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병원에 들어가다 (3)

연재소설 - 그림자를 찾아서

by Chris

그곳에서의 생활은 매우 규칙적이었다. 모든 것은 시간표에 맞춰 돌아갔고 매번 바뀌던 수면 시간 역시 일정했다. 첫날에는 깊은 수면 속에서 아무것도 보이거나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자고 일어났더니 상쾌한 기분만 남았다. 둘째 날에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둘이 행복한 듯 나를 바라보는 모습이었고 나는 그 둘을 향해 손을 뻗다가 채 그들을 잡지 못하고 잠에서 깨어야 했다. 그다음 날에는 사랑하던 강아지와 함께 뛰어놀던 꿈을, 넷째 날에는 아버지가 깎았던 조각상을 보았다. 그렇게 시간이 가도 좀처럼 내가 원하는 세계와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서의 삶은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몇 시간씩 자연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었고 사람들은 친절했다. 때로는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적어도 가면을 쓰지는 않았다. 그들은 감정에 충실했고 그래서 더 이상하게 보인 것일 수도 있었다. 유미 역시 이곳에서의 삶을 즐겼다. 어디서나 친절한 그녀는 이제 이곳의 환자들과도 친해져 그들을 도와주고 대화도 하는 등 활발한 삶을 즐겼다.

그녀가 인터뷰한 사람들은 다시 쓰고 있는 작품의 인물 성격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와 함께 호수를 산책할 때면 그녀는 내게 그날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모모 씨가 오늘은 밥에 독이 들었다고 칭얼대던 것부터 옆 방 김 씨가 정상이 되어 다음 주에 퇴원할 것 같다는 이야기까지. 그녀는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그러다 이야기가 끊길 때쯤이면 호수를 바라보았다. 자기가 지금껏 살아오며 본 호수와 산과 별의 양보다 며칠 동안 이곳에서 본 것들이 더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바깥을 그리워하는 얼굴을 잠깐씩 보이기도 했다.

이곳에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운영되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명상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이곳에서 조용히 명상하다 보면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이 들면서 무언가 어렴풋하게 보이는 것이 있어. 그리고 그 안에는 자기가 있지. 자기는 그곳에서 많은 사람의 숭배를 받고 있어. 자기는 단상 위에서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하지. 나는 반가워서 자기에서 손을 흔들지만 자기는 나를 보지 않아. 그저 말하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골고루 바라볼 뿐이야. 그러면 나는 너무나 슬퍼져. 자기가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이 그토록 서운하고 슬플 수가 없어. 한참을 그곳에서 눈물 흘리다가 결국 명상의 시간이 끝나는 것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눈을 뜨게 돼.”

나는 그녀가 왜 그러한 꿈을 꾸게 되었는지 몰랐다. 다만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그녀가 나를 많이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나보다 더 많은 영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내가 다녀온 세계를 본 것인지도 몰랐다. 노인이 말한 무의식의 공유 상태가 그녀에게 일어난 것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내가 노인에게 이야기한 것들을 들어 그녀의 명상 속에서 재조합되었을지도 몰랐다. 이것이든 저것이든 분명한 것은 그녀는 나를 의식하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 나를 바라보며 우울해하는 그녀가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나는 그녀를 꼭 안아 주었고 그녀는 작은 고양이처럼 내게 안겨 얼굴을 가슴에 대고 가볍게 문질렀다. 작은 동물과도 같은 그녀의 모습을 보며 그림자를 찾고 나면 그녀에게 프러포즈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직 나는 그녀를 잘 알지 못했다. 그다지 물어볼 것도 없었고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그저 마음이 움직였을 뿐이었다. 그 마음이 움직이게 된 것은 외모적인 부분이나 외적인 요소에 대한 충족이 아니었다. 지금으로선 단지 작은 고양이 같은 그녀의 모습과 꿈에서조차 나를 그리워하는 그녀의 모습이 전부였다.

그로부터 수일이 지난 어느 날, 나는 드디어 내가 다녀왔던 그 세계를 보았다. 내가 쓰러지고 난 이후인 듯했다. 스승과 유상은 나를 정신 차리라며 흔들고 있었다. 나는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그들의 행동과 말을 지켜보았다. 쓰러진 나는 졸도한 듯싶었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눈은 뒤집혀 있었다.

