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 그림자를 찾아서
나는 다시 돌아왔다. 이곳을 떠나 온 지 한참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곳에서 졸도하고 깨어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한 시간 가량밖에 되지 않았다. 무의식의 세계에서 시간은 내가 의식의 세계에서 있는 동안 거의 멈추어 있었다. 유상은 한동안 내가 깨어나지 않아서 걱정했다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유상을 껴안았다. 유상은 이상한 듯 나를 바라보았지만, 스승은 무언가 다 안다는 눈을 하고 있었다. “그래, 그곳에 잠시 다녀오니 어떠한가?” “비록 이곳에서는 제가 졸도하고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제가 있던 곳에서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나는 유상과 스승에게 그동안 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그들은 진지하게 나의 말을 경청했다. “무엇보다 자네의 신체를 안전한 곳에 두었다고 하니 다행이네. 자네가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 나 역시 자네가 두고 온 신체가 훼손되지 않았을까 조금은 걱정이었네. 신체는 영혼을 담는 그릇이니까.” 유상은 좀 더 그곳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내가 그의 마을을 동경하는 것처럼 그 역시 내가 건너온 세상을 동경했다.
사실 나는 내가 살아온 세상에 대해 미련이 없었다. 그곳에서의 사람들은 모두 자기 일만 할 뿐이며 타인에 대해 무관심했다. 지나치게 물질을 중시했고 세상일에 무감각했다. 오히려 나는 유상이 살던 마을이 더 좋았다. 다른 이들을 배려할 줄 알고 비록 문명화되진 않았지만, 온기가 있었다. 반면에 유상은 그곳에서의 지루함을 느꼈다. 나는 여유라고 생각하는 것을 그는 지루함이라고 받아들였다. 그 때문에 나와 함께 그림자를 찾아 나섰을 때 그는 미련 없이 나를 동행했다. 문득 그를 내가 사는 곳으로 데려간다면 그는 계속 나와 세상을 동경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은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재미있게 바라볼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다시 그가 살아온 터전을 그리워하리라 생각이 들었다.
스승과 유상은 밤이 오고 있어 더는 진행할 수 없음을 깨닫고 짐을 풀었다. 짐을 풀고 모닥불을 피우고 가져온 음식과 주변에 먹을 수 있는 산초를 뜯어 왔다. 스승과 유상은 먹을 수 있는 풀과 먹지 못하는 것에 대해 잘 알았다. 먹으면서 별을 바라보다가 의식의 반대편에 있을 유미를 생각했다. 아마 유미는 지금쯤 옆에서 내 얼굴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아마 손을 잡고 넋이 나간 사람에게 그러했듯 내게도 말을 걸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이곳과 그곳의 시간이 상대적이라면 나는 지금 아마 채 몇 분 지나지 않은 상태일지도 모른다. 시간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알고 있는 시간의 개념이 이곳에서는 상대적으로 이루어졌다. 결코, 이곳에서의 한 시간이 그곳에서의 한 시간과는 달랐다. 순간이 영원이 될 수 있었고 영원한 시간이 다시 순간이 될 수 있었다. 유미가 말을 걸던 넋이 나간 사람은 어쩌면 지금 무의식의 세계에서 말을 거는 순간에도 수십 번을 태어나고 죽는 삶을 반복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문득 궁금해졌다. 과연 이곳에서 우리가 시간의 흐름을 자유롭게 줄이고 늘일 수 있는지, 우리가 직접 그럴 수 없다면 시간을 늘리고 줄이게 하는 요인은 무엇인지.
그림자를 잃어버리기 전까지 나의 삶은 항상 시간에 쫓겼다. 어떻게든 효율적으로 일을 하고자 하면 효율을 빙자하여 생긴 남은 시간에 다른 일들이 채워졌다. 그렇게 멍하게 일하다 보면 집이었고 멍하게 있다 보면 다시 일터였다. 일이 익숙해질수록 시간은 더욱 빨리 흘러갔다. 생각하는 것이 거추장스러웠다. 오히려 고민이 생길수록 일에 더 몰두했다. 한 살, 한 살 더 먹을수록 시간은 더 빨리 흘러갔다. 어쩌면 그림자가 내 곁을 떠나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애당초 그러한 나한테는 그림자가 필요 없었을지도 몰랐다.
