그 세계에 접근하는 방법이네. 그러나 문턱에 가는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있을 뿐, 그것을 넘는 것은 전적으로 본인의 능력이지. 나는 자네가 저 세상과 이 세상을 혼동하지 않기를 바라네. 혹은 그 세계가 너무나 좋아 이곳을 버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 그것은 소중한 사람과도 연관되어 있네.” 그는 유미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지금 자네에게는 저 사람이 소중한 사람인가? 그렇다면 아무래도 내가 저 여자를 허락한 것이 잘한 것 같군. 그러나 너무 그녀에게 빠지지는 말게나. 그렇게 되면 무의식의 세계 자체를 건너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다만 이곳, 이 세상에 그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 나 역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미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며 무엇인가를 기록하고 있었다. “훈련이 끝나면 자네는 이곳과 저곳을 두루 볼 수 있게 될 거야. 처음에는 꿈을 통해 서로의 세계를 오갈 수 있게 될 것이고 좀 더 능력이 생기면 평상시에도 다녀올 수 있을 거야.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해진다고 느껴질 때, 꼭 내게 말을 해주게. 그 순간에 제대로 훈련을 하지 않으면 결국 우리의 뇌는 혼란을 일으키게 되고 이상해지게 된다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나? 저기 저 사람처럼 될 수 있다는 걸세. 이따금 두 세계의 차원이 무너져 현실 속에서 환각이 자리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게. ” 그는 넋을 놓고 다른 사람이 밀어주는 휠체어에 의지해 산책하는 이를 가리켰다. “저자가 겪고 있는 정신병과 무의식 세계를 여행하는 것과 차이는 크게 없네. 차이가 있다면 내 의지로 이곳과 저곳을 여행할 수 있는 것인가 혹은 무의식의 세계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의 차이이네.” 우리는 계속 유미와 그녀 앞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조금 더 대담해져서 넋을 놓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무언가를 물어보는 것 같았다. 물론 그 넋을 놓은 사람이 말을 할 리 만무했지만 어떻게든 대화를 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자네가 저 여자를 만난 것은 아무래도 큰 행운이 될 것 같네.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말을 거는 것, 대화하려는 것 자체가 무의식의 세계에서 의식의 세계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통로가 되지. 특히나 저 사람처럼 마음의 문을 굳게 닫은 사람은 더욱 그런 것이 필요해. 그런 이에게 관심이 담긴 말을 건네는 것은 문에 노크하는 행위와 같지. 물론 그것에 반응하여 문을 여는 것은 전적으로 그 집주인의 몫이겠지만 말이야. 그래도 혹시 아는가 저렇게 계속 두드리다 보면 시끄러워서라도 문을 열고 응답해줄지. 아마 자네에게도 저런 순간이 올 것일세. 자네 역시 무의식의 세계에 발을 디딘 후에 아예 이곳으로 열려 있는 문을 닫아버릴 수도 있어. 그때가 되면 그녀의 힘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 같네.” 그의 말을 듣자 새삼 그녀가 대단하게 보였다. 그녀가 나의 힘이 될 수 있을까? 그만큼 그녀가 내게서 중요한 사람이 되었는지 아직은 나도 잘 알 수 없었다. 분명 그녀에게는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무엇인가가 존재했다. 과거 다른 사람들도 만나 봤지만, 그녀와 같은 감정은 들지 않았다.

어린 시절 부모의 죽음으로 인해 쾌활했던 내 성격은 조금은 우울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가까워지는 것을 피했다. 어느 시점이 되어 누군가 내 마음 깊숙한 곳으로 들어오려고 시도하면 과감히 밀어냈다. 어차피 언젠가는 헤어지게 될 것을 마음을 주어 괴롭게 만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물론 겉으로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직장이나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무의식의 세계에 갔다 온 이후로 만난 그녀와의 관계는 분명 조금 달랐다. 그것은 나로부터 만들어진 것일까? 그녀의 밝고 적극적인 모습 때문인 것일까?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된, 대학 시절에도 인간관계를 폭넓게 만들어보고자 여러모로 노력한 적도 있지만, 결국 어느 시기에 모든 관계를 다 버리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내 변덕으로 봤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 모습을 끝내 인정하게 된 것이라 여겼다.

그때는, 소중한 것들이 갑자기 무가치해 보였고 지금까지 붙잡으려고 노력했던 수많은 관계의 끈들은 내가 놓으면 언제든 사라질 것처럼 보였다. 그들의 주변에 내가 있든 없든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가슴이 뚫린 공허함이 온 마음을 사로잡았던 시기였다. 단순한 외로움으로 표현할 수 없는 말 그대로 가슴 한쪽이 뻥 뚫린 느낌이었다. ‘아……. 이런 것이었구나.’ 때때로 어떤 소설에서 가슴이 뚫린 듯한 느낌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느낌임을 알 수 있었다. 가슴이 뚫렸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답답함과도 같았다.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의 그 무언가가 없을 때 느껴지는 그 감정이었다. 답답함은 앞뒤가 꽉 막힌듯한 느낌임에도 그것이 가슴이 뚫린 공허함과 일치한다는 것은 조금은 신선한 발견이었다. 이러한 공허함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몰랐다. 혹자는 사랑만이 그것을 채울 수 있다고 했지만 나는 어떻게 해야 그것을 채울 수 있을지도 몰랐다. 시도조차 두려웠다. 누구도 내 옆에 있지 않게 되고 공허함이라는 감정마저도 무뎌져 권태가 될 때, 그림자조차 나를 떠났다. 그런 내 옆에 새로운 그녀가 어떠한 우연으로 와 있었다. 먼발치에 있는 그녀는 아직도 말이 없는 어떤 사내를 향해 계속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지금 그녀가 하는 행동이 이로운 일이라는 것은 그녀 자신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저런 행동 하나하나가 그녀를 빛나게 한다는 것을, 그녀의 장점이 결코 외모가 아니라 저런 마음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가 대화를 시도하는 사이에 우리는 다시 병동으로 들어갔다. “나는 자네를 최면을 통해 깊은 수면으로 빠져들게 할 걸세. 꿈은 무의식과 의식을 연결하는 가장 손쉬운 수단이지. 그러나 자네가 무의식 속에서 항해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걸세. 자네가 찾으려 했던 그 세계로 다시 간다는 보장도 없지. 그러나 자네가 얻고자 하는 것을 계속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다시 가게 되는 길이 보일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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