그 장면을 보자마자 잠에서 다시 깨어났고 바로 노인에게 가서 내가 본 이야기를 전했다. 노인은 생각보다 빨리 일을 착수하게 되었다며 기뻐했다. 이제는 어렴풋한 접속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인 개입을 훈련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명상 시간을 늘렸고 다시 그 세계로 들어갈 훈련을 하기로 했다.

훈련 방법은 사실 대단할 것은 없었으나 꾸준한 훈련이 필요한 일이었다. 눈을 감고 숨을 고르게 한 뒤, 하나의 점을 만들고 그것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선 계속 집중할 수 있게 되면 점차 그 점의 크기를 키워야만 했다. 처음에는 도저히 그 점에 집중할 수 없었다. 집중할라치면 그 점은 이리저리 움직였고 그것을 고정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계속된 훈련은 점차 그 점이 흔들리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되었고 점차 그 점을 가까이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작던 점이 점차 커지자 그것은 하나의 형상이 되었다. 때로는 형상은 아버지의 모습이 되었다가 그 모습을 바꾸어 어머니가 되었다. 그리고선 다시 불상으로, 노인으로, 유미로 변해 갔다. 어떤 경우에는 얼굴은 노인으로 몸은 유미의 모습이 결합하여 나타나기도 했다. 그 과정이 지나고 나자 나는 하나의 형상을 만들고 그 상에 꽤 오랫동안 집중할 수 있었다. 이러한 형상을 만드는 것이 도대체 어디에 도움이 있을까 싶었다. 노인은 이러한 훈련이 무의식의 접근에 도움을 준다고 했다.

“무의식은 우리의 의식과 상호작용을 하지만, 알다시피 마음대로 조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네. 그러나 훈련을 통해 특정한 무의식을 들여다보거나 접근할 기회를 높일 수는 있지. 무의식은 거대한 물줄기와도 같아. 그래서 흐르는 강물 안에 있는 서로 물체들이 강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는 것처럼 자네의 무의식도 그렇게 흘러간다네. 그것은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지. 그것은 강물과도 같은 거대한 무의식 세계 속에서 순환할 뿐이야. 그리고 지금의 훈련은 그 강물 속에서 돌아다니는 하나의 물체를 계속 추적하는 것이지. 다시 말해, 그전에는 한 곳에 뿌리를 박고 흘러가는 것 모두를 무의미하게 보았다면, 지금은 무의식 세계에 존재하는 오로지 하나의 것만을 따라 추적하는 것이라네. 그리고는 의식을 완전히 차단하여 그 추적한 무의식의 영역 속으로 진입을 해야겠지. 내 말 알아듣겠나?”

꿈속에서 스승과 유상을 다시 볼 수 없었다. 꿈을 꾸기 어려운 날도 있었고 기억조차 나지 않는 날도 있었다. 조바심이 날 때면, 현실에 존재하는 유미를 보며 힘을 얻곤 했다. 그렇게 한 두 달이 더 흐르자, 나는 다시 유상과 스승을 꿈속에서 볼 수 있다. 그 꿈은 전과 다를 바 없이 스승과 유상이 나를 흔들던 꿈이었다. 그 안에서 쓰러져 있는 나는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시 똑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에서 저는 전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분명 의식은 존재했는데, 몸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지금 그대는 무의식에서 그대가 원하는 것을 찾아낸 듯하구먼. 이제는 그것을 계속 추적해야 하네. 집중력을 잃지 않는 것이 첫 번째 일이네. 명상을 반복하여 그대의 무의식에서도 오로지 하나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게.”