그림자가 사라진 것은 우연일까? 어쩌면 우연을 가장한 필연일 수도 있었다. 문득 필연은 의미 있는 우연들의 일치라고 했던 어느 심리학자의 말이 떠올랐다. 고된 일에 시달리던 사람이 자기를 돌보지 못하고 결국 말기 암 판정을 받아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는 것처럼 그림자는 나라는 존재의 상실에 대한 일종의 경고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시한부 인생이 육체의 소멸이라면 그림자는 다른 의미에서의 존재의 소멸이었다.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내가 이 세계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없어졌으니 나는 과연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세계에 돌아와 나는 무언가 모를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곳에서의 현실 세계보다 더 편안했다. 전에는 나에게 맞지 않는 베개를 베고 잠을 청하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너무 안락한 베개를 베고 있고 아무런 걱정 없이 아주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일에 대한 두려움이나 시간 혹은 일에 쫓길 두려움도 없었다.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곳에 계속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이곳에 너무 빠지지 말라던 노인의 당부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곳에 두고 온 유미도 떠올랐다. 그러나 지금은 한동안 그들을 잊고서 지내도 즐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별이 검은 하늘에 수를 놓았다. 별의 모습은 우리가 사는 그곳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스승은 내가 의식의 세계에서 본 것들을 투영하고 있다고 말을 했었다. 그렇다면 저것 역시 내 의식과 무의식이 만들어낸 것인가? 그리고 내 옆에서 잠들고 있는 유상 역시 그러할까? 누워 있는 내 옆으로 유상이 가까이 와 누워 내게 말을 건넸다. 바깥세상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무슨 이야기를 해줄까 하다가 전쟁에 관해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그도 역시 전쟁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선조들이 지금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전 이야기이며 많은 경우에는 대화를 통해 해결한다는 말을 했다. 그가 말하는 전쟁은 외부 부족과의 전투에 가까웠고 현대전과는 양상이 달랐다. 우리는 수십, 수백 킬로미터를 초토화할 수 있는 핵이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 핵 한 방이면 모두를 초토화하고 그것이 떨어진 지역은 생명체가 살 수 없게 된다고도 이야기했다. 그는 왜 그러한 무기가 필요한지 몰랐다. 모든 것을 다 초토화한다면 왜 도대체 전쟁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음으로써 자신들을 건들지 말라는 말이겠지. 자기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랄까. 그것을 실제로 쓰는 경우는 드물어. 네 말대로 초토화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런 무기를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나라들에는 위협이 되지. 마치 우리가 독사에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는 이유가 그 뱀이 독을 쓰든 안 쓰든, 그것을 갖고 있기 때문이잖아. 네가 동경하는 만큼 우리 세상이 좋은 것은 아니야. 오히려 나는 너희가 부러워. 적어도 삶과 미래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적으니까.”
다음 날 아침, 눈을 뜨고 일어나니 스승은 이미 다시 산을 오를 채비를 마치고 있었다. 유상과 내가 정신 차리고 간단한 아침을 준비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 그곳에 올랐다. 지금 오르는 산은 내가 쓰러지기 전의 그것과는 다른 모습처럼 느껴졌다. 길가에는 꽃들이 활짝 피어 있었고 우리는 전보다 여유가 있었다.
산에 오르며 유미를 생각했다. 산의 꽃을 보면서도 그녀를 생각했다. 혼자서 정신병원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혹시 외로워하는 것은 아닐지, 아니면 지금도 내가 마지막으로 본 그 모습처럼 쾌활할지도 궁금했다. 외로워한다면 미안하고 슬플 것이다. 그러나 내가 없는데도 쾌활하게 지낸다면 그것도 서운할 것 같았다. 인간의 마음이 그러했다. 나라는 존재가 없어도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해지기를 바라지만, 내가 없는데도 행복해한다면 사라진 자로서는 너무나 서운한 일이다. 겉으로는 별일 없이 지내길 바라면서 가장 마음 깊숙한 곳 한쪽에는 내가 자리 잡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문득 떨어지는 꽃잎 하나를 보면서 깊숙하게 자리하던 내가 수면 위로 떠 오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모든 사라진 자의 마음이었다. 그 마음속에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길 바라는 나와 영원히 존재하기를 바라는 나가 존재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나는 그 어느 쪽으로 향할지 중심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그 둘 사이에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나와 같은 보통사람의 삶일 것이다. 그 양극단에는 결국 죽음이라는 유혹과 맞물려 있었다. 육체라는 존재가 사라지고 나서야 영원히 잊을 수 있거나 영원히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사라지지 않고 남게 된다면 그것은 그의 육체가 다른 형태로 진화한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어떤 말이나 예술 작품과 같은 것, 혹은 가장 원초적인 자신의 유전자를 자녀에게 물려주는 형태가 될 것이다.
