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편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ris Aug 09. 2020

삼십 대, 시작의 길목에서 썼던 어느 글


 

 

"나는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잡문의 생계를 유지했고 결국 그것 때문에 인생의 낙오자가 되었지만, 거기에는 어떤 낭만적인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가령 나 자신을 아웃사이더로 선언하고 훌륭한 인생에 대한 이반적인 통념에 휩쓸리지 않고 혼자 힘으로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은 욕구 같은 것. 내 입장을 고수하고 물러서지 않으면, 아니 그렇게 해야만 내 인생은 훌륭해질 터였다. 예술은 신성한 것이고 예술의 부름에 따르는 것은 예술이 요구하는 어떤 희생도 치르는 것, 목적의 순수성을 끝까지 지키는 것을 뜻했다." <빵 굽는 타자기 p. 62>     


며칠 전에 처음으로 나만의 글을 써서 돈을 받아보았다. 직접 손으로 건네받았다면 처음 노가다 판에서 일해서 번 것처럼 감격에 겨워 어찌할 바를 몰랐겠지만, 온라인으로 받은 돈이라 감격보다는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그래도 인터넷 계좌에 떡 하니 찍힌 그 돈을 보고 있노라면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성취감이 들었다. 

잡문의 세계에 이제야 발을 디뎠노라 생각을 하며 어떠한 나만의 글을 써야겠노라 결심하게 된 계기도 그 영향이 컸다.

서른까지 오기까지 내 삶은 안개 같았다. 글에 대한 어떤 낭만적인 생각과 더불어 언제나 월말이면 표면으로 떠오르는 돈에 대한 걱정은 어떠한 선택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안갯속에서 이리저리 주변을 맴돌기만 할 뿐이었다. 입으로는 혼자 해나갈 수 있다고 자신하면서도 어둠이 찾아오면 뭔가 말하지 못할 외로움과 함께 나 자신이 인생의 낙오자가 되어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일었다.      


"난 인생의 낙오자가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이 결코 아니었다. 무언가를 해도 잡히지 않는 듯한 두려움, '난 잘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면서도 무의식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걱정과 번민은 약해질 때면 늘 표면 위로 올라오곤 했다. 그래도 그럴 때면, 폴 오스터처럼 위와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 인생은 훌륭해질 것이다. 별처럼 밝게 빛날지 아직까지도 확신하는 것은 부끄럽지만 내 삶 하나하나 구석구석 지금의 일들이 의미와 경험으로 남게 될 것이다."라고 스스로를 붙잡았다. 그리고 이제 내가 내 글로서 만들어낸 그 돈을 바라보면서 내 삶의 길을 바로 걸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 안에는 어차피 이제는 취업, 결혼, 육아와 같은 일상의 과정에서 떨어져 있는 아웃사이더가 되었으니, 갈 데까지 가보자라는 생각도 있었다. 신앙이 투철하진 않지만 주어진 삶과 신에게 감사하면서 하루하루 성실히 내가 목표하는 바를 수행하다보면 나머지는 신이 이끌어 주시겠지라는 생각도 한다.

난 지금이 행복하다. 내 생각을 글로 쓸 수 있고 나의 가능성의 뱃머리를 거대한 대양의 귀퉁이에 띄울 수 있기에 정말 행복하다. 비록 내가 선택한 이 배가 태평양 어느 한 가운데에서 태풍을 만나 조난을 당할 수도 있고 물자가 떨어져 굶어 죽을 수도 있지만, 그 순간순간을 정말 순수하게 삶에 감사하리라 다짐한다. 

나는 어느 순간 운명을 믿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서른하나이다. 이 나이에 스물한 살 때, 대학교를 위해 처음 인천으로 올라와 막노동으로 하루 일해서 받았던, 금보다 귀해서 어쩔 줄 몰랐던 그 돈이 문득 떠오른다. 줄을 서서 돈을 받았던 기억과 중개 업자가 10%로 수수료를 떼고 주었을 때의 분노의 감정, 그 돈을 받고서 집으로 향하는 내내 혹시나 잃어버릴까 꼭 쥐고 있었던 그 돈……. 생각해 보면 그 돈이 20대의 내 삶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나의 30대의 시작은 우연치 않게 20대 때와 비슷한 모습으로 찾아온 것 같다. 


감사하리라. 어느 순간에 갑자기 슬픔과 괴로움이 밀려온다 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면서 감사하고 싶다.  



오래전 그날,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부단히 책을 읽고 글을 써 왔다. 아직도 갈 길이 멀고 요원하여 어쩌면 이제는 타협을 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도 나의 삶을 가장 충실하게 만드는 것이 글뿐이기에 부끄러움을 딛고 묵묵히 잡문을 써 내려간다.

그때도, 지금도 난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하다.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내 하루를 충실하게 만들어준 수많은 것들에 감사하다. 서른의 시작이 저 돈이었다면, 서른 중반에 이르러서도 계속 나를 살게 만든 것이 그 충실함이었기에, 나는 그 충실함 속에 있던 모든 것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이따금 찾아오는 서러움조차도 늘 그러했듯, 그 충실하던 것들의 기억으로 버텨낼 테니 난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의 글은 그 충실함 속에 존재하던 수많은 관계와 경험과 생각의 소산이기에 사랑할 수밖에 없다. 지금껏 쓴 수많은 글이 남이 보기에 무가치한 것이 된다고 하더라도 결국 난, 사랑할 수 밖에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것이 정말 행복인가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