그 이튿날에도 꿈은 계속 반복되었다. 매일 똑같은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고, 유상과 스승은 걱정하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자네는 이제 곧 의식을 벗어나 무의식으로 온전히 침투를 하게 될 걸세. 다시 자네의 그림자를 찾기 위한 길을 떠나는 셈이지. 자네의 그림자가 무의식의 세계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것인지 나로서는 잘 알 수 없네. 다만 세상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초월적인 것들이 있고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의식 세계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네. 그러한 것들을 찾아가려면 무의식 세계를 여행해야 해. 그곳에 실제로 그림자가 존재할 수도 혹은 단서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지. 그것이 그대를 다시 살게 할 것일세.”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 이야기를 계속했다. “자네 혹시 파랑새 이야기를 알고 있나? 두 남매가 행복을 준다는 파랑새를 찾으러 꿈속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지만 결국 실패하고 집으로 돌아오고 말지. 그러나 결국 자신들의 새장 안에 있던 것이 그토록 찾기를 원하던 파랑새임을 깨닫게 되네. 하지만 파랑새를 발견하기 위해서 그 두 아이는 여행의 과정은 필수 조건이었어. 결코, 불필요한 것이 아니었지. 그들이 어렵게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그 파랑새의 존재는 결코 찾지 못했을 거야. 설사 찾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자신이 찾던 파랑새였음을 알 수는 없었을 거야. 두 눈으로 보았다고 해서 그것이 귀중한 것인지 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 어쩌면 자네의 그림자도 자네와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몰라. 그러나 그 그림자가 자네에게 분명 소중한 것이라면 어쩌면 이 과정은 필연이 아닐까 싶네. 물론 그림자는 파랑새같이 새장에 있지 않을 수도 있어. 자네는 정말 그림자를 찾고 싶나? 그렇다면 그것에 어디에 있건 최선을 다해서 찾아보게.” 그는 자신도 확신할 수 없는 그림자를 찾는 여정에서 내가 행여 실망이라도 할까 싶은지 조심스러운 듯 말했다.

노인은 내게 아주 깊은 숙면에 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꿈의 세계로 들어갈 때 명상을 했던 방식으로 적극적으로 네가 만나고자 하는 이와 배경을 그리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개입하고자 하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제 나는 자네가 깊은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 특정한 약물을 주입할 걸세. 그러나 이 약물만으로는 그 세계까지 깊게 파고 들어가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어. 이것은 단지 중간에 갑자기 깨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야. 자네가 그 세계에 지금의 의식으로 개입하기 위해선 자네가 그동안 훈련해 온 명상법이 필요하다네. 더불어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네에게 달렸다네. 극단적이면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하는 수도 있으니 주의하게. 돌아오기 위해선 그녀가 필요할 수도 있네. 그래서 자네가 그 세계에 가 있는 동안 나는 그동안 그녀를 훈련시킬 예정이네. 그녀는 뛰어난 영감을 가지고 있어. 그 때문에 어쩌면 내가 과거에 말한 자네의 무의식 침투시키거나 공유하도록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부디 그곳에서 자네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네.” 나는 마지막으로 그녀를 강하게 껴안았다. 그녀의 체취와 촉감이 그 날따라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강한 상을 그리는 동안 팔에 따끔한 느낌이 들었다. 약물이 주입되는 동안 점점 상은 전보다 더 크고 강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 상은 점점 더 커져 나를 삼키고야 말았다. 한동안 무중력의 상태를 느꼈다. 온몸이 둥둥 떠 있는 느낌과 함께 몸의 모든 부분이 나뉘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에는 머리와 팔과 다리와 몸통이 따로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프거나 그런 느낌은 없었지만, 그 신체 하나하나가 모두 살아 존재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이윽고 그 신체의 부분 부분도 더 작은 부분으로 나누어졌다. 결국, 온몸은 그 자리에서 아주 작은 가루와 같은 상태가 되었다. 세포보다 더 작은 상태로 나뉘었지만 나는 그 형상 그대로 있었다. 이제 내가 그리고 있던 형상과 나 자신 중 어떠한 것이 나인지 모르게 되었다. 형상이 나였던 것인가 아니면 내가 곧 형상이었던 것인가? 내가 그린 형상이 점차 거대해져 나를 삼켜 버린 후로 어쩌면 그러한 구분이 의미가 없었을지 모른다. 진공 상태에서 나는 분자 상태가 된 내 손을 들어 바라보았다. 분자 하나하나는 분명 살아서 나를 구성하고 있었다. 이윽고 큰 빛이 내 몸 안에서 터지자 나를 구성하고 있던 분자들을 멀리까지 빛을 내며 뻗어가며 흑백의 공간을 모두 메꾸었다. 그들은 하나하나 각자의 눈을 가지고 있었고 그 눈을 통해 모든 세상과 또 다른 나를 바라보았다. 다시 눈을 뜨니 내가 꿈에서 늘 보았던, 유상과 스승이 걱정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17. 병원에 들어가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