나는 저세상에 미련이 없었다. 말씀도, 예술도, 심지어 내 육체에 기록된 유전자도 물려줄 것 없었으니 완벽하게 사라질 수 있었다. 그러나 사라짐을 생각하면 이내 유미가 떠올랐다.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나에게 세상에 돌아갈 미련을 갖게 한 유일한 끈이 바로 유미였던 것이다.
그녀는 내게 매일 사랑한다고 표현했다. 설령 사랑한다는 말을 하루라도 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쉽게 그 말을 했다. 그녀의 그 말이 언제나 진심이 담겨 있다는 것은 그녀의 눈을 보아도 그녀의 사소한 행동을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하루는 침대에 누워 있는 나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해요?”
어느 하루는 해맑은 미소로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그녀를 보며 ‘너의 귀여운 팬티에 관한 생각’이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녀를 나를 바라보며 다 먹은 접시와 컵을 뺏어서 침대 옆 선반 위에 둔 뒤 내 위로 올라타 내려다보았다. 눈동자가 내 눈 안쪽까지 구석구석 보려는 듯 여기저기 움직였다. 사랑스러운 눈이었다. 나 역시 한참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그녀의 얼굴 전체를 보고 그다음에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녀의 눈동자에 맺힌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가? 이 사람은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그것을 받을만한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혹시 나는 너무 많은 것을 혹시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젠가는 이로 인해 상처를 받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나와는 다른 그녀의 부드럽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거친 나의 손가락 사이로 들어왔다. 깍지를 낀 상태에서 그녀는 이윽고 침대에서 나를 일으키려는 듯 잡아당겼다. ‘힘으로 당겨 내 품에 안기도록 할까?’ 생각하다가 마지못해 그녀의 이끌림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그녀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사랑스러웠다.
눈에 어른거리는 그녀를 당장에라도 안아서 따스한 온기와 체취를 느끼고 싶었다. 그녀의 이름, 존재 다음으로 얼굴과 육체가 연이어 떠올랐다. 그녀의 가슴과 골반 사이에 기가 막히게 위치한 감싸 안고 싶은 허리가 그리워졌다. 나는 그녀 자체가 좋은 것일까? 몸이 좋은 것일까? 그녀와 살을 맞대었던 촉감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사랑은 육체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인가? 그 생각에 미치자 그림자를 찾는 의미심장한 모험을 하는 내가 속물적이고 저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흔히 정신은 거룩한 것, 육체는 저급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어서일까? 나는 왜 육체를 저급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언제부터 육체적으로 느끼는 성적 충동을 저급하고 부끄러워해야만 하는 것처럼 느끼게 되었나 싶었다. 유미는 성적인 부분에서 나보다 훨씬 자유로웠다. 그녀가 자유분방하고 활발한 성격이 바로 성적인 부분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물론 그렇다고 그녀가 문란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사랑하는 이 앞에서 거리낌이 없었고 스킨십에 적극적이었다. 반면 나는 그렇지 못했다. 나는 그 모든 구애의 행동이 어색했으며 둘밖에 없을 때도 마치 누가 볼 새라 조심스럽고 신중했다. 나에겐 성이라는 것 자체가 신성하고 신비로운 것인 동시에 부끄럽고 원초적인 것이었다. 신성함에는 사랑을 동반하고 있었고 원초적인 것에는 육체를 포함하고 있었다. 나는 자유로운 유미를 부러워했고 때로는 시기했고 때로는 사랑했다.
사랑이라는 의미가 담긴 그녀의 모든 말과 몸짓은 뭔가 신나게 만드는 게 있었다. 특히 그녀를 떠올릴 때, 몸의 온기만큼이나 나를 바라보며 내 말에 귀 기울이는 그 모습이 떠오르곤 했다. 내 인생에 누군가 그렇게까지 나에게 집중해 준 이가 있었던가?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잠시만이라도 우울의 그늘을 벗어날 수 있었고 그림자에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던 나 자신의 